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S 방탄소년단 악마
▲악마에 대한 충성 맹세를 모호한 어조로 표현한 방탄소년단의 노래 <피 땀 눈물>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
◈마귀와의 계약: 낭만주의 문예사조에서 바라본 악마와의 계약

네이버 웹툰 <사신소년>이나 <악마와 계약연예>와 같은 작품에는 사신(死神) 혹은 악마와의 계약을 통해 개인의 욕망을 충족하는 내용들이 묘사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근래 음악 한류의 주역으로 떠오른 방탄소년단의 노래 <피 땀 눈물> 또한 악마에 대한 충성 맹세와 그로 인해 얻는 쾌락이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다.

사실 악마 혹은 마귀의 유혹과 계약이라는 기독교적 테제는 애초 낭만주의 시대 서구 문학이나 음악, 오페라 등에서 흔하게 목격되는 소재이다.

대표적인 작품들을 지목하자면, 괴테의 희곡 <파우스트>, 슈베르트의 가곡 <마왕>, 그리고 카를 마리아 폰 베버의 오페라 <사탄의 마수>를 선정할 수 있다.

셋 모두 각각의 분야에서 독일 낭만주의 문예사조를 대표하는 예술작품으로 손꼽힌다. 하필이면 왜 낭만주의 시절에 악마와의 계약이라는 소재가 예술가들 사이에 유행하게 되었을까?

서구 지성사를 살펴보면 15세기 르네상스, 16세기 종교개혁으로 인해 중세가 막을 내리고, 17세기부터는 본격적으로 근대, 즉 이성의 시대, 계몽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데카르트-라이프니츠의 합리론과 홉스-로크-흄의 경험론이 대립하는 가운데, 인간 자신에 대한 기존 그리스도교적 정체성, 즉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을 받아야 할 영혼이라는 자각이 거부되기 시작했다.

이 당시는 인간 자신과 세계를 이성의 힘으로 파헤쳐, 성경이 가르치는 것보다 더 나은 인류의 미래를 개척해야 한다는 열망이 뭇 사상가들을 지배하고 있었다.

18세기에는 칸트가 등장해서 인간 인격의 본질을 두 부분으로 나누어 설명했다. 그 가운데 한쪽 편은 사물의 진리를 인식하는 순수사변이성이고, 다른 한쪽 편은 숭고한 도덕의무를 실천하는 순수실천이성이었다.

이처럼 칸트의 인간이해는 인간 인격의 본질을 지성과 의지로 규명함으로써 주지주의(主知主義) 인간 이해와 주의주의(主意主義) 인간 이해를 정립하는 데 기여했다. 이런 칸트의 가르침은 적어도 1700년대 말, 즉 18세기까지 서구인들의 마음을 휘어잡고 있었다.

그러나 1800년대 초, 즉 19세기에 들면서 인간을 냉정한 이성과 냉철한 의지의 존재로만 보는 시각에 갑갑함을 느낀 사상가들이 기존의 계몽주의 사상에 반기를 들기 시작했다. 이들은 인간 인격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를 감정이라고 보는 주정주의(主情主義) 인간이해를 표방했다.

이처럼 인간의 감정이 수여하는 풍성한 상상력과 감수성이야말로 세계와 사물을 꿰뚫어보는 힘의 원천이라고 믿었던 당시 사상가와 문예가들을 낭만주의자들이라 불렀다.

루시퍼와 대중문화
▲고뇌하는 파우스트와 정념으로 그를 유혹해 계약을 맺는 악마 메피스토펠레스. 괴테의 희곡 <파우스트>의 주역들이다.
이들은 기존 기독교적 의미에서의 선과 악, 혹은 칸트적 의미에서 도덕과 부도덕의 편가름을 따르기보다, 감정이 이끄는 쾌락과 아름다움을 따라가는 인간상을 흠모했다. 그래서 악마 혹은 마귀의 유혹이라는 주제를 거북하게 바라보기보다는 매혹적으로 바라보는 경향을 보였다.

물론 19세기 초반 당시에는 아직 19세기 후반에 들어와서야 볼 수 있는 니체 식의 도덕 파괴 정서를 찾아보기는 어려웠다. 낭만주의 사상가 및 문예가들의 작품 속에는 여전히 권선징악의 메시지가 살아있었다.

위에서 예를 든 <파우스트>, <마왕>, <마탄의 사수> 모두 종국에는 악마나 마귀의 유혹이 온전한 인간됨을 파괴하는 삶의 부정적 요소라는 데 의견을 모았다.

그러나 이들은 전통적으로 기독교에서 바라보던 마귀의 유혹이라는 성경적-신학적 테제에 대한 극도로 부정적인 시선을 탈피해, 적어도 그 유혹이 미학적으로 대단한 가치를 갖고 있다는 것, 인간에게 극도의 감정적 만족과 쾌락을 선사한다는 것을 수긍했다.

