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정윤
▲허정윤 박사 ⓒ크리스천투데이 DB
6. 생명에 대한 과학의 도전과 한계(5)

(12) 트랜스휴머니즘-포스트 휴머니즘: 인간의 진화?

영국의 진화생물학자 줄리언 헉슬리(Julian Huxley)는 찰스 다윈의 '불독'이라고도 불렸던 진화론자 토마스 헉슬리(Thomas H. Huxley)의 손자이다. 줄리언 헉슬리는 1957년에 Religion without Revelation(계시 없는 종교)를 출판하고, 휴머니즘(humanism)과 트랜스휴머니즘(transhumanism)을 구분했다.

헉슬리에 의하면 휴머니즘은 인류가 인간의 생물학적 특성을 발현하는 것이고, 트랜스휴머니즘은 기계의 힘을 이용하여 인간의 생물학적 한계를 초월한(transcendental의 trans) 트랜스휴먼의 특성이다. 그는 보조기구로 로봇을 만들기 시작했던 휴먼들이 자신보다 우수한 인간과 로봇을 결합하여 트랜스휴먼을 만들 수 있음을 일찍이 간파하고 있었다.

이제 인류는 트랜스휴먼과 공생하는 시대를 앞두고, 그것의 정체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렇다면 트랜스휴머니즘은 인간성을 유지하는 휴머니즘과 비교되어야 하므로, 휴머니즘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휴머니즘의 개념은 인간을 보는 관점에 따라 확연히 갈라질 수 있다.

가장 일반적인 견해는 '인간적'(humane)이라는 형용사적인 관점이다. 그러나 '인간적인' 면을 너무 강조하다 보면, '보다 인간적인'이라는 비교급에 초점을 맞추면서 무신론적 인본주의 사상을 의미하는 관점으로 변하기도 한다. 줄리안 헉슬리가 바로 '보다 인간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1942년에 『현대진화이론』을 출판하여 현대 진화론 그룹을 이끌었고, 초대 유네스코 사무총장을 역임하면서 '인본주의 선언'과 '유네스코 헌장'을 주도했다. 그는 기독교적 인격신을 추방하고 자연을 종교로 대체하자는 주장도 했었다.

트랜스휴머니즘은 트랜스휴먼의 개념이 바꿔짐에 따라 바뀌어졌다. 페르시아 외교관 출신으로 1980년대 미국에서 활동한 미래학자 FM-2030(본명: Fereidoun M. Esfandiary)는 1989년 발표된 『당신은 트랜스휴먼입니까?, Are You a Transhuman?』에서 트랜스휴먼(transhuman)을 '포스트휴머니티로 향하는 과도기적 기술, 라이프 스타일, 세계관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이라고 말하면서 줄리안 헉슬리와 다른 의미를 가진 '트랜스'(transitory의 trans)를 사용했다.

그의 말에서 보면, 트랜스휴먼은 미래에 포스트휴먼이 등장할 것을 가정하고 있는 말이다. 1998년에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 닉 보스트롬(Nick Bostrom)의 주도로 설립된 세계트랜스휴먼협회(WTA)는 2008년 단체명을 'Humanity +'로 바꾸고, [h+ 매거진]을 정기 발행하고 있다. 'Humanity +'는 2009년에 수정된 '트랜스휴먼 선언문'(The Transhumanist Declaration)을 발표했다.

그것이 말하는 트랜스휴먼은 '감정을 가진 모든 존재의 행복(well-being)을 옹호하고, 인간이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중에 기억, 집중력, 정신력 등을 보조하기 위해 개발될 기술의 사용을 비롯해서 생명연장 기술, 생식에 관한 기술, 인체의 냉동보존 기술, 그리고 인간 변형 및 능력향상을 위한 가능한 모든 기술들을 선택할 수 있는 폭을 넓히는 것을 찬성하는' 휴먼들이다. 그렇다면 트랜스휴머니즘은 WTA가 정의하는 트랜스휴먼의 특성에서 나오는 것이다.

미래학자이자 구글의 첨단기술 개발자인 레이먼드 커즈와일(Raymond  Kurzweil)은 2005년 『특이점이 온다-기술이 인간을 초월하는 순간, The Singularity Is Near: when humans transcend biology』을 출판했다. 그의 특이점은 GNR이라는 세 가지 기술혁명에 의해 인류가 생물학적 한계를 초월하는 때이다. 말하자면 유전공학(Genetics)을 통해 생물학적 원리를 파악하고, 나노기술(Nanotechnology)로 그 원리들을 생물체에 적용하며, 로봇공학(Robotics)이 로봇과 인간을 결합하면, 마침내는 신과 다름없는 완전한 로봇이 만들어지고 인류 문명은 생물학적 한계를 벗어난다는 것이다.

