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천로역정>과 <이웃집 토토로>
▲스튜디오 지브리의 유명 캐릭터들, <모노노케 히메>의 모노노케 히메, <이웃집 토토로>의 토토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치히로.
◈애니메이션 속 이교사상: 신토사상의 선봉장, 지브리의 토토로

이처럼 <이집트 왕자>나 <천로역정> 애니메이션 같은 작품들이 출품될 때마다 아직 어린 자녀들을 둔 기독교인 부모들은 반색을 표하게 된다.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저패니메이션(Japanimation)에 지배적인 영향을 받는 동아시아의 특수한 환경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일본 애니메이션, 그 가운데서도 어린이들에게 압도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지브리 스튜디오의 작품들은 대부분 노골적 신토적 정령숭배 사상을 어린 영혼들에게 주입하고 있다. 이는 어린이들로 하여금 이방 신들에게 친근감을 갖게 하는 효과를 낳는다.

공교롭게도 이번 <천로역정> 개봉 1주 전에는 지브리 스튜디오 성공신화의 첫 단계를 주도했던 <이웃집 토토로(1988)>가 극장에서 재개봉했다.

이 작품은 1950년대 초반, 일본 종전 직후의 시골에서 도토리 나무의 정령인 토토로를 만난 귀여운 어린이들의 모험을 그려내고 있다. 여기서 토토로는 어린이들에게 친숙한 말로 요정이니 정령이니 하지만, 실상 일본에서는 카미(kami, 신)로 모셔지고 있는 이방신들 중 하나를 캐릭터화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일단 이런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어린 시절에 친숙하게 각인되고 나면, 나이가 들어서도 그것이 우상숭배 문화로부터 유래된 것임을 수긍하기 쉽지 않다. 머리로는 알아도 마음으로는 별 거부감이 없는 그런 상태에 이르게 된다.

지브리 애니메이션 대부분은 반전 사상과 자연친화 사상을 내세우는데, 겉보기엔 건전해보일지 모르나 실상 그 사상적 뿌리는 일본 고유의 신토적 종교성이다.

결국 지브리 작품들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한 대사에서처럼, 일본 전역에 자리잡은 “800만의 신들”과 어린이들 간의 친밀감을 높이는 데 앞장서고 있는 것이다.

이 신들은 바로 1930-1940년대 한국교회 순교자들이 숭배를 거부하며 처절하게 투쟁했던 바로 그 신사참배의 대상이 되는 신들이기도 하다.

사실 저패니메이션 대부분은 캐릭터나 서사 어느 측면으로든 대부분 기독교 신앙의 정신과는 무관한, 때로는 기독교 신앙에 적극적으로 위배되는 사상을 유소년층에 주입하는 데 기여한다. 장르에 따라 편차는 있지만, 국내에서 인기를 얻는 저패니메이션 대부분은 크게 세 부류의 사상적 배경을 갖는다.

첫째는 앞서 지브리 스튜디오의 작품들에서 예를 든 것과 같은 신토적 정령숭배 사상이고, 둘째는 전근대적 무사도와 군국주의 가치관을 따르는 곤조(根性, 근성) 중심의 사고방식이며(주로 격투물, 스포츠물, 메카물에서 확인됨), 셋째는 자연재해, 기근, 전쟁에 수시로 노출되어 왔던 역사적 경험을 반영한 공포심과 허무주의(주로 디스토피아적 세카이계 작품에서 확인됨)이다.

위 세 가지 사상 모두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자세와는 무관하거나, 그에 위배되는 것들이라 볼 수 있다. 이를 지적하는 것은 반일정서 때문이 아니라, 기독교 신앙 때문이다.

