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인 아트설교연구원
▲김도인 목사. ⓒ크리스천투데이 DB

설교자는 성장해야 한다

설교자는 성장해야 한다. 성장해야 성숙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설교자들이 자신의 성장에 관심이 별로 없다. 자신에게 주어진 사역에 관심이 많다.

이런 말이 있다. “준비된 자가 쓰임받는다.”

이는 하나님께도 마찬가지일 수 있다. ‘하나님께서도 준비된 자를 쓰신다.’

하나님께서는 준비된 아브라함을 쓰셨다. 준비된 모세를 쓰셨다. 준비된 바울을 쓰셨다. 준비되지 않은 사람을 쓰신 적 없다.

준비되었다는 말은 성장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성숙해지고 있다는 말이다. 설교자는 성장해야 한다.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성숙해야 한다.

설교자가 성장하는 통로는 많다. 말씀 묵상, 기도, 자기계발, 독서, 글쓰기 등이다. 이들도 성장으로 이끈다. 이 중 성장 폭이 큰 것은 읽기보다는 쓰기다. 즉 글쓰기다.

글쓰기는 아무나 하지 못한다

글쓰기는 설교자를 성장시킨다. 글쓰기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글을 쓰는 것은 남다른 노력을 기울인 자에게 주어지는 특권과 같다.

주위에 책을 쓴 사람이 거의 없다. 나의 아내는 신혼 초부터 일주일에 책 5권 내외를 읽어왔다. 하지만 글을 쓸 줄 모른다. 글을 쓰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책을 쓰는 것은 언감생심(焉敢生心)이다.

책을 쓰려면, 글을 쓸 줄 알아야 한다. 책 한 권 정도는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출간할 수 있다. 하지만 꾸준히 출간하는 것은 어렵다. 글을 쓸 줄 알아야, 지속적인 책 출간이 가능하다.

필자는 10년간 5,000권의 독서와 함께 글을 썼다. 2018년 한 해에만 6권의 책을 출간했다. 1년에 책을 적어도 6권 이상을 쓰고 있다.

그뿐 아니다. 나는 신앙 관련 도서는 물론, 일반 세상을 위한 책도 출간했다. 지금도 신학 도서와 일반 도서를 같이 쓴다. 이는 이런 글쓰기를 했기 때문에 가능하다.

준비된 사람만 책을 출간할 수 있다. 글쓰기는 책을 출간할 수 있는 최고의 준비다. 우리나라에서 책을 쓰는 작가는 1% 안에 드는 사람이다. 이런 통계로 볼 때 책이란 극소수만이 쓸 수 있다. 책을 쓰고 싶다고 다 쓸 수 없다. 글을 쓰는 사람만 할 수 있다.

‘아트설교연구원’ 첫 시간에 글을 써 보라고 하면 무척 당황한다. 어떻게 글을 써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필자도 마찬가지였다. 글을 쓰라고 하면, 무슨 내용부터 써야 할지 모른다. 어떤 글을 써야 할지 전혀 몰랐다. 글을 쓸 줄 알지만, 책을 쓰라고 하면 어떻게 써야 할지 막막하다. 이는 책을 써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글쓰기는 아무나 하지 못한다. 아무나 하지 못하므로, 나라도 해야 한다. 글을 쓰면 설교를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설교를 쓰면 책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나’에 포함되지 않고, ‘온리 원’이 되는 길을 가는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이다.

글쓰기, 성장 폭이 가장 크다

글쓰기는 아무나 하지 못한다. 하지만 글쓰기를 하면 할수록 놀라운 성장이 가능하다. 사람을 가장 많이 성장하게 하는 것은 글쓰기이다. 글쓰기가 성장의 열쇠다. 그러므로 어떻게 해서든 글을 써야 한다.

사람들은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발전이 더디기 때문이다. 독서로 성장을 꾀하지만, 성장이 엄청 더디다. 독서보다 더 더딘 것이 있는데, 바로 글쓰기다. 하지만 글쓰기를 할 줄 알면 비약적으로 성장을 이룬다.

사람들은 글을 쓰는 것은 작가들이나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글쓰기는 작가의 전유물이 아니다. 성장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해야 하는 일이다. 큰 폭의 성장을 통해 하나님께 준비된 자로 서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이란 자기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준만큼 성장해야 한다. 그럴 때 하나님은 그 사람과 함께 일하신다.

필자는 글을 쓰면서 많이 성장했다. 그 성장의 폭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다. 성장뿐 아니라 엄청나게 성숙해졌다.

아내가 종종 많이 하는 말이 있다.

“당신, 많이 변했다”

“왜 이렇게 변했냐?”고 묻기까지 한다.

필자 또한 변화와 큰 성장을 이룬 것을 느낀다. 놀라운 성장을 이룬 것은 글을 썼기 때문이다.

글을 쓰면 저절로 자신을 되돌아보게 된다. 글을 쓰면서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자신이 문제가 무엇인지 체크하게 된다. 그 이유는 글을 쓰면서 자신의 모습이 들춰지기 때문이다.

지적 성장을 원한다면 글을 써야 한다. 인격적인 성숙을 원하다면 글을 써야 한다.

글을 써야 리더다

리더란 어떤 사람인가? 글을 쓸 줄 아는 사람이다.

설교자인 당신이 진정 리더가 되고 싶다면, 글을 써야 한다. 리더는 글을 쓸 줄 아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글을 쓰지 못하면 리더가 할 수 없다.

미국 하버드대학교 등 유명 대학들이 학생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친다. 그 이유는 세계적인 리더로 만들기 위함이다.

