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들 낙태 합법화했다? 거짓
생명 vs 자유 대립구도 회피 말고
미래지향적, 공익적 입법 논의를

성산생명윤리연구소 포럼
▲성산생명윤리연구소의 2019 상반기 성산 포럼에서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의 의미와 과제’를 주제로 열띤 토론이 이어지고 있다. ⓒ김신의 기자

성산생명윤리연구소(이명진 소장)의 2019 상반기 성산 포럼이 17일 저녁 서울대병원 13층에서 개최됐다. 이날 포럼에선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의 의미와 과제’라는 주제로 김천수 교수(성균관대 로스쿨)가 발표했다.

김천수 교수는 “생명에는 발생과 유지, 소멸 단계가 있다. 논란이 되는 것은 생명의 발생과 소멸의 단계”라며 “그 중에서도 낙태는 생명의 발생 과정에 개입하는 것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생명을 인공적으로 소멸하는 단계로 가는 묘한 행위”라고 했다.

그러면서 “육체적 관점에서 생명의 시작은 유전적 동일성을 착안하면 수정 시점이 생명의 시작이다. 때문에 성인을 죽이는 것이나 수정 단계의 생명을 소멸시키는 행위는 결과적으로 똑같이 살인을 하는 행위”라며 “때문에 기존 형사법과 모자보건법에 대한 논의도 혼란 그 자체였지만 헌법 결정 후에도 혼란이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김천수 교수
▲성균관대 로스쿨 김천수 교수. ⓒ김신의 기자

김 교수는 이번 헌법불합치 판결에 대해 첫 번째로 ‘용어 문제’를 꼽았다. 김 교수는 “형법의 낙태죄 처벌 조항을 모자보건법으로 옮겨 놓은 것이 낙태죄 폐지라고 주장하고, 일정 시기에 낙태를 무조건 허용하고 그 이후 일정 경우에 한해 허용하자면서 이것을 또 낙태죄 폐지라고 주장하는데, 낙태에 관한 규율은 절대금지(illegal with no exceptions), 제한적 허용(restricted to cases), 완전합법화(legal on request)로 나뉘기 때문에 이것을 낙태죄 폐지라고 하는 것은 말이 맞지 않는다”며 “헌재의 결정은 낙태에 대한 형사처벌이 태아의 생명 보호를 위하여 기본적으로 타당하지만, 다만 초기 임신의 낙태는 임부의 자기 결정권의 균형을 위해 비교적 완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그런데 큰 우려사항이 있다. 헌재는 헌법불합치로 내년(2020년) 말을 시한으로 관련 입법을 촉구했다. 만약 이것을 기한 내에 하지 못하면 낙태죄에 관한 형사법과 모자보건법 두 가지 모두 효력을 잃게 된다. 그렇게 되면 대한민국은 낙태 무법천지가 된다”며 “특히 내년이 국회 총선 국면으로 들어가는 것을 감안하면 국회 입법절차가 금년 말에 마무리 되어야 한다. 헌재가 2021년을 기간으로 정했으면 좋았을 텐데, 이것이 만약 의도한 것이라면 무서운 일”이라고 했다.

두 번째로 그는 “국제적 경향에 대한 오해”가 난무하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선진국들이 낙태를 합법화했다는 것은 거짓말”이라며 “엄밀히 말하면 낙태를 합법화한 나라는 ‘캐나다’밖에 없다. 어떤 변호사는 ‘사실상 독일도 낙태 합법화가 됐다’고 거짓말을 한다. 독일어 법조문을 읽어드리고 싶었다. 독일은 허용기준을 어겨 낙태를 한 임부에게 3년 이하의 징역이나 벌금형(독일형법 제218조 제1항)에 처한다. 1년 이하의 징역이나 벌금에 처하는 우리나라(형법 제269조 제1항)보다 사실 엄격한 기준인 것”이라고 했다.

또 '생명이 임신(conception)으로부터 시작한다'는 규정을 두고 있는, 23개 국가가 가입한 ‘미주 인권 협정(American Convention on Human Rights)’, 낙태에 관해 ‘제한적 허용(restricted to cases)’과 ‘처벌 조항’ 또는 ‘낙태 금지 조항’을 두는 영국과 미국, 호주 등의 입법례를 살폈다.

그러면서 “인류의 생명존중 사상은 인간 중심에서 그치지 않고 동물, 나아가 유기체에까지 확대됐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낙태론은 생명존중 사상에 역행하는 모습이 역력하다”며 “사실상 아무리 따져도 통상적 관념으로 ‘생명’과 ‘자유’의 가치는 주체의 위치가 다르다고 해도 역전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낙태 옹호론자들이 만든 것이 ‘국가의 생명보호 의무’ 대 ‘임부의 자유’다. 주체에서 태아를 배제하려는 목적으로 설정됐는데, 국가는 상위 개념의 주체이지 임부와 평면에서 대립하는 주체가 아니다. 매우 모순적인 구도”라고 지적했다.

