악의 역사 루시퍼
▲3권 ‘루시퍼’.

루시퍼: 중세의 악마

제프리 버튼 러셀 | 김영범 역 | 르네상스 | 510쪽 | 22,000원

비잔티움의 악마

비잔티움 교회는 신비주의 및 아포파시스적(apophatic) 관점을 중시한 신학을 갖고 있었다. 이러한 비잔티움의 악마론은 민간 전설들과 합쳐진 것이었는데, 악마는 신의 피조물이며 타락 천사로써 인간의 고통과 타락을 기뻐한다고 믿었다.

디오니시우스 아레오파기타(위 디오니시우스)는 약 500년경 활동했던 시리아 수도사로써, 긍정 신학과 부정 신학을 구별하고 아포파시스적 ‘부정의 신학’을 강조했다. 그는 신비주의자로써 삶의 목적을 숨겨진 신(신의 본질은 숨겨져 있고, 신의 에네르기아/활동은 알려질 수 있다)과의 합일, 즉 신화(theosis)라고 보았다.

이 세계는 신과의 거리에 따라 계급적으로 구성된다(taxis hiera, 신성한 질서). 신에게 가까울수록 높은 계급에 속한다. 그러나 이 계급은 고정되지 않고 움직인다.

천사들은 각각 세 계급으로 구별된다. 가장 상위의 세라핌, 케루빔, 트론즈(스랍, 그룹, 보좌)로써 우주를 비추는 신적 원리인 아르키아와 가까이 접하고 있다. 중간의 지배, 덕, 권능(doninations, virtues, powers)은 상위의 천사를 통해 신성한 빛을 받아들이며, 그 아래 계급인 원리, 천사장, 천사(principalities archangels, angels)에게 그 빛을 전달한다. 바로 이 마지막 천사들이 인간에게 신의 섭리를 전달한다.

디오니시우스 아레오파기타에게 신은 선한 것만 만들어낸다. 그래서 신은 결핍이고 존재의 그림자에 불과하다.

“디오니시우스 … 그는 다음과 같이 악을 정의한다. 악은 부족함, 결핍, 약함, 불균형, 과실이며, 무의미하고, 추하고, 생명이 없고, 어리석고, 무모하고, 불완전하고, 실재하지 않으며, 이유없고, 불확실하고, 황폐하고, 무기력하고, 무능하고, 혼란하고, 부조화하며, 애매하고, 음울하며, 실체가 없고, 그 자체로는 어떤 존재도 결코 소유하지 못한다(한글판 37쪽).”

“Dionysius says that evil is a lack, a deficiency, a weakness, a disproportion, an error, purposeless, unlovely, lifeless, unwise, unreasonable, imperfect, unreal, causeless, indeterminate, sterile, inert, powerless, disordered, incongruous, indefinite, dark, unsubstantial, and never in itself possessed of any existence whatever(원서 35쪽).”

악마는 선하게 창조되었으나 자기 의지로 본성을 왜곡하여 타락했고, 신에게서 점점 멀어져 따라 무에 가까워지며, 이 무는 실재하는 것들을 파괴한다.

고백자 막시무스는 이러한 디오니시우스 아레오파기타의 사상을 발전시켰다. 악마의 동기는 신과 인간에 대한 질투이다. 그러나 악마는 신의 대적자일뿐 아니라 노예이며, 심지어 옹호자가 될 수도 있다.

신의 허락 하에 우리는 악마에 의해 연단을 받을 수 있다. 그리고 현재는 신이 모든 곳에 있으므로 악마도 신 앞에 설 수 있으나, 언젠가 신이 우주와 합일의 단계에 이를 때, 악마는 그 복된 결합으로부터 배제될 것이다.

다마스커스의 요한도 이원론(마니교)을 배척하고 악을 비실재, 결핍으로 보았다. 신은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를 만들고, 그 자유의지 남용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 지기 위해, ‘고난을 겪고 죽음을 당하기로 결정’하셨다.

