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영주 예비역 해군 제독은 지난 2011년 1월 21일 우리 청해부대가 소말리아 해적에 납치된 삼호주얼리호 선원 모두를 구출한 '아덴만 여명작전' 당시 최영함의 함장이었다. 월간 <월드뷰>는 6월호에서 그 때의 이야기와 기독교 신앙을 담은 그의 간증을 소개했다. 본지는 <월드뷰>와 조영주 예비역 해군 제독의 허락을 얻어 해당 간증 전문을 게재한다.

최영함 아덴만 여명작전 청해부대
▲청해부대 28진(최영함) 장병들이 최근 파병 10주년을 기념해 갑판에서 10주년 기념 글자를 만들며 임무완수를 다짐하고 있다. ⓒ해군
들어가며

아덴만 여명작전은 하나님께서 우리 대한민국과 국군을 사랑하시는 증거이다. 당시 객관적으로 판단해 볼 때 우리 청해부대는 인질구출 작전에 필요한 전력을 충분히 보유하지 못했다. 고속단정을 이용한 해군 UDT 특수부대 구출작전은 매우 위험하며, 현실적으로 피랍된 선박에 단독으로는 승선 자체가 거의 불가능하다.

헬기로 선박에 진입하는 방법이 있지만, 청해부대는 링스헬기 1대 만을 보유하고 있고, 그것도 대잠전용이기 때문에 특수작전을 위한 자체방호 능력이 없었다. 이에 공중 구출작전도 불가능하였다. 항공모함을 비롯한 많은 전투함과 헬기 등 충분한 전력을 보유하고 있는 선진국 해군들도 구출작전을 감행 할 경우 인질의 안전을 담보하기가 매우 어렵다.

그런데 아덴만 여명작전 당시 단 한명의 사망자 없이 성공적으로 인질을 구출할 수 있었던 것은 실로 기적이었으며,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결과임을 생생히 체험한 증인으로서 <월드뷰>를 통해 처음으로 대중에 공개하고 고백한다.

임지로 출발

내가 해군장교의 꽃인 구축함장으로 부임할 당시에 해군에 각종 사건이 일어났다. 2010년 3월 26일, 즉 내가 최영함 함장에 부임한 다음 날 서해 백령도 근해에서 천안함 폭침사건이 일어났고, 이어 4월 4일에 소말리아 해역에서 삼호 드림호 피랍사건이 있었다. 그리고 4월 15일과 17일에 해군 링스헬기가 추락하고 불시착하는 사고도 있었고, 11월 11일에는 제주도 서북방에서 고속정 1척이 어선과 충돌해서 침몰했다. 그리고 11월 23일에는 북한의 천인공로 할 연평도 포격도발 사건이 일어났다.

이러한 여파로 우리 최영함의 청해부대 제6진은 계획보다 1주일 늦추어 출발했다. 2010년 12월 8일 이만리가 넘는 임지(任地)를 향하는 나의 마음은 결연함과 착잡함이 교차하였다. 먼저는 내가 부여받은 우리 선박을 반드시 보호하고 지켜내야 한다는 막중한 사명감이 나의 두 주먹을 불끈 쥐게 하였다.
그러나 한 달 전인 2010년 11월 6일에 거액의 석방금을 지불하고 216일 만에 풀려난 우리 선박 삼호 드림호의 후과로 인해 해적들이 대한민국 선박을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인식해 우리 선박을 또 납치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의 마음을 강하게 짓눌렀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믿음은 나에게 유일한 힘이자 큰 소망이었다.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사무엘상 17장 47절)이 아니던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지 않는가(로마서 8장 28절)?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시편 41편 5,11절).

당시에 나는 큰 위기감을 느낀 탓인지 전쟁을 맞이하는 다윗과 일본의 침략을 예견하고 전쟁을 준비하는 고독한 이순신 제독의 심경(心境)을 느낄 수 있었다. 국가안보가 위중한 상황에서 머나먼 타국에 홀로 파견되어 청해부대장으로서 막중한 임무를 수행해야 했기에, 오직 주님만이 나의 도움이요 방패요 힘이요 구원자라는 마음을 가지고 하루하루를 말씀과 기도로 주의 인도하심을 받고자 힘썼다.

