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는 故 한경직 목사님의 생전 설교 전문을, 한경직목사기념사업회 제공으로 매주 한 차례, [그 때 그 설교] 코너에서 소개합니다. 한 목사님은 얼마 전 한 설문조사에서 '가장 존경하는 목회자' 1위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고인의 생전 설교가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오늘날 한국교회에 생생히 울려퍼지길 바랍니다.

한경직
▲故 한경직 목사 ⓒ크리스천투데이 DB
전도서 12:1~14

"너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에 너희 창조자를 기억하라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신은 그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

여기에서 '기억하라'고 하는 말씀이 두 번 있습니다. 성경에는 '잊어버리라'고 하는 말씀도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빌립보 교인들에게 편지할 때 "나는 뒤에 있는 것을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해서 달음질하노라."고 말씀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보면 '기억하라'고 하는 말씀도 종종 있습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그 날을 거룩히 지키라."고 하였고, "주 예수의 말씀을 기억하라.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되다."고 말씀하셨고, 여기에도 '기억하라'고 하는 말씀이 두 번 나와 있습니다.

사실은 우리가 신앙생활을 바로 하려면 잊어버릴 것은 잊어버리고 기억할 것은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 이 말씀, "기억하라." 이 말씀을 중심해서 성경의 말씀을 우리가 생각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 하나하나에게 친히 말씀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서 전도자는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너의 청년의 때에 해가 다 가서 약해지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 이렇게 부탁합니다. 몸은 흙으로 돌아가고 신이 하나님께로 가기 전에 창조자를 기억하라고 부탁합니다. 이것은 어느 때에나 유익한 권면이지만 특별히 현대인에게 있어서 적절한 권면인 줄 압니다.

20세기는 과학시대라 해서 과학이 발전됨에 따라서 우주시대를 운운하며 어떤 이들은 마음이 교만하여져서 하나님을 배반하고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사람들이 적지 않게 있는 것이 사실이올시다. 신학시대는 지나갔고 철학시대도 지나갔고 이제는 과학시대가 되었는데 무슨 종교가 필요하겠는가? 이런 투의 생각을 하는 현대인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마치 어떤 대학교 1~2학년생 같아서 모든 것 다 아는 줄 생각합니다. 좀더 배워야, 좀더 알게 됩니다.

전에 어떤 분이 영국의 유명한 과학자 아이작 뉴턴(Isaac Newton)에게 가서 그의 지식이 많은 것에 대해 축하를 드렸다고 합니다. 그때 뉴턴이 얼른 대답하는 말이 "그런 말 하지 마세요. 내가 안다고 하는 지식이 마치 저 바닷가에서 조약돌 가지고 노는 아이가 바다의 깊은 속에 있는 지식을 아는 것 이상, 그 이상 제가 더 알지 못합니다." 이렇게 대답한 것입니다. 사실은 우리가 과학을 통해서 우주의 비밀을 탐사할수록 우주의 비밀은 그만큼 더 커집니다. 오히려 우주의 신비를 과학의 무기를 통해서 탐사할수록 창조자를 기억하게 됩니다.

여기에 특별히 청년들에게 창조자를 기억하라고 하였습니다. 왜? 청년 때에는 마음도 푸르러서 교만한 마음이 일어나기 쉽습니다. 청년 때에는 마음의 전환이 없어서 이리저리 풍조에 끌려가기 쉽습니다. 유혹이 많습니다. 청년시대는 일생의 갈래 길로써, 일생의 분수령으로써 길을 바로잡아야 일생토록 옳은 길을 갈 수 있습니다. 잘못 잡으면 일생을 그르칩니다. 그러므로 젊었을 때에 창조자를 기억해야 합니다. 젊었을 때에 길을 바로잡아야 일생토록 옳은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생이 70~80년이라고 하지만 실상 일할 시간은 30~40년 간에 불과합니다.

