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교분리 원칙, ‘종교에 대한 국가의 불간섭’서
어느새 ‘국가에 대한 종교의 불간섭’으로 변질돼
한국교회, 독립운동부터 민주화까지 정치 투쟁
교회 지도자들, 모든 언행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언론회 시국선언 정교분리
▲왼쪽부터 주제발제한 임성택 박사, 사회를 맡은 이억주 목사, 토론을 맡은 박종화 목사. ⓒ이대웅 기자
‘한국교회가 나아갈 모습과 역할을 위한 시국선언(교회와 정치) 논란에 대한 토론회’가 2일 오후 서울 연지동 한국기독교연합회관에서 한국교회언론회(대표 유만석 목사) 주최로 개최됐다.

이날 토론회는 이억주 목사(한국교회언론회 공동대표) 사회로 임성택 박사(KC대학교 전 총장)가 ‘정교분리와 교회 정치투쟁의 당위성’이라는 주제로 발제했다.

임 박사는 “기독교 일각에서 주장하는 정교분리의 원칙은 근거없고 까닭없이 왜곡되고 변형돼 있어 우려를 표한다”며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정치와 종교는 무 자르듯 명백하게 분리시킬 수 없고, 상호 책임과 의무로 연결된 유기적 관계”라고 전제했다.

임 박사는 “정교분리는 미국 연방수정헌법에서 비롯됐다. 그 시점에서는 종교가 국가에 대해 우월적 지위에 있었다”며 “당시 정교분리는 국가가 국민의 세속적·현세적 생활에만 관여할 수 있고, 내면적·신앙적 생활은 개인의 신앙과 양심에 맡기고 개입하지 않는다는 원칙으로 ‘국가의 종교적 중립성 내지 비종교성’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그는 “‘종교에 대한 국가의 불간섭’에서 출발한 이 정교분리 개념이 시간이 흐를수록 추상화되면서, ‘국가에 대한 종교의 불간섭’으로 그 이해가 변질되기 시작했다”며 “여기에는 다분히 종교에 대해 부정적이거나 대척점에 있는 세력에 의한 의도적 꺾기가 있다”고 지적했다.

임 박사는 “그래서 지금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국가에 대한 종교의 불간섭’이라는 왜곡된 정교분리 개념에 의해, 교회가 집단적으로 비난받는 난감한 상황에 처했다”며 “이 왜곡된 개념으로 인한 오류와 혼란을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에 “성경에서는 사무엘이 사울을 왕으로 세우는 것으로 국가와 종교의 분리가 시작됐다. 모든 권세는 하나님의 선을 이루기 위해 세워졌다는 것이 성경의 정교분리 실천 원리”라며 “성경이 말하는 정교분리의 원래 이념과 정신에 따르면, 국가는 하나님이 주신 권세로 하나님의 선하심이 이뤄지도록 백성을 통치하되 종교를 국교로 해서 이용하거나 편승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또 “국가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바르게 이해하는 교회의 견제와 협력을 받아 그 권세를 바르고 정당하게 사용해야 한다”며 “따라서 권세를 검증하고 그 결과에 대해 책임을 물어야 할 사명이 교회에 있다. 이것이 교회의 정치권력에 대한 정당한 교권 행사”라고 했다.

한국교회 정치 참여에 대해선 “기독교는 항일 독립운동의 주역으로서 위상을 갖고 있다. 기독교의 독립운동과 민족의식 고취는 왜곡된 정교분리주의자들이 말하는 종교의 선을 분명히 넘고 있었다”며 “개인의 구령과 내세의 천국을 사모하던 교회가 더 이상 권세가 하나님의 선하심을 받들지 못함을 깨닫고, 일제의 폭정과 야욕을 분쇄하기 위한 전선의 최일선에 자진해 나선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기독교는 대한민국 건국의 주역이었다. 이후 한국교회는 전후 복구와 경제건설의 주역으로서 실망한 국민들을 격려하고 독려해 가난을 벗고 선진 대한민국을 건설해 후대를 행복하게 하는 견인차 역할을 자임했다”며 “군부독재 시절을 거치면서는 반유신·반독재 민주화 운동과 인권운동, 약자들과 소외자들과 빈민들의 구제를 위한 구제와 사회봉사의 최전선에 있었다”고 강조했다.

임 박사는 “얼마 전 한기총 대표회장 전광훈 목사가 ‘대통령 하야’를 주장해 한국교회는 물론 사회적으로 일대 파란을 일으켰다. 그가 발표한 진위나 단체와 개인의 정당성을 따지는 것은 불필요한 논쟁을 야기하고 정당성을 따져 편들면 파당에 끼어들어야 하기에 하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권세에 대해 선지자적 사명을 가진 교회의 정치참여를 근본적으로 차단하려는 악한 시도에 끝까지 다투고자 한다”고 했다.

그는 “한국교회가 일제에 저항한 독립운동에서부터 최근의 민주화에 이르기까지 벌여온 정치투쟁의 역사는 그야말로 찬란히 빛나는 것이고 두고두고 평가받아야 한다”며 “이런 관점에서 멈출 수 없는 교회의 정치투쟁은 앞으로도 여전히 계속돼야 하고, 그 누구에 의해서도 간섭받거나 폄훼돼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임성택 박사는 “교회는 천주교처럼 정권 장악이 목표가 아니라, 그야말로 거룩한 천국을 향해 나가는 이 땅에 세워진 하나님의 나라로서 성도의 성결과 성화를 위해 노심초사한다”며 “그러면서도 교회가 터 잡고 있는 이 땅이 하나님의 선하심에 도전하는 악한 세력들로부터 위협받고 있다면 이를 인지한 순간부터 당연히 모든 것을 걸고 하나님의 선하심을 위해 싸워야 할 것”이라고 했다.