사실 신앙에 유해하기로 따지자면 한국 전통의 무속적-기복적 종교성과 유교적 우월감도 뒤지지 않는다. 그러나 일본의 비기독교적이고 이교적인 세계관이 특별히 자녀들의 신앙에 더 위협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저패니메이션이라는 강력한 전파경로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영화 <천로역정>과 <이웃집 토토로>
▲저패니메이션의 걸작 캐릭터들, <아키라>의 아키라, <모노노케 히메>의 모노노케 히메, <뱀파이어 헌터 D>의 D, <카우보이 비밥>의 스파이크.
◈애니메이션 속 반기독교 사상: 디즈니가 주도하는 종교다원주의 조류 속 기독교 애니메이션

그렇다고 미국 애니메이션에 기대감을 갖기도 어렵다. 특히 디즈니가 PC(정치적 올바름) 운동의 선봉장 역할을 하고 있는 작금의 현실에서는 더더욱 그러하다.

드림웍스는 최근 몇 년간 시장에서 주도권을 잃어버린 상태이고, 픽사는 디즈니에 자회사로 인수된 상황인 만큼, 현재 미국 애니메이션의 캐릭터 구축과 서사전개 방식을 주도하는 것은 디즈니라 보아도 무리가 아니다.

디즈니는 원래부터 유럽의 전통적 오컬티즘에 우호적인 모습을 보여왔던 데다, 최근에는 PC 운동의 영향으로 동성애 및 종교다원주의를 적극 옹호하는 성향을 보이고 있다.

실제로 올해 말 개봉이 예정되어 있는 <겨울왕국 2>는 제작 단계에서 주인공 엘사를 동성애자로 설정했다는 루머까지 퍼지면서 논란을 키운 바 있다. 사실 여부는 작품이 개봉되고 나서 확인되겠지만, 적어도 디즈니 측에서 이에 대해 적극적으로 부정한 일이 없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아무래도 루머가 사실일 가능성이 높은 듯하다.

게다가 디즈니는 예로부터 기독교 신앙을 제외한 다른 종교 전통들을 매우 친밀감 있게 표현해 왔다. <뮬란(1998)>에 등장하는 중국의 유교적 조상숭배 문화와 불교 문화, <알라딘(1992)>에서 램프요정 지니를 통해 간접적으로 소개되는 이슬람 설화, <포카혼타스(1995)>에서 표현된 아메리카 원주민의 주술 문화, 그리고 <라이온킹(1994)>에서 맨드릴 원숭이인 라피키를 통해 묘사되고 있는 아프리카 스와힐리 주술문화, <코코(2017)>에 정밀하게 표현되고 있는 멕시코 전통의 사후세계는 모두 어린이들에게 친근하고 신비롭게 그려지고 있다.

영화 <천로역정>과 <이웃집 토토로>
▲영화 <뮬란>에 등장하는 친숙한 이미지의 중국 조상신들.
하지만 디즈니는 기독교 신앙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다른 종교 전통들에 대해서와 같이 친근감 있는 묘사를 시도한 적이 없다. 오히려 <노틀담의 꼽추(1996)>에서처럼 광신적 종교재판을 일삼는 편협한 종교로 묘사한 사례만 찾아볼 수 있을 뿐이다.

미국에서 큰 성공을 거둔 캐릭터나 애니메이션들이 반드시 디즈니처럼 기독교 신앙에 비우호적인 모습만을 보였던 것은 아니다. 찰스 슐츠(Charles M. Schulz)가 그려낸 피너츠(Peanuts) 시리즈는 기독교의 신앙과 삶의 가치에 매우 우호적인 성향을 보이는 가운데 전 세계적인 인기를 얻었다.

찰리 브라운과 스누피 캐릭터로 유명한 이 시리즈에서 가장 유명한 애니메이션 에피소드는 ‘A Charlie Brown Christmas(찰리 브라운의 크리스마스)’이다. 이 에피소드에는 찰리 브라운의 친구인 라이너스가 성경(눅 2:8-14)을 인용하며 크리스마스의 성경적 의미를 소개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에피소드는 1965년 제작된 것으로, 당시에는 방영과 관련해 아무런 잡음도 없었다. 이 당시는 아직 기독교 문화가 미국에서 폭넓게 존중받고 있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2016년을 기점으로 이 에피소드의 방영 등에 대해 미국에서 상당한 논란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크리스마스의 의미를 설명하기 위해 누가복음을 인용한 대사가 무종교인 학생들과 무슬림 학생들에게 적절치 못하다는 이유로 논란이 일어났던 것이다.

