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는 故 한경직 목사님의 생전 설교 전문을, 한경직목사기념사업회 제공으로 매주 한 차례, [그 때 그 설교] 코너에서 소개합니다. 한 목사님은 얼마 전 한 설문조사에서 '가장 존경하는 목회자' 1위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고인의 생전 설교가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오늘날 한국교회에 생생히 울려퍼지길 바랍니다.

한경직
▲故 한경직 목사 ⓒ크리스천투데이 DB
에베소서 5:8~21

오늘 읽은 에베소서 5장은 우리 믿는 사람들이 이 사악한 세상에서 살 때에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꼭 빛이 되어서 옳게 살라고 하는 여러 가지 권면이 있습니다.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지혜 있게 살라고, 모든 권면을 하다가 5장 18절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여기, 술 취하지 말고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고 권면합니다. 오순절 때에 모든 믿는 사람들이 성령으로 충만해서 각 방언으로 서로 말을 할 때에, 당시의 어떤 안 믿는 이들은 그들이 새 술로 취하였다고 조롱하였다고 합니다. 사도행전 2장 13절 읽어 보세요. 또 여기에는 술로 취하지 말고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고 권합니다.

아마 술로 취한 사람과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이 서로 비슷한 모습이 좀 있는 것 같습니다. 술 취한 이들을 여러분은 다 보셨을 것입니다. 그들은 그 몸 속에 말하자면 술로 충만합니다. 그리하여 얼굴이 붉어지게 되고, 눈이 새빨갛게 되며, 입에서는 술 냄새가 나며, 다리에도 술이 충만해서 바로 걷지 못하고 비틀거립니다.

인간이 그 몸에 무엇으로 충만하게 되는가 하는 것은 그 삶에 아주 중요한 영향을 줍니다. 어떤 이는 그 몸 속에 욕심으로, 탐심으로 충만합니다. 어떤 이는 정욕으로 충만합니다. 어떤 이는 감투욕 또 요샛말로 정권 야욕으로 충만합니다. 어떤 학생들은 그릇된 사상으로 충만한 것 같습니다. 어떤 이는 시기와 미움으로 충만합니다. 또 어떤 이들은 교만으로 충만합니다. 이러한 이들이 우리 사회 각계각층에 많게 되면 실로 우리 사회는 어지러워지고 혼란하여지고 불안하게 되기 마련입니다.

자세히 들으세요. 성경은 권면합니다. 이런 추한 것들 대신에 오직 믿는 사람들은 성령으로 우리의 몸을 채우라고, 충만히 채우라고 권면합니다. 오늘 이러한 축복이 우리 모두에게 임하시기를 기원합니다.

먼저 우리가 분명히 기억해야 될 것은 요한의 세례와 그리스도의 세례 곧 성령의 세례가 좀 다릅니다.

사도행전 19장을 보면, 사도 바울이 에베소에서 유할 때에 어떤 제자들을 만났는데, 그들은 세례 요한의 세례만 받고 예수의 이름으로는 세례 받은 것을 알지도 못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바울이 그들에게 예수님에 대한 전도를 하고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푸니 그들은 또한 성령으로 그 마음 속에 임하였다고 기록되었습니다.

두 가지 종류의 신자가 있을 수 있습니다. 곧 하나는 요한의 세례만 받습니다. 곧 회개의 세례만 받습니다. 이들은 성령의 감화는 있으나 성령으로 충만하지는 못합니다. 그리고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을 뿐 아니라, 성령의 충만한 세례를 받는 이들이 또한 있습니다.

성령의 감화를 받는 것과 성령으로 충만하게 된다는 것은 다소 다릅니다. 예수님 제자들의 경우를 보면 그들은 다 처음에 요한의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를 3년이나 따라다녔지만, 교훈도 받았지만, 아직도 그들 사이에는 누가 크냐 하는 시비와 다툼도 있었고, 주님께서 마지막 날 저녁 악한 무리들에게 체포될 때에 모두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베드로 같은 수제자도 예수를 세 번씩이나 부인하는 부끄러운 죄를 지었습니다.

이렇게 그들이 오순절에 성령을 충만히 받기 전에는 말하자면 그들이 아직도 육신에 속해서 원하는 선은 행하지 못하고, 원치 아니하는 악을 도리어 행하는 때가 종종 있었습니다. 사실 그 마음 속에는 성령을 근심케 한 때도 많이 있었습니다.

성령의 감화로 우리가 주를 믿습니다. 성령의 감화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성령으로 충만한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노라고 하지만, 우리 중심에 그리스도를 모시지는 못하고 마음의 변두리에 모시는 이들이 적지 아니합니다.