즉 반기독교적인 것, 부도덕한 것에도 쾌락 뿐 아니라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다는 사고를 심어주었고, 이런 사고는 후대의 서구 문예계에 반종교적인 것, 반기독교적인 것, 부도덕한 것에서 찾는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여러 사조들, 특별히 아방가르드나 사실주의 문예사조에 지대한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마귀와 세상: 마귀의 유혹이 갖는 감정적 매력

40일을 금식하신 그리스도를 찾아온 마귀는 그를 실족케 하려 세 차례의 시험, 즉 유혹을 시도한다. 그 중 마지막 시험이 바로 마귀에 대한 복속, 경배의 시험이다.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가로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마 4:8-9)”.

이는 마귀가 내놓은 마지막 카드였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이를 물리치신 것과는 달리, 많은 사람들은 이 마귀의 최후통첩에 쉽사리 넘어간다.

마귀의 미끼를 덥썩 물어버린 영혼들은 잠시의 쾌락과 성공을 경험한 뒤, 헤어나올 수 없는 영벌에 빠진다는 기독교적 사상은, 중세부터 근대까지 마녀재판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자주 활용되기도 했다.

마귀와 계약을 맺고 점술, 치료, 신성모독 등을 행했다는 이유로 수많은 이들이 고문을 받고 처형되었다.

가톨릭교회가 주로 저질렀던, 혹은 미국 세일럼(Salem)에서 개신교회가 저질렀던 마녀재판의 광기는 근대 계몽주의자들이 보기에는 무지의 극치였으며, 낭만주의자들이 보기에는 추악함의 극치였다.

이에 미국의 낭만주의 소설가 나다니엘 호손(Nathaniel Hawthorne)은 쾌락, 애정, 아름다움을 경멸하던 초기 미국 청교도들의 위선적 행태를 그려낸 <주홍글씨(The Scarlet Letter)>를 저술했다.

청교도들의 미학적 무감각함에 대한 호손의 멸시어린 시선은, 어쩌면 그의 증조부였던 존 호손(John Hawthorne)이 세일럼 마녀재판의 주요 가해자 가운데 하나였다는 사실로부터 유래된 것일지도 모른다.

루시퍼와 대중문화
▲17세기 미국 메사추세츠 주 세일럼에서 벌어진 마녀재판. 마귀와 계약한 자들이라 여겨진 무고한 사람들 20여 명을 고문하고 사형에 처한 사건이다.
어쨌든 낭만주의자들을 기점으로, 마귀와의 계약이라는 소재는 중세 당시와는 전혀 다른 색채의 의미로 해석되기 시작한다.

감미롭지만 위험한 것, 그러니 너무 깊게 빠지지는 않되 그것이 다가올 때 즐길 줄 알아야 한다는 사고가 이때부터 문화 콘텐츠 속에 자리잡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사고는 무신론이 서구인들의 마음을 강타했던 19세기 후반, 그리고 실존주의가 그들의 마음에 스며들게 된 20세기 초반에 이르러 극대화되기 시작했다.

종국에는 마귀의 유혹이라는 소재가 대단히 매력적이고 흥분되는 것으로 취급되는 경향이 일반화되기 시작했다. 특히 1960년대 미국의 히피 운동, 그리고 1980년대 미국의 뉴에이지 운동에서 다분히 상업화된 형태로 채색되었다.

신상언 선교사의 보고서, <사탄은 마침내 대중문화를 선택했습니다>는 바로 이 대목을 집중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그리고 오늘날 한국 대중문화 전반은 이런 말초적 사고를 무비판적인 자세로 받아들이며 즐거움의 소재로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종국적으로 마귀를 루시퍼라는 이름으로 미화하는 것, 마귀와의 계약을 일생일대의 행운으로 묘사하는 행각은 모두가 이성과 의지가 아닌, 말초적이고 쾌락적인 것에 쉽게 좌우되며, 감정에 주로 휘둘려 살아가는 이들의 공감대를 얻고 있다.

이는 단지 기독교 신앙의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문화를 대하는 기본적인 사람됨의 차원에서도 한 번쯤 되짚어봐야 할 문제점이다.

진리를 추구하며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이성, 그리고 옳고 정의로운 것으로 판단되는 바를 지혜롭게 지켜나가는 의지는 온전한 ‘사람됨’의 기본적인 특성이다.

오늘날의 대중문화가 사람들로 하여금 이 두 기본 요소를 애써 부정하며 감정에 쉽게 휘둘리도록 유도하고, 그로 인해 ‘전인적’ 삶의 소양을 갖추지 못하게 한다는 것, 바로 이 사실이 19세기 전반 낭만주의 사조로부터 이어진 마귀에 대한 매혹이라는 문예적 단면을 통해 확인되고 있는 것이다.

루시퍼와 대중문화
▲슈베르트의 가곡 <마왕>의 애니메이션 가운데 한 장면. 사람을 매혹해서 죽음으로 몰아가는 악령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박욱주 박사(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목회자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쉽게 공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