영화 <천로역정>과 <이웃집 토토로>
▲<피너츠> 시리즈의 애니메이션 에피소드 ‘A Charlie Brown Christmas’에서 성탄절의 의미를 설명하는 장면.
이처럼 현재 미국 애니메이션 제작자들은 친기독교적 성향을 내보이기 쉽지 않은 환경에 처해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기독교 신앙의 정수를 가르치는 <천로역정>을 상업용 장편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한다는 것은 흥행 측면에서 상당한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여기에 더해 미국 대중문화계에 만연해 있는 종교다원주의적 분위기에 도전함으로써 상당한 논란을 끌어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런 어려움들이 산적해 있는 와중이라는 것을 알기에, 이번 <천로역정>의 개봉이 더욱 반갑게 느껴진다. 현재 미국 대중문화계에서, 특히 어린이들에게 파급력이 높은 애니메이션계에서 기독교 신앙을 옹호하는 작품을 제작하는 일은 그 자체가 하나의 천로역정이라 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처럼 기독교 신앙을 옹호하는, 그러면서 유소년층에 친밀한 신앙 캐릭터를 각인시킬 수 있는 작품들이 향후에도 지속적으로 출품되기를 바란다.

아울러 애니메이션이 어린이와 청소년들에 대해 갖는 막대한 정신적-문화적 영향력을 기독교계가 적절하고 능숙하게 활용할 수 있기를 바란다.

한국의 경우 고질적인 유교 문화의 영향으로, 애초 유소년층의 인권에 대한 인식이 희박한 편이다. 사실 한국에서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인격 및 인권에 진지하게 관심을 보인 시기는 불과 10년 안팎에 불과하다.

최근 연달아 터져나오고 있는 어린이 학대, 자녀학대 사건, 그리고 청소년 폭력 사건들은 이전에는 범죄 취급도 받지 못하던 일들이다. 대다수 한국 학부모들이 자녀들에 대해 진지하게 관심을 갖는 부분은 아마도 성적과 대학진학뿐이 아닐까?

이처럼 사회 전반적으로 유소년층의 정서와 인격에 대한 관심이 없다 보니, 교회 내에서도 대중문화 콘텐츠가 자녀들에게 미치는 영향, 특히 애니메이션이 자녀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에 대해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영화 <천로역정>과 <이웃집 토토로>
▲<천로역정: 천국을 찾아서>의 한 장면. 전신갑주를 입고 마귀와의 전투에 돌입한 순례자.
그러하기에 전문성을 갖추고 성의있게 기독교 신앙을 가르치는 애니메이션 제작이 더더욱 절실히 요청된다. 이런 작품들이 자녀들에게 신앙과 헌신의 삶에 대해 ‘좋은’ 인상을 남기길 원한다. 그렇게 좋게 각인된 인상은 그들이 성인이 되어서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당장 필자만 해도 유소년 시절 즐겨봤던, 그래서 기억에 남는 애니메이션 캐릭터는 모두 ‘세속적이고 비기독교적인’ 캐릭터들이다. 되짚어보면 디즈니 캐릭터들은 말할 것도 없고, 미야자키 하야오의 <미래소년 코난>, 마츠모토 레이지의 <은하철도 999> 등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미디어 문화가 일상화된 현실에서, 우리 자녀들을 애니메이션으로부터 격리시킨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한다면 적어도 자녀들의 마음에 강렬하게 기억되는 애니메이션 캐릭터 가운데 <이집트 왕자>의 모세나 <천로역정>의 순례자와 같은 신앙의 인물들이 한둘 쯤은 존재했으면 하는 바람을 갖게 된다.

아울러 기독교계가 향후 유소년층의 신앙과 관련된 문화적 이슈에 보다 진지한 관심을 갖고 이들을 위한 콘텐츠 개발에 더욱 힘쓰기를 기대하는 바이다.

박욱주 박사(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목회자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쉽게 공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