따라서 이러한 이들은 풍성한 삶, 풍성한 그리스도인의 삶이 어떠한 것인지 체험해 보지 못합니다. 옳게 살려고 노력은 하나, 다 그대로 되지 못하고 마음 속에 기쁨과 화평이 결여됩니다. 믿기는 하나 능력이 없으니 복음의 전파나 사랑의 실천을 원하는 대로 하지도 못합니다.

또 삶의 짐을 온전히 주께 맡기지도 못합니다. 그러하니 이러한 이들의 마음 속에는 언제나 근심이 떠나지 아니하고 때로는 낙심과 절망에도 빠집니다. 마음이 깨끗하지 못하니 사실 하나님을 신령한 눈으로 보지 못합니다. 기도생활을 힘쓰나 형식에 흐르기 쉽습니다. 성경을 읽으나 참 진리의 맛을 알지 못합니다. 성령의 열매가 그 마음 속에 부족한 까닭입니다.

여러분, 이 시간 조용히 내 가슴에 손을 얹고 내 자신의 신앙형편이 어떠한가? 스스로 살펴보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 가운데서 불러서 구원하시고 아버지의 자녀를 삼으신 것은 이러한 삶에 머물기 위하여 부르신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오신 것은 양으로 하여금 생명을 얻고 더 풍성히 얻게 하기 위하여 오신 것입니다. 더 풍성한 삶을 주시기 위하여 주님께서 오신 것입니다.

여러분, 더 풍성한 삶 곧 참 크리스천의 삶을 중심으로 맛보시길 원하십니까? 여기 말씀대로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세요.

감화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우리의 마음, 우리의 몸, 아니 우리 생명 전체가 성령으로 충만함을 입어야 합니다. 술 취한 사람이 술로 그 몸에 충만한 것처럼 우리 믿는 이들은 우리 몸에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이것이 곧 오순절의 체험입니다.

당시 열두 제자와 120명은 다 같이 누구나 빠짐없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오늘이 바로 오순절 기념주일이기도 합니다. 성령 강림주일입니다. 이 뜻 깊은 날, 우리 모두 성령의 충만한 은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의 영을 우리 중심에 모십시다. 변두리에 그냥 모시지 마십시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삶의 전부를 다스리시게 우리 몸과 마음을 주님께 이 시간 온전히 맡기십시다.

그렇게 되면 성령이 우리 속에 충만히 임하십니다. 따라서 성령의 열매가 우리 마음 속에 맺힙니다. 사랑, 기쁨, 화평, 인내, 자비, 양선, 충성, 온유와 절제 등 온갖 성령의 열매가 우리 마음 속에, 우리 성품에, 우리 삶에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모두 성령의 능력도 받습니다. 유혹을 이깁니다. 시험을 떨쳐 버립니다. 근심과 걱정도 사라집니다. 기쁨으로 주를 섬기며, 힘 있게 복음을 전파하며, 기쁨과 감사함으로 불우한 이들을 도와주며 사랑을 실천합니다. 또 성령의 지혜도 풍성히 받습니다. 아무리 어려운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합니다. 대처할 수 있는 지혜와 영력이 같이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떠한 난관이나 좌절감이나 무거운 짐도 능히 견디고 이기고 돌파하여 나갈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하게 될 때에 우리는 성경 말씀 그대로 세상을 이깁니다. 육신도 이깁니다. 사탄의 온갖 권세도 타파하고 승리합니다. 문자 그대로 사도 바울의 부르짖은 말씀과 같이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마음 속에 외치면서 승리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이 시간 성령의 충만한 은혜를 받으세요. 이 은혜는 하나님께서 우리 모든 믿는 사람에게 허락하신 약속의 은혜입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의 약속을 기다리라"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이 약속을 우리는 오늘 누구나 빠짐없이 받으셔야 하겠습니다. 성령을 충만히 받는 비결이 무엇일까? 그것은 간단합니다.

먼저, 이 은혜는 우리 모두에게 허락하신 특권인 것을 기억하십시다. 어떤 특권층만 받는 게 아닙니다. 그러므로 나도 충만한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것을 기억하세요.

둘째는, 내 마음 속에 모든 걸리는 것, 아무리 작은 죄라도 생각나면 곧 회개하십시다. 오순절 전에 기도하는 가운데 제자들과 많은 교인들이 먼저 죄를 회개하였습니다. 성령이 임재하기에 거리낄 수 있는 무엇이든지 내 속, 내 안과 밖에 있으면 떨쳐 버리세요. 일어나세요. 회개하세요.

