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준 장로.
▲이효준 장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만일 이 사람들이 잠잠하면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 하시니라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가라사대 너도 오늘날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다면, 좋을 번하였거니 와 지금 네 눈에 숨기었도다 (누가복음 19장 40-42절)”.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어린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 성으로 입성하십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겉옷을 벗어 길에 깔며 종려나무 가지를 꺾어 흔들며 주님을 향해 소리치며 찬양합니다.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서는 영광이로다”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마 21:9)”

여기서 ‘호산나’는 ‘호시아나(구원하소서)’라는 뜻이고, ‘다윗의 자손’은 ‘메시아’를 뜻하는 말입니다.

그래서 바리새인을 중심으로 한 무리들이 주님에게 거칠게 항의합니다. 당신의 제자들이 경거망동한 말로 ‘호산나’라니, 또 ‘다윗의 자손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느냐며, 주님을 부인하는 거친 책망의 항의였습니다.

즉 당신은 우리가 그처럼 고대하고 바라는 구세주가 아니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만일 이 사람들이 잠잠하면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고요.

산이나 길가 그리고 바닷가에 돌들이 일제히 소리 지른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과연 세상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나름대로 상상해 보면, 아마 주님께서 돌들을 명하여 하시고자 하는 일들을 속히 진행하여, 교만에 찬 저들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지 않았겠습니까?

주님께서 나 같은 죄인을 위해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며, 곧 닥칠 고난과 고통, 그리고 인간으로서의 최고 형벌인 십자가에서 보혈을 다 쏟으시며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려 입성하고 있는 마당에, 침묵으로 일관한다는 것이 믿는 자로서 합당한 일일까요?

지금 대한민국에 크리스천이 1천만 명이라고 하는데, 이 숫자는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5분의 1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한 숫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소리 한 번 제대로 내지 못하는 교회 지도자들이나, 나름대로 믿음이 있노라고 자처하면서 교만에 떠드는 신앙인들의 외치는 소리는, 어디로 숨었는지 찾아도 보이질 않습니다.

이 땅에 복음이 들어올 때 얼마나 많은 순교의 피를 흘렸는지, 늘 말씀마다 초대교회 정신을 살리자고 설파하면서 정작 설교자들의 행동에는 말뿐이고, 성도들에게 늘 ‘목사에게 잘 하면 복 받는다, 주의 종의 말에 불순종하면 망한다’는 식의 설교와 ‘헌금을 많이 하면 복 받는다’는 설교로 헌금 강요만 하는 일부 목사들 때문에, 주님께서는 십자가를 또 지려 하고 계십니다.

미래지향적인 차원에서, 젊은 세대들을 위한다며 지난 10년간 장로와 목사 정년을 70세에서 65세로 낮춰 잘 지켜온 교회가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자신들의 정년이 임박하자, 정년을 다시 연장하기 위해 친분이 있는 노회·당회원들과 담합하고, 갖은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자신들의 뜻을 이루는 일부 못된 목사와 장로들이 있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심지어 자신들의 하는 짓을 정당화하기 위해 자신들의 의견에 반대하는 몇 사람을 사법기관에 제소하며, 평화적으로 항의 시위를 하던 반대파 성도들을 아예 교회에 발도 붙이지 못하도록 쇠사슬로 출입문을 잠그고 명예훼손이라며 고소하기도 했습니다.

설교 시간에는 심지어 그들을 향해 사탄이라고 이야기하며 악의 세력이라고 말하는, 참으로 구역질이 날 정도로 참혹한 죄를 생산하는 모습에서 ‘정말 저들이 참 목자일까? 그리고 지도자들일까?’ 생각해 봅니다.

한숨이 터지다 못해, 밤새 하염없는 눈물만 주르륵 흘러 내립니다. 봄비마저 함께 슬피 흘러 내립니다.

진심 어린 사과 한 마디라도 했다면 훌훌 털고 용서했을텐데, 사과할 일도 없다고 합니다. 과연 이런 종이 진정한 주님의 종일까요? 아예 처음부터 주의 종이 아니라, 세상에 나가 명예와 욕구를 채우는 것이 더 나은 선택 아니었을까요?

