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운 여름입니다. 납량특집은 아니고, 제프리 버튼 러셀 교수님이 쓴 ‘악의 역사’ 시리즈 4권에 대한 서평입니다. 2권은 초기 기독교의 전통을 다룬 ‘사탄’입니다. 유튜브 ‘진목TV’를 운영중인 진규선 목사님이 수고해 주셨습니다. -편집자 주

사탄

사탄: 초기 기독교의 전통
제프리 버튼 러셀 | 김영범 역 | 르네상스 | 322쪽 | 18,000원

사도 교부들

신약 이후 신학자들의 관심사는 신과 악마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지에 대한 것이었다. 악마는 신에게 종속적이면서도, 신은 악마와 투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악마는 타락한 천사였다. 악마의 죄는 무엇인지, 악마는 무엇을 얼마나 할 수 있는지, 악마의 운명 어떠할지 등.

A.D. 94-97년 사이 클레멘스 1세가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악마는 죄를 짓게 만들고 분란을 조장하는 실체로 등장한다. 이그나티우스의 편지에 의하면 악마는 이 시대의 지배자이며, 악은 알콘(archōn), 즉 악의 군주를 갖고 있었으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인해 사라질 존재이다.

이그나티우스는 악마와 그리스도인이 대결을 벌이며, 천사들 중 일부는 악마를 추종한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곧 ‘소위’ 이단과 교회의 싸움이었다. 악마는 기독교인들을 고문하고 죽이려한다. 그리고 순간 순간 배교를 회유한다. 따라서 이 전쟁에서 ‘순교’는, 이러한 영적 전쟁 가운데 승리하는 하나의 방식이 됐다.

117-119년의 바나바 서신에서도 현세의 두 왕국 투쟁을 설정한다. 이 세계는 악하고 악마의 수중에 들어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재림에 이 싸움은 끝이 날 것이다.

천상에서는 이미 어느 편에 설지 정해졌다. 남은 것은 인간의 선택이다. 빛의 자녀와 어둠의 자녀 간의 대결이라는 이 이미지는 요한복음에도 등장한다. 바나바 서신에 의하면, 개개인의 정신/영혼이 이러한 대결의 전쟁터가 된다. 영혼에서 악마가 활약하고 동시에 인간의 자유의지가 그것과 대결을 벌인다.

156년경 순교한 것으로 여겨지는 서머나의 폴리캅은, 악마는 고통을 주거나 유혹을 할 수는 있지만 완전히 개인을 세뇌할 수는 없다고 했다. 우리 마음 속에는 성령도 활동하고 있다. 폴리캅은 빌립보에 보낸 편지에서 특정 교리를 믿지 않는 자를 ‘이단’으로, 이단을 ‘악마’이자 ‘사탄’으로 규정한다.

“Πᾶς γὰρ ὃς ἂν μὴ ὁμολογῇ Ἰησοῦν Χριστὸν ἐν σαρκὶ ἐληλυθέναι, ἀντιχριστός ἐστιν· καὶ ὃς ἂν μὴ ὁμολογῇ τὸ μαρτύριον τοῦ σταυροῦ, ἐκ τοῦ διαβόλου ἐστίν· καὶ ὃς ἂν μεθοδεύῃ τὰ λόγια τοῦ κυρίου πρὸς τὰς ἰδίας ἐπιθυμίας καὶ λέγῃ μήτε ἀνάστασιν μήτε κρίσιν, οὗτος πρωτότοκός ἐστι τοῦ σατανᾶ(7장 1절).”

“For every one who shall not confess that Jesus Christ is come in the flesh, is antichrist: and whosoever shall not confess the testimony of the Cross, is of the devil; and whosoever shall pervert the oracles of the Lord to his own lusts and say that there is neither resurrection nor judgment, that man is the firstborn of Satan(7장 1절, J. B. Lightfoot의 영어 번역).”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가 육체로 이 세상에 온 것에 동의하지 않는 자는 곧 적그리스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십자가의 증언에도 동의하지 않는 자는 악마에게 속한 자이다. 그리고 주님의 말씀을 사사로운 정욕으로 사용하는 자, 부활도, 심판도 없다고 말하는 자, 이는 곧 사탄의 장자이다(진규선 번역)”.

헤르마스의 목자(Shepherd of Hermas)도 내면의 선악 투쟁을 강조한다(인간의 이중적인 마음 상태, 곧 디프시키아). 하지만 헤르마스의 목자에 의하면, 천사와 악마는 실체이기도 하다.

