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본철
▲배본철 교수(성결대학교 역사신학/성령의 삶 코스 대표)
청교도(Puritans)들은 참으로 중생한 자들에게는 어떤 확신이 주어진다고 믿었다. 그들은 참된 구원의 확신에 있어서 가장 단순한 열쇠는 '그리스도를 영접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긍정적으로 답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여기에 감정적인 체험의 필요보다는 더욱 성경에 대한 신뢰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되었다.

죄로부터 은혜로 나아갈 때 사람은 자기 스스로가 이를 알 수 있는 것이고, 남들도 외부적으로 나타나는 증거들을 통해서 이를 알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우선 자기가 은혜 가운데 있는지 자신의 체험을 통해서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고, 외부적으로는 이에 따른 도덕적 삶을 열매 맺게 되어야 한다.

이처럼 청교도들은 이성에서 오는 확신과 믿음에서 오는 확신 사이를 구분했다. 그들은 이성적인 확신이 성경을 단지 역사적인 태도로 대하고 자신에게는 적용하지 않는 '역사적 신념'이라고 표현하면서, 이 같은 신념을 통해서는 자신을 구원에 이르게 할 수 없으며, 이는 타종교에서와 마찬가지로 오직 자기중심의 발로일 뿐이라고 했다. 그리고 자연적 이성은 그 자체가 부패해 있기 때문에, 은혜가 주는 것처럼 그렇게 높은 단계에 인간을 이르게끔 할 수 없다. 믿음은 이성을 초월한 많은 것을 수용할 수 있게 해주며, 은혜는 불가능한 것을 믿을 수 있게끔 해준다.

성령께서 주시는 영광스런 증거보다 마음속에 거룩한 사랑과 영적 성숙의 길로 인도하게끔 하는 것은 없을 것이다. 이러한 확신은 영적 교만과 나태함을 조장하기는커녕 사실상 가장 강력하게 범죄를 금하게끔 하는 동기가 된다. 왜냐하면 이 확신을 소유한 자는 죄를 범함으로 하나님께서 확신을 거두어 가실 것이라는 위험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일은 그가 진심으로 피하기 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범죄로부터 피할 수 있게 하는 동기, 이것이 확신의 가장 중요한 열매인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의 양심을 통한 간접적인 증거뿐만 아니라 직접적인 증거를 알게 되기까지 확신의 온전한 풍성함을 향유하지 못한다. 따라서 확신이 없는 사람은 스스로를 일깨워 하나님께서 주시는 확신을 구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에드워즈(Jonathan Edwards)의 회심론의 근거는 청교도들의 이중 확신의 교리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다. 구원에 대한 청교도들의 이중 확신에 대해 굿윈(Thomas Goodwin)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첫 번째 방법은 대화식이다. 사람은 연기가 있기 때문에 불이 있다고 추단하는 것처럼, 중생의 표적들이 있기에 하나님께서 자신을 사랑한다고 추단한다. 다른 한 가지 방식은 직관식이다. 이것은 우리가 전체가 부분보다 더 크다고 아는 것과 같은 지식이다. 사람의 영혼에 임하여 그 영혼을 압도하고 그에게 하나님께서 그의 하나님이시고 그가 하나남의 소유이며 하나님께서 영원부터 그를 사랑하셨다고 확신을 주는 빛이 있다."(The Works of Thomas Goodwin, I:233)

이 초자연적 확신이 나타날 때 그리스도인의 삶 전체가 변화된다. 이런 의미에서의 이 확신은 진정한 새로운 회심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청교도들은 이 충만한 확신이 믿음에 본질적인 요소는 아니라고 보았다. 사실상 이 종류의 확신은 믿음이 최소한의 구원의 실행 범위를 훨씬 넘어 최고의 발전에 이르렀을 때에만 정상적으로 나타나는 믿음의 한 국면이다. 확신이 생겨나면 영적 이해력이 자극받아 그로 인해 영혼의 눈이 강해져서 진리를 더 자세하게 파악하게 되고, 이로 인하여 모든 진리를 더 명확하게 알게 된다. 그리스도인이 확신을 갖기 전에도 거룩하였으나 확신은 그를 더욱 거룩하게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웨슬리(John Wesley)의 올더스게이트 체험(Aldersgate Experience)에 대한 심리적 이해의 배경은 직접적으로 청교도들의 충만한 확신의 교리로부터 이어진 것임을 확증할 수 있다. 웨슬리의 이 체험은 루터의 로마서 주석 서문을 통하여 주어졌고, 이보다 3일 전에 그의 동생 찰스(Charles Wesley)가 회심하게 될 때에는 역시 루터가 쓴 갈라디아서 주석을 통하여 되어졌는데, 이 갈라디아서 주석이 번연(John Bunyan)의 회심의 도구이기도 했다는 점도 역시 루터(Martin Luther)의 구원론에 있어서의 칭의에 대한 확신 교리에 입각한 이 체험의 연관성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