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안교회 장시환
▲새안교회 장시환 목사
롬8: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8:27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8: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8: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할렐루야! 성령강림절입니다. 모두 성령 충만 하시기 바랍니다. 이 날은 부활절 이후 50일째. 부활절이 하나의 점이라고 한다면 성령은 그 점이 사방으로 확대되는, 그 점에 응축된 힘이 크게 폭발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난 십자가의 사랑이 온 세계로, 생명의 역사로 퍼져나가는 그 기점을 오순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날은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120명의 사람들이 성령을 받아가지고 혀가 풀리고 세계 각국의 언어로 방언을 받습니다. 왜 하고 많은 은사 중에 방언은사일들이겠습니까. 왜 혀가 풀렸겠습니까. 이는 생명의 복음을 열방에 전하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것이 오순절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소중한 의미일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은 [롬8장]을 읽었습니다. 이번에는 이 말씀에 은혜받아서 나누려고 합니다. 로마서를 보면 8장까지의 메세지가 간단히 보면 의인과 성화입니다. 전적인 은혜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구원을 받았고, 구원 받아서 거룩해지는 삶가운데도 그 사랑의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셔서 우리를 바꿔가신다는 것입니다. 8장은 성령의 장이라고 합니다. 구원받은 자들안에 무엇이 일어나는 것입니까. 우리가 중생하는 것도 성령의 역사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것도 성령의 은혜로 말미암아 산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령이라고 할때 느끼는 것이 뭔가요. 늘 기도하고 늘 말씀보면서 성령을 받는다고 말합니다. 성경은 뭐라고 얘기하냐면, 시대로 보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성부의 시대-성자의 시대-성령의 시대. 먼저 성부의 시대, 하나님께서 이 땅 가운데 선지자들을 통해 압도적으로 역사하신 시대가 있었고,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완벽히 자신을 계시하신 성자의 시대가 있었습니다. 이는 33년인데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부분은 3년입니다. 짧지만 완벽한, 3년 안에 하나님의 모든 것을 다 보여주셨습니다. 우리를 위해 이땅에 오시고 사시고 죽으셨던 이 완벽한 하나님의 사랑을 사랑의 진리를 다 계시하셨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고 이후에 열려진 역사를 성령의 시대라고 합니다.

이 성령의 시대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누구든지 십자가를 바라볼 때 그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누구든지'라는 말이 중요합니다. 그 은혜로 구원받은 자들, 그런 우리에게 또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롬8장]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 안에 우리 영혼의 모든 것, 우리 삶의 모든 것이 담겨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정죄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는 굉장히 영적인 이야기입니다. 영적인 게 무엇입니까. 죄에 관계된 것입니다.

감옥을 수시로 들락거리는 범죄자를 보면 전과기록이 있습니다. 죄의 리스트가 있습니다. 얼마나 끔찍합니까. 그걸 지우기가 쉽겠습니까. 정말 어렵습니다. 그러나 특별사면(Amnesty) 란게 있습니다. 광복절 특사와 같이 한 번에 죄의 기록을 다 지워주는, 은혜의 때가 있습니다. 그걸 다 지워준다 해보십시오. 얼마나 좋을 것입니까. 얼마나 자유로울 것입니까.

바울은 그의 가르침이 핵심적으로 관심했던 것이 늘 이 영혼의 문제, 영적인 문제입니다. 우리 삶 가운데서도 늘 이 문제를 주목해야합니다. 인간 관계도 그렇고 하는 일도 그렇고, 따지고 보면 이 문제에 다 걸려있는 것입니다. 서로 미워하는 문제, 돈 문제. 그게 문제일 수 있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아닌 것입니다. 돈이 없어서 힘들다 하지만 돈이 있으면 안 힘들까요. 더 문제가 많아질 수 있습니다. 잠언서에 '큰 집에서 다투며 사는 것보다 움막에서 혼자 사는 것이 낫다[잠21:9]' 고 했습니다. '고기가 가득하고 다투는 것보다 마른 떡 한조각만 있고 화목하는게 낫다[잠17:1]' 고도 했습니다. 소유가 많아져도 더 괴로워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소유의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서야 될 자리가 있습니다. 하나님과 나사이 우리가 살아야될 길이 있습니다. 타락이란 인간이 그것을 떠나있는 것입니다. 새는 날아다니는 법이 있습니다. 물고기는 물고기가 다니는 길이 있습니다. 그 법도와 이치가 있습니다. 그것을 거스르고 살 때 고통과 죽음이 오는 것입니다. 물고기를 물 밖에 내놓는다 해보십시오. 새를 물 속에 집어 넣는다 해보십시오. 인간도 마찬가지. 하나님께 지음받은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맺고 그 관계속에서 넘치는 복을 누리며 생명의 넘치는 세계를 누리며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깨버릴 때 문제가 옵니다. 이를 우리는 죄라고 합니다.