그리고 셋째는, 이 약속을 내게도 달라고 기도하세요. 이 시간, 나의 삶 전체를 성령으로 충만케 하여 달라고 기도하십시다. 기도하시면 응답하여 주십니다. 이 시간 주십니다. 다만 믿음으로, 믿음의 손으로 받으세요. 그뿐입니다.
여러분은 이 시각 성령을 충만히 받고 돌아가실 수 있습니다. 예배당 뜰만 밟지 마십시다. 이 집의 문턱만 넘어서지 마십시다. 들어올 때는 어떤 형편으로 들어왔는지 모르지만, 나갈 때는 새로운 사람이 되어서 성령으로 충만해서 능력 있는 크리스천이 되어서 나갑시다.

어떤 이는 말하였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흔히 세 가지 레벨(level)에서 산다고 지적하였습니다.

첫째는, 본능의 레벨에서 사는 이들이 적지 않다고 합니다. 제일 낮은 레벨입니다. 이들은 그저 본능대로 삽니다. 그러니까 온갖 죄를 지으면서도 양심의 가책도 별로 모르고 사는 이들입니다. 말하자면 금수의 레벨에서 삽니다. 짐승은 본능대로 삽니다. 그런데 인간은 그렇지 않은데, 인간도 이런 본능의 레벨에서 사는 이들이 혹 있어요.

둘째는, 이 레벨보다 조금 올라와서 윤리적 혹은 도덕적 레벨에서 사는 이들이 있습니다. 꼭 도덕 생활을 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양심대로 살아보려고 애쓴다는 뜻입니다. 그대로 다 살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적어도 양심대로 도덕의 원칙대로 살기를 힘쓰는 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중간층 그런 레벨이 있습니다. 믿는 사람 가운데도 이 레벨에 속하는 이들이 상당히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성경을 보면 그 위의 레벨이 있습니다. 성령의 충만한 레벨에서 사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은혜의 레벨에서 삽니다. 하나님 주시는 능력과 은혜의 레벨에서 성령의 충만한 그 능력으로 살게 됩니다. 내 능력이 아니고 하나님께로부터 은혜를 받아 성령의 능력으로 자연히 옳게도 살고, 옳은 일도 하게 되는 성도들의 생활이 그러합니다.

여러분, 이것이 참 그리스도인의 생활입니다. 우리는 모두 은혜의 레벨에서 살아야 합니다. 살게 되어야 합니다. 독수리가 저절로 날개 치며 공중에 올라가는 것과 같이 우리 모두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서 성령의 능력으로 날마다 좀더 거룩하고, 좀더 깨끗하고, 좀더 힘 있고, 좀더 영화로운 삶으로 올라가는 이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이 시간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은혜 가운데서 살면서 특별히 마지막으로 부탁하고 싶은 것은 우리 조국을 위해서 기도하십시다. 어느 때에 조국을 위해서 기도하지 아니하리오마는, 오늘의 모든 정세를 가만히 살펴보면 특별히 우리 성도의 기도가 요구되는 시대입니다.

특별히 나라 안에서 여러 가지 중한 책임진 이들, 국회의원들, 그 밖의 여러 중요한 책임진 이들을 위해서 기도해야겠습니다. 이들이 옳게 모든 것을 보고, 옳게 나라를 지도하기 위해서 기도해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 청소년들, 우리 학원들, 특별히 학생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되겠습니다. 학생들 가운데는 그릇된 사상에 붙잡혀서, 말하자면 노예가 되어서 자기가 하는 일이 무엇을 하는지 모르고 행동을 하는 학생들이 없지 않아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성령을 충만히 받아서 내 자신, 내 가정이 먼저 은혜의 레벨에서 살 뿐더러,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우리 온 민족이 미신과 우상을 버리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 돌아와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중생함을 받고, 성령을 받고, 충만한 생활을 할 수 있는 우리 민족이 되기 위해서 기도하십시다. 우리 기도합시다.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오순절에 성령의 충만함을 120명 신도들에게 허락해서 그들이 그때부터는 성령의 충만한 생활을 하게 된 것을 기억하면서 오늘을 사는 저희들에게도 이와 같은 은혜를 오래 기다리지 마시고 이 시간 각 사람의 심령 속에 성령의 충만하심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고 우리 민족이 다 모든 미신과 사신 우상을 버리고 살아 계신 주님께로 돌아오게 해 주시고 또 하나님께서 우리 남한에 이 자유 민주국가를 허락하여 주셨는데 우리나라의 지도자들과 모든 국민들이 자유를 잘 보존할 수 있는 지혜와 은혜를 또한 허락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모든 말씀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