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혈의 십자가를 기억합니다”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 모습. ⓒ크리스천투데이 DB
현대인들은 하늘을 볼 여유조차 없는 것 같습니다. 도심에서는 달을 보려고 해도 공기가 오염되어 잘 보이지도 않습니다.

한 번은 사이판을 여행하게 되었는데 밤에 가이드가 밤하늘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달과 별로 수놓아진 아름다운 밤하늘을 정말 오랜만에 볼 수 있었습니다. 가끔 밤하늘을 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지면 참 좋습니다.

달은 차면 기울기 마련입니다. 기울어진 달은 시간이 지나면 또 차게 됩니다. 달이 항상 똑같은 모습으로 떠 있는 경우는 없습니다.

우리의 눈으로 볼 적에 어제의 달과 오늘의 달이 똑같은 것 같아 보이지만, 어제의 달과 오늘의 달은 분명 차이가 있습니다. 보름달은 조금씩 기울어져 가게끔 되어 있습니다.

이와 같이 이 땅에서의 삶도 항상 슬프고 고통스러운 일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시간이 지나면 다 지나간다는 것입니다.

우리 삶은 생각보다 그렇게 복잡하지 않고 단순합니다. 어려움과 고난이 닥쳐올 때,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이 어려움과 고난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에 골몰합니다. 좋은 일이 있으면 기쁜 일들을 놓치지 않고 어떻게 계속 붙잡을 수 있을까 고민합니다.

주어진 상황에 지나치게 신경을 쓰면 어려운 일은 더 힘들어지고, 좋은 일도 좋지 않게 됩니다.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은 기쁜 일도 잠시고 슬픈 일도 잠시라는 것입니다. 다 지나간다는 사실입니다.

이 세상에서 삶은 영원한 기쁨도 없고, 영원한 슬픔도 없습니다. 모든 인생에서 기쁨도 슬픔도 거치는 한 과정에 불과합니다.

행복과 불행은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지만 서로 맞닿아 있습니다. 우리는 ‘새옹지마(塞翁之馬)’라는 말을 알고 있습니다. 이 사자성어는 ‘변방에 사는 늙은이의 말’이라는 뜻인데, 고등학교 때 시험문제에 잘 출제됐습니다.

이 용어의 유래는 이렇습니다. 변방에 한 늙은 노인이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노인이 기르던 말 한 마리가 오랑캐들이 살고 있는 북방으로 도망을 가 버렸습니다.

이웃들은 잃어버린 말을 아까워했지만 노인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노인은 달랐습니다. “이 일이 복이 될런지 누가 알겠느냐?”고 했습니다.

몇 개월이 지났습니다. 도망갔던 말이 북방에서 더 좋은 말을 데리고 노인의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이웃들이 노인에게 축하의 말을 건네자 노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 일이 화가 될는지 누가 알겠소?”

하루는 노인의 아들 하나가 이 말을 타다가 그만 떨어져 다리를 다쳐 불구가 되었습니다. 이웃들이 안타까워하면서 위로하자 노인이 말했습니다. “이 일이 복이 될는지 누가 알겠소?”

1년 후 변경 부근에 오랑캐가 쳐들어 왔습니다. 모든 장정들은 다 전쟁터로 불려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노인의 아들은 저는 다리 덕분에 병역에서 면제되었고, 부자(父子)는 생명을 부지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불공평하게 사람들을 다루는 것 같지만, 공평하신 분입니다. 어두운 밤이 지나면, 반드시 아침이 찾아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삶이 어렵고 힘들 때 우리의 태도가 너무나 중요합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우유를 잘 먹지 못했습니다. 그냥 우유가 싫었고, 그 싫은 우유를 먹는 날에는 배탈이 났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우유를 잘 먹지 않습니다.

제가 우유를 싫어하고 먹지 않는다 해서, 우유가 나쁜 음식은 아닙니다. 오히려 우유에는 많은 영양소가 있어 성장기 어린이들에게 꼭 필요합니다. 이와 같이 우리들이 살다보면 싫지만 ‘고난’이라는 문 앞에 서게 될 때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바로 이런 어려움과 고난이라는 문 앞에 주저앉아 버립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어려움과 고난이라는 문 앞에서 문을 두드리기만 합니다.

그런데 이 고난의 문을 열고 지나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바로, 어려움과 고난의 문을 열고 지나가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 고난의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고난의 십자가를 지고 영문 밖으로 나가셨습니다.

우리에게 삶의 어려움과 고난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세상에서 우리들이 질 수 없는 어려움과 고난의 짐은 없습니다. 우리가 다 감당할 수 있는 인생의 짐이고, 또한 이 짐을 우리 주님이 같이 져 주십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를 홀로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우리만 멍에를 지고 가는 것 같지만, 우리 주님이 같이 동무되어 지어주시고, 종국에 승리하도록 지켜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고난의 문을 열고, 참고 견디며 뚜벅뚜벅 걸어가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겠습니다.

임재호
크리스찬북뉴스 편집고문, 양곡제일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