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과 성경
▲ⓒ크리스천투데이 DB
오래된 이야기입니다. 강도사 고시를 준비할 때, 논문 주제가 발표되었습니다. 그 주제가 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지만, 유전자 복제에 대한 주제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래서 논문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고, 여러 가지 책들을 읽어보면서 과학의 발달이 단순히 우리 인간을 윤택하게 하는 것만은 아님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과학의 발달은 인간을 불안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인공지능의 능력은 인간을 점점 초라하게 만들고, 인공지능을 한 번 이겨보겠다고 하는 인간의 처절한 몸부림도 우리는 경험하게 됩니다.

사람이 만든 기계가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입니까! 인간이 생각할 수 없는 가능성을 더 넓게 입력을 시켜 놓으니 인공지능은, 과학은 인간을 이기게 된 것입니다.

어쩌면 인간의 정의도 과학의 발달로 인해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인간 복제도 가능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유전자 조작이 현실로 드러난다면, 어떻게 될까요?

한 남자와 한 여자에 의해 태어난다는 전통적 인간에 대한 탄생이, 이제는 타인에 의해 복제된 인간도 이 땅에 존재할 수 있게 될 날이 올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과학의 발달은 어디까지 가게 될까요? 우리가 SF 영화와 같은 곳에서 과거에 놀랍게 보았던 그 현실이 오늘날 동일하게 일어나는 것처럼,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고, 연구한 것들이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도 일어나게 된다고 가정을 해 보면, 과학의 발달은 현재 우리가 정의하는 것들을 새롭게 정의할 수도 있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이런 과학의 발달이 인간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게 될까요?

과학이 우리가 살아감에 있어 편리함과 윤택함을 제공해 주는 것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제가 과학의 발달을 부정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과학의 발달이 인간에게 반드시 이로운 결과를 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매우 교만한 존재입니다. 또한 지혜로운 것 같지만, 우매한 존재이기도 합니다. 세상을 이렇게 발전시키고 편리하게 만들어 놓았음에도, 어리석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네, 그렇습니다. 내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분명한 방향성도 모른 채 속도만 내는 것보다 더 어리석은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서로 빨리 가려고 가속 페달만 더 강하게 밟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성경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하나님이 없다고 말한다고요. 과학의 발달을 통해 우리가 알지 못했던 것을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우주의 먼 곳까지 초대형 망원경을 통해 볼 수 있습니다. 우주에 있는 행성에 사람을 보내기도, 우주선을 보내기도 합니다.

그러나 토정비결을 보고 운세에 집착을 하는 미신적인 삶을 살아가기도 합니다. 과학의 발달을 통해 관계는 점점 깨어지고, 우리의 관계는 스마트폰으로만 집중하게 됩니다.

친구와 멀어지는 것보다, 내 손에 스마트폰이 없어지는 것을 더욱 두려워하는 관계의 멀어짐 속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중독의 그림자는 우리에게 점점 밀려옵니다.

하나님과 멀어짐보다 스마트폰과 멀어짐을 더 신경쓰고, 전화 한 통이 안 오면 불안해하며, 카카오톡 메시지가 오지 않으면 초조해지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결국 인간이 만들고 있는 유토피아는 인간을 유토피아라는 감옥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서상진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위원, 미래로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