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꿈학교
▲새로 지은 자신의 집 지하 공간에서 시작된 달꿈예술학교 개교 모습.
1. 헝가리 유람선 사고가 난지 열사흘 째가 지났습니다. 열사흘 전 일어난 부다페스트 유람선 사고는 불과 약 5초만에 벌어진 일이었답니다. 작은 유람선을 뒤에서 추월하던 배가 부딪치면서 생긴 일입니다.

뒤에서 부딪친 배는 그대로 아무 일 없는 듯 지나가고, 추월당한 배는 부딪치자마자 스르륵 물 속으로 잠겨버렸습니다.

당시 봤던 뉴스 제목 가운데 이런 뉘앙스의 제목이 있었습니다. ‘쿵 하고 충돌했는데 슝 하고 사라졌다’. 사건의 참상이 실제로는 보이지도 않을 만큼 얼마나 순식간에, 그리고 조용히 벌어진 일이었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2. 세계 최고 관광지 부다페스트 현장, 수많은 배들이 오가는 그곳에 일어난 참상입니다. 그 사고는 누군가에게 침몰이고 죽음이고 눈물이지만, 대다수의 누군가에게는 변하지 않는 일상이었습니다.

여전히 강은 흐르고, 유람선은 떠다니며, 심지어 가라앉는 배를 보면서도 갈 길을 가는 배들이 담긴 전경이 오히려 더 무서운 일로 다가옵니다.

3. 인생은 항해와 같습니다. 우리 역시 갈 길을 어제처럼 오늘도 항해하고 있습니다. 우리 역시 무수히 많은 크고 작은 충돌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간과하는 것이 있습니다.

내가 스쳐 지나가며 생긴 작은 부딪침이 누군가를 침몰시키고 있음을 모르고 살아가고 있는 나의 모습 말입니다. 아니 어쩌면, 쿵 하고 부딪치고 슝 하고 사라지는 그 잔잔한 현장에 우리는 여전히 맴돌고 있습니다.

그 일상을 보고 눈물이 사라져버린, 아니 눈물 흘려도 물의 흐름에 역류하지 않는 우리들은 여전히 부다페스트 위에 있습니다.

4. 그래서 우리는 누군가의 아픔을 작게 여기며 웃어 넘기곤 합니다.

토요일에 우리 학교에는 반가운 손님들로 북적입니다. 한마음교회 청년들(엘림팀)이 달꿈 학교에 와서 섬겨주고 있습니다. 덕분에 지역의 어린이들 약 20명이 북적거리며 놀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 학교가 있는 곳의 지역 아이들(미아동)만 섬기면 지자체 지원을 받기 쉽습니다. 지자체마다 지원하는 사업들이 바로 지역 아이들만 모이도록 요구하고 지원해주고 있어서, 그에 맞게 구성하고 프로그램을 진행하면 훨씬 쉽게 운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마을배움터, 이웃만들기 등).

하지만 이미 우리 학교 프로그램에 즐겁게 참여하고 있는 아이들 가운데는 다른 지역 아이들이 어우러져 있습니다. 행정과 자원보다 아이들이 제게는 더 중요합니다.

5. 지난주 토요일 한 어린아이가 다치는 일이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고학년인 아이는 보통 아이들보다 꽤 큽니다. 무릎이 까지고 눈옆이 살짝 빨개졌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대성통곡하는 겁니다. 우는 모습이 귀여울 만큼, 정말이지 닭똥 같은 눈물 방울이 흘렀습니다.

6. 무릎을 소독하려고 자리에 앉혔습니다. 제가 직접 소독기구로 약을 바르려 하자 더 크게 울면서 말합니다.

“저 이러다 눈 안보이는거 아니죠?”
“저 마취해야 해요? 병원 가는 거에요?”

큰 덩치의 남자 아이는 계속 쉴새 없이 흐느끼면서 묻습니다. 병원에 일단 가야할 것 같다고 하자 아이는 더 크게 흐느낍니다.

“병원 싫어요. 저 병원 싫어요. 가면 저 꼬매는 거 아니에요? 그럼 마취해야 되는 거 아니에요?” 자기는 눈물을 그치지 않으면서도, 자신이 데리고 온 햄스터는 어디 있냐면서 챙깁니다.

7. 그 모습을 본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웃으면서 괜찮다고 달랬습니다. 옆에 있던 한참 어린 동생이 어른처럼 말하기도 합니다. “형. 괜찮아.”

그러나 아이의 눈물이 마르지 않습니다. 마치 부다페스트의 물결이 여전히 흘러가듯, 아이의 눈에서 떨어지는 눈물은 하염없이 흘러 내립니다. 혹시나 눈이 부을까 아이스 찜질을 하도록 했더니, 온 힘을 다해 자기 눈을 꽉 누릅니다. 그리고 계속 말합니다.

“여기 오기 싫었는데 아침에 흑흑…, 올 때 죽은 새도 봤는데 흑흑…, 그래서 묻어줬어요 흑흑…, 그런데 저 병원 가야 되는 거예요?”