출발 전 간증과 감사

이러한 나를 불쌍히 여기사 하나님께서는 청해부대 임무수행에 앞서 먼저 나에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징표를 주셨다는 것을 깨닫고 이제 고백한다. 통상 청해부대는 임무수행의 모함이 되는 구축함(최영함)을 필두로 링스헬기 작전운용을 담당하는 항공파견대, 세계 최강의 UDT로 구성된 검문검색대, 그리고 청해부대장을 보좌하는 참모진 등 300명 이상으로 구성된다.

그런데 우리 최영함이 파견되는 제6진에 와서 상급 지휘부는 돌연 참모진 인원을 줄여 정확히 300명으로 구성하였다. 해적위협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부대장을 보좌하는 참모인원을 줄인 것이 심적으로 부담되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기드온의 300용사가 떠올라 우리 청해부대 제6진이 대한민국을 위해 하나님께 선택받은 아덴만의 300용사가 되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였다.

또한 아덴만 여명작전을 치르고 나서 주께 감사하였던 것은 나와 청해부대 제6진의 앞길을 미리 아시는 주님께서는 천안함 폭침 등 어려운 상황을 통해 우리 최영함이 최강의 전투태세를 구비토록 하셔서 철저히 준비하게 하셨다는 사실이다. 정말 우리 최영함 전우들은 힘들고 잦은 작전수행으로 인한 어려움에 불평불만하지 아니하고 혼연일체가 되어 충성하였다.

그 결과 우리 최영함은 표어인 '해군의 자랑, 국가의 영광'이 되는 부대로 탄생할 수 있었다. 힘들고 어려운 때, 함께 울고 웃으며 동고동락 했던 사랑하는 전우들의 노고와 위대한 헌신에 이 자리를 빌려 감사와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특별히 우리 최영함 전우들은 아덴만 여명작전 신화의 기폭제요 원동력이 되었다. 해병대를 포함한 다양한 부대와 부서에서 해외파병 임무수행을 위해 최영함으로 파견되어 온 장병들을 가족처럼 맞이하여 정성을 다해 섬김으로써 청해부대 제6진이 하나가 되게 해 주었다.

우리 최영함 전우들의 노력 덕분에 갑판에 계란을 깨뜨리면 프라이가 되는 열대더위와 모래바람, 거친 파도, 가족에 대한 향수병을 극복할 수 있었다. 이글을 쓰는 지금도 자랑스런 전우들의 모습이 떠올라 감격의 눈물이 눈가를 적시며, 이러한 은혜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돌린다.

대 해적작전을 준비하며

선원들이 인질로 붙잡히게 되면 생명이 위태해 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사태를 미연에 예방하는 것이 손자병법이 말하는 부전승의 원리이다. 나는 피랍 예방을 최우선 목표로 제시하였다. 대 해적작전의 제1원칙은 선원이 인질로 붙잡히기 이전에 구해내는 것이다.

해적은 선원을 인질로 붙잡지 못하면, 진입하는 해군에 순순히 항복한다. 왜냐하면 공해상에서 붙잡힌 해적의 처벌과 관련된 법적인 절차가 복잡하고 예산 등의 문제로 인해 강력한 처벌이 어렵기 때문에 인명피해가 없을 경우에는 해적들을 훈방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그들 스스로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 해적작전 성패는 승무원들이 해적들이 선박에 승선한 이후라도 피난처에 은신해 연합해군 검문검색대가 승선할 때까지, 인질로 붙잡히지 않는 것이다.

넓은 바다에서 우리 배만으로는 대 해적임무를 수행할 수 없기 때문에, 나는 임무개시와 함께 소말리아 대 해적작전에 참가하고 있는 미5함대와 미국, NATO, EU 대 해적작전 부대 및 지휘관들과 긴밀하고도 유기적인 협조체계를 최우선적으로 구축해 나갔다. 그리고 연합부대가 요청 시에는 세계 최강 대한민국 UDT 대원들을 타국의 피랍선박 구출작전에 위험을 무릎 쓰고 주저함 없이 지원하였다.

이러한 헌신적이고 적극적인 대 해적작전 임무수행에 감동을 받은 연합전력들이 우리의 아덴만 여명작전 수행 시에는 동일한 심정으로 우리의 승리에 큰 도움이 되는 정보제공과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것이다. 뿌리는 대로 거두게 된다는 성경말씀처럼...

