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7편 강해
요절: 내가 여호와께 그의 의를 따라 감사함이여 지존하신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리로다(17절)

고양국제꽃박람회 오요한 시편
▲ⓒ크리스천투데이DB
오늘 말씀의 제목은 ‘여호와의 의를 따라서’입니다.

다윗은 처음에는 나의 의를 따라서 복주시도록 기도합니다. 나의 행위를 따라 심판도 하시고 구원도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이 말씀은 다윗이 너무 자기 의에 가득차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후반부에 가면 여호와의 의를 따라서 감사한다고 나옵니다. 그의 의는 결국 하나님의 은혜에서 나온 의입니다.

이 시편은 베냐민 구시의 말에 대해 다윗이 한 노래입니다. 사울 왕의 후손들 중 구시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다윗과 사울 사이에서 이간질하였습니다.

구시는 다윗이 사울 왕을 대적하고자 한다는 거짓 보고를 합니다. 사울은 격분하여 다윗을 죽이고자 합니다. 3000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잡으려 합니다. 그때 다윗이 이 시를 지었을 것이라 추측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자신의 의를 알고 복주시도록 기도합니다.

1. 행위대로 심판해 달라는 다윗

1-5절에 보면 다윗은 대적 사울에게 쫓기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다윗을 쫓고 있습니다. 이들은 사자들과 같았습니다.

양이 사자에게 쫓긴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다른 피할 길이 없습니다. 사자에게 잡히면 찢기고 뜯기울 것입니다. 다윗은 사울에게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절박한 상황에서 다윗은 피난처가 되시는 하나님께 나아갔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도피성이요. 보호자요. 방패가 되어 주십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무조건 도와 달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다윗이 악을 행했다면, 자신의 생명을 땅에 짓밟고 자신의 영광을 진흙에 떨어뜨려 달라고 합니다.

다윗은 고난 중에 자신과 화친 조약을 맺은 선한 자를 악으로 갚았는지를 성찰합니다. 내 대적에게 무고히 빼앗아서 약탈자가 되었는지를 성찰합니다.

자신이 사울 왕을 판단하고 죽이고자 하였는지 반성합니다. 약탈을 위한 전쟁을 했는지를 성찰합니다. 그런 죄를 지었으면 대적이 자신을 죽여도 좋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당당하게 기도합니다.

링컨이 남북 전쟁을 할 때 했던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당시 남북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끼리의 싸움이었습니다. 남군은 하나님이 자신의 편이라고 말하고, 북군도 하나님이 자신의 편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링컨은 하나님이 우리의 편이라고 주장하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편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내가 하나님 편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 편에서 선을 행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내 편이 되어 주십니다.

2. 우리의 의를 따라서

6-8절을 보면 하나님은 진노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높은 재판석에 앉아서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모든 민족들을 모으시고 그들을 심판하십니다.

하나님은 공의로 분노하여 대적들이 노를 발하지 못하도록 막으십니다. 세상에는 공의가 없다고 말합니다. 세상에서는 죄를 지은 사람들이 잘 되고 선을 행한 사람들이 잘못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공의가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하나님의 때에 공의로 심판하십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수레바퀴는 돌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수레바퀴는 천천히, 정확하게 돌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울을 심판하시고 다윗을 세워 주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심판의 기준은 무엇입니까? 다윗은 자신의 의와 성실함을 따라 판단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우리가 어떤 나무를 판단할 때, 무엇으로 합니까? 그 열매를 보고 판단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사람의 마음의 중심을 무엇을 보고 알 수 있습니까? 그의 행위을 보고 알 수 있습니다.

악을 쫓는 자는 악을 행하고 선을 쫓는 자는 선을 행합니다. 다윗은 자신의 의를 따라 복을 달라고 기도합니다.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살았습니다. 적어도 밧세바를 범하기 전에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았습니다.

3. 심장을 감찰하시는 하나님


“악인의 악을 끊고 의인을 세우소서 의로우신 하나님이 사람의 심장을 감찰하시나이다 나의 방패는 마음이 정직한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께 있도다(9-10절)”.

하나님은 우리의 심장을 감찰하십니다. 심장은 우리의 양심이고 마음의 중심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꿰뚫어 보십니다. 우리의 정직한 마음을 따라서 심판하십니다.

다윗은 중심이 하나님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중심을 보시고 복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행위로만 심판한다면 불공평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행위는 있는데 마음은 없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행위로도 심판하시지만, 중심에서 나오는 행위를 보시고 심판하십니다.

하나님은 바리새인처럼 마음 없이 행위로만 하는 자들을 심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 중심에 하나님을 모시도록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마음의 중심에 두고 의롭게 살아야 합니다.

