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하나님의 사랑
교회와 하나님의 사랑

김남준 | 익투스 | 257쪽 | 15,000원

일치

교회는 무엇으로 하나됨을 이루어야 하는가? 세상은 학연과 지연과 혈연 등으로 하나됨을 자랑하고 끈끈한 관계를 유지한다. 그러나 교회는 혈연 공동체도 아니고 서로 공통의 관심사로 모이는 곳도 아니다.

교회라는 특별한 곳은 너와 내가 뜻을 합하여 세우자고 해서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며, 서로의 수준 높은 삶을 위해 생겨나는 곳도 아니다.

교회는 반드시 무엇인가 일치되어야 교회됨을 보여줄 수 있는데, 사람들은 그것을 세상적인 관점으로 이해하고 심지어 교회에 속해 있는 사람들조차 바르게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다.

책에서는 교회가 이루어야 할 분명한 일치를 사랑의 일치와 진리의 일치로 설명한다.

교회는 세상에서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교회는 사회를 개혁하고 세상을 변혁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된 단체도 아니다.

물론 교회를 통해 사회가 새로워지고 잘못된 질서들이 바른 질서로 개선되는 역할을 하고 세상을 행복한 곳으로 바꾸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세상으로부터 칭찬과 존경을 받는다. 그러나 교회가 이것을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결과는 교회의 머리되신 그리스도를 깊이 사랑할 때 나타나는 삶의 열매이다.

그래서 교회는 무엇보다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것에서 일치를 이루어야 한다. 교회는 신자 혼자만의 사랑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한 영혼이 변화되어서 보편적인 그리스도의 몸에 접붙여질 때 그는 이미 그 몸의 지체된 자들과 동일한 사랑으로 연합된다.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생명 다해 사랑하신 것을 기억하고, 그 사랑으로 서로를 섬기며 교회를 세워가고 세상을 위해 희생한다.

그때 교회는 사랑의 일치라는 고귀함을 드러내어 아름다운 조화를 보여준다. 각자의 사랑이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으로 일치가 되어 아름다운 섬김으로 드려진다.

그리고 교회는 진리로 변화되는 것에 일치를 이루어야 한다. 교회는 사랑한다고만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전에 영적인 변화를 경험해야 한다. 성령님의 역사 가운데 진리에 대한 깨달음으로 지정의가 새로워져야 한다.

하나님에 대한 감각을 가진 자만이 존재의 질서와 가치를 그리스도께만 둘 수 있다. 그래야 머리되신 그리스도께 순종하고 몸된 교회를 바르게 세워갈 수 있다.

진리로 깨어지지 못하면 교회를 세울 수 없다. 사랑의 일치가 살을 풍성하게 하는 것이라면 진리의 일치는 교회를 세우는 든든한 뼈대라 할 수 있다.

토투스 크리스투스

필자가 볼 때 이 책의 큰 특징은 ‘토투스 크리스투스’ 교리이다. 이미 이레나시우스와 테르툴리아누스, 그리고 아타나시우스와 아우구스티누스 같은 교부들을 통해 주장되어 온 주제인데, 저자는 이것을 우리 시대에 맞게 해석하여 소개한다.

존 오웬의 교리와 청교도의 어렵고 깊은 주제들을 한국의 정서와 상황에 맞게 소개해준 저자답게, 이 교리에서 있어서도 우리의 이해를 도와준다.

그리고 필자는 이 교리를 보며 오늘날 한국교회가 가지고 있는 약점과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을 보았고, 그것을 위한 신학적인 근거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저자가 한국교회가 가지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 교리를 제시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필자가 추측해볼 때 저자는 이 교리야말로 요즘 편협하고 독단적이고 배타적인 기독교를 바르게 치료할 수 있는 교리라고 생각한 것 같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은 기독교가 혐오적이고 배타적으로 드러나는 이유를 복음에 대한 편협한 이해와 좁은 신학과 하나님 나라에 대한 육적인 이해 등으로 설명하지만, 저자는 교회론으로 이것을 해소하려 한다는 것이 큰 특징이다.

이 교리는 눈에 보이는 교회의 모든 지체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우리도 알다시피 교회 안에는 이미 중생과 회심을 통해 그리스도께 영원히 접붙여진 하나님의 백성들이 있다.

그러나 교회 안에는 신실한 그리스도인보다, 믿음의 고백을 해도 여전히 하나님의 백성과는 상관없는 자들이 더 많은 것 같다. 그래서 교회에는 신자와 비신자가 공존하고 심지어 그리스도를 반대하는 자들도 속해 있다.