그의 GNR 로봇은 앞에서 살펴본 NBIC 휴머노이드나 이제부터 살펴볼 포스트휴먼(posthuman)과 다르지 않다. 그런 로봇들을 적극적으로 상상하고 찬성하는 트랜스휴먼들은 인간의 뇌 속에 저장된 기억들을 컴퓨터에 입력해놓고 데이터처럼 다룰 수 있음을 인정한다. 그들은 또한 미래에 인간의 능력을 초월하는 완전한 기계 로봇인 포스트휴먼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상상한다. 트랜스휴먼 과학자들에 의하면 인간이 만든 로봇이 인간의 종을 초월하여 완전체로 진화한 로봇이 포스트휴먼이며, 그런 시대가 멀지 않았다고 한다. 커즈와일의 특이점을 지나면, 인간의 뇌를 이식한 로봇은 부품을 갈아 끼우면서 불멸의 삶이 가능하게 된다.

트랜스휴먼들은 대개 무신진화론자들이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서 기계의 힘에 의해서 영생을 꿈꾸는 사람들은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자들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 트랜스휴먼들은 포스트휴먼을 더 이상 로봇으로 보지 않고, 인간보다 진화한 영장류의 한 종으로 본다. 결국 포스트휴먼은 고대인들이 미이라를 만든 것처럼, 또는 일부 현대인들이 스스로 냉동인간이 된 것처럼, 영원히 보존하고 싶은 '나'의 욕망의 우상(偶像)이다. 그런 트랜스휴먼들은 로봇공학 기술이 무한하게 발전할 것으로 상상하고 있다.

만약 그들의 주장처럼 인간의 죽음 직전에 기억을 로봇의 AI뇌에 업로딩(uploading)하여 계속 작동시킬 수 있다면, 인간이 영생하는 포스트휴먼이 될 수 있다는 상상은 불가능하지 않아 보인다. 또한 인간의 정체성을 뇌 속에 저장된 기억들로 한정한다면, 인간의 뇌가 가지고 있는 데이터를 포스트휴먼의 AI뇌에 이식함으로써 인간의 정체성을 계승할 수 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포스트휴먼은 트랜스휴먼들의 상상일 뿐이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견해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 왜냐하면 인간의 특성인 정신이 물질과 연결된 고리조차 아직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고, 정신의 발현 메커니즘을 안다고 해도 그것을 기계화한다는 것이 불가능해 보이기 때문이다. 트랜스휴먼들의 상상은 그런 사실을 무시한 궤변에 지나지 않는다. 두 가지 측면에서 문제를 좀 더 살펴보기로 하자.

첫째는 몸에 관한 문제이다. 인간의 몸을 물질적으로 분해하면 약 1㎚(10억분의 1m)의 크기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원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나'의 몸은 나의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나'의 DNA 설계도에 따라서 각종 물질원자를 총합적으로 조직해서 만든 것이다. 그러나 포스트휴먼은 '나'의 DNA가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사실 '나'의 데이터를 원자단위까지 비교한다면, '나'와 동일한 존재가 따로 만들어진다는 것은 인간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나'의 정신이나 의식도 그런 '나'가 만들어내는 것이므로 '나'와 동일한 정신이나 의식이 따로 발현될 수 없다. 더욱이 과학은 아직 '나'의 몸 안에서  정신이 어떻게 발현되는지를 알지 못하는 수준일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정신과 물질의 연결고리를 찾아낼 것 같지 않아 보인다. '나'가 영생하는 것이 가능한 경우 한 가지를 말한다면, 그것은 '나'를 '나'보다 더 잘 아시는 창조자의 선택에 맡기는 방법밖에 없는 것 같다.

둘째는 정신에 관한 문제이다. 어떤 사람의 기억을 포스트휴먼 AI뇌에 기술적으로 업로딩하더라도 그 이후에 그 포스트휴먼이 하는 행동을 과연 그 사람의 행동으로 인정할 수 있을까? 왜냐하면 인간은 정신에 따라 행동하는 동물이며, 정신은 기억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의 기억은 '나'의 역사를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데이터이다. 그러므로 '나' 밖에 가질 수 없는 것이다.

AI의 기억은 업로딩과 다운 로딩(downloading)이 가능하다. 그러므로 AI에 입력된 한 사람의 뇌의 데이터를 여러 개로 복제할 수도 있다. 심지어는 '나'의 기억이 조작되거나 도난당할 수도 있고, '나'도 모르게 복제된 '나'를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도 있다. 그렇다면 포스트휴먼의 기억은 뒤죽박죽된 신뢰할 수 없는 데이터이일 뿐이거나 원본과 구분할 수 없는 복제품일 뿐이다. 그렇다면 '나'의 기억을 집어넣은 포스트휴먼은 영생하는 '나'가 되기는커녕, 다른 사람의 기억과 뒤섞인 다중인격체 기계가 될 수 있을 뿐이다. 결국 '나'가 포스트휴먼이 되어 영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13) '사피엔스'는 '호모 데우스'가 될 수 있는가?

옥스퍼드대학교 역사학 박사 출신인 히브리대학 교수 유발 하라리(Yuval Noah Harari)는 최근에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책을 두 권 출판했다. 한 권은 『사피엔스-유인원에서 사이보그까지 인간 역사의 대담하고 위대한 질문, Sapiens: A Brief History of Humankind』(2014)인데, 사피엔스가 약 250만 년 전 동부 아프리카의 유인원이었던 오스트랄로피테쿠스에서 자연선택에 의해 진화하였고, 이제는 생명공학이라는 지적설계에 의해 유기물과 무기물이 결합된 사이보그로 진화하고 있음을 주장하는 것이다.