젊은 때에 창조자를 기억하고 옳은 길을 찾고 내 사명을 바로 깨달아서 교회를 위해서 사회를 위해서 국가를 위해서 참으로 공헌할 수 있는 한국의 청년 남녀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신명기 6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런 의미심장한 말씀도 하신 적이 있습니다. "너로 배불리 먹게 할 때에 나를 잊지 말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배가 부를 때에 하나님을 잊지 말라고 경고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이런 경고를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실 가나안 복지에 들어가고 젖과 꿀이 흐르는 그곳에 가서 평안히 살게 될 때에 하나님을 기억하지 아니한 사람이 많았습니다. 우상을 섬기게 되었습니다. 사신(邪神) 우상을 따라가게 되었습니다. 향락만 따라가게 되었습니다. 가난하고 궁핍할 때에 하나님을 가까이 하던 이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서 물질이 넉넉해질 때, 배가 부를 때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사람 오늘날은 없습니까?

20년 전 우리가 다 피난민으로 보따리 싸가지고 이남으로 내려올 때 다 궁핍하고 집 한 칸 없었습니다. 그때에는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그때에는 주를 봉사했지만, 10년, 20년이 지나가는 동안에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서 배가 불러 가는 이가 더러 있습니다. 많아졌습니다. 그런데 전에와 같이 하나님을 가까이 하며 하나님을 봉사합니까? 한국의 경제가 증진되고 발전되어 나가는 것을 자타가 다 축복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미리 경계하여야 될 것은 우리 민족이 배가 불러 갈 때에 하나님을 저버리지 아니하여야 됩니다. 하나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반면에 우리가 역경을 당할 때에 하나님을 또한 기억해야 합니다.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예루살렘 성을 다시 건축할 때에 산발랏과 도비야 같은 사람들을 중심해서 방해 공작이 일어났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이 방해를 합니다. 이때에 느헤미야가 여러 지도자들을 앞에 모아놓고 그들에게 한 말씀이 느헤미야 4장 14절에 있습니다. "너희는 저희를 두려워 말고 지극히 크시고 두려우신 주를 기억하고 너희 형제와 자녀와 아내와 집을 위하여 싸우라" 원수가 많을수록 우리는 하나님을 기억하고 능력이 많으신 하나님을 의지하고 담대히 우리의 자녀를 위해서 싸울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 한국의 땅은 언제나 원수로 둘러쌈을 당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담대히 싸울 줄을 알아야 될 것입니다. 반면에 환난 때에도 우리가 하나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요나 2장에 보면 거기에 요나의 기도가 있습니다. 여러분, 아신 바같이 요나는 선지자 이름을 가졌지만 하나님께 범죄를 했습니다. 명령을 거슬러서 니느웨로 가지 아니하고 다시스로 딴 방향으로 갑니다. 그런 길이 평안할 리가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이가 그릇된 길로 갈 때는 반드시 맞는 법이 있습니다. 풍랑이 일어났습니다. 바다에 던짐을 당했습니다. 큰 물고기 뱃속으로 들어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요나가 그런 자리에서 하나님을 기억했습니다. 죄를 자복했습니다. "내가 범죄하였습니다." 죄를 자복했습니다. 용서해 주시길 기도했습니다. 그 기도가 응답이 되어서 요나가 재생의 길을 얻은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에 한 분이라도 분명한 하나님의 명령을 거슬러서 오늘날 요나가 앉은 자리와 같은 환난의 자리에 앉은 이가 있습니까? 그 자리에서 하나님을 기억하십시다. 죄를 회개하십시다.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구하십시다. 그러면 다시 살 길이 반드시 열립니다. 전화위복이 될 것이올시다.

전에 히스기야 왕은 중병이 걸렸을 때 하나님을 기억하고 간절히 기도하는 가운데에 그 병이 나았습니다. 여러분, 중병으로 고생하는 이가 있습니까? 병석에서 하나님을 기억하고 기도하십시다. 하나님의 섭리면 반드시 나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기억하세요. 기도하세요.

그리고 유혹이 있을 때에 특별히 우리가 하나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요셉이 그렇게 옳게 생활을 하려고 애썼지만 뜻밖의 유혹이 그 앞에 당착되었습니다. 자기가 섬기는 보디발의 아내로부터 무서운 정욕의 유혹이 들어왔습니다. 그때 요셉이 그 시험을 어떻게 이겼습니까? 그 자리에서 하나님을 기억했습니다. "내가 어떻게 하나님 앞에서 이 악한 일을 할 수가 있느냐?" 유혹에 당착된 이가 있습니까? 유혹을 만난 이가 있습니까? 그 자리에서 하나님을 기억하세요. 하나님 앞에서 내가 이 일을 할 수가 있겠나? 하나님을 먼저 기억하십시다.