어떤 조직이든 글을 쓰지 못하고 리더로 행세하기 어렵다. 글을 쓰지 못하는데 리더라고 말하면 사람들이 그를 겉으로는 리더로 인정할지 몰라도 속으로는 리더로 인정하지 않는다.

김용 전 세계은행 총재는 백지연 앵커와 대담한 책인 <무엇이 되기 위해 살지 마라>에서, 한국 교육정책 담당부서인 교육부에게 한 가지, ‘글쓰기 교육에 집중할 것’을 건의하고 싶다고 했다.

설교자는 교회의 리더다. 설교자가 글을 쓸 줄 모르더라도, 교인들이 그를 리더로 여길 수는 있다. 하지만 마음 속 깊은 곳으로부터 존경받기는 힘들지 모른다. 그러므로 글을 쓸 줄 알아야 한다. 글을 써야 한다.

설교 글의 성장이 곧 목회 성장이다

설교로 청중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데 버거운 사람들의 공통점이 있다. 글을 잘 쓰지 못한다는 것이. 설교 한 편을 제대로 쓰지 못한다.

필자는 설교자들을 대상으로 ‘설교 글쓰기’를 가르치고 있다. 설교자들이 글을 쓸 때마다 하는 고백이 있다.

‘쓸 말이 없다’, ‘무엇을 써야 할지 모르겠다’, ‘어떻게 써야 할지 막막하다’.

회사 사장부터 공무원, 대학생, 고등학생까지 예외 없이, 글쓰기는 그들에게 가장 막막한 일이다. 하지만 반드시 글쓰기를 해야 한다. 그럴 때 자신의 목회에 성장을 이룬다.

나는 신학을 공부할 때, 아니 신학을 공부하고 20년이 지난 뒤에도 글을 써야 한다는 것을 몰랐다. 목회는 기도, 심방, 상담, 행정 등을 하면 되는 줄 알았다.

설교를 할 때 글을 써서 한다는 것조차 몰랐다. 그러니 글쓰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 적 없다.

필자는 지금 설교자들에게 ‘설교 글쓰기’를 가르치고 있다. 그들도 아트설교연구원에 합류해 공부하기 전까지는 설교를 글로 써야 한다는 것을 깊게 생각하지 못했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같이 글쓰기를 하면서, 결국 글쓰기가 설교를 좌지우지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옥한흠
▲지난 2007년 한국교회 대부흥 1백주년 기념대회에서 설교하는 옥한흠 목사. ⓒ크리스천투데이 DB

어떤 설교자는 자신이 설교를 글로 써야 하는 줄 알았다면, 신학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들었을 때, 필자도 격하게 공감했다. 그 이유는 글을 쓰기가 어렵고 힘들기 때문이다.

글쓰기는 어렵다. 하지만 설교자는 글쓰기를 할 줄 알아야 한다. 설교자는 글을 쓸 때 성장하기 때문이다. 글을 쓸 때, 설교자는 물론 설교도 성장한다. 마지막으로 교인도 성장한다.

설교자는 항상 성장해야 한다. 필자는 아트설교연구원을 그만두는 설교자들에게 ‘눈에 띄게 성장하라’고 말한다. 눈에 띄게 성장하는 것이 목회라고 믿기 때문이다.

설교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목회를 잘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그리스도 안에서 성장하는 것이다. 성장하지 못하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목회가 아니라 자신이 하고 싶은 목회를 하게 된다.

설교자는 글쓰기를 통해 성장해야 한다. 그 이유는 글쓰기 없이 성장을 이룰 수 없기 떄문이다.

옥한흠 목사가 조기 은퇴했다. 그 이유는 ‘설교 준비’가 힘들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다른 말로, 건강을 해칠 정도로 설교 글쓰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한 편의 설교를 30시간씩 준비했다. 설교 글쓰기의 중압감을 견디기가 어려워 조기 은퇴를 선택했다.

설교자에게 설교하기는 힘들다. 이보다 더 힘든 것이 설교를 준비하는 것이다. 결국 설교 글을 쓰는 것이 힘들다.

많은 설교자들이 목회 은퇴를 앞두고도 자신의 설교를 제대로 완성하지 못한다. 65세 쯤 되신 설교자들이 설교를 완성하고자 아트설교연구원의 문을 두드린다. 오랜 목회의 경력에도 설교 글쓰기가 안 되니, 자기 설교 한 편을 만들고 싶다고 한다.

글쓰기는 치유와 회복에도 탁월하다. 아이들의 치유 프로그램이 많다. 놀이 치료, 음악 치료, 미술 치료 등이 있다. 놀이 치료, 음악 치료, 미술 치료는 치료 효과가 크다. 하지만 글쓰기만큼 치료의 효과가 크지는 않다. 글을 쓰면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치유와 회복이 일어난다.

어른들은 놀이 치료, 음악 치료, 미술 치료 등으로 치유가 잘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글을 쓰면 놀라운 치료를 경험한다. 그러므로 치료와 회복을 위해서라도 글쓰기를 해야 한다.

아트설교연구원 회원들도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엄청난 치유와 회복을 경험했다고 말한다. 글을 쓴지 6개월쯤 지나면, 치유와 회복이 눈에 보일 정도다.

김도인 목사/아트설교연구원 대표(https://cafe.naver.com/judam11)
저서로는 《설교는 인문학이다/두란노》, 《설교는 글쓰기다/CLC》, 《설교를 통해 배운다/CLC》, 《아침에 열기 저녁에 닫기/좋은땅》, 《아침의 숙제가 저녁에는 축제로/좋은땅》, 《출근길, 그 말씀(공저)/CLC》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