괜찮다고 토닥이는 어른들에게 아이는 계속 말합니다. “저 눈 안보이는거 아니겠죠? 어 눈은 보이네?”

겁이 많은 모습을 보고 귀엽기도 했지만, 눈의 상처나 무릎 상처가 가벼운 듯 보이자 저와 주변 어른들은 미소가 머금어지기 시작했습니다.

8. 그런데 이 아이의 다음 말이 제 심장을 그만 타격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근데요. 있잖아요. 우리 아빠는 눈이 안 보여요.” 아이는 다시 괜찮아 보이는 눈을 꾹 누릅니다.

이 때 정신이 들었습니다. 맞습니다. 이 아이의 아버님도 어머님도 시각장애십니다.

아이는 연이여서 말했습니다. “근데요. 근데요. 저 정말 병원 가야 되는 거예요? 꼬매는 건 아픈건데?”

뚝뚝 떨어지는 눈물을 보던 누군가가 “아니야, 마취하고 하면 안 아파”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아이가 말합니다.

“안 아파요? 마비되는 거 아니에요?”

사람들이 다시 웃음이 났습니다. 그런데 다시 이어지는 아이 말에 아무도 말을 못했습니다.

“우리 아빠는요. 지금 다쳐서 몸이 마비되셨어요. 그래서 못 움직여요. TV만 보세요. 우리 아빠가 걱정하겠다 흑흑.”

맞습니다. 이 아이 아빠는 수술하고 잘 움직이지를 못하십니다.

9. 이 아이는 우리 교회가 함께 작은 도움을 주는 아주 형편이 어려운 가정의 아이입니다. 수급대상자 가족인 이 가족의 아이는 어머님 아버님이 다 시각장애시고 아버지는 일을 못하셔서 몸을 못 움직이십니다.

그 아이는 그래서 눈이 살짝 다쳐도 겁이 나는 겁니다. 살짝 무릎이 까져도, 마취라는 단어만 들어도 겁이 나는 겁니다.

10. 우리가 웃고 넘기는 작은 상처가, 이 아이에게 큰 두려움인 이유입니다. 울고 있는 아이 앞에서 갑자기 울 수 없어 꾹 참았습니다. 저는 제 상처를 이야기했습니다.

“봐, 목사님도 왼쪽 팔 꼬맸다. 오른쪽 팔도 꼬맸다.” 꼬맨 팔을 보여줬습니다.

아이가 묻습니다. “응? 아팠어요?”

“응 아팠어. 그런데 괜찮잖아, 지금. 목사님은 배도 꼬맸어. 엄청 크게 꼬맨 자국 있어. 근데 지금 봐, 괜찮지? 그러니까 OO이도 아빠도 괜찮을거야.”

11. 상처.

때로 상처는 누군가를 위로하기 위한 도구가 됩니다.

저도 목사인데 주사가 두려운 때가 많으니까요. 병원에서 온 몸에 주사를 맞아보았으니까요. 질리도록 주사바늘을 맞고, 뼈에 맞은 것 같은 주사도 많습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수술칼이 제 온 몸 위를 다니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낄 때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남들은 아무렇지 않은 주사가 가끔 두렵기도 합니다. 병원 생활 내내 저는 소위 가위눌림의 증상도 수없이 겪었습니다.

그러나 내 자신이 그 정도 충돌을 겪었다고, 누군가의 상처와 충돌을 보고서도 동요 없이 살아가는 제 모습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12. 여러분 주변에 누군가가 울고 있습니까? 그 눈물은 나에게는 가벼운 상처일지 모릅니다. 아니, 그저 유유히 지나가는 크고 작은 수많은 충돌 가운데 하나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때로 그 작은 상처와 충돌이 누군가에게는 큰 의미가 있는 아픔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다뉴브강 위에 있습니다.

누군가는 추월하는 배로,
누군가는 추월당하는 배로,
누군가는 충돌이 쿵 하고 일어나 슝 하고 가라앉는 배로,
누군가는 충돌이 일어나도 그대로 전진하는 배로,
누군가는 그 모든 모습을 일상으로 여기는 배로,
그렇게 오늘도 우리는 부다페스트에서 다뉴브강 위의 배로 살고 있다면.

5초만에 쿵 하고 슝… 하나의 배가 사라졌듯, 그렇게 고통으로 빠져들고 맙니다.

13. 사랑하는 여러분. 타인의 상처에 둔감한 것은 아닙니까? 위태로워진 것은 아닌가 점검하십시다.

이 땅 위 수많은 아이들, 청소년들이 그와 같은 모습으로 살고 있음을 잊지 마십시다. 넉넉하고 괜찮아 보이는 삶.

그러나 그 가운데 우리는 전혀 못 보는 아이들의 아픔과 눈물, 세월호에 묻어버린 수많은 생명들을 오늘도 놓치고 있는 삶이 되지 않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류한승 목사(생명샘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