최영함 아덴만 여명작전 청해부대
▲2011년 아덴만 여명작전 당시 모습 ⓒ해군
삼호주얼리호 피랍 사건의 발생

그런데 2010년 1월 15일 오전 7시 45분 급한 보고가 들어왔다. 우리 선박 삼호주얼리호가 해적에게 피랍되어 선원이 이미 인질로 붙잡혔다는 것이다. 그동안 작전해역을 운항하는 우리 선박을 모니터링 해서 해적 위협정보를 근 실시간으로 전파했다. 해적의 공격에 대비해서 안전한 항로를 선택해 달라고 권고할 때면, 때로는 짜증 섞인 질타도 들었지만, 오직 해적 피랍을 예방하고자 참고 노력했던 모든 일이 물거품이 된 것이다. 나도 모르게 한숨이 터져 나왔다. 불과 2달 전에 석방된 선박과 동일한 회사의 선박이 우리 부대가 한, 여러 차례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제대로 해적에 대응도 못하고 피랍된 것이다. 원망스러웠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 선박과 선원을 어떻게 구출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최소한의 군수적재를 마친 우리 최영함은 즉각 출항하여 지부티로부터 약 2천 6백km 떨어진 삼호 주얼리호를 향해 전속력으로 기동하였다. 이동 중 지금까지 준비해 왔던 데로 고속단정에 승함한 UDT 검문검색대와 링스헬기가 중심이 된 구출작전 계획을 다듬고 작전 예행연습을 반복하였다. 전속력으로 달려 온지 이틀 만에 삼호주얼리호를 상봉할 수 있었는데, 파키스탄 해군 바버함의 공이 지대하였다.

1차 구출작전의 실패

상봉한 지 불과 몇 시간도 안 되어 해적들이 삼호주얼리 인근을 항해하는 멕시코 선박 MV Lucky호를 피랍하려고 일부가 보트를 타고 나갔다. 나는 해적의 주력 전투요원이 빠져 나간 절호의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는 판단 하에 합참의 승인을 얻어 제1차 구출작전에 돌입하였다.

그러나 실패했다. 원인은 해적이 항복하는 척하다가, 우리 UDT 요원들에게 총을 쏘아, 3명이 부상을 당했기 때문이다. 이 해적들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 전투기량과 능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링스헬기의 능력도 특수작전 수행을 위해서는 턱없이 부족하였고, 너무도 갑작스러운 상황에 작전이 수행되어 우리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지 못한 나의 책임도 있었다.

많은 비난이 나에게 돌아왔다. 그러나 아덴만 여명작전이 성공하고 돌이켜 볼 때 뼈아픈 제1차 작전 실패경험이 없었다면 아덴만 여명작전 신화는 만들어지지 못하였을 것이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처럼 우리 대한민국과 해군을 불쌍히 여기신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실패를 막아주시기 위해 나에게 제1차 작전의 소중한 교훈을 얻게 해 주셨음에 감사와 찬양을 하나님께 돌려드린다.

나는 부상을 입은 안병주 검문검색대장을 비롯한 3명의 전우를 링스헬기를 이용해 오만으로 후송을 떠나보낸 후 우리 청해부대 장병들의 사기고양에 주력하는 가운데, 특별히 죽음을 무릅쓰고 구출작전을 수행해야 할 UDT 대원들을 따뜻이 위로하고 전의를 북돋워 주었다.

2차 구출작전

다시 함장실로 돌아온 나는 이 막중한 국가적인 난관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 것인지 깊은 고민에 빠졌다. 현재의 상황에서 어떠한 방법을 강구해야 할 것인가? 나는 현장지휘관으로서 반드시 승리의 방법을 찾아내야만 하였기에 전심전력으로 에벤에셀 하나님, 전능하신 여호와 닛시 하나님께 울부짖는 기도를 드릴 수밖에 없었다.

기도 후 책상에 앉아 평소대로 지혜를 얻기 위해 매일 들어오던 영어성경 시편 40편을 듣기 위해 눈을 감은 순간, 내 옆을 스치는 바람 같은 느낌과 함께 시편 40편이 아닌 시편 27편 다윗의 전쟁 시가 내 귀에 흘러 나왔다. 나는 깜짝 놀라 이게 뭐지 하며 주위를 돌아보았지만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다만 제1차 작전까지 거의 잠을 자지 못해 피곤하고 지친 몸이 갑자기 새털처럼 가벼워지며 심령으로부터 주체할 수 없이 강력한 새 힘이 샘물처럼 용솟음치는 것을 느꼈다. 이어 마음에서 "영주야 네가 위험을 무릅쓰도록 해라.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다"라는 음성이 들려왔다.