교회에서 쫓겨난 성도들은 양이 아닙니까? 노회장을 비롯한 임원들은 친분을 핑계로 오히려 잘못을 저지른 목사와 장로들에게 옳지 않은 방법을 알려주며, 그들이 원하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노회장을 비롯한 임원들 역시 주님께서 선택한 목자들이 아닐 것입니다. 오래도록 섬겨온 교회에서 쫓겨나 다른 장소에서 예배드리는 양들을 찾아와 위로하며 기도해 주는 행동이야말로, 총회장과 노회장을 비롯한 임원들이 해야 할 일 아닐까요?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아 기뻐하시는 주님의 목소리를 청종하지 않고, 수백 명이 교회를 떠나가도 누구 하나 거들떠보지도 않는 목사와 장로들이 참으로 충성된 종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자신들의 뜻에 동의하지 않는 성도들을 다 나가라고 하는 목자가 진정 양들을 위해 존재하는 목자일까요?

이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갈수록 어려운 난관에 부딪히고 있는데도 여전히 함구하고 있는 교회 지도자들은,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요. 세습을 통해 교회 권력을 누리는데 혈안이 되어, 나라가 망하든 어찌 되었든 아예 신경조차 쓰지 않는 지도자들이 참 지도자들일까요?

피로 세워진 자유민주주의에서 점점 사회주의를 향해 흘러가고 있음에도, 이를 수수방관하며 눈치를 보는 모습은, 마치 베드로가 주님을 모른다고 세 번씩 부인하며 슬그머니 꽁무니를 빼는 비겁한 모습과 무슨 차이가 있을까요?

언론과 방송사의 눈치 보기와 무능에는 이제 구역질까지 날 정도입니다, 국민들 모두가 뭐라 해도, 구부리지 않고 자신이 맡은 사명을 꼿꼿하게 감당해야 하지만, 한쪽 편에 서서 일하는 모습은 이제 지겨울 정도입니다. 수많은 기독교 방송사들과 신문들은 왜 함구하고 있는 걸까요?

노동자들의 최고 기관인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그리고 전교조와 공무원노조 모두가 목적에 반대되는 일만 일삼고 있으니, 이 나라의 미래는 불 보듯 뻔해 보입니다.

이 모두가 이웃을 보듬으려는 노력 없이 자신들의 이익에만 급급한 나머지, 나라와 민족을 위한 배려의 정신과 충효사상, 그리고 예절문화와 사회 전반에 걸친 질서의 문화가 사라져 가며 폭력과 성추행, 그리고 방화와 살인이 난무한 현 시대를 바라보면 애가 마를 지경입니다.

주님께서 예루살렘 성을 보시며 우신 것처럼, 지금 이 땅을 향해 또 눈물 흘리고 계심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 이유는 교회가 교회로서 사명을 다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사회는 그 때문에 점점 망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북에서 미사일을 쏘아대도 말 한 마디 못하고, 중국이 각종 악영향을 주어도 꼼짝 하지 않은 채 두려워하면서 제대로 소리 한 번 내지 못하니, 이 나라가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왔나 싶어, 나라를 위해 피 흘렸던 선열들에게 송구한 마음뿐입니다.

우리 믿는 성도들이 처음으로 주님께 부름 받은 그 날을 기억하며, 선한 목자이신 주님을 따르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주님 사랑과 보살핌을 되새겨 봅니다.

사랑받고 있는 사람이 사랑을 내어줄 수 있는 것처럼, 우리와 함께 신앙생활을 하는 이들에게 한결같은 마음으로 사랑을 베풀며 주님의 가신 그 길을 이어가는 믿음의 권속들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만약 계속해서 무사안일과 세상 편리 속에 안주한다면, 주님께서 돌들에게 소리 지르라고 명령하실 것입니다. 그 많은 돌들이 소리 지른다면, 과연 세상은 어떻게 될까요?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자신들의 잘못을 시인하고 회개하며 다시 한 번 초대교회 정신으로 돌아가 주님의 영광을 위해, 그리고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명을 잘 감당하는 이 땅에 크리스천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돌들이 소리 지르기 전에!

이효준 장로(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