11세기 미카엘 프셀로스는 플라톤주의자들의 자연적 악마론에 뿌리를 둔 기독교적 악마 체계를 주장했다.

“가장 높은 계급의 악령은 레리워리아로, 빛나거나 타오르는 악령들로, 달 너머의 공기가 희박한 영역인 에테르에 산다. 그 당므은 아에리아로, 달 아래의 공기 중에 사는 악령들이다. 다음은 땅 위를 배회하는 쿠트니아, 수중에 사는 휴드리아 혹은 애널리아, 지하세계에 사는 히포크트니아 순이며, 가장 낮은 지위인 미소파에스는 빛을 싫어하고, 지옥의 가장 깊숙한 곳에 거주하는 가장 무감각한 악령이다(한글판 46-47쪽).”

“The highest demons are the leliouria, the shining or glowing ones, who inhabit the ether, the sphere of rarefied air beyond the moon. Then come the aeria, demons of the air below the moon; the chthonia, who in habit the land; the bydraia or enalia, who dewell in water; the bypochthonia, who live beneath the earth; and, lowet, the misophaes, those who hate the light and dwell blind and almost senseless in the lowest dephts of hell(원서 41쪽).”

이 악령들의 활동은 신의 계획(구원)을 방해하기 위해 활동하며, 정신을 공격한다. 질병과 귀신들림을 구별해야 한다고 했지만, 이런 복잡한 체계와 활동들에 대한 프셀로스의 설명에는 일관성이 없다.

동방 교회에서는 서방 교회보다 이원론이 더 유행했다. 예를 들어 보고밀파(Bogomils)는 이원론적 악마 신화를 가르쳤다.

신에게는 두 아들, 사타나엘과 그리스도가 있었다. 큰 아들 사타나엘은 자신의 지위에 만족하지 않고 다른 천사들을 선동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사타나엘은 하늘나라에서 쫓겨나 텅 빈 공간을 배회하며 제2의 하늘을 만들어냈는데, 이 제2의 하늘이 바로 우주이며, 창세기의 창조이며, 사타나엘은 바로 구약 성서의 야훼이다. 사타나엘은 인간에 대한 지배 수단으로 모세오경(율법)을 주었고, 신은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그리스도와 성령을 파송했다.

그리스도는 실제로 육체를 갖고 있는 존재가 아니므로, 십자가에 죽은 것이 아니라 단지 이 진리를 선포하고 하늘로 올라갔다. 그리고 본래 사타나엘이 가진 지위를 그리스도가 차지하고, 사타나엘은 신성한 접미사 ‘~el’을 삭제당한 뒤 사탄이 되었다.

그는 언젠가 최후의 시간에 물질 세계와 더불어 완전히 멸망하게 될 것이다. 참된 신의 나라는 비물질적인 세계이기 때문이다.

이 악마와 악령들에 대한 외관 묘사, 활동, 목적, 심지어 성격까지 점점 더 덧붙여졌고, 이러한 민간 신화를 실제로 믿는 이들을 위해 사제들은 기도에 마술, 주문 등을 덧붙였다. 여기에는 성호를 긋거나 불을 사용하거나 주의 이름을 넣어 어떤 말을 소리치거나 찬송가를 부르는 행위 등이 포함된다.

이슬람교의 악마

이슬람 사상은 꾸란과 하디스에 근거한다. 이슬람교는 철저하게 알라의 절대적 의지와 전능을 강조한다. 모든 것이 신의 의지와 뜻이다. 이슬람의 고난에 대한 해석은 처벌과 시험, 둘로 구별될 수 있다. 고난은 공정하며 시험에는 복종해야 한다.

꾸란에 등장하는 악마의 이름은 둘이다. 하나는 이블리스(Iblis)이고 또 다른 하나는 샤이탄(Shaytan)이다. 신과의 관계 속에서는 이블리스가, 인간과의 관계 속에서는 샤이탄이 사용된다. 그를 따르는 악령들은 샤이탄의 복수 형태인 샤이아틴 등으로 표현되곤 한다.