그리스도는 회개의 천사를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내는데, 이 천사는 정의의 천사이자 동시에 심판의 천사이기도 하다. 벌을 주는 행위는 유쾌하지 않은 것으로 신에게서 거리를 두기 위한 의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히에라폴리스의 주교 파피아스는, 감시자 천사들(watchers)에 대한 후기 유대교 사상(타락 천사)을 수용했는데, 이러한 타락 천사에 대한 수용은 유스티누스, 이레나이우스, 아테나고라스 등에게서도 볼 수 있다.

솔로몬의 송가(Odes of Solomon)이라는 2-3세기 기독교 작품에 의하면, 그리스도는 지옥으로 내려가 지옥의 신과 전투를 벌인다.

에비온파의 한 사람인 케린투스는 하나님이 그리스도와 악마를 탄생시켜, 그리스도에게는 다가올 세상의 권능을, 악마에게는 현 세상의 권능을 주었다고 주장했다.

변증론 교부들과 그노시스파

2세기 중엽 그노시스파라 불릴만한 기독교 집단과 그들에 반대한 기독교 집단, 변증론 교부 집단이 있었다. 그노시스파는 조로아스터교, 중기 플라톤 주의, 히브리 전통, 에세네파 등으로부터 여러 가르침을 종합한 집단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집단은 거의 3세기 서구에서는 자취를 감추고 4세기까지는 겨우 산발적으로 존재하였고, 마니교, 펠라기우스파, 그리고 후대의 카타리파, 점성술, 만다야교, 장미 십자회 등으로 이어졌다고 할 수 있다.

“그노시스 교리는, 선과 악, 두 영적 권능 간에 우주 전쟁을 벌이고 있다는 조로아스터교(Mazdaist를 르네상스 출판사에서는 마즈다이즘으로 번역했으나, 이전 서적에서는 조로아스터교로 번역했고 그것이 적절하다고 판단한다)의 교리와 선으로 정의되는 영과 악으로 정의되는 물질간의 투쟁을 하고 있다는 오르페우스교의 교리를 결합했다(한글판 64쪽).”

“The Gnostics melded the Mazdaist view of a cosmic battle between spiritual powers of good and evil with the Orphic view of a struggle between spirit, defined as good, and matter, defined as evil(원서 54쪽).”

일부 그노시스교도들은 창조신을 하나님과 구별된 하급신, 데미우르고스로 부르기도 했다. 데미우르고스는 사실상 고대 유대교와 초기 기독교의 사탄과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다.

또 다른 극단적인 그노시스교도들은 그리스도와 악마가 형제이며 혹은 구약의 야훼와 악마를 동일시한다. 2세기 그노시스파의 전형적 인물이 바로 마르키온이다. 그는 구약의 가혹한 야훼와 신약의 자비로운 아버지를 대비시킨다. 사도 바울을 추종했던 그는 바울에게서 볼 수 있는 율법과 복음의 긴장관계를 대립관계로 심화시켰다.

또 다른 그노시스교도인 발렌티누스는 유출론을 전개했다. 그는 존재(즉 신)로부터 오그도아드라 불리는 8명의 고등 애온, 그리고 22개의 하급 애온이 ‘유출’된다.

이 애온들이 신성한 플레로마(충만)를 형성한다. 정도의 차이가 있으며, 존재(신)으로부터 멀어질 수록 불완전하다. 가장 낮은 단계의 방출자인 소피아의 공백은 오만으로 가득차 자신의 아버지인 영적 실재를 알려고 불법적으로 뛰어들지만 결국 그것은 실패한다.

그리고 소피아의 고통은 정신과 물질을 낳으며, 그런 소피아에 대한 로고스(그리스도)의 연민이 영혼을 낳는다. 소피아는 구약의 야훼를 낳고, 야훼는 바로 저 정신과 물질과 영혼으로부터 이 세계를 창조한다.

따라서 이 세계는 본질적으로 선과 악의 혼합물이다. 그리고 인간은 사르키코이(육체에 속한 자), 프시키코이(정신에 속한 자), 프뉴마티코이(영에 속한 자)로 구별된다.

이런 신화에 반대한 변증론 교부들은 꾸준히 악마의 피조성과 한계를 주장했다. 그러나 실제 세계에서 목격되고 인식되는 지나치게 강한 ‘악’에 대해, 즉 고전적인 신정론적 질문, “왜 도대체 신은 그정도로 악마에게 권능을 주었는가?”에 대해 제대로 된 설명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실제로 교부들은 그노시스 저자들에 반대하면서도, 개념들은 상당히 끌어다가 썼다. 예를 들면 순교자/변증가 유스티누스는 철저하게 영적 실체를 믿었고, 그들의 역할도 상당히 구체적으로 분배했다.

