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스미스 교수
▲학생들과 질의 및 응답 시간을 갖고 있는 기독 철학자 제임스 스미스 교수(오른쪽). ⓒ김신의 기자
기독교적 시각에서 진리를 탐구하는 학술행사 ‘베리타스포럼’이 작년에 이어 28일 고려대 과학도서관 5층 대강당에서 개최됐다.

이날 공개 강연에는 기독 철학자인 제임스 스미스 미국 칼빈신학교 교수가 강연자로 나섰다. 스미스 교수는 유럽 현대사상에 기초한 탈근대적 신학철학운동을 주도하는 북미계 학자로 알려져 있다. 국내 번역된 저서로는 ‘습관이 영성이다’, ‘하나님 나라를 욕망하라’, ‘누가 포스트모더니즘을 두려워하는가’ 등이 있다. 이번 강연에서는 ‘우리는 무엇을 사랑하는가’라는 주제로 포스트모던 시대의 욕망에 대해 이야기 했고, 학생들과의 질의 및 응답 시간을 가졌다. 아래는 그 일문일답.

-한국 사회에 기독교 예전에 대한 부정적 생각이 있다.

“한국교회의 상황이 어떤지 모르겠지만, 전 세계적으로 볼 때 많은 교회가 자신이 가진 기독교 예전 자체를 포기하고 세상 속 예전을 끌고 들어오는 경향이 있다. 문제는 그렇게 함으로써 교회 안에 세상 특유의 목마름을 끌고 들어오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교회 안의 예전과 여러 실천들이 세상으로부터 배우고 습득한 습관을 해체하는 작용을 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혹시 이 자리에 기독교를 아직 믿지 않는 분이 있다면 바로 그런 분들을 기독교의 예전을 실천하는 곳으로 초대하고 싶다. 그 예전들은 기독교를 이해하고 알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다.

또 교회에 대해 결정적인 것 하나를 알려드리고 싶다. 우리가 교회 안에서 예배를 드리거나 작은 실천을 행하는 등 여러 소소한 예전들이 세상을 바꾸는 힘이 있는 것은, 그것을 통해 하나님께서 역사하시고 성령께서 힘을 주시기 때문이다.”

- 강의에서 휴대폰을 예로 들며 예전을 설명하셨는데, 교수님에게 휴대폰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나?

“제가 말씀 드리고자 하는 건 근본주의자들이 말하는 세상을 등지는 것이 아니다. 의식하라는 것이다. 우린 이 세상 속으로 보냄 받도록 부름을 받은 존재다. 저는 휴대폰을 통해 뭔가를 할 뿐 아니라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인식하며 모든 알림을 다 끄는 등 나를 다스리게 하지 못하도록 한다. 만약 이 전화기가 계속 울리면 저는 전화기의 노예가 될 수 있다. 그 환경을 제가 컨트롤 하도록 한다. 그렇지만 오늘 저녁 전 영상통화를 통해 제 아름다운 아내와 통화를 할 것이다.

한 가지 꼭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은 모든 문화의 예전이 다 나쁜 것은 아니란 것이다. 우린 온 우주의 예전에 대해 분석을 할 수 있다. 이 대학이란 것이 예전적 장소임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때문에 저는 의도적으로 의식적으로 살펴 보면서 이 안에서 그리스도 중심적으로 증인된 삶을 살아가기 위한 끈을 놓치지 않고 있다. 대학을 필요로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하나님으로부터 부름받은 자신이 지적인 훈련을 하는데 꼭 필요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 사회 안에서 요구하는 예전이 교회와 다를 때 타협해야 하는가?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세상으로부터의 도피를 제시하려는 것이 아니다. 우리 자신을 하나님 안에 자리하게 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가 다른 어떤 영역 안에 있더라고 그 안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주고 증언하는 존재로 있어야 한다. 다시 말씀 드리지만 문화 속 모든 예전이 망가진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이 세상 속 다양한 예전을 접하게 될 때 그것에 대한 분별력이 있어야 한다. 그런 후 참여할지 거절할지 판단해야 한다. 일반적 사회에서 접하는 예전에서 타협이란 말은 쓰지 않는다. 또 세상에서 살면서 저는 '타협한다'고 말하고 싶지 않고 이미 이루어졌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은, 또는 이 시대와 앞으로 올 시대 사이 존재하는 갭(gap) 안에서 살고 있다고 이해하고 싶다.”

제임스 스미스
▲제임스 스미스 교수. ⓒ김신의 기자
- 철학적으로, 인간이 초월적이고 변하지 않는 것에 대한 열망이 있다는 것에 동의한다. 그러나 그 대상은 플라톤의 '이데아' 등 다른 것일 수도 있지 않나? 왜 꼭 신이어야 하나?

“하나님이 아닌 다른 대체물을 통해 절대적인 것에 대한 갈망을 추구할 때 실패할 수밖에 없다. 그 이유는 진정한 신만이 가진 ‘무한함’이라는 것이 없는 다른 대체물은 결국 유한한 것으로 끝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찾는 도중 실패하든지 찾았다고 생각했지만 만족시켜주지 못한다. 진정한 하나님이 아닌 다른 대체물을 통해 갈망을 충족하려는 모든 노력은 결국 우리를 실망시킨다.

다른 대체물이 힘이 없고 설득력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또 모든 기독교인이 다 만족하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크리스천이 믿는 삼위일체이신 한 분이시고 십자가에 돌아가셨다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가 실망하지 않고 대체할 수 없는 분이란 걸 깨달을 수 있다. 제 대답에 실망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가 진리다.”

- 행동이나 버릇, 습관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이 예전이 될 수 있는가?

“중요한 것은 정말 당신이 의존하고 당신의 삶을 다스리는 중심이 되는 예전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내가 만약 소비주의에 중심을 둔다면 제가 교회를 간다고 할지라도 예수님 조차 그저 소비의 한 객체에 불과할 수 있다.

저는 말씀과 성례전이라는 기독교 예전에 삶의 중심을 두고 다른 모든 것이 이 영향력 아래 있게 한다. 이는 다른 스토리에 근거를 두고 사는 사람과 다른 것이다. 저는 아내와 넓은 정원에서 꽃을 가꾸고 키우는 일에 열심이지만, 정원을 가꾸며 창조주 된 하나님을 의지해서 이 일을 감당하고 있다는 연속성 아래에 서 하는 것이다. 기독교를 믿지 않는 이웃이 정원을 가꾸는 것과는 다를 것이다.”

- 사랑하는 사람이 세상적 예전에 빠진 경우, 어떻게 벗어나게 할 수 있나?

“첫째로 그들이 실천하는 것이 하나의 예전이라는 것을 보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그들이 하고 있는 것이 결코 중립적인 것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단순히 예전에 참여하는 정도가 아니라 무언가 영향력이 가해지고 있다는 것을 알려줘야 한다. 이를 깨닫게 되는 것만으로 큰 변화를 만들 수 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가 기독교 예전이 얼마나 놀라운지 보여줄 수 있는 모델이 되어 증언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저렇게 살아보고 싶다’고 생각할 수 있게끔 모델이 되어야 한다.

또 망가진 세상의 예전 속에 살다가 그것에 대해 실망감을 느낄 때까지 기다리는 인내가 필요하다. 그것은 어쩌면 중독과 같은 것이다. 정말 중독에 빠진 사람이 ‘이래선 안 된다’는 것을 처절하게 깨닫기까지 바닥을 칠 때까지 기다려줄 수 있어야한다. 그러나 많은 경우, 우리가 하나님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성급하게 도와주려 한다. 이것이 오히려 문제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