꾸란은 천사나 정령의 지위에 대해 명백하게 밝히고 있지는 않다. 다만 이블리스는 아마 천사였을 것이고, 타락의 시기를 인간 창조 후로 본다(인간에 대한 질투; 아담에게 절하기를 거부한 이블리스).


악의 역사 루시퍼
▲3권 ‘루시퍼’ 원서.

민담

“기독교에서 악마의 개념은 민속적 요소들의 영향을 받았다. 일부는 먼 옛날 지중해 연안 지역의 문화의 영향을 받았으며, 또 다른 일부는 북부의 켈트, 튜튼, 슬라브 종교의 영향을 받았다(한글판 79쪽).”

“The Christian concept of the Devil was influenced by folkloric elements, some from the older,
Mediterranean cultures and others from the Celtic, Teutonic, and Slavic religions of the north(원서 62쪽).”

4-12세기 사이에 기독교는 북부의 타 종교들과의 잦은 접촉을 통해 많은 것들을 도입했다. 비록 그 원형을 알기는 어렵지만, 비교적 기독교가 수용한 타종교의 악마상들에 대해서는 논의가 수월할 것이다.

튜튼 족 신들 중 ‘로키’는 악의 화신으로 받아들여졌다. 예를 들면 발데르(에시르족의 젊은 신) 이야기로부터 북부 기독교는 발데르를 그리스도로 받아들이고, 로키를 사탄처럼 받아들였다. 하지민 로키의 악마적인 모습은 기독교에 의해 채색된 것이다.

위와 같은 접촉으로 악마의 별명이 매우 많아졌다. 묘사를 중심으로 한 별명도 있고, 이교도의 작은 요정들의 이름들도 차용되기도 했다.

종종 우스꽝스러운 이름도 차용되었는데, 그 이유는 두려움을 없애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악마를 넣은 감탄사, 글귀, 속담 등이 유행하기도 했다.

신화적 이야기로부터 악마의 외모가 구체화되기도 했는데, 예를 들면 천상에서 떨어졌기에 절름발이로 묘사되기도 했다. 또한 악마는 암흑과 추위를 좋아하므로 북쪽(혹은 왼쪽)에 있으며, 북쪽을 지옥의 방향이라 보았고, 심지어 교회 북쪽에는 고인이 된 사람을 묻으려 하지도 않았다.

그 외에도 옛 신들의 제단과 같았던 장소들, 어떤 나무, 샘, 산, 계단, 동굴, 등등을 신의 거주지로 보았으며, 특정한 시간대(예를 들면 해질 무렵을 좋아하지만 수탉이 우는 새벽에는 도망간다는 등)에 대한 이야기도 유행하게 되었다.

악마는 교훈을 주는 이야기 속의 등장인물이 되기도 한다. 지혜와 용기로 악마를 물리치는 이야기는 악마에 대한 두려움을 완화시키는 동시에, 교육적인 목적을 달성한다. 주로 악마와의 내기를 하고 머리를 써서 승리하는 식이다.

여기서 등장하는 인물은 평범한 사람들, 학생, 농부, 구두 수선공, 하냐, 대장장이 등이다. 사제나 신사나 부자는 오히려 어리석고 악마의 편에 사는 존재로 나타나고 용기와 지혜를 가진 자로 등장하진 않는다.

악마는 인간처럼 가족을 갖는다. 아내가 있고 자녀가 있다. 혹은 예수를 흉내낸 12사도를 갖고 있을 수도 있다. 악마가 인간의 여성을 통해 자녀를 낳게 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성육신의 모방이다. 그리고 괴물들에 대한 개념들이 파생된다.