당시 나는 제1차 작전 실패 이후 승리의 비법으로 이순신 제독의 거북선을 어떻게 현 상황에 적용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세계 최강의 UDT 대원들이 삼호주얼리호에 승선만 한다면 해적의 제압은 문제가 없는데, 어떻게 해야 이들을 해적들이 모르게 승선시킬 수 있을까? 방법은 우리 최영함이 삼호주얼리에 접근하여 UDT 대원들을 안전하게 승선시키는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는 너무도 위험한 방법이었다. 왜냐하면 삼호주얼리호를 장악한 해적은 강력한 대전차 파괴용 로켓탄 발사기 RPG를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칫 잘못하게 되면 감당할 수 없는 피해를 당할 수 있기 때문에 망설이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성령의 역사를 통해 나에게 담대하게 행동할 것을 말씀하시고 확신을 주셨다.

곧바로 나는 자신감과 확신에 찬 모습으로 핵심 참모회의를 소집하였고, 나의 작전지침을 세부 작전계획으로 발전시킬 것을 관련 참모들에게 지시하였다. 이리하여 탄생된 아덴만 여명작전의 세부 작전계획을 현장지휘관으로서 나는 "불꽃작전"이라 명명하여 상부에 보고하였다.

그 이유는 주의 사랑을 전하는 작은 불꽃이 되어 자신을 희생하여 인질로 붙잡힌 선원들을 구출해 내겠다는 의지를 담은 것이었다. 그러나 최종 작전 명칭은 한민구 국방장관님이 제안한 아덴만 여명작전으로 명명되었다. 명칭이야 어찌되었든 하나님의 역사로 수립된 작전계획을 통해 청해부대 제6진 전 장병은 자신감을 회복하였고 빈틈없이 작전준비를 완료하였다.

기도와 간증

조영주 예비역 해군 준장
ⓒ조영주 예비역 해군 준장
드디어 운명의 시간, 이제 모든 것은 하늘에 달려 있었다. 나는 국가의 위상과 우리 군의 운명이 걸린 결전을 앞두고 그저 무릎 꿇고 하나님께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아덴만 여명작전을 지휘하던 2010년 1월 21일 새벽, 나는 작전지침 하달과 작전 준비상태를 점검하던 중간에, 정확히 3번 작전지휘소를 빠져나와 함장실에 들어갔다. 아마도 우리 대원들 중 일부는 함장이 긴장해서 화장실을 자주 간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작전개시 전 최소한 3번 두 손들고 전심으로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겠다고 생각하고 기도를 했다. 아니 통곡하고 절규하며 하나님께 부르짖었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예레미야 33편 2~3절). 아멘!

좋으신 하나님께서는 작전현장에 세밀하게 개입하여 주시고, 간절한 기도에 응답해 주셨다. 작전현장의 위험한 모든 것을 막아주셨을 뿐만 아니라 국내적으로도 국가지도자들에게 흔들리지 않고 작전 집행을 결심하게 하시며, 성공적인 작전수행을 위한 언론 엠바고를 보장해 주셨다. 모든 국민이 작전 성공을 염원하며 청해부대 6진과 똑 같은 마음으로 승리를 위해 기도해 주셨다.

그리하여 마침내 아덴만 여명작전(원제: 불꽃작전)의 신화가 탄생할 수 있었다. 아덴만 여명작전의 성공은 살아계신 하나님, 역전의 하나님께서 대한민국과 우리 군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보여주신 살아있는 증거라고 담대히 간증하는 바이다.

지금도 아덴만 여명작전 직후 우리 부대원들이 나에게 들려주던 말이 귓가에 생생하다. 함장님, 정말 하나님이 도와주시네요! 아덴만 여명작전의 위대한 승리의 모든 영광을 살아계시고 모든 찬송과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오직 한분 하나님께 모두 돌려드리는 바이다. 여호와 닛시 하나님, 당신을 찬송 하나이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