그러나 이 교리는 그럼에도 교회에 속해 있는 모든 사람을 종말에는 구분이 되겠지만 그전까지는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동일하게 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교리는 철저히 성경을 따르고 있는데, 알곡과 가라지의 비유와 그물의 비유에서 적용된다. 지상교회는 여러 물고기가 낚이는 그물과 같고 알곡과 가라지가 함께 자라는 밭과 같다는 것이다.

게다가 노아의 방주를 보면 부정한 짐승과 정한 짐승이 함께 타고 있는 것을 볼 때, 교회는 이미 불신자와 신자가 혼합되어 있다는 것이 예표된 것이다.

그래서 교회는 교회 안에 들어온 사람들 중에 보편 교회와 함께 들어온 자들도 있지만, 대부분 보이는 교회는 들어왔으나 보이지 않는 교회에는 들어오지 못하였으니, 심지어 배교자가 있더라도 주님과 한몸을 이룬 것으로 간주하고 사랑해야 한다.

예수님께서도 울타리 안에 들어오지 않은 양을 걱정하고 사랑하셨고, 가룟 유다에게도 자신의 살과 피를 주시기까지 사랑하셨다. 이런 주님의 삶은 우리가 따라야 할 사랑의 삶이 어떤 것인지 분명히 보여준다.

지역 교회에 속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까지 동일한 마음으로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실로 이 주님의 사랑을 깨달아 실천할 때 기독교의 참 모습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고 이 교리는 그것을 위한 충분한 근거가 된다.

개혁주의설교연구원
▲김남준 목사. ⓒ크리스천투데이 DB
교회는 재창조의 완성을 위한 씨앗

교회의 시작과 기원은 어디인가? 어떤 사람은 오순절날 하나님의 성령이 마가의 다락방에 임했을 때를 말한다.

물론 이 시간이 신약의 교회가 제도적으로 탄생하는 순간은 맞다. 그러나 교회의 기원은 궁극적으로 영원 전에 삼위하나님의 협약으로 이루어진 것이고, 그것의 본질은 삼위하나님의 사랑의 교통이다.

삼위의 사랑의 교제와 교통이 교회의 모상이 된다. 교회는 삼위의 사랑의 분여이고 그 사랑을 실천하는 공동체이다.

하나님께서 처음 창조하셨을 때 이 사회는 삼위의 사랑이 실현되는 사랑의 사회를 계획하셨다. 그러나 아담의 죄로 인해 이 질서는 깨어지고 사랑은 조각나서 모든 관계는 파괴되었고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구속이 필요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인류의 재창조를 위해 인간을 구원하셨고 장차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 하나님의 나라를 실현하고 원래의 목적대로 돌아가고자 하셨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구속을 통해 교회를 세우시고 원래의 목적을 수행해 가신다. 구속의 목적은 인류가 처음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창조의 목적으로 돌아가는 것이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교회는 처음 창조를 넘어 재창조를 향한 하나님의 씨앗이고 처음 계획한 사랑의 사회를 실현해 가는 것이다.

교회는 종말에 이르기까지 하나님 나라를 보여주는 이상적인 공동체가 되어야 하고 사랑의 사회를 이루어가는 모델이 되어야한다.

결론

교회의 아름다움은 건물의 크기와 화려함에 있지 않다. 교회의 아름다움은 교회가 하나님과 맺고 있는 관계에 달려 있다. 머리 되신 그리스도께 순종함으로 그 분께서 이 땅에서 계셨더라면 이루셨을 일을 교회는 수행해야 하고 그것은 사랑의 열매로 나타난다.

그 사랑은 차별하지 않고 시기하지 않으며 창조의 목적을 향해 나아가는 주님이 가르쳐주신 사랑이다. 이 사랑으로 교회는 성장하고 확장되며 하나님 나라를 보여주는 이정표이다.

교회의 확장은 건물이 커지고 사람이 많아지는 것이 아니다. 교회의 확장은 사랑의 확장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시작된 하나님 나라와 다시 오실 나라 사이에서 주님이 어떻게 사랑하고 섬겼는지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 분은 차별 없이 모든 존재를 인격적으로 대해주셨다. 오늘날 우리가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회복한다면 교회의 존재는 더욱 빛나고 하나님께는 크게 영광이 되지 않을까….

방영민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위원, 서현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