“가뇽은 괴물들이 신으로부터 나와 점점 더 실체에서 멀어지는 방향으로 뻗어가는 존재론적 사슬에 들어맞는다는 그럴듯한 주장을 펼쳤다. 즉 신, 천사, 지배자인 인간, 피지배자인 인간, 야만인, 괴물, 악령, 적그리스도, 루시퍼의 순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괴물둘은 육체적인 결함이 있다. 그들은 거인이거나 난쟁이이고, 눈이 셋이거나 아예 없고, 얼굴이 배에 붙어있다. … 그러나 괴물들은 엄밀히 말해 악령이 아니며, 적어도 그들로부터 한 단계 물러나 존재한다. … 그중 특히 끈질기고 사악한 괴물이 동물인간이다(한글판 100-101쪽).”

“F. Ganon has plausibly suggested that monsters fit into the ontological chain stretching away from God in the direction of less and less reality: God, angels, human rulers, human subjects, barbarians, monsters, demons, Antichrist, Lucifer. Monsters are physically deprived - they are giants or dwarves, have three eyes or none, or have faces in their bellies...Still, monsters are not properly demons but at least one step removed from them. … A particularly persistent and sinister monster is the wer animal(원서 79쪽).”

약 13세기부터 악마와 인간이 그리스도를 배신하고 힘을 얻기 위해 사용한 ‘계약서’가 유행한다(6세기 시실리아의 테오필루스 이야기로부터 기원하고 천년에 걸쳐 다양한 유럽어로 번역되고 다양한 형태로 전승됐다).

이는 적어도 마녀 사냥의 핵심 중 하나였고, 심지어 17세기까지도 악마와 맺은 정식 계약서라는 문서가 종교재판의 ‘증거’로 제출되기도 했다.

악마는 편지를 쓰기도 했다. 12세기 이야기에 얼핏 등장했던 그것이, 13-14세기에 이르러는 일반화되었다. 하지만 악마의 편지는 ‘풍자’ 성격이 강했다. 즉 교회와 성직자 지배(교황 무류)에 대한 공격이었고, 이는 공의회주의 및 개신교 발전에 영향을 미쳤다. 이것 중 가장 유명한 것은 1351년(혹은 1352년)의 <루시퍼의 편지(Epistola Luciferi)>이다.

중세 초기의 악마론

5-9세기 사이 가장 영향력 있던 사람은 교황 그레고리우스 1세로써, 그는 초기 기독교 교부들의 악마론에 기초해, 악마는 본래 모든 존재 중 가장 처음 창조된 케루빔이라고 보았다(이원론에 대한 반대).

그러나 그는 인간 창조 이전, 즉 신에 대한 질투와 자만으로 인해 타락했다고 주장했으며, 이 입장이 확립됐다. 악마의 인간 질투는 타락 이후 발생한 것이다. 그레고리우스 1세는 욥기를 통해, 악마는 신의 통제 아래 있으며 신은 인간의 성장을 위해 악마의 활동을 허락했다고 보았다.

하지만 인간은 원죄로 인해 악마의 소유물이 되었다. 물론 이 소유물이 된 것, 혹은 악마의 권리가 갖는 성격에 대해서는 신학자들간의 논쟁이 있었다.

물론 악마의 권리는 신에 의해 제한될 뿐 아니라 그리스도를 통해 취소까지 되었다는 것이 일반적으로 공유된 생각이었다(배상 이론). 속죄 이론에는 악마가 끼어들 여지가 없었지만, 중세 신학자들은 배상 이론과 속죄 이론 간의 모순을 해결하지 못했다.

중세 신학자들은 사탄이 구원받을 수 없다는 기존 많은 교부들의 입장에 동의했지만, 그들이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던 그 이유에 대해 더욱 추구하기 시작했다. 주로 스스로 구원받기를 선택하지 않았고, 인간보다 타락의 심각성이 더하며, 인간은 유혹을 받았지만 사탄과 악령은 그렇지 않았다는 등의 이유를 내세웠다.

한편 고트샬크는 엄격한 예정론을 내세웠고, 모든 것이 신의 뜻이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엄격한 예정론이 언제나 품고 있는 문제는 자유의지를 제거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사실상 악/마의 존재 의미도 설명되지 못하고 처벌도 설명되지 못한다.