바울은 이런 면에서 율법을 굉장히 사랑했습니다. 나는 율법과 결혼했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음악에 미쳐 있는 어떤 사람이 표현하기를, '나는 음악과 결혼했다'고 합니다. 바울은 율법을 지나치게 사랑해서 '그것을 날마다 어떻게 하면 잘 지키고 살 수 있을까' 하며 살았던 사람입니다. 왜? 그래야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으니까요. 그래야 우리 영혼이 기쁘고 복이 깃들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그렇게 율법을 지키려고 하면 할수록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안의 죄가 더욱 선명해지는 것입니다. 발견되는 죄가 더 많아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율법으로 말미암은 고통, 죄책감이 더해지고 영혼은 갈수록 어두워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런 고통을 느끼며 사셨습니까.

혹자는 "아니, 그런 고통이 어디 있습니까 그것 없이도 잘 사는 사람 얼마나 많은데요"라며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진지하게 생각해야합니다. 우리는 다 하나님 법으로 지어졌습니다. 그 법대로 살라고 보냄을 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부르시면 다른 세계로 가는 것입니다.

[히9:27] 한번 죽는 것은 정한 이치요 그 이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죽고 나면 심판이 있습니다. 우리 지은 죄에 대한 심판입니다. 죽음을 앞둔 사람의 최대의 관심이 무엇입니까. 지난 날 내가 지은 죄에 대해서, '이것을 어떻게 하면 지우고 갈 수 있는가' 입니다. 죄는 아무리 피하고 살아도 우리가 반드시 직면하게 되는 문제입니다.

바울은 이 문제를 진지하게 깊이 생각했습니다. 율법을 아무리 지켜도 죄의 목록이 사라지지 않는 것입니다. 전과기록이 더욱 늘어나는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서 1장부터 이방인의 죄, 2장에 유대인의 죄, 3장에 이르러서는 모두가 죄인이라고 선언했습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말했습니다. 율법아래 다 저주받아서 심판받을 운명에 처해있는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 새 빛이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율법외에 다른 의가 나타났으니" 십자가를 얘기합니다. 우리 죄를 대신 지고 죽으신 주님의 사랑을 설명합니다. 몇 가지로. 법정의 비유 제사의 비유 노예의 비유. 다 죽을수 밖에 없었는데 살 길을 내어주신 것입니다.

최근 며칠간 [민21장] 말씀이 많이 다가왔습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목마르다고 불평할때 뱀을 풀어서 물려 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살길을 내어주시는데 놋뱀을 달아가지고 그걸 쳐다본 자마다 살게 해주셨습니다. "그 길을 내어주신 것이 큰 은혜구나" 깊이 생각되었습니다.

바울은 이 생명의 길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저주받아 죽을 인생들에게 내어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롬5장]에서는 '그 은혜와 평화를 누리자' '그 감격을 그 기쁨을 누리자' 라고 말했습니다. 거친 바다를 항해하던 배가 항구에 들어와서 고요히 정착해있는 이미지의 단어를 사용해서 그 귀한 세계를 누리자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또 하나의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구원받아서 모든 것이 달라져서 다 새롭게 되면 좋겠는데 6, 7장에 뭐라고 되어 있습니까. 구원받은 내 안에 또 이전의 죄를 짓는 습관이 있습니다. 구원받아서 하나님의 아들로 삼아주시고 그 지위를 갖게 해주셨는데, 노예근성처럼 죄의 종으로 살던 때의 그 습관이 그대로 있는 것입니다. 상태가 안바뀐 것입니다. 또 나쁜 것 보고 또 남을 미워하고. 돼지가 씻겨놓으면 다시 시궁창에서 뒹구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자신의 모습에 더 절망합니다. 더 괴롭습니다. "그 큰 은혜로 새생명이 된 나인데, 내가 또 이러고 있네?" 내 자신이 너무 실망이 됩니다. 어떤 사람이 솔직하게 말했습니다. 저 사람과 오래 같이 있어봤는데 안바뀌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선언을 했습니다. "사람은 절대 안바뀝니다!" 바뀐 것처럼 보이더니 또 이전의 그 행동을 하더라는 것입니다.