그리고 둘째로 제가 다른 기억에 대한 말씀을 또 계속하겠습니다. 시편 137편에서 몇 절을 읽을 때 들어보세요.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그 중의 버드나무에 우리가 우리의 수금을 걸었나니 이는 우리를 사로잡은 자가 거기서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며 우리를 황폐케 한 자가 기쁨을 청하고 자기들을 위하여 시온 노래 중 하나를 노래하라 함이로다 우리가 이방에 있어서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꼬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을진대 내 오른손이 그 재주를 잊을찌로다 내가 예루살렘을 기억지 아니하거나 내가 너를 나의 제일 즐거워하는 것보다 지나치게 아니할진대 내 혀가 내 입 천장에 붙을찌어다"

누가 이 시를 썼는지 모릅니다. 분명히 아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갔을 때 바벨론 하수가에 앉아서 거문고를 버드나무 가지에 걸어 놓고 조국을 생각하면서 시온을 생각하면서 이 노래를 지었습니다. 내가 어떻게 시온을 잊을 수가 있겠는가?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 시온을 기억하는 마음, 조국을 그리워하는 마음, 이 마음이 결국은 이 백성이 나라를 잃어버린 지 수천 년이 되었지만, 20세기에 와서 다시 그 나라를 건설할 수 있게 만든 거 아닙니까?

예루살렘에 가보면, 예루살렘 성전을 지었던 데 아래에 성벽이 있습니다. 그 성벽을 무슨 이름으로 부르는고 하니 영어로 말하면 '웨일링 월(wailing wall)'이라고 합니다. 한국말로 번역하면 아마 '통곡의 성벽'이란 말일 것입니다. 왜 그런 이름을 가지게 되었는가 하니, 수천 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이 내려오면서 그 성벽에 앉아서, 거기에 붙어 서서 성벽에 손을 대고 조국을 생각하고 통곡을 했습니다. 그렇게 수천 년이 흘렀습니다. 결국 그 마음이 이스라엘로 하여금 20세기에 와서 새로 독립국을 만들게 했어요. 그 마음이 이번 전쟁에도 다 전력(戰力)으로 화(化)해서 그저 며칠 동안에 원수를 쳐부수고 이번에는 구예루살렘까지 점령해서 그 통곡하던 성벽 앞에 이스라엘 군사령관이 웃으면서 서서 사진을 찍었어요. 그리고 한 가지 우스운 건 <타임> 잡지에 보니까 만화를 그리는 사람이 이 '통곡의 성벽' 앞에서 통곡하는 사람들이 둘이 있었는데 가만 보니까 공산당들이에요. 통곡하는 사람들이 바뀌었어요, 이번 전쟁에서. 시온을 기억했습니다.

이번에 하와이에 가서 우리 교포를 방문하는 가운데 특별히 그들의 공헌에 대해서 좀더 깨닫고, 저는 개인적으로 그들을 존경하고 경의를 표하게 됐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처음에 노동자로 갔는데 그 가운데에 좋은 지도자들이 났습니다. 다 전도를 해서 예수를 믿고 우리 교포가 있는 곳마다 교회가 섰어요. 또 교회와 같이 학교가 섰어요. 기독교 학교입니다. 특별히 이승만 박사가 세웠다고 합니다. 그 후에 그 기금이 한국에 나와서 인하공과대학 기금이 됐어요. 그들이 그렇게 땀흘려서 살면서 그런 가운데 돈을 모아서 계속해서 독립 운동을 했습니다. 내가 분명히 들었어요. 매달 3,000불씩 꼭 모아서 2,000불은 상해 임시정부에 보내고 1,000불은 이승만 박사가 지도하는 구미위원부, 워싱턴에 보냈어요.

한국에 있는 사람들이 아무 일도 할 수 없을 때 그들이 외국에서 이렇게 한국의 민족과 독립을 위해서 꾸준히 노력했어요. 이번 그 1세들도 몇 분 만났습니다. 아직도 살아 계신 이가 얼마 계세요. 그 가운데 나이 많은 의사 한 분이 점심을 먹으면서 제게 이런 얘기를 합디다. "나는 15살 나서 이 하와이에 왔는데, 사실 한국이 나를 위해서 해준 건 나를 낳아준 것밖에 별로 한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상한 건 내가 지금 80이 가까이 왔는데, 언제나 한국을 잊을 수가 없어요."

