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안교회 장시환
▲새안교회 장시환 목사
롬8: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8: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사중복음'이란 제목으로 이 말씀의 은혜 나누겠습니다. 우리 믿는 자들은 사중의 복음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4개의 기쁜 소식, 4개의 복을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4가지가 무엇인가. 첫째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미리 아셨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미리 정하셨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의롭다 하셨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넷째는 영화롭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가만히 보면 우리 인생은 어떤 인생인가. 나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나'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의 가르침속에 늘 강조하는 한가지는 나의 나된 것은 나의 행위와 공로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나'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 한가지 분명한 사실을 설명하기 위해 [롬1-8장]까지 많은 가르침을 주었고, 오늘 본문의 말씀까지 와 있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바울은 무엇을 얘기하고 있는가. 우리 부르심의 진정한 의미를 설명하려는 것입니다. 부르심이란게 무엇입니까. 교회라는 말의 어원은 ecclesia '부름받은 자들의 모임'입니다. 주님이 많은 사람들 가운데 우리를 부르셔서 여기 우리가 모여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는 것은 우리 신앙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내가 여기 있는 것은 어쩌다 그냥 있게 된 것이 아니다는 것입니다. 근처 교회가 있어서 찾아온 것일까요. 누가 여기 가보라 해서 온 것일까요. 가까운 사람이 여기 있으니 따라 나온 것일까요.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이 성숙해지면 깨닫게 되는 것은, 내가 선택하고 내가 결정해서 온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온 것이 맞지만 그런 선택과 결정을 하게 하신 보이지 않는 큰 손길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인도하신 깊은 손길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잠16:9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우리가 생각하고 판단하고 결정하는 많은 것들이 있습니다. 분명히 내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모든 생각과 판단과 결정가운데 세밀하게 개입하시고 주관하셔서 인도하시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고 사는 것이 지혜라는 것입니다.

결혼식 주례할 때 이 말씀 많이 전했습니다. 두 사람의 결혼은 각자가 좋아하고 마음이 맞아서 된 것이지만 그러나 그보다 먼저 하나님께서 두 사람을 아시고 서로에게 가장 필요한 사람을 맺어주신 것입니다. 이것만 붙들고 살면 잘 살 수 있습니다. 아무리 갈등하고 싸우고 해도 '하나님이 맺어주신 인연인데 저 사람만나게 하신 깊은 뜻이 있겠지..' 보통 주례 말씀 기억 못합니다. 그런데 살면 살수록 정말 중요한 말씀이구나 깨닫게 됩니다.

요15: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고별설교가운데 주신 말씀입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교회를 선택했습니다. 다른 교회가 있지만 이 교회를 나가야겠다 선택해서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주님이 먼저 우리를 선택하셔서 여기 오게 하신 것이고 그리고 세웠다는 것입니다. 주의 제자로, 주의 일군으로 세웠다는 것입니다. 왜? 그 이유가 무엇인가. 너희가 항상 열매맺게 하려고. 너희 삶이 주님안에서 정말 행복하게 풍요롭게 살도록.

이것이 사랑입니다. 선택은 사랑입니다. 괴로우라고 힘들게 살라고 먼저 선택했을까요. 아닙니다. 정말 우리가 행복하기를, 우리 삶이 풍요롭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주님은 우리를 먼저 선택하셨습니다.

요일4: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요한은 하나님의 사랑은 여기 있다고 합니다. 그 사랑이 뭔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신 사랑인데,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해 화목제물로 아들을 보내셨다는 것입니다. 요한은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사시고 죽으신 십자가에 대해서,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하셔서 아들을 그렇게 하도록 보내셨다는 것입니다.

2천년 후에 태어난 우리 입장에서 이 말씀을 봅시다. 우리가 예수님을 알기도 전에, 태어나기도 전에, 주님은 오늘의 내 죄를 위해 죽으셨다는 것입니다. 내가 숨을 쉬기도 전에 죄로 말미암아 괴로워할 나를 위해 대신해서 죽으신 것입니다. 왜 그렇게 무모한 일을 하신 것입니까. 그렇게까지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은 먼저 베푸신 이 사랑을 알아가는 것입니다. 발견해 가는 것입니다.

최근 간증집회때 새삼 깨달은 중요한 사실이 있었습니다. 삶에 지치고 힘든 사람들이 어디서 살아나는가. 어디서 일어나는가. 오늘의 우리가 있기까지 신앙의 선배분들의 희생과 수고로운 세계를 듣고는, 마른 뼈와 같은 사람들이 새 힘을 얻고 다시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들으면서 '아 먼저 있었던 희생을 아는 것이 정말로 중요하구나' 생각했습니다.