다른 한 권은 『호모 데우스-미래의 역사 Homo Deus: A Brief History of Tomorrow』(2016)인데, 현재의 사피엔스가 미래에는 완전히 무기물만으로 만들어진 AI뇌와 몸을 가진 호모 데우스라는 종을 탄생시킬 것이라고 주장한다. 두 개의 책을 연결하면, 유인원 중에서 우리의 조상 사피엔스가 진화하여 세상의 지배자가 되었으며, 미래에는 사피엔스의 지적 설계에 의하여 사피엔스를 초월하는 호모 데우스라는 종으로 진화할 것이라는 내용이다.

여기서 하라리와 트랜스휴먼들의 용어를 비교하면, 사이보그는 트랜스휴먼이고, 호모 데우스는 포스트휴먼에 해당한다. 유발 하라리의 호모 데우스는 결국 인간이 만든 로봇이 인간에 의하여 진화하여 인간을 지배하게 되는 상상 속의 신이다. 유발 하라리에 의하면 인류가 처음 인지혁명에 의하여 상상의 산물인 허구를 믿게 되었고, 농업혁명과 과학혁명을 통하여 욕망의 세계를 현실로 만들어내었다. 이제 인류는 생명공학 기술로 유기물적 존재를 벗어나 유기물과 무기물이 결합한 사이보그로 진화했으며, 곧 완전히 무기물적 존재로 종분화한 호모 데우스가 탄생할 것이다.

어쨌든 대부분의 미래학자들은 2020년경에는 인간과 로봇이 결합된 트랜스휴먼의 등장으로 인간과 기계의 경계가 허물어지기 시작할 것이고, 2030년대에는 AI가 인간의 지능을 능가하기 시작할 것이며, 2040년대에는 인체의 전부를 기계로 대체한 포스트휴먼이 등장할 것이라는 예측에 동의하고 있다. 이제 인류는 트랜스휴먼의 시대에 들어서고 있는 중이다. 트랜스휴먼은 포스트휴먼이 되어가는 과정의 존재이나, 인간의 뇌만은 보존되어 있는 상태이다. 인류의 역사를 살펴보면, 인간의 본능은 자아욕구의 실현에 맞춰져있다는 사실을 누구나 인정한다.

따라서 인간이 지배하는 트랜스휴먼 사회에 적응하는 단계를 지나면, 인간의 자아는 다시 영생하는 신의 존재로 진화하기를 욕구하게 될 것이다. 인간의 욕망은 다시 살아나기를 꿈꾸면서 죽은 몸을 미이라로 만들었고, 최근에는 냉동보존 기술까지 개발했다. 그런 인간들이 생명공학의 발전을 보면서 자신이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살아가기를 욕망할 것은 자명하다. 이미 트랜스휴먼들이 그런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서 자신의 뇌 데이터까지 AI뇌에 이식하여 포스트휴먼이 되려고 하는 것이다. AI뇌를 가진 포스트휴먼은 부품을 교체하면 영구적으로 존속할 수 있고, 데이터만 추가하면 지능을 얼마든지 발전시킬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포스트휴먼과 공생하는 유토피아에서는 인간이 오히려 포스트휴먼에게 지배당하는 처지에 빠질 가능성이 더 크지 않을까?

무신진화론자들은 신의 개념을 인간의 뇌가 만들어낸 허상(虛像)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신은 인간의 뇌 안에서만 존재하는 것이다. 현대를 인간이 지배하는 트랜스휴먼 시대의 초기 단계라고 한다면, 미래는 호모 데우스로 불리는 포스트휴먼들의 시대라고 볼 수 있다. 포스트휴먼의 AI뇌에도 신이 존재할까? 이 질문은 포스트휴먼의 AI뇌에 어떤 데이터를 입력하느냐에 달려 있다. 만약 무신진화론적인 데이터가 더 많이 입력되면, 호모 데우스는 신의 존재와 그에 의한 창조사건을 부정할 것이다. 그래서 유발 하라리는 호모 데우스 시대의 종교는 데이터교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래에는 유용한 데이터를 가장 많이 가진 포스트휴먼이 마침내 최고의 호모 데우스가 될 것이라고 전망된다. 그런 사회에서 '나'의 정체성은 혼돈에 빠질 것이며, 인간성은 완전히 사라질 것이고, 신은 추방될 것이다. 여기서 기독교인들은 인간이 미래의 포스트휴먼에 대해 우려하는 바를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에 우려하지 않았을 리가 없었을 것이라는 합리적 추론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신을 흉내 내어 인간이 창조한 호모 데우스에게 인간이 지배된다면, 인간을 창조했던 하나님은 인간과 호모 데우스를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실까? 신이 그의 형상을 닮게 만든 인간이 호모 데우스의 노예가 된 사회에서 신이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인간을 지배하게 된 호모 데우스에 의하여 신도 지배당할 수 있을까? (계속)

허정윤(Ph. D. 역사신학, 케리그마신학연구원, djtelcome@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