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벼랑 끝에 서 있는 나무
▲ⓒ예영 제공
시간이 지나면 좋아지는 것이 있고, 시간이 지나면 나빠지는 것이 있습니다. 과일 같은 것은 빨리 먹는 것이 좋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과일은 더 나빠지고, 좋아지는 법이 없습니다.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는 어떨까요? 인간관계는 시간이 지난다 해서 지금보다 더 좋아진다고 보장할 수는 없습니다. 전심을 다하고 온 마음을 다하고 사람을 대할 때,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않고 온전한 마음으로 대하면 좋은 관계가 유지될 수 있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도 시간이 지날수록 좋아지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과 인내가 필요합니다.

우리의 믿음은 어떨까요? 원칙대로 한다면,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우리는 더욱 성숙해져야 할 것입니다. 그 성숙함을 통해서 어른스러운 믿음과 성품으로 변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는 것도 쉽지는 않습니다.

신앙이 지나가면서 눈에 보일 정도로 더 좋아지고 성숙해져 가는 신앙인을 찾아보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렇게 많은 설교를 듣고도 왜 우리에게는 충격이 없을까요?

그리스도인들이 배우고 들은 말씀대로 실천하는 삶을 살아갈 수만 있다면, 세상이 이렇게 혼란스럽고 악해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많은 세월 동안 헌금을 하고, 성경을 읽고, 예배를 드리고, 기도를 하고, 설교를 듣는 등 수많은 종교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 해도, 세상은 별반 달라지는 것이 없고, 세상에 도전을 주는 것도 없으며 큰 감동을 주지도 못하는 것이 오늘날 현실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우리가 듣고 배운 것이 우리의 삶으로 실천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잘못 배웠기 때문에, 처음부터 잘못 알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생각합니다. 열심을 더하면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보시기에도 그럴까요? 내가 하는 그 열심이 누구를 위한 열심이고, 무엇을 위한 열심인지 하나님은 다 알고 계실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인간들이 행하고 있는 종교적 열심을 온전하고, 바른 열심이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종교적 열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 책망하고 비판하는 일을 많이 했습니다. 그들에게 독설로 말씀하실 때가 훨씬 더 많았습니다.

그리고 오히려 종교적 열심을 가진 사람들이 삐딱하게 보고 있는, 수로보니게 여인이나 백부장의 믿음을 칭찬하셨고, 이들의 믿음이 참으로 크다는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어떻게 보면,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의 믿음과 영성은 더욱 성숙해져야 하고, 그 성숙함을 통해 많은 영향력이 나타나야 함에도, 과일보다 우리의 신앙은 더 빨리 상해가는 것 같습니다.

교회에서 가만히 보면, 어제까지만 해도 그렇게 좋다고 하던 사람들이 작은 문제 하나 때문에 완전히 원수가 되어 버리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요? 성경에서 그렇게 위대하다고 말하는 다윗도, 솔로몬도 그렇게 타락할 수 있을까요?

그런데 그럴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좋게 시작했지만, 나쁘게 마무리될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처음에 잘 시작했던 많은 신앙의 거목들조차, 마지막을 아름답게 마무리 하지 못해 얼마나 많은 사회적 비판을 받고 있습니까?

주변에서 다 좋은 신앙이라고 했음에도, 많은 사람들이 넘어집니다. 이 일이 그들만의 문제이겠습니까? 곧 나의 문제임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서상진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위원, 미래로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