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공부 하고 돈 벌다 보니 어느 순간 허무한 생각이
하나님께서 무엇 하다 왔냐 물으시면 대답 못할 것 같아
여러 사명이 있겠지만 목회가 하나님 주신 가장 좋은 길

다양한 교회 옮겨다니며 사역,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한 것

한 곳에선 안정되지만 나태해질 위험, 옮기면 활력 얻어
10년간 숙원이던 성전 완공, 하나님 강권적 인도로 떠나

나의 갈길 다 가도록 김정웅
▲김정웅 목사 부부. ⓒ북뉴스 제공

<나의 갈길 다 가도록: 계양산 소년의 이야기> 저자인 김정웅 목사와 크리스찬북뉴스 대표 채천석 목사 간의 대담을 게재합니다. 감리회 중부연회 감리사를 역임한 김정웅 목사는 올해 80세의 은퇴 목회자로, 40여년간 여러 곳에서 목회하다 2009년 은퇴 후 작은교회들을 돕고 있습니다. -편집자 주

-자서전을 집필하신 동기는 무엇인가요.

“쓸 게 별로 없을 것 같아 처음엔 망설였습니다(웃음). 하지만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혜와 사람들로부터 받은 사랑을 되새기고 열거하다 보니 제 자신도 놀라서, 자서전을 완성할 수 있는 힘을 얻었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가 너무 컸고, 특히 목회를 통해 말로 다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기에, 글을 쓰면서 많이 울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이런 은혜와 사랑을 고백하고 싶었고, 후손들에 대한 교육적 효과를 기대하여 자서전을 쓰게 되었습니다.”

-목사님은 계양산 근처에서 자라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책의 부제를 ‘계양산 소년의 이야기’로 명명하신 이유가 있을까요.

“부제를 ‘계양산 소년의 이야기’로 정하고 나서, 저 자신도 감탄했습니다. 계양산은 옛날부터 떠내려 온 산으로 전해집니다. 정상에 올라갈수록 흙 한 점이 없습니다. 산에는 굴껍질과 조개껍질, 오래된 고목만 있었지만, 지금은 수많은 여객기들이 드나드는 국제공항의 중요한 좌표로 쓰임 받는 산이 되었습니다.

부친께서는 꿈 하나 갖고 맨손으로 이 계양산 아래에 자리를 잡으셨고, 개구장이 소년이었던 제가 이곳을 배경으로 자라나서 하나님께 헌신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부제를 정한 것입니다.”

-목사님은 농사일을 하다 목회자의 길을 가신 것으로 압니다. 그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신학을 공부할 때도, 처음부터 목회의 길을 가려고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신학을 하더라도 돈을 많이 벌어서 훌륭한 장로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신학을 하고 나서 돈을 벌다 보니, 어느 순간 허무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돈이나 벌다 하나님 앞에 서게 되면, 하나님께서 무엇 하다 왔느냐고 물으실 때 이렇다 할 대답을 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혜와 사명을 고민하다, 목회로 최종 결론이 나게 되었습니다.

사명을 다하는 일은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목회의 길이 가장 좋은 하나님 주신 사명의 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돌아보면 너무 늦지 않은 시점에 목회자의 길로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40년 가까운 목회를 한 뒤에 은퇴할 수 있었습니다.”

-목사님은 한 교회에 정주하지 않으시고, 많은 교회에서 담임목회를 하셨습니다. 연유를 듣고 싶고, 한 교회에서 평생 담임 목회를 하는 것과 여러 교회에서 하는 것의 장단점을 설명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많은 교회에서 담임을 맡은 것은, 제 생각보다 보이지 않는 어떤 힘에 의해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 성령의 강권적 역사라 할 수 있겠지요. 제 의도와는 전혀 다른 파송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목회를 장기 목회와 단기 목회로 나눌 수 있는데, 장기 목회는 안정된 목회라는 장점이 있으나 나태해질 위험이 있습니다. 반면 단기 목회는 신선하고 새로운 목회로 활력을 일으킬 수 있지만, 교회나 목회자에게 희생과 모험이 요구되는 문제가 있습니다.”

-영주교회에서 건축도 하셨습니다. 보통 새 성전을 건축하면 그 교회에서 평생을 몸담는 경우가 많은데, 다른 교회로 가셨습니다.