요한 스코투스 에리게나는 “신은 초월적 존재이므로 역설도 포괄한다”고 보았다. 서로 반대되는 것이, 둘 다 신에게서는 진실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신은 존재하면서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식이다. 이는 우주에 대해서도 신과 관련해 적용될 수 있다. 신은 우주이면서도 우주가 아니다. 이런 주장들로 인해 범신론자라는 오해를 받았지만, 에리게나 스스로는 그것보다 조금 더 복잡한 범재신론을 주장했다고 볼 수 있다.

신이 우주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면, 그 우주는 존재하지 않았던 때가 없었다고 할 수 있다. 우주 자체는 시작과 끝이 있으나, 신의 말씀/생각 안에서 우주는 영원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악은 어디로부터 왔는가? 신은 악을 알지 못하므로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악은 창조된 존재의 ‘결여’ 내지 ‘거부’로 발생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악은 처음부터 존재한다. 즉 악은 존재하면서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만물은 언젠가 신에게로 되돌아갈 것이다. 그때 악마(인간)는 존재하나, 악마(죄인)로써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중세 시대 세례식에서는 엑소시즘이 행해졌다. 기도나 선포와 더불어 성유를 붓거나, 성수를 뿌리거나, 사제가 세례받는 자의 얼굴에 입김을 내뿜거나, 침을 귀에 바른다거나, 성호를 긋는 다는 것 등의 행위를 하되, 부활절 전야에 서쪽에서 동쪽으로(부활 상징) 움직이는 행위 등을 했다.

중세 초기 예술과 문학에 등장하는 루시퍼

라벤나의 산 아폴리나리우스 누오보 교회의 모자이크
▲라벤나의 산 아폴리나리우스 누오보 교회의 모자이크.
악마에 대한 가장 오래된 작품은 아마 520년경 완성된 라벤나의 산 아폴리나리우스 누오보 교회의 모자이크일 것이다.

청보라색 천사(권력의 후광)와 염소가 바로 악마에 대한 묘사라고 할 수 있다. 라불라의 복음서(Rabbula Gospels)에서도 그리스도가 축귀하시는 모습이 담겨 있다. 9세기에 이르러서는 악마에 대한 다양하고 풍성한 묘사들이 발전했다.

악마에 대한 예술적 묘사는 주로 성서에 나타난 내러티브를 그려내는데 등장했다. 그 모습은 추한 모습, 기괴한 모습, 동물뿐 아니라 아름다운 모습으로도 나타났다.

동물의 모습을 한 경우, 주로 동물 꼬리, 동물 귀, 염소 수염, 갈고리 발톱, 동물 발 등을 가진 인간으로 그려졌고, 날개를 단 경우가 있었다. 부당하게도 종종 인종차별적 중세 화가들은 악마를 굽은 등이나 뚱뚱한 모습을 가진, 그저 한 인간으로 그려지기도 했다.

자국어 문학, 특별히 고대 영어 창세기 A/B 및 <베오울프>는 악마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가져왔는데, 영웅적인 모습을 묘사함에 있어 ‘루시퍼’의 특징들이 가장 적절하게 어울렸다는 점이다.

“공교롭게도 가장 적절한 전통적 인물은 루시퍼이다. 그는 오만하고, 고귀하며, 무자비한 적에 맞서 희망없는 싸움을 홀로 치르며, 끝까지 굴복하지 않는다. 튜튼의 영웅적 자질은 고대 영어와 밀턴의 작품에 나오는 루시퍼의 억압적인 힘을 가장 잘 설명한다(한글판 177쪽).”

“Ironically the most apposite traditional figure was Lucifer, the proud, the noble, standing alone in hopeless battle against an implacable foe, unyielding to the end. Teutonic heroism best explains the compelling power of the Old Egnlish Lucifer- and that of Milton(134쪽).”

고대 영어 창세기(Old English genesis A/B)는 루시퍼의 타락 서사를 들려준다. 그리고 같은 사본에서 나온 고대 영시 <그리스도와 사탄(Christ and Satan)>도 타락한 천사, 지옥의 정복, 사막에서의 유혹 등, 구세주의 승리와 악마의 패배의 드라마를 담고 있다.