4. 회개치 않는 자를 심판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이심이여 매일 분노하시는 하나님이시로다 사람이 회개치 아니하면 저가 그 칼을 갈으심이여 그 활을 이미 당기어 예비하셨도다 죽일 기계를 또한 예비하심이여 그 만든 살은 화전이로다(11-13절)”.

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이십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고난은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심판으로 주시는 것이 있습니다. 둘째는 회개할 기회를 주시기 위해서 주시는 고난이 있습니다. 셋째는 의로운 자에게 훈련을 위해서 고난을 주시기도 합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하나님이 행위대로 심판하신다는 말씀을 들었을 때, 기쁨보다는 두려움이 앞섰을 것입니다. 은혜롭다기보다는 너무 숨막힌다는 느낌이 들 것입니다. 왜냐하면 연약하고 완전히 선을 행하는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악하여 죄를 행하면 죽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죄를 짓습니다. 마치 죽을 줄 모르고 날아드는 불나비와 같습니다. 사람들은 죽을 것을 알면서도 마약을 복용하고 담배를 피웁니다. 이것이 인간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인간에게 은혜의 새로운 길을 열어놓으셨습니다. 그것이 회개입니다. 우리는 고난의 때에 회개해야 합니다. 고난의 때 회개하면 그를 통해 다른 사람에게 선교의 기회를 얻을 수 있습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불화살을 날리고 칼을 가십니다. 죽일 기계를 예비하십니다. 마지막 심판으로 고난을 주십니다.

이 얼마나 무서운 일입니까? 하나님의 칼과 화살을 누가 막을 수 있단 말입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회개하는 순간에 칼을 가는 것을 중지하십니다. 회개하는 순간, 화살을 당기는 손이 힘을 잃어버립니다. 회개하는 자를 용서하신다는 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예수님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회개는 천국 가는 문입니다. 다윗도 밧세바를 범한 후에 회개를 통하여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 나라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5. 자신의 악으로 망하는 악인


“악인이 죄악을 해산함이여, 잔해를 잉태하며 궤휼을 낳았도다. 저가 웅덩이를 파 만듦이여, 제가 만든 함정에 빠졌도다. 그 잔해는 자기 머리로 돌아오고 그 포학은 자기 정수리에 내리리로다(14-16절)”.

악인이 죄를 짓습니다. 디윗은 죄 짓는 것을 죄를 잉태하여 해산한다고 말하였습니다.

이들은 남을 잔해할 생각을 먼저 합니다. 다음에 다른 사람을 속이는 거짓말을 합니다. 아기를 낳지 않으려면, 잉태하지 않으면 됩니다. 죄를 짓지 않기 위해서는 죄악된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말씀을 생각하고 성령께서 주시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죄를 짓는 사람들은 남을 해치고 자신은 안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죄인이 남을 해치기 위하여 판 웅덩이에 자신이 빠진다고 말합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행한 잔해는 자신에게 돌아옵니다.

남들에게 행한 포악은 자신의 정수리에 내려옵니다. 이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행한 대로 벌을 받습니다. 다른 사람의 죄에 의해, 내가 벌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죄로 자신이 심판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억울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자신이 행한 대로 정확하게 이루어집니다.

오요한 시편 역경 속에 피어나는 찬양의 꽃
▲오요한 목사.
6. 하나님의 의를 따라서 감사하는 다윗


“내가 여호와의 의를 따라 감사함이여, 지극히 높으신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리로다(17절)”.

다윗은 지금까지 자신의 의를 따라 복 주시기를 기도하였습니다. 그러나 결론에서는 하나님의 의를 따라서 감사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의는 무엇입니까? 이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로마서 1장 16절에 보면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고 했습니다. 복음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의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하나님의 의를 다 이루셨습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을 믿는 자를 의롭다 하십니다.

우리가 아무리 큰 죄를 지었다 할지라도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을 때, 하나님은 우리를 의롭다 하십니다. 성령으로 오셔서 우리가 의롭게 살도록 도와주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의를 따라서 감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의를 따라서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습니다.

평생 살인과 강도 죄를 짓다가, 회개한 십자가 옆에 강도도 복음으로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창녀로 수많은 남자와 잠을 잔 막달라 마리아도 예수님을 믿었을 때 성녀로 변화시켜 주시고 복주셨습니다.

이기주의자요. 매국노인 세리 마태도 예수님을 믿었을 때 성 마태가 되었습니다. 예수 믿는 자를 핍박한 바울을 구원하사 사도로 귀하게 쓰셨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저주를 받지 않고 복을 받습니다. 그러나 진정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믿음으로 순종하기까지 투쟁을 하는 사람입니다.

성령의 은혜로 십계명을 지켜야 합니다. 예수님은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인에게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고 하셨습니다.

오요한 목사(천안 UBF, <오요한 목자의 로마서 강해>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