“저도 사람인데 어찌 머물고 싶은 유혹이 없었겠습니까? 하지만 성령께서 강권적으로 머물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사실 영주교회에서 성전건축을 하고 나서, 다른 교회로 이동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둘로 나뉘어진 교회가 하나로 화합됐고, 10년 넘도록 숙원사업인 건축을 하지 못하다 목회자들이 떠난 교회였으니까요.

이런 교회에 부임해 은혜롭게 건축을 마쳤으니 사실 교회가 부흥할 일만 남았는데, 하나님의 강권적인 인도로 그 교회를 떠나게 됐습니다.”

나의 갈길 다 가도록 김정웅
▲가족들과 함께한 김정웅 목사. ⓒ북뉴스 제공

-책을 읽어보니, 훌륭한 사모님을 만나신 것 같습니다. 또한 사모님의 부모님이나 조부모님이 참으로 훌륭한 분이셨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또 오늘날 젊은이들이 가져야 할 바람직한 결혼관에 대해 말씀해 주시지요.

“아내의 부모님이나 조부모님은 보통 분들이 아니셨습니다. 평생 신앙으로 살면서 조부께서는 일제 때 독립운동을 하다 옥고를 치르셨고, 후유증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아내의 부친께서는 일제 때 면서기로 일할 것을 요청받았으나 협조를 하지 않아 일제에 의해 평안도로 강제 이주를 당하셨습니다. 해방 후에는 북한에서 청년들을 규합해 신탁통치 반대운동을 하다 옥고를 치르시던 중 행방불명이 되셨습니다.

저는 혈통을 중요시했습니다. 책에 언급했듯 사과나무에서 사과나무가 열린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대추나무에 거름을 주고 아무리 정성스럽게 관리를 해도, 사과 열매를 맺지는 못합니다.

저는 그런 의미에서 믿음의 혈통을 강조했습니다. 아울러 아내가 ‘두뇌의 혈통’을 가진 집안의 사람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 아내는 이 두 가지 조건을 갖췄다고 믿습니다. 아내의 도움으로 40여년이란 목회 인생을 큰 과오 없이 마칠 수 있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아내에게 감사하고 싶습니다.

바람직한 결혼관을 말씀하셨는데, 외모와 능력도 좋지만 젊은이들이 신앙을 가장 우선했으면 좋겠습니다. 이 진리는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믿지 않으시는 분들과도 서슴 없이 결혼하는 분들이 있는데, 결혼 후 배우자가 예수님을 믿기가 쉽지 않습니다. 신앙 없는 배우자와의 결혼이 평생 멍에가 되어 가정을 혼란스럽게 할 수 있고, 잘못 하다가는 결혼하지 않는 것만 못한 결과를 빚을 수 있습니다. 이 점 명심하면 좋겠습니다.”

-필리핀 선교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갖고 계시고, 장모님 기념교회인 GMA 교회를 필리핀 마닐라 지역에 세우셨습니다. 설립 과정에서 어려움은 없으셨는지요.

“우리 가정은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받았기에, 그 은혜를 조금이나마 보답했으면 하는 소원을 갖고 고민한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마음뿐이지 실행에 옮길 수 없었습니다. 재능이나 물질이 있어야 하는데, 준비된 것이 별로 없었으니 고민할 수밖에 없었지요.

그리고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일이 선교인데, 아프리카나 북방은 너무 멀고 동남아 지역은 잘 모르는데다 선교비가 많이 들어서 망설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감리사였을 때 필리핀 코람필 신학교 채플을 건축한 인연으로 백현순 선교사를 통해 GMA 교회 건축을 소개받았습니다. 형편이 어려웠지만, 동서인 지광운 목사가 협력하여 GMA 교회를 장모님 기념 교회로 건축하게 되었습니다.

고생과 수고를 다하신 어머님의 고귀한 이름을 남기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한 일인데, 코람필 신학교 이사장 명의의 대지에 건축하고, 우리 부부와 동서 부부가 봉헌식에 참석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나의 갈길 다 가도록 김정웅
▲김정웅 목사가 필리핀 성전을 봉헌한 뒤 현지 성도들과 함께한 모습. ⓒ북뉴스 제공

-목사님은 자서전에서 많은 동역자들과 기억에 남는 분들을 회고하셨습니다. 그 중 김점용 목사님의 스토리가 잊히지 않습니다.

“김점용 목사님은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고 교회와 마을을 섬기는 일에 앞장섰던 하나님의 일꾼이십니다. 동네 이장을 비롯해 마을 유지들이 목사님의 봉사에 감명을 받고 교회 일에 적극 협력할 정도로 인정을 받으셨습니다.