출애굽기서를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로 나갈때 무엇을 하고 나갔습니까. [출12장]에 어린양을 잡아먹는 의식을 행했습니다. 어린 양, 그 착하고 흠없는 양을 죽입니다. 피를 집 문앞에 바르고 죽인 그 고기를 먹습니다. 왜 이런 것을 행했는가. 광야의 험난한 삶을 견디고 이길 수 있는 것은, 나를 위한 희생의 깊은 의미를 깨닫는데 있기 때문입니다. 그 희생으로 오늘의 내가 있다는 것, 이를 알게 되면 모든 것을 다 이길 수 있습니다.

지금 바울은 우리에게 주신 4가지 기쁜 소식이 있는데 그 첫번째가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아셨다는 것입니다.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또 다른 면으로 큰 위로가 되는 말씀입니다. 어떤 위로인가요. 우리 삶이 늘 주님앞에 늘 말씀앞에 떳떳하지 못합니다. 부끄러운 모습들도 많습니다. 우리 신앙에 힘든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를 믿으면 모든 것이 좋을 것 같은데 믿었는데 더 힘든게 있습니다. 주님을, 또 말씀을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자기 죄를 보게 됩니다. 더 찔림을 받게 됩니다. 주님은 선하시고 의로우십니다. 말씀도 늘 거룩하고 늘 옳습니다. 그런데 나는? 나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가.

[롬7장]에 바울도 고백했습니다. 너무 괴롭다고. 괴로워 죽겠다고. 진지하게 믿으면 믿을수록 밝아지는게 아니라 어두워집니다. 무거워집니다. 정말 큰 사랑, 큰 은혜를 경험한 사람은 그냥 살 수 없습니다. 말씀대로 살아야한다는 것을 너무 잘 압니다. 그런데 그렇게 못사는 내가 너무 괴로운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뭐라고 합니까. 그런 나인 것도 주님이 미리 아셨다는 것입니다. 그런 못나고 추하고 부족하고 연약한 나인 것도 이미 다 아시고 나를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모르고 부른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바울안에 확신입니다. 주님 사랑은 그런 나인 것도 다 아시고 부르신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바울 자신이 어떻게 부름받았습니까. 그의 간증은 우리가 많이 보고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예수 믿는 자들을 지독하게 괴롭히고 잡아가고, 스데반 집사를 돌로 쳐서 죽이는 데도 마땅히 여기고 선동하고 동조했던 자였습니다. 그 악독한 자였습니다. 살인방조죄 라는 게 있습니다. 직접 피는 안묻혀도 같이 죽인 것입니다. 용서받지 못할 살인자입니다.

그런 자가 또 다른 예수 믿는 자들을 잡아가려고 100km나되는 거리를 증오심에 불타서 걸어가는데, 주님이 부르셨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그의 악함의 깊은 것을 다 아시고도 부르셨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한번 부르신게 아닙니다. 반복적으로 부르신 것입니다. 반복적으로 악한 마음을 품는 것도 다 아시고 부르신 것입니다. 이 사랑의 확신으로 바울은 완전히 바뀌어서 지독하게 복음을 전하는 자로 살았습니다.

그리고 두번째 기쁜 소식은 뭔가요. 미리 정하셨다는 것입니다. 뭘 정하신 것인가요. 나를 향한 최고의 계획을 정하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운명론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나중에 어떻게 될지 미리 다 정해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불행한 삶을 사는 이들에게는 비참한 것입니다. 날때부터 맹인된 자를 볼때 평생 맹인으로 불행하게 살수 밖에 없다는 운명이라고 한다면 얼마나 비참한 것입니까. 어느 나라는 천민의 자식으로 태어나면 그것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평생 천민으로 살 수 밖에 없는 운명인 것입니다. 그것을 받아들이고 삽니다.

그런데 성경은 무엇을 우리에게 얘기합니까. 부름받은 자들안에는 하나님께서 최고의 미래를 정하시고 우리를 이끄신다는 것입니다. 내 인생에 가장 가치롭고 아름다운 미래의 한 자리를 정하셨다는 것입니다. 믿는 자들안에 운명이 있다면 '최고로 잘 될 운명'만 있는 것입니다. 과정가운데 이런 저런 어려움이 있어도 이런 저런 실수와 실패가 있어도 결국에는 미리 정하신 미래로 가게 되는 운명입니다.

