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강석 목사
▲소강석 목사 ⓒ새에덴교회
월요일 오후 저는 故 김대중 대통령의 영부인 이희호 여사님 장례식장에 조문을 갔습니다. 장례식장엔 문희상 국회의장님을 비롯해 전 현직 장관, 국회의원들이 식당을 꽉 메우고 있었습니다.

그 분들과 함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데 장례위에서 저에게 현충각에서 있을 추모식에서 교계 대표로 추모사를 해 달라는 것입니다. 저는 그 자리에서 일언지하에 거절했습니다. 왜냐면 제가 아직은 교계 대표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래도 그 어느 분보다도 제가 추모사를 하면 추모식을 더 감명 깊고 숙연하게 할 것이라는 겁니다.

물론 제가 추모사를 하면 시적이고 문학적이며 가슴을 울리는 운문의 추모사를 잘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함으로써 행여나 이희호 여사님께 조금이라도 누가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렇게 말씀 드렸습니다.

"이희호 여사님 생전에 더 깊은 관계를 가진 분이나, 저보다 더 훌륭한 선배 목사님을 찾아보시면 좋겠습니다. 그래도 적임자가 없거나 제가 꼭 해야 한다면 그때는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저는 장례식장에서 나온 후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추모사를 준비해 놓았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장례위 쪽에서 연락이 온 것입니다. "목사님이 거절 하셔서 다른 분에게 말씀 드렸더니 흔쾌하게 허락 하셨습니다." 그분은 진보 진영에 계신 분인데, 교계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저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훌륭하신 분입니다. 그래서 제가 "잘 하셨습니다. 정말 잘 되었네요."

그러나 전화를 끊고 보니까 사람 마음이 왜 그런지, 좀 섭섭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왜냐면 이미 원고를 써 놨기 때문입니다. 그때 쓴 원고는 다음과 같습니다.

"하의도의 푸른 바람을 맞으며 겨울 광야에 눈물로 피어난 한 송이 인동초가 있었지요. 그 인동초 곁에 한 아내이자, 가슴 시린 정치적 동반자요, 시대의 아픔을 심장에 품고 평화의 꽃씨를 뿌리며 꽃길을 여셨던 어머니 이희호 여사님, 한국교회 장로님! 님의 영혼은 저 소망의 동산인 천국으로 가셔서 하나님 품에 안식을 하고 계시지만, 어머니의 가슴에 달린 카네이션이 떨어진 것처럼 우리 마음은 황망하기 그지없고 죄스럽기까지 합니다.

님은 대한민국 1세대 여성 운동가요,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눈물을 닦아주었던 사회운동가요, 민족의 갈등과 분열을 통합의 길로 이끄는 평화의 선구자이셨습니다. 김대중 대통령님께서 병석에서 혈압이 떨어져 추위와 싸울 때, 털실로 손수 짜신 벙어리장갑과 양말을 신겨주셨다지요. 그리고 여사님께서는 마지막 순간까지 가족들과 함께 찬송을 부르셨으니, 그 애달픈 소망과 그리운 사랑을 가득 안고 하늘나라에 가셔서 예수님께는 인동초의 새하얀 향기를 바치시고 김대중 대통령님께 달려가 손을 꼭 잡아 주세요.

이희호 여사님 그리고 우리의 어머님, 아니 한국교회의 위대한 장로님이시여, 이제 모든 짐, 모든 고통, 그 모든 시련의 상처는 이 땅 위에 다 내려놓으시고 저 영원한 하늘나라 그리고 하늘 인동초 곁에서 다시 사랑과 평화의 꽃으로 피어나소서. 우리도 국민과 평화통일을 위해 기도하시겠다는 장로님의 유언을 받들어, 국민통합, 남북화해, 이념과 계층의 통합을 꽃 피우며 평화통일과 선진대국을 이루어가겠습니다. 그 모습 지켜봐주시며 천국에서도 기도해 주세요.

아, 이희호 여사님이여,
우리의 어머니이자, 위대한 장로님이시여, 그리고 우리 민족의 가슴 속에 영원히 겨울 인동초로 피어날 사랑과 평화의 이름이시여. 존경하며 사랑합니다. 그리고 지울 수 없는 그리움의 꽃을 드리며 추모합니다."

생각해 보면, 이희호 여사님이 없는 김대중 대통령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숱한 시련의 비바람과 눈보라가 몰아칠 때마다 김 대통령을 격려하고 일으켜 세워준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인생과 신앙의 동반자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다시금 깨달았습니다.

사실 저는 김대중 대통령 재임 시절에는 작은 교회 목사였기에 존재감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저에게 추모사까지 부탁하고 장례식장을 나오는 길에 KBS에서 인터뷰까지 요청한 걸 보면 저도 어느새 교계 중진 목사가 된 것이 분명합니다.

제가 비록 추모사를 하지는 않았지만, 오히려 고인의 추모식에 조금이라도 누가될까 싶어 양보하려고 했던 저의 마음을 스스로 격려하였습니다. 우리 모두가 이런 양보의 미덕을 세우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 양보와 섬김의 정신이 없으니 교계는 여전히 치킨 싸움을 하며 리더십이 표류하고 있지요. 그런데 이상한 것은 제 마음이 아쉬울수록 가슴 깊이 애도하는 추모의 마음이 더 깊어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