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진
일본이 연합군에 패배하면서 동남아시아 전역에 거주하던 일본인은 갑작스런 퇴거를 해야 했는데, 그들의 고향 돌아가는 길은 참혹했다.

한국 내 일본인은 비교적 치안이 유지 되고 있어 부산 쪽에만 가면 다소 안전한 지역에 머무를 수 있었으나, 북쪽 거주 일본인 특히 여성들은 남쪽으로 가기까지 소련군 눈에 띄면 독일 여성 당하듯 강간과 폭력에 고스란히 노출되어, 일본 여성은 머리를 빡빡 밀어야 했다(소련군이 머리 민 여성은 싫어했다고). 이런 귀향 일본인을 히키아게샤(引揚者)라 부른다.

기록에는 잘 남아 있지 않지만, 목격자 세대 증언에 따르면 한국인의 앙갚음도 만만치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한 마을의 경우, 일본 민간인이 고국으로 돌아가는 길목을 지키고서 그 길에 날카로운 가시로 덮인 밤송이를 쫘악 깔아놓고는 여성도 맨발로 그 길을 걸어가게 하는 잔혹성을 보였다 전한다.

특히 일본에 붙어서 사상 있는 한국인을 색출해 잡아다 준 고등계 형사들이 한국인이었다면, 일본 여성에게 굶주린 소련군의 길잡이가 되어 지역에 숨어 있던 일본인을 찾아내 준 것도 한국인이었다.

원인이야 제국주의 야욕에 있다 하더라도 보복과 보복 속에 선악을 분간하기란 쉽지 않다. 기형적인 보복이 그 보복들의 자식으로 태어나기 때문이다.

주기철
▲주기철 목사.

사진 속 인물은 손양원 목사와 더불어 한국 개신교에서 가장 존경받는 주기철 목사이다. 일제 시대에 신사참배를 거부하다 밤송이 길 걷듯 대못이 튀어나온 길을 걷는 등 온갖 고초를 겪다 10년형을 받고서 옥사한 분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분의 신사참배 거부는 당시 종파로부터 이단의 정죄를 받았는데, 이단 정죄를 했던 실력자들의 후예 중 적지 않은 사람들이 오늘날에는 이 분을 ‘토템’으로 머리에 이고서 친일파 몰이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것도 모순이지만, 그들의 사상적 기반이 일본 여성의 겁탈을 일삼던 소련군 사상, 공산/사회주의를 선호한다는 사실 또한 모순이다.

그뿐 아니라 저런 짐승 시대의 짐승들을 사람 모양으로 만들어 놓은 게 바로 자본주의인데, 그 누구보다 자본을 탐닉하면서도 정신만은 자본을 혐오하는 이 토템 신앙인들의 이중적 행태 역시 이 복고된 ‘짐승 시대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영진
호서대학교 평생교육원 신학과 주임교수. '기호와 해석의 몽타주(홍성사)', '영혼사용설명서(샘솟는기쁨)', '철학과 신학의 몽타주(홍성사)', '자본적 교회(대장간)' 등의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