네비게이션과 같습니다. 운전할때 목적지를 정해놓고 갑니다. 요즘엔 실시간으로 교통상황에 따라 가는 길이 막 바뀝니다. 그 상황에서 제일 빠른 길을 찾아내서 인도해 줍니다. 어떤 때는 운전을 하다가 길을 잘못 들어설 때도 있습니다. 그러면 좀 돌아갈 수 있어도 거기서 제일 빠른 길을 안내해 줍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이, 하나님의 섭리하심이 이와 같습니다. 결론은 무엇입니까. 정해놓은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를 꼭 기억하고 살기 바랍니다. 우리 인생의 목적지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정해놓으신 목적지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실때는 이미 하나님 나라에 너무도 귀히 쓰일 그릇으로, 많은 영혼을 구원할 사명을 감당할 자로, 이런 일 저런 일 여러가지 일들로 그리스도의 선한 일군으로, 다 정해놓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정해놓으신 목적지로 인도하십니다.

그런데 여러분 인생이 이것을 잃어버리면 혹은 무시하면 손해를 볼 수 있습니다. 삶의 환란이 일어나고 괴로워질 수 있습니다. 그 세계를 경험한 자가 누구입니까. 요나입니다. 요나를 향한 하나님 계획이 있었습니다. 정해두신 것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반대편으로 갔습니다. 그러자 인생에 많은 환란이 일어나고 많은 고생을 합니다. 그런 그의 삶의 결론은 무엇입니까. 그는 불순종하고 투덜거렸지만 사랑의 하나님이 그를 다 품고 이해시키셔서 결국에는 정하신 길로 데려가셨습니다. 니느웨로, 이방선교의 사명을 감당케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그러므로 우리 인생은 다 한 사람 한 사람 안에 하나님의 계획이 있다는 것을 아시기 바라고 또 그 계획을 따라서 인생이 가고 있다는 것도 아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정하신 계획을 따라 순종하여 불필요한 고생없이 일찌기 예비된 복을 다 받는 우리가 되길 바랍니다.

셋째는 미리 정하신 그들을 의롭다 하셨다는 것입니다. 죄많은 우리들인데, 문제가 너무도 많고 허물투성이고, 부족함이 너무 많은 우리들인데도 그 모든 것을 다 깨끗케 하셨다는 것입니다. 일체의 모든 우리안에 부정한 것들 더럽고 추한 모습들까지도 다 말끔히 씻어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 죄가 주홍같이 붉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희게 되리라. 이 이사야의 예언이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다 깨끗케 해주셨다는 것입니다.

[창4장]에 보면 가인이 아벨을 쳐서 죽입니다. 그래서 죄책으로 심판받을까 두려움에 떠는 가인에게도 하나님께서 가죽 옷을 입히십니다. 그 큰 사랑으로 죄악을 덮으신다는 것입니다. 사랑은 모든 허물을 덮는 것입니다. 이는 은폐하는 것이 아니라 다 용서하시고 그 죄값을 대신 담당하는 것입니다. "너의 죄를 내가 다 책임지고 해결했으니, 없는 것이니 너는 너의 가야할 길을 열심히 가라"는 것입니다. 바울의 이 말씀속에는 죄인을 향한 지극한 위로가 있습니다. 우리 모든 죄를 다 깨끗케 하셨다는 것입니다. 의롭다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 담백하게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마지막 네번째 믿는 자들에게 들려주는 복음의 말씀, 기쁜 소식은 무엇인가요. 우리 삶에 어떤 과정을 거친다 해도 영화로운 자리로 우리를 끌어 올려주신다는 것입니다. 날마다 우리를 새로운 차원으로 올려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 삶이 이런 저런 일들이 있어도, 그 분의 놀라운 사랑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자들은 결국에는 하나님의 영광에 참예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때로는 내려가는 것 같고 때로는 굽이 도는 것 같을지라도, 저 높은 곳을 향하여 하나님의 영광스런 곳을 향하여 날마다 우리를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롬8장]은 성령의 놀라운 위로를 얘기합니다. 세상의 삶에 지친 자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 죄책으로 눌리고 자학하고 어둠속에 있는 자들이여~ 다 주님께 오라는 것입니다. 와서 이 4중의 복음, 이 사랑의 복음을 들으라는 것입니다. 이 안에 우리 인생들을 향한 주님의 깊고도 깊은 사랑이 있습니다. 위로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미리 다 아시고 미리 정하시고 부르시고, 또 부르신 우리들을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우리들을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아멘. 이 말씀 깊이 마음에 담으면서 우리안에 있을지 모르는 조그만 어둠까지도 다 몰아내고, 하나님의 큰 영광의 빛을 드러내는 우리 모두의 삶이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