김천수 교수
▲성균관대 로스쿨 김천수 교수. ⓒ김신의 기자

결국 김 교수는 “헌재가 생명과 자유의 대립구도를 회피하지 말고 현실론에서 이를 극복하는 임신, 출산, 양육의 제도 개선을 했다면 좋았을 것이다. 관련 제도의 미비가 낙태죄 규정의 헌법불합치 결정을 가져왔다”며 “그러나 이제 내년(2020년)까지 적절하게 이행하는 것을 논의하고 마무리 하는 일이 우선이다. 우리 법은 시작과 끝 ‘시기’에 따른 차등을 주지 않으나, 헌재가 이미 형법 개정의 방향을 ‘시기’와 ‘사유’ 두 측면을 제시했으니, 일단은 이 결정에 따른 개정의 방향과 내용을 구체화하는데 지혜를 모아야 한다. 그 후에 개정된 법률을 놓고 다시 소신을 반영한 개정론을 전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또 헌재 결정 직후 발의된 ‘형법 및 모자보건법 각 개정안’(발의자 이정미 등 10인 의원)에 대해서는 “개정 입법 절차를 기회 삼아 헌재의 법정 의견에 반하는 시도를 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 법안은 형사처벌을 받지 않을뿐더러 임신 후기 낙태에 대해 과태료마저 면할 수 있는 해석이 가능하고, 사실상 출산 직전의 낙태까지 모든 유형을 비범죄하하기 위한 낙태죄 완전 폐지론”이라고 했다.

이어 “형법의 조항을 보자보건법으로 이동시켜서 법률 전문이 아닌 ‘일반 행정부처’가 담당하는 것은 법질서 체계에서 아주 위험한 행위”라고 지적하며 “헌법 아래 민법과 형법은 대한민국 법질서의 기둥이다. 때문에 형법으로 일원화 해야 한다. 대부분의 국가가 낙태죄의 처별과 면책을 형법에서 함께 규율한다. 이것이 입법정책의 순리”라고 강조했다.

또 ‘낙태와 인공임신중절수술의 용어적 논란’에 대해서는 “인공임신중절수술은 ‘수술’만을 의미하기에 약물에 의한 낙태를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에 낙태로 통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임신주수에 따른 낙태 규율의 차별화’에 대해서는 “통일적 기준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했다.

‘낙태죄 위법성조각사유(낙태 허용사유)의 정비’에 대해서는 “허용사유의 존부를 누가 판단하고 그 판단의 오류를 누가 감수할 것인지의 문제, 사후 처벌의 가능성을 우려한 의료인 문제를 어떻게 해소할 것인지 논의가 필요하다”며 ‘추상적 규정’, ‘모호한 행위 규제’, ‘사회경제적 사유의 실효성 및 사정의 존부 판단 문제’, ‘낙태 절차와 방법 중 상담과 숙고의 문제’, ‘의료인의 종교적 신념 내지 양심 기타 가치관에 따른 인권 보호’ 문제를 언급했다.

끝으로 “헌재 결정의 내용을 두고 갑론을박할 시간이 없다. 세부적 쟁점에 발목 잡히면 개선입법의 시한을 넘길 우려가 크다. 소모적 논쟁을 야기하는 것은 금물이다. 각국의 입법상황이 국제적으로 공개되는 오늘 날, 낙태에 관한 무법상태를 초래하는 것은 국가의 품격을 떨어뜨리는 행위다. 문제를 극복하는 길은 관련 전문가들의 공익적 접근 자세에 달려있다. 그야말로 차분히 헌재 결정의 범위에서 미래지향적으로 개정 입법 논의에 접근해야 한다. 최선만 추구하지 말고 ‘모두스 비벤디(modus vivendi)’의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라며 “태아의 생명 가치와 임신 여성의 자유 가치가 충돌하지 않고 고루 보호받는 우리 사회를 기대한다”고 했다.

성산생명윤리연구소의 2019 상반기 성산 포럼
▲성산생명윤리연구소의 2019 상반기 성산 포럼 기념사진. ⓒ김신의 기자

한편 이날 포럼 후에는 ‘생명 존중 관련 입법 논의’, ‘수명 연장을 포기하고 출산을 선택하는 해외의 사례’, ‘낙태 과정의 상담의 중요성’, ‘낙태를 하지 않으려는 해외의 사회적 분위기’, ‘출산익명제도’ 등을 주제로 한 논의가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