신만이 온전히 영적 존재이므로 천사들은 어떤 유형의 몸을 갖고 있다고 보았고, 악한 천사들은 이교도들이 바친 제물을 먹는다고 보았고, 특정한 우주적인 어느 공간에 거주한다고 보았다.

또한 심지어 하나님을 대신하여 세계와 민족과 심지어 각 개인에게 배당된 천사가 있다고도 믿었다. 물론 그렇다 해서 ‘악마’의 기원에 대해 딱히 설명을 해낸 것은 아니었다. 게다가 가장 신학적으로 큰 문제는 왜 그리스도가 강림해도 악마의 권능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나에 대해 제대로 된 답변을 못했다는 것이다.

또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신의 숨겨진 섭리’라고 주장하면서 악마가 다른 신화들을 사전에 모방했지만, 그것만큼은 못했다고 주장하며 다른 종교와 신화를 무시하고 악마의 것으로 만들어버렸다(그러나 나무에서 수난을 당한 아티스 신화는 엄연히 존재한다).

유스티누스의 제자인 타티아노스도 악마와 악령들이 우주에서 중요한 부분을 가진 실체이며, 천사는 맑고 영적인 몸을, 악마는 비천하고 물질적인 몸을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물론 그에게 악마는 타락한 천사였다.

타티아노스 역시 악령과 이교도의 신들을 동일시했고, 제우스가 바로 저런 신들의 대장이라고 보았다. 악마와 악령들은 최후의 심판에 소멸될 것이다.

아테나고라스는 악의 실체를 악마, 타락 천사들, 타락 천사가 여성을 통해 낳은 거인, 이렇게 세 종류로 구별했다. 안디옥의 주교 데오빌로는 인간의 책임을 강조했으나, 그 역시 악마를 타락 천사라는 영적 실체로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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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사베이

이레나이우스와 테르툴리아누스

이레나이우스는 악령들에 대한 신화보다는 원죄에 대한 신학 이론으로 눈을 돌린 최초의 신학자였다. 악마는 최초의 인간을 유혹했고, 그 유혹에 넘어가 인류는 사탄의 노예가 되었다. 그러나 제2의 아담인 그리스도는 이러한 유혹을 극복했다.

사실 이레나이우스는 신이 인간을 더 강하게 만들지 않았다는 것에 대한 암시를 통해 일정 부분, 악의 문제를 신에게도 책임을 귀속시킨다. 악마는 이미 그리스도에게 패배했으나, 인간의 구원을 막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이단은 이러한 악마의 부하이다.

“이레나이우스에 의해 이론적으로 완성된 체계를 갖춘 이 이론은 재앙의 씨앗을 품고 있었다. 이 이론은 많은 성스러운 전쟁, 십자군 전쟁에 대한 대의명분, 이단과 비기독교에 대한 박해의 심판 준거로 사용되었다(한글판 104쪽).”

“This doctrine…, fully developed by Irenaeus, had a baleful effect. It was used as a justification for holy wars, crusades, and the persecution of heretics and non-Christians(원서 87쪽).”

“이단에 대한 이레나이우스의 정의는 오히려 간결했다. 이단자는 주교가 이단자라고 명명하는 자이다. 객관적으로 '이단'에 대한 정의를 내린다는 게 불가능했기 때문에 이러한 정의는 거의 절대적이었다(한글판 106쪽).”

“Irenaeus’ definition is a pragmatic one: a heretic is one who is designated by the bishop as a heretic. Since no objective definition of heretic is possible, this definition was almost inevitable(원서 87쪽).”

테르툴리아누스의 악마론은 이레나이우스의 것보다 더 영향력이 컸다. 이 세상의 불행과 고통은 인간의 죄 때문이다. 이 세상의 모든 악은 인간의 죄악의 결과다. 즉 인간의 자유의지로 인함이다.

천사에게도 자유의지가 있다. 이 우주에 가득찬 모든 것은 하나님이 주신 선한 선물인 자유의지의 남용으로부터 온다. 사탄은 에덴 침입 이전, 타락했다.

그리고 그에게 점성술(astrology), 강령술(necromancy), 마술(magic) 등은 모두 본질상 ‘악마적(demonic)’인 것이다. 극장에서 보이는 쇼, 경마, 목욕, 술집, 그리고 심지어 여성의 꾸밈(화장과 치장)도 악마적인 것이라고 직접적으로 말했다.