<베오울프>는 “기독교의 구원을 튜튼의 영웅적 행위와 결합한 것”이다. 베오울프는 세 명의 적과 맞선다. 괴물 그렌델, 그렌델의 어머니, 용. 이것은 교부들이 주장한 사악한 삼위일체를 암시한다.

그렌델은 교회나 기독교인의 혼란을 암시한다. 그는 ‘네피림’이라는 유대-기독교 전통을 잇고 있으며, 기독교가 악마를 묘사할 때 썼던 단어들로 묘사된다. 그렌델의 어머니는 카인의 후손이자 마녀이다. 마지막으로 용은 에덴의 뱀, 요한계시록의 용이며, 기독교 전통에 따라 지하 세계에 살고 있는 존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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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사베이
악마와 학자

서구의 1050-1300년은 스콜라 철학이 지배하던 시대였다. 안셀무스, 피터 롬바르드, 토마스 아퀴나스 등(그리고 악마 논의에서 빼놓을 수 없는 카타리파)이 대표적인 스콜라 신학자들이라 할 수 있다.

안셀무스는 <악마의 타락에 관하여(De casu diaboli)>라는 논문을 통해, 악에 적용되는 ‘무’에 대해 다루었다. 그는 여기서 아담보다 사탄의 타락에 집중하는데, 그 악의 실재성을 부인하며 시작한다. 악은 무와 같다. 즉 선의 부정이다.

하지만 선의 결핍은 그 결핍된 세상으로 존재하게 된다. 그러나 존재론적 결핍에는 신의 책임이 있다. 그래서 안셀무스는, 루시퍼가 신의 은총을 ‘거절’했고, 신의 은총을 거절함으로써 죄를 짓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어쨌든, 이것은 결국 ‘자유의지’의 문제였다.

그리고 루시퍼는 자신이 저지르는 악을 퍼트리기 위해 아담과 하와를 유혹했다. 그러나 악마는 신의 권능과 통제에 따라 유혹할 뿐이고, 비록 인간이 타락해도 인간에 대한 권리를 가질 수 없다. 안셀무스는 배상설을 악마에게서 신에게로 옮김으로써 만족설이라는 독창적인 속죄 이론을 만들어냈다.

한편 카타리파는 중세 기독교에서 가장 위협적인 ‘이단’으로 분류됐는데, 극단적인 금욕주의와 보고밀파의 혼합이었다. 그들의 주된 관심도 ‘악’에 있었고, 따라서 ‘악마’도 진지하게 취급했다.

그들은 교회의 입장과 달리 철저한 ‘이원론’을 그 대안으로 제시했다. 그들은 완전히 구별된 악한 원리, 악한 신을 가정하지 않는 한, 신으로부터 악의 책임을 결코 배제시킬 수 없다고 생각했다. 카타리파는 악마에 대한 세 가지 다른 관점을 주장했다.

첫째, 악마는 신으로부터 완전히 독립된 존재이다.

둘째, 악마는 신의 아들, 즉 그리스도의 형제다(탕자의 비유, 포도원의 두 아들 비유 등).

셋째, 악마는 사악한 신의 아들이다(사악한 신 역시 감추어진 신이다).

공통적으로 카타리파는 악마는 물질의 신이라 믿었고, 모세오경의 신은 악마라고 믿었다. 그래서 그리스도는 육체를 갖고 있지 않았다고 믿었다. 이러한 카타리파는 1215년 제4차 라테란 공의회에 의해 논박된다. 신은 물질 세계를 창조했고, 악마와 악령은 선하게 창조되었으나 후에 타락한 천사임을 천명했다.

악의 역사 데블
▲악의 역사 4권 시리즈.