어느 여름날 저녁, 전봇대 합선으로 전기가 나가 마을 전체가 암흑으로 어두워졌다고 합니다. 집집마다 냉장고 안에 있던 음식이 상하고 에어컨 작동도 멈추는 사태가 벌어져, 참다 못한 목사님이 4만V 고압선을 수리하다 감전돼 전기줄에 매달리셨습니다.

이 일을 어쩌면 좋으냐고 동네 아낙네들이 발을 동동 구르며 부르짖던 중에, 남자들이 전선에 매달린 목사님을 장대로 구하려다 장대 잡은 사람까지 감전돼 땅에 나뒹굴게 되었습니다.

1970년대라 전화도 잘 안 돼, 한 청년이 자전거를 타고 한전에 가서 전기를 내렸으나, 목사님은 온몸에 화상과 상처로 정신을 잃었습니다. 결국 담당의사로부터 살 확률이 1%에 해당한다는 절망적인 선언을 받았습니다.

목사님이 살기만을 바라며 성도들이 통곡하면서 밤새워 간절히 기도했는데, 5일째 새벽 목사님이 ‘물, 물’ 하면서 의식을 되찾았습니다. 이렇게 김 목사님과 사모님은 마을 사람들의 지극한 정성으로 건강이 회복되셨지만, 처음 전선에 붙은 오른팔이 워낙 심하게 화상을 입어 절단하고 의수를 했고, 다른 불편한 부분도 생겼습니다.

하지만 목사님은 이에 굴하지 않고 열심히 목회활동을 하다 현재는 은퇴하시고 농촌에서 양봉일을 하면서 말년을 지내고 있습니다. 김 목사님 이야기는 한 권의 책으로 내도 될 만큼 파란만장합니다.”

-여러 교회를 옮겨다녀서 자녀 교육에 어려움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자녀들이 공부를 무척 잘 했고, 첫째는 서울대를 두 번이나 합격했습니다. 자녀 교육 비결을 듣고 싶습니다.

“교육은 일시적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더욱이 사람의 노력으로만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로 되는 것입니다. 나라 없이 쫓겨 다니면서도 유태인들이 20% 넘는 노벨상 수상자가 된 것이 이를 증명합니다.

우리 아이들이 자주 전학해야 하는 어려운 환경에서도 공부를 잘 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아이들의 성격이나 노력, 신앙까지 모두 참으로 하나님 은혜로 된 것입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주일에는 전적으로 교회 출석과 봉사만 하게 했습니다. 다음날 시험이 있더라도 이 규칙을 지키게 했습니다. 아이들이 좋은 성적으로 대학에 들어간 것은 부모의 신앙 중심의 뜻에 순종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진부할 수 있겠지만, 교육 비결은 언제든지 신앙을 가장 우선에 두는 것입니다.”

나의 갈길 다 가도록 김정웅
▲<나의 갈길 다 가도록(김정웅 | 크리스찬북뉴스 | 288쪽 | 15,000원)>.

-목사님이 이 책의 말미에 자녀들에 대한 유언도 남겨주셨습니다. 그 중 자녀들에 대한 부탁이 심금을 울립니다.

“옳습니다. 유언은 부모가 소천한 후 자녀들에게 공개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하지만 유언을 책에 포함시킨 것은, 자서전을 읽는 분들에게도 교육적 목적이 있을 것 같아서입니다.

어쩌면 자녀들에게 부담이 될 수 있겠으나, 한편으로 그들이 그 일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아들들에게 자서전에서 삭제할 것이 없느냐고 물었을 때, 하나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 내용은 사회적 문제와 연관돼 찬반이 분분할 수 있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 외에는 없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 아이들이 순하고 착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들들에게 자서전에 대한 평을 해보라고 했더니, 잘 만들어져서 만족하고 후손들을 위해 귀한 자료를 얻게 됐다고 좋아하더군요. 감사한 일이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목사님은 올해로 80세이십니다. 이 글을 읽게 될 분들에게도 마지막 당부의 말씀을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모든 일이 내 노력과 힘이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된다는 것입니다. 저는 책에서 ‘나의 갈길 다 가도록’ 예수님이 선한 길로 인도하셨음을 간증했습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가 놀랍습니다. 저를 포함해 이 글을 읽는 모든 성도들이 바울과 같은 고백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딤후 4:7-8)’.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