테르툴리아누스 때 세례는 본래 축귀(엑소시즘) 이후에 행해졌고, 점차 악마를 따라 살지 않겠다는 맹세로 세례와 합쳐졌다. 그리고 이 맹세는 악마 예방 의식이기도 했다.

자비와 천벌: 알렉산드리아인들

로마가 기독교 교리 논쟁의 중심이었다면, 알렉산드리아는 기독교 신학과 철학 논쟁의 중심이었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는 악마나 마왕보다, ‘결핍’으로 악을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하나님만이 완전하기에 당연히 이 세계는 불완전하다.

그래서 하나님에게서 멀어질수록 결핍된 존재이고 악한 존재로 드러나는데, 결국 비실재/비영적/비존재가 곧 악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악은 창조의 부산물이다.

이것은 도덕적이기보다는 존재론적이며, 따라서 사실상 내적 모순을 떠안고 있다. 예를 들면 ‘어느 정도 결핍부터 악인가? 속죄 신학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등과 같은 질문에 답할 수 있다.

한편 클레멘스는 그리스도의 지옥 강하를 구원 행위로 보았는데, 이 지옥은 아마도 교부들에게서 거의 구별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어느 정도는 구별된 게헨나(현대적 가톨릭 지옥에 가까운 곳)와 하데스(현대적인 가톨릭의 연옥에 가까운 곳) 중 후자였을 것이다.

그래서 클레멘스 시대에, 그리스도는 지옥(게헨나)에 가서 누구를 구원했느냐는 논쟁이 있을 정도였다. 이런 신화적인 논쟁은 극적인 드라마로 각색되기도 했다.

예를 들면 니고데모의 복음서에서 사탄이 그리스도를 죽였다고 말하지만, 지옥은 벌벌 떨며 그가 내려오면 자신이 가둔 자들을 다 데리고 갈까봐 두려워하는 묘사가 있다.

오리게네스도 자유의지에 기반한 악마의 논의를 전개했다. 하나님은 어떤 지적 존재들을 창조했지만, 그들은 자유에 따라 우주를 채우기 위해 떠났다.

천국에 가까운 존재가 있는 반면 점점 더 멀어진 존재가 있었고, 그로부터 아주 멀리 떨어진 존재는 지구에도 왔으며, 거기서 그들은 육체를 가진 인간이 되었다. 심지어 지하세계로까지 내려간 존재는 악령이 되었다.

이것은 도덕적 타락이 아닌 문자 그대로의 ‘하강’을 뜻했다. 하지만 도덕적 타락까지 보강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각자의 지위에서 어떤 존재가 될지는 거기서부터 ‘선택’하는 것이었다.

그리스도는 악한 세력을 멸했으나, 그 악한 세력은 여전히 존재한다. 그들은 본래 어떤 역할을 할 존재였으므로, 하나님의 뜻 안에서 재앙들을 일으킨다(질병이나 자연재해 등).

그러나 결국 만물은 본래 자신들을 창조한 신에게로 돌아갈 것이라는 환원론적 총괄갱신을, 오리게네스는 주장했다. 즉 악마도 반성하고 뉘우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열어놓은 것이다.

사탄
▲2권 ‘사탄’ 원서.

이원론과 사막

3-4세기는 로마의 불안한 정세로 인해, 악마의 권능과 이원론에 대한 분위기를 고취시켰다. 이원론은 교부 락탄티우스, 마니교, 그리고 수도원 제도에서 새로운 양상을 띄게 된다.

락탄티우스는 다시금 악마를 결핍이 아닌 실제적 권능으로 설명하려 했다. 그는 우리가 ‘덕’을 이해하게 하기 위해, 하나님이 덕에 대립되는 ‘악’을 만들었다고 원하셨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하나님의 절대적 권능과 영광을 두드러지게 할 악은 강하고 거대해야만 했다(Felix Culpa, 복된 잘못). 하지만 하나님이 악을 만든다고 할 수 없으므로, 비록 설득력은 없으나 타락을 창조된 악마의 본성으로 귀속시켜버렸다.

락탄티우스 역시 신화적인 영적 실체를 염두에 두었다. 그는 악령을 두 부류로 구별했는데, 바로 타락 천사인 천상의 악령들과, 감시 천사와 여인 사이에 생겨난 거인 자손들인 지상의 악령들이다.

사탄은 자신의 전임자인 그리스도를 ‘질투’함으로써 타락했다. 감시 천사들 또한 여자들에 대한 음욕 때문에 타락했다. 즉 모든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연단하고 또한 신앙을 증명케 하도록 섭리 가운데 허락하신 것이다.

