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모든 병자들을 고치시는 것을 알기 때문에 병든 나사로에게 빨리 와서 그를 고쳐 달라는 내용 이었겠지요. 절박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이틀을 지체 하시는 바람에 나사로가 죽고 말았습니다. "얼마나 더 중요한 일이 있으시길래 오빠가 죽는다는데 안 오셨어요, 예수님이 병을 고쳐주셨으면 오빠는 안 죽었을텐데..."(요 11;21, 32)
예수님이 병을 고치실 거라는 믿음이 있었던 것만큼, 병을 고쳐서 오빠의 죽음을 막아주지 못한 예수님께 서운하고 그 죽음이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마리아와 마르다는 같은 마음입니다. 죽기 전에 미리 막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이 보호하시고 지켜 주시면 이런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을텐데... 내 기도가 부족했나, 내가 믿음으로 살지 못했던 결과 구나...'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막아서 나쁜 일을 당하지 않는 것도 믿음이지만, 이미 사건이 터져서 주님이 회복하시는 그 때 더 큰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것도 믿음입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 11:25~26)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요 11:27)
마르다는 믿음을 고백했지만 병든 사람을 고치시는 예수님이 시체도 살릴 수 있는 분이시라는 것은 몰랐습니다. "맹인의 눈을 뜨게 한 이 사람이 그 사람은 죽지 않게 할 수 없었더냐"(요11:37)
모여 있던 유대인들도 같은 마음이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지금 그들과 함께 있는데 죽은 자를 살릴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울고 있는 그들을 보시면서 예수님은 몹시 슬퍼서 마음이 아프셨습니다(요11:33,38).
예수님은 나사로가 묻힌 무덤 앞으로 가셨습니다. 굴로 만든 무덤의 돌문을 열어 놓으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죽은 지 나흘이 되어 썩어 냄새나는 시체를 향하여 큰 소리로 그 이름을 부르십니다. "나사로야 나오라!"
그때 도저히 눈으로 보면서도 믿을 수 없는 광경이 일어났습니다. 수족을 베로 동인채로 얼굴까지 꽁꽁 싸놓은 썩은 시체가 성큼 성큼 걸어서 무덤 문으로부터 걸어 나오고 있었습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이 예수님을 보내신 것을 믿게 하시려는 믿음의 증거가 이것이었습니다(요 11:42).
병을 고쳐주시고 오병이어를 주시는 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죽은 생명을 살리시는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이 예수님을 보내셔서 우리에게 믿게 하시려는 표적입니다. 죽은 사람이 살 수 있는 부활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스스로 입증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생명의 주인이시며 죽음보다 강하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이 죽음을 이기신 생명은 죽을 수 없는 영원한 생명입니다.
우리는 그 생명을 받았습니다. 그 생명으로 내 이름을 부르는 예수님의 소리를 들으면 그 생명의 능력이 다 죽어 썩은 육체까지 연결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우리에게 주신 부활의 생명이 도저히 회복 불가능한 육체를 일으키시는 것을 믿습니다. 왜 이런 불치병이 걸렸는가, 장애가 왔는가, 불구가 되었는가, 육체가 무너졌는가...
창조주 하나님의 능력 앞에서 원인분석은 아무 소용없습니다. 죽어도 살고 영원히 죽지 않는 예수님의 부활하신 생명 앞에서 다 부서지고 썩은 육체의 모든 일들이 회복될 것을 믿습니다.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요 11:40)"
이영은 목사(서울 마라나타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