이후 토마스 아퀴나스는 <악에 관하여(De Malo)>라는 논문을 펴냈는데, 그는 신플라톤주의에 근거해 악을 선의 결여, 무로 보았다. 그러나 조금 균형잡힌 결여에 대한 입장을 내어놓았는데, 자연적으로 있어야 하는 선의 결여가 악(해악, 죄악 둘 다 포함)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면 기수가 눈이 먼 것(시력의 결여)은 악이지만, 날개가 없는 것은 악이 아니다. 또한 아퀴나스는 악에는 원인이 있다고 보았는데, 직접 원인은 신이 아니다. 다만 신은 악에게서 선을 이끌어 낼 수 있을 때만 악을 허용한다고 아퀴나스는 보았다.

물론 아퀴나스는 미학적 조율을 위한 악의 허용, 존재론적 결핍, 그리고 자유의지 남용과 그로부터 오는 도덕적인 죄악을 구별했고, 또한 조화시키려고 했지만 실패했다고 볼 수 밖에 없다. 실제로 천사들이 죄를 지을 수 있는가에 대해 아퀴나스의 대답은 일관성이 없다.

아퀴나스는 천사나 악마의 실재를 인정했다. 아퀴나스에 의하면, 그들은 자연적으로는 죄를 범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순수한 영혼이므로 지성의 결함을 경험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퀴나스는 오히려 신이 루시퍼에게는 특별한 은총을 더 부어주었는데, 그것으로 인해 오히려 오만해지고 타락하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아퀴나스는 창조의 순간이 아닌, 초자연적인 은총을 받은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루시퍼가 타락했다는 복잡한 시나리오를 제시했던 것이다.

중세 전성기 예술과 문학에 등장하는 루시퍼

기근과 역병 등으로 인해, 14-15세기에는 다시 악마는 끔찍하고 두려운 존재로 나타나게 된다. 이 시기에 가장 유명한 것은 단테의 <신곡>이다. 여기서 악마 자체는 자주 등장하지 않으나, 지상 및 지옥의 강력한 군주로 묘사된다. 단테의 악마론은 기독교 전통, 스콜라 철학뿐 아니라 당대의 문학작품 및 심지어 그리스 로마 종교, 그리고 이슬람 종교에서도 영향을 받았다.

단테가 그리는 우주는 도덕적 우주이다. 다만 그의 묘사에는 지옥과 악마가 중심에 있다는 문제가 있었다. 당시 우주론에 우주의 중심이 지구였기 때문에 신은 저 먼 곳에 있었다. 그리고 신학에 따르면 지옥은 지구의 밑에 있었기에 이런 그림이 드러났다.

단테는 밀턴과 달리, 신학적으로 스콜라 신학에 맞추어 루시퍼의 역할 자체를 제한시키고, 공허하고 어리석고 부정적인 존재임을 부각시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그를 드러내지 않았다.

사탄은 무와 같은 존재로써, 무겁고 움직이지 못하는 존재이다. 그리고 단테의 악마는 또한 거대한 물질 덩어리, 혹은 털로 뒤덮인 짐승, 벌레이자 괴물이다. 빛의 천사였던 그가 추하게 변했다는 것을 강조한다.

연극에 나타난 루시퍼

이후 ‘루시퍼’는 사탄만큼이나 흔하게 사용됐다. 윌리엄 랭글런드의 <농부 피어스(Piers Plowman)>에서도 그 이름은 루시퍼로 등장한다.

악령들에게도 이름이 붙었고, 많은 이름은 고전에 나오는 신들이거나 별명을 의인화한 것들이거나 민간 전승에서 온 것 등이 있었다.

12세기부터 자국어로 유행한 연극에서는 자극을 위해 기괴한 복장으로 악마를 나타내려는 방식이 또한 유행했다. 그리고 심각한 분위기(기근이나 역병 등)가 찾아오기 전, 연극의 목적 자체는 즐거움이었으므로 악마는 희화화돼야 했다.

악마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늘 패배해야 했으며, 카타르시스를 줄 수 있는 조롱거리가 돼야만 했다. 예를 들면 사탄은 방귀를 뀌면서 도망을 가는 그런 모습이 연극 가운데 연출됐다.

진규선 목사(서평가, 독일 유학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