마니교는 페르시아 출신 마니가 만든 것으로, 216년 태어나 그노시스의 한 분파인 만다이 교도로써 성장했을 것이다. 당시 페르시아는 유대교와 기독교뿐 아니라 조로아스터교와 불교와도 접촉이 있었다.

마니는 스스로 아담, 셋, 에녹, 노아, 부처, 조로아스터, 예수 등을 이은 이 시대의 마지막 선지자라는 계시를 받았고, 여행과 설교를 통해 수많은 추종자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결국 조로아스터교의 고위 성직자에 의해 처형을 당한다.

마니교는 그노시스주의와 가장 가깝고, 빛과 진리의 원리와 물질과 거짓의 원리 두 가지 대립하는 원리를 가르친다.

마니교 신화는 대단히 복잡하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저 두 원리는 서로의 피조물과 자식들을 통해 대립하고 싸운다. 인간은 저 거짓 원리의 악령들의 결합의 자손이다. 그러나 빛의 원리(아버지)는 요쇼 지와(Yosho Ziwa) 혹은 오흐르마즈다 혹은 예수를 파송하고, 예수는 최초의 인간인 아담에게 가서 물질로부터 해방되어 자유롭게 되는 진리를 말한다.

마니교의 신화론적 가르침은 결국 신을 악의 책임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려했을 뿐이지만, 결국 혼란만 가중시켰다.

그 무렵 하나님에게 집중하기 위한 수도원 제도가 고안되는데, 사막에서는 사회적 혹은 현실적 문제로부터 떠나 직접적인 그리스도와 사탄의 우주적인 전쟁에 참여시켜 준다는 심리적 투쟁을 가능하게 했다.

예를 들면 최초의 수도사로 알려진 안토니우스는 온갖 존재로 변신한 악마를 만난다. 천사, 수도사, 심지어 주 하나님으로도 악마는 변신하고, 유혹을 위해 찬송가를 부르기도 하고 성경을 읊어주기도 한다. 때로는 돈과 여자와 명예 등등 온갖 것들로 노골적으로 유혹하기도 한다.

유혹이 실패하면 오감을 자극하는 공포를 상기시킨다. 오두막의 흔들림, 온갖 혐오스러운 벌레, 위협적인 짐승, 밤새 사람이 우는 소리 등 온갖 체험담이 수도사들에게서 들려진다. 수도사들은 ‘분별력 훈련’을 통해 내면의 충동이 신의 것인지, 악마의 것인지 판단할 수 있었다.

에바그리우스의 수도사 생활에 대한 책, <프락티코스>의 100개 장들 중 67개에서 악령에 대한 부분을 다룬다. 그의 묘사를 보면 대단히 정밀한 심리학 서적임을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도덕적인 여덟 악령이 있는데, 이 여덟 악령은 욕망을 관장하며, 각각 식탐, 자만, 색욕, 탐욕, 절망, 분노, 나태, 허무를 담당한다. 이것을 극복하는 방법들도 나와 있다.

만약 성적 욕망으로 잠을 이루지 못한다면, 당장 일어나 병자를 돌보기 위해 병실로 가서 악마의 의도를 비웃어야 한다.

악의 역사 데블
▲악의 역사 4권 시리즈.

사탄과 성 아우구스티누스

아우구스티누스는 한때 마니교도였지만, 그 이원론을 버렸다. 악은 하나의 대립하는 원리가 아니라 결핍일 뿐이다. 그리고 그는 자연적 악과 도덕적 악을 구별했다. 자연적 악은 우리의 불완전한 지성과 능력으로 ‘악’으로 보일 뿐, 실제 악이 아니라고 보았다.

도덕적 악은 인간의 ‘선택’으로부터 온다. 그렇다면 그 선택 혹은 자유는 어디로부터 오는가? 아우구스티누스의 대답은 그 이상은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위에서 말했듯, 결핍과 자유는 상충하는 개념이었다. 두 가지를 동시에 주장한다는 것은 일관성의 결여를 뜻했다. 실제로 아우구스티누스는 그러했을 뿐 아니라,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달라지는 견해를 보였다).

아우구스티누스도 사탄을 실체로 보았는데, 다만 인간과 사탄이 동일하게 자유의지로 타락했다면, 왜 악마와 악령들은 인간과 달리 구원의 가능성이 없는지 답하기 위해 노력했지만(인간보다 더 높은 지위에 있었기 때문에 인간보다 더 가혹한 처벌을 받는다는 것), 결국 답을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 <계속>

진규선 목사(서평가, 독일 유학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