[롬8장]에 '우리도 몸의 속량을 기다린다' 고 했습니다. '이는 '어떻게 하면 우리가 전인적으로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바뀔 수 있는가' 이런 말입니다. '은혜 받고 죄짓고 살고 또 은혜 받고 죄짓고 살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은혜받고 죄 안짓고 사는 나'로, '의를 행하고 선을 좇아 사는 나'로, 어떻게 그리스도를 닮은 나로 바뀔 수 있는가, 라는 것입니다.

성령의 장에서 바울은 이 말부터 시작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롬8:1]". 구원받은 자들은 누구도 정죄할 수 없습니다. 이걸 다시 확실히 해야합니다. 애굽의 병거가 좇아오지 못합니다. 다 수장된 것입니다. 정죄할 수도 없고 정죄받지도 않습니다. 왜 이 말씀이 성령의 장의 시작입니까. 우리가 예수 믿고도 여전히 죄와 싸우기 때문입니다. 죄의 문제로 무너지기를 반복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성령강림절에 성령을 받는다는게 뭘 의미하는 것입니까.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입니다.

여러 하나님의 일꾼들을 만나면 이런게 여전히 많습니다. 무슨 일이 안되면 '내가 무슨 죄가 있는가' 병에 걸리면 '내가 무슨 죄를 지어서 이 병에 걸렸는가' 생각합니다. 일이 망했을 때에도 '내가 무슨 잘못을 했나' 생각합니다. 이를 깊이 생각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문제는 거기에 눌리고 발목잡혀서 괴로워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롬8장]에서 바울이 말하는게 뭡니까. 먼저는 아무도 나를 정죄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요8장]에 간음한 여인에게도 너를 정죄할 자가 있느냐? 없나이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이 말씀을 우린 늘 가슴에 새기고 살아야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람이 된다는 것은 사실상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 힘으로 우리 노력으로 바뀐다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는 것이 사실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바울이 말하려는 중요한 것은, 우리는 안되지만 성령은 그런 우리를 도와서 바꾸신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자각의 종교들, 스스로 노력해서 완전함에 이른다고 하는 가르침들은 다 거짓입니다. 위선(僞善)이라고 합니다. 선한 척하고 옳은 척하는 것입니다. 한자로 거짓 위(僞)자. 사람 '인(人)'에다가 할 '위(爲)'자가 합쳐진 것입니다. 즉, 사람이 하는 것은 거짓이라는 뜻입니다. 그것이 정말로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뭘 말합니까. 하나님은 거짓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구원받고도 죄로 인해 끙끙 앓는 우리의 모습이 있지만 그러나 성령께서 우리 연약함을 도우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울의 성령에 대한 이해입니다. 성령께서 우리 연약함을 아신다는 것입니다. 그 연약함이란게 뭔가. 근본적으로 죄와 관계된 것입니다. 그것 때문에 안되고 늘 무너지고 걸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안되는 모든 것들 생각해보십시오. 우리가 해서 그런 것입니다. 우리가 하려고 해서 그런 것입니다. 이를 철저히 깨달아야합니다. 사무치도록, 두손 두발 다 들고 주님께 투항하도록 우린 '내가 하니 안된다는 것을' 진정으로 깨달아야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말합니다.

롬8: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우리가 얼마나 바보같은가. "자 기도합시다!" 해서 하는데 뭘 기도할지도 모릅니다. 하나님 일을 하는데 뭘 어떻게 해야할지도 모르는 것처럼. 하나님 뜻대로 산다고 하는데 그 뜻이 뭔지도 모르고 삽니다.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는 우리의 영적정황입니다. 한숨이 나옵니다. 그래서 성령도 탄식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탄식은 뭔가요. 위에 19-23절을 보면 피조물도 탄식하는 것입니다. 온 우주가 탄식하는 문제라는 것입니다. 개인만 그러는게 아니고. 이 죄악의 세계가 다 탄식하는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이 세계가 바뀌겠습니까' 피조물도 괴로워하면서 바란다는 것입니다. 지금의 세상과 다른 새로운 하늘과 새로운 땅이 열리기를. 이것이 우주적인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뭐라고 말합니까. 성령이 탄식하는 우리를 돕는다는 것인데, 어떻게 도우시는가.