임 박사는 “사회와 정치권은 교회의 정당한 정치 참여를 자신들에게 불편하다 해서 불순하게 매도하지 말고, 교회의 비판과 질책 앞에 겸허하게 서야 할 것”이라며 “주장과 변명은 가능하나, 교회의 비판과 책망을 근원적으로 막아버릴 생각을 하면, 그 정권은 그날로부터 하나님의 버림을 받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언론회 시국선언 정교분리
▲토론회가 진행되고 있다. ⓒ이대웅 기자
이와 함께 “문제는 교회 내에서의 갈등과 상호 비난이다. 복음에는 좌우도, 진보도 보수도 없다. 하나님을 어느 일방의 하나님으로 가두어버린 것은 인간의 어리석은 소치요 불경”이라며 “지금 우리 한국교회는 정교분리의 수준 높은 교회정치 사상을 폄훼하고, 스스로 세속정치의 어느 일파가 되어 상대를 정적 개념으로 복음과 교회의 이름으로 저주하고 있다”며 통탄해했다.

그는 “그들의 관심은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의 세속 권세자들을 그의 선하심 앞에 세우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신봉하는 세속사상과 자신이 발을 담그고 있는 현실정치의 정파 수장을 바라보고 있는 듯하다”며 “너무나 명백한 것을 두고도 보수이기 때문에 혹은 진보이기 때문에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편들거나 비난하며, 성경적이지도 않은 주장을 성경과 신학을 동원해 옹호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더욱 가슴 아픈 것은 우리 교회의 허물을 장차 멸하기로 예비된 세속에다 엎드려 아뢰는 무례함과 천박함이다. 그렇게 해서 자신은 내부고발자로서 용감한 영웅으로 칭송받겠지만, 교회는 세상의 조롱거리가 되고 복음은 만신창이가 될 것”이라며 “하나님으로 조롱과 치욕을 당하게 하는 그 무례함과 천박한 영웅놀음이 정말 슬프다”고 했다.

임성택 박사는 “기독교에 비판적인 동시에 개혁적 성향을 가졌다는 유명 인사들은 교회의 허물을 담을 책을 저술하고 일간지에 광고해 대대적으로 교회에 망신과 부끄러움을 안기고 있다”며 “이로써 그는 세상으로부터 타락한 교회를 향한 용감한 개혁의 선봉이요 시대의 선지자라는 명성은 얻을지 몰라도, 주님으로부터는 교회를 팔아 명성을 취한 가장 저주받을 자로 정죄받을 것”이라고 일갈했다.

임 박사는 “저도 대형교회의 비리와 유명 목회자들의 허물에 대해서는 험하게 분노하고 질타해 왔다. 그러나 그 교회와 목회자를 세상이 공격한다면, 모든 것을 걸고 그 교회와 목회자를 지킬 것”이라며 “감히 세상이 교회와 그 종들과 백성들을 허물하거나 정죄하도록 내버려둘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이번 한기총 전광훈 목사의 시국선언문 관련 파장은 쉽게 가라앉을 것 같지 않다. 역으로 이것이 칼이 되어, 세상이 한국교회를 전방위적으로 압박하는 도구가 될지도 모르겠다”며 “그래서 한국교회 지도자들, 특히 명성 있는 분들은 모든 언행에서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결론에서 임 박사는 “지금 이 나라가 위태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럴 때일수록 교회와 목회자들은 긴장해야 하고 언행을 조심해야 한다”며 “정당한 주장만큼, 주장자는 윤리적 품격을 갖춰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주장은 묻히고 윤리성만 공격당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임성택 박사는 “더불어 향후 기독교가 이런 난세의 정치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고, 21대 총선을 어떻게 준비하고 기도해야 하는지 고민해야 한다”며 “교회가 직접 정치를 할 수는 없지만, 정치가들이 바르게 정치할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은 포기해선 안 될 것”이라고 밝혔다.

임 박사는 “지금까지 3번이나 시도했지만 실패한 기독당의 원내 진입에 대해서도 이제 다시 점검해야 한다”며 “지금까지 저는 ‘교수직을 걸고’ 기독당을 반대했지만, 근자에 진행되는 정치 상황을 보면서 더 이상 정치적 목소리를 정치 중심에서 내지 않으면 우리의 조국이 위험해질 수도 있다는 근거가 수없이 많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도 거의 모든 민주국가에서 원내 의석을 가진 기독 정당이 있는 것처럼, 이번 총선에서 비례대표로의 원내 진입을 위해 모든 기독 정치세력들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함으로써 원내 의석을 지닌 기독당의 출현을 기대해야 할 것”이라며 “다만 현직 목회자들이 후보자로 출마하는 문제는 부정적이다. 가장 바람직한 것은 훌륭한 기독 정치인을 골라 그들을 현장으로 내보내는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이후 김명혁 목사(한복협 명예회장), 박종화 목사(경동교회 원로), 박종언 목사(한장총 부회장), 이성민 교수(감신대), 이호선 교수(국민대) 등 패널들의 토론이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