여러분, 외국에 나가서 우리나라를 돌아볼수록 나라를 바로 세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다고 하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외국에 나가 있는 교포들이 한국에서 뭐가 좀 잘 된다고 하면 얼마나 기뻐하는지 알 수가 없어요. 그러나 한국에 뭐 잘못된다고 하면 얼마나 슬퍼하는지 몰라요. 사실 우리 한국의 모습이 외국에 있는 교포들과 우리 우방들에게 퍽 나아졌습니다. 그동안 몇 해 동안에 모든 게 잘 되어 간다고 다 기뻐합니다.

또 한 가지만 더, 오늘을 기억합시다. 오늘이 무슨 날입니까? 오늘이 바로 6.25 날이올시다. 17년 전 6.25가 바로 주일이올시다. 17년 만에 똑같은 날을 우리가 당했어요. 주일이에요. 6.25예요. 그때에 여기 계신 분은 기억할 것입니다. 아침 예배는 무사히 봤습니다. 그러나 저녁 예배는 간단히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해지기 전에. 그리고 다 흩어진 쓰라린 그 경험, 다 기억할 줄 압니다.

6.25를 기억하십시다. 동작동 국립묘지에 나가서 자유를 위해서 희생한 많은 영령들을 우리가 다 기억해야 합니다. 그밖에도 많은 억울한 이 죽음을 당한 우리 순국 동포들을 우리가 기억해야 될 것입니다. 납치된 교역자들과 외국 동포도 기억해야 됩니다. 많은 고아와 미망인들도 기억해야 될 것입니다.

이번 하와이에 가서 펀치보울 이라고 하는 데에 있는 미국 국립묘지에 가서 화환을 놓고 왔습니다. 거기는 하와이 출신으로 2차대전과 한국전쟁에서 순직한 군인의 묘가 있고, 2차대전과 한국전쟁에서 실종된 군인들의 이름을 새긴 많은 비석들이 여럿 있어요. 그런데 한국 전선에 나와서 희생된 이의 이름이 수천 명이 있습니다. 어디서 죽었는지도 모른 채 한국전쟁에 나와서 이름만 남은 실종된 군인이 수천 명이 있어요. 자유의 대가는 큽니다. 우리뿐 아니라 많은 우방 청년들이 피를 흘렸어요.

이런 모든 희생을 보람 있게 하는 일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정치인이나 경제인이나 교육가나 공무원이나 국민이나 누구나 자기 자리에서 내 책임을 바로해서 이들의 희생이 헛된 일에 돌아가지 않게 해야 되겠습니다. 이 땅에 자유와 평화가 영원히 꽃 피고 이북도 해방이 돼야 할 겁니다. 우리 교회 안에 특별히 6.25때 순교를 당한 김응락 장로나 김창화 선생 같은 이도 우리가 기억해야 합니다.

이번 하와이를 구경하는 가운데 미처 전에 구경 못했던 한 가지 구경한 게 있는데, 그건 뭔고 하니 화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유황과 연기가 펄펄 나는 분화구 위에 서 봤어요. 갈 땐 무심코 갔지만 서고 보니 "아이고, 내가 잘못 섰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이건 산 화산이에요. 언제 폭발될지 몰라요. 그 가운데 어떤 구멍에서 바로 이태 전에 용암이 폭발됐어요. 언제 폭발될지 몰라요. 그런 곳을 다니면서 '위험하다' 하는 생각과 함께 그다음에 들어오는 생각은 '사실 이 분화구 위만 위험한가? 온 세상이 다 분화구 위에 있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사실 그렇지 않아요?

우리가 사는 20세기, 우리가 사는 이 세계는 말하자면 분화구 위에서 사는 거 아닙니까? 사실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는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창조자를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시온을 기억해서 나라 일을 바로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6.25를 기억해서 자유를 수호해야 합니다. 기억하십시다. 기도하십시다.

아버지시여! 6.25, 이 주님의 날을 당해서 우리 하나하나가 창조주이신 아버지를 새롭게 기억하고 새로운 헌신과 결심을 하는 이 날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시온을 기억하며 6.25를 기억해서 우리가 어디 있든지 나의 맡은 책임을 바로 감당할 수 있는 내 자신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 받들어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