사순절에 본 말씀들 중에 예수님께서 십자가 길 가시기 전에, 고별설교중에 주신 말씀이 있습니다. '내가 가면 보혜사 성령이 오신다' '내가 가면 성령이 오신다' 간다는 것이 무슨 얘깁니까. 참혹한 죽음입니다. 말할 수 없는 고난의 과정입니다. 그걸 거치면 보혜사 성령이 오시리니. 십자가로 열어주신 세계, 피와 땀과 눈물로 열어주신 그 세계가 성령입니다. 너무도 간절하고 너무도 절박하게 우리를 도우시는 성령님. 그 성령이 오시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요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두 가지입니다. 가르치고 생각나게 한다는 것입니다. 뭘 가르치는가. 진리를 가르칩니다. 말씀이 깨달아집니다. 예수님께서 귀한 말씀 주셔도 제자들이 못 깨달을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도 듣고도 모를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옷을 팔아 검을 사라" 했더니 "여기 검이 있나이다" 이게 우리의 모습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성령이 오시면 '아 이것이 그런 뜻이었구나' 늘 들은 말씀이 더 깊이 더 새롭게 다가옵니다. 또 생각나게 하는 것은 주님의 사랑입니다. '그때 그렇게 하신 것이 사랑이었구나' '그런 마음으로 하신 것이었구나' 모든 것이 사랑으로 다가옵니다. 여러분 이런 은혜가 오늘 새롭게 임하기를 바랍니다. 성령께서 이렇게 우리를 돕는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26절에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돕는다는 것입니다. 이는 중보를 얘기합니다. 성령강림절 이것 하나는 꼭 붙들기를 바랍니다. 우리 신앙은 너무도 연약해서 스스로 지탱할 수도, 앞으로 나아갈 수도 없습니다. 내가 뭘 기도할 지도 모르는데,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할지도 모르는데 뭐가 되겠습니까. 그러나 우리 구원이 그리스도의 보혈로, 그 엄청난 희생으로 말미암았듯이, 우리가 성화의 길을 가는 것도 성령의 절실한 도움을 받아서 가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8장에서 또 성령의 도우심을 말합니다.

8:27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성령은 우리 마음을 살피십니다. 우리 마음을 다 아십니다. 내가 어려움이 있을때 그 사정을 아는 분이 도우면 큰 위로가 되고 힘이 됩니다. 성령은 우리 마음을 다 아시기 때문에 그런 우리를 위해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우리를 대신 간구, 대신 중보해 주시고 대신 변호해 주십니다. 그리고 유명한 말씀이 나옵니다.

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룹니다. 성령의 역사가 이런 것입니다. 우리가 늘 엉뚱한 길로 가지 않습니까. 엉뚱하게 살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렇게 산 것을 가지고도 더 귀한 세계를 이뤄주십니다. 우리가 실패합니다. 실패한 것을 가지고도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십니다. 사람에게 실망할 때도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어려움이 꼭 필요한 어려움일 때가 있습니다. 어려우니까 다들 겸손해지고 하나가 됩니다. 우리안에 너무도 많은 간증들이 있을 것입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입니다. 이걸 누가 한다는 것입니까. 성령이 하십니다.

8: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8: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미리 아시고 미리 정하셨습니다. 우리 연약함을 다 아시고 영광의 미래를 정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정해놓고 우리를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불러가지고 또 뭘 하시는가. 부르신 그들을 의롭다 하시고. 그리고는 영화로운 자리로 우리를 이끄신다는 것입니다. 누가? 성령입니다. 이런 일들을 다 성령이 한다는 것입니다.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완료형입니다. 성령의 능력 안에서 이미 결정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를 우리 마음에 받아들이고 살때 우리 삶은 바뀌어집니다.

지금 [롬8장]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정죄함이 없나니' 로 시작해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까지입니다. 구원받은 자들을 끊임없이 품으시고 돌보시고 기르시고 도우셔서 영광의 자리까지 인도하시는, 성령의 놀라운 능력을 진실로 우리 모두가 믿고 삽시. 의지하여 삽시다. 그래서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름다운 세계 이루어가는 오순절 이후의 우리 모든 삶이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