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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아내가 헬스장을 다니기 시작하였다. 개인교습을 받았는데, 헬스 트레이너의 설명으로는 좌우 근육의 비대칭이 심하다고 하였다. 실제로 아내는 한 쪽으로 몸을 뒤트는 습관 때문에 만성적인 근육통을 겪고 있었다. 걷는 것 조차 힘이 들 정도로 기능적 저하도 경험했다. 그러나 운동을 통해 좌우 비대칭을 교정하면서 이러한 증상들이 많이 호전되었다.

사람의 몸은 좌우가 대칭적이다. 왼쪽과 오른쪽 중에 어느 한쪽이 강해진다고 전체 건강이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만약 두 다리 중 한 쪽이 더 길다면, 그 사람은 걷는데 장애가 생길 것이다. 본인은 치과의사로서 환자들에게 설명할 때 양쪽 턱을 다 사용하여 씹어야 한다고 말한다. 아직 가부에 대한 논란은 있지만, 한쪽으로 씹는 습관이 전체를 망친다는 이론이 있다. 한쪽 턱으로 씹는 습관을 가지면, 척추와 두개골 중 한쪽으로 압력이 집중되고, 결국 전신이 다 비틀어져서 각종 문제가 생긴다는 것이다. 필자는 이에 완전 동의하지 않지만 상당 부분, 그러한 현상이 생길 수 있다고 믿는다. 편측저작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한쪽 볼이 두꺼워져서 얼굴의 좌우비대칭이 있는 것은 물론이고 충치, 치아파절, 치주질환 등이 잘 생기는 것을 볼 수가 있다. 건강에 있어서도 한쪽으로 치우치는 것은 좋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여호수아서 1장 7절을 보면서 올바른 신앙의 모습을 생각한다.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자세는 정말 중요하다. 이는 다양한 측면에서 적용될 수 있다. 예전에 어떤 선교사님의 간증을 들은 적이 있는데, 그분은 빌리 그래함의 설교를 듣고, 가족 중 자신만 예수를 영접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성경에 예수를 믿으면 핍박을 받는다는 말씀을 보았고, 어느 날 형이 교회 가지 말라는 말을 할 때 ‘드디어 핍박이 오는구나’ 생각해 죽일 테면 죽여 보라는 식으로 과격하게 반응을 했다는 것이다. 그 때 형에게 죽을 정도로 얻어 맞았다고 하면서, 다시 그 때로 돌아간다면 그렇게 과격하게 반응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하셨다. 충분히 지혜롭게 가족들을 설득하여 평화롭게 교회를 다닐 수도 있었을 거라고 이야기 하셨다. 성경에는 싸움에 대한 말씀이 있지만 화평에 대한 말씀도 있다.

필자가 어느 날 기독교 라디오 방송을 듣는데, 어떤 고등학생이 신앙생활을 하다 보니 세상의 것들이 무가치해 보여서 공부를 안 하더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이 또한 한 쪽으로 치우친 잘못된 신앙이다. 신앙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맞다. 바울도 세상의 가치 있는 모든 것을 배설물처럼 버렸다고 하였다. 그러나 바울은 또한 데살로니가후서에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고 말씀하고 있다.

예수님 시대에도 많은 종교인들이 한 쪽으로 치우친 기형적인 신앙생활을 했다. 그것을 지적하는 부분이 누가복음 11장 42절에 나온다.

“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의 십일조는 드리되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버리는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신앙의 본질인 사랑의 마음은 잃어버리고, 겉모습에만 치중한 모습을 지적하신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지적을 하시면서도 본질과 형식 모두 중요하다고 강조하신다.

기형적인 신앙은 참 무섭다. 예수님을 죽인 자들은 그러한 기형적인 신앙 때문에 결국 예수님을 살해한 것이다. 기독교 신앙을 빌미로 악행을 저지르는 경우도 있다. 마녀 사냥도 그러했고, 남아메리카 등 식민지 침략도 하나님의 이름으로 악행을 저지른 역사들이다.

건강에 대한 시각도 균형이 필요하다. 신앙인 중에서도 불치의 병에 걸려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을 위해 기도를 할 경우, 어떤 이들은 기도해서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생각할 수 있다. C. S. 루이스의 회고를 보면, 유년 시절 어머니를 위해 기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돌아가신 기억 때문에 신앙심을 잃었다는 일화도 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의 병이 기도해도 낫지 않는다. 그런데 가끔 불치병이 낫는 경우가 있다. 신앙이 없는 사람들은 이를 거짓된 조작이라며 믿지 않지만, 필자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다양한 기적의 체험담을 들어보았다. 기도를 하고 나서 암이 낫는 경우, 장님이 눈을 뜨는 경우, 걷지 못하던 자가 걷는 경우 등의 기적이다.

어떤 신앙인들은 그런 기적을 보면서 믿으면 다 된다는 식으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예를 들어, 목사님이 말기 암환자에게 ‘나을 수 있다고 믿어야 합니다. 믿어야 낫습니다’ 라고 이야기하는 경우다. 성경에는 기도했는데 병이 낫지 않는 이야기도 나온다. 바울이 육체의 가시를 놓고 기도한 예가 대표적인데, ‘믿으면 무엇이든지 가능하다’는 것도 한 쪽으로 치우친 신앙이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섭리가 있고, 사랑으로 베푸시는 은총이 있는데, 은총에만 치우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기도해도 소용 없다’는 식으로 체념을 한다면 뭔가 가슴이 허전해짐을 느낀다. 건강을 위한 기도를 신앙적으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필자는 야고보서 5장 15절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 말씀을 두고 고민한 적이 있다. 대학생 시절만해도 믿음만 가지면 어떤 병도 나을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이야기 하는 목사님들이 주변에 많이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병은 의사가 고쳐야지 교회가 병을 고치려고 붙들고 있으면 안 됨을 깨닫게 되었다. 병원에 가면 마치 믿음이 부족하고, 교회에서 기도를 하면 믿음이 충만한 것처럼 오해하여, 병원에 가지 않고 병을 악화시킨 사례들을 주변 의사들로부터 많이 들었다. 충치만 해도 그렇다. 충치는 절대 기도한다고 낫지 않는다. 나는 충치를 놓고 낫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사람이 있다면 바보라고 부를 것이다. 믿음은 신앙에서 매우 중요한 덕목이다. 하지만 과도하게 맹목적인 믿음을 강조하는 사람은 도리어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불치병이 있는 경우와 정신병이 있는 경우가 특히 심한 것 같다. 정신병 치료를 위해 약을 먹는 것은 마치 믿음이 부족한 것처럼 보여 죄책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그렇다면 위의 야고보서의 말씀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문맥을 보면 이 구절의 요지는 병의 치유보다 구원에 있음을 알 수 있다. 기도를 하여 병이 치유가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겠으나, 기도는 사람을 구원하는 힘이 있고, 아픈 사람을 위해 기도해 주는 것은 사랑의 표현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반대 경우의 문제도 있다. 기도로 병이 낫는 기적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데 이를 부정할 수는 없는 일이다. 아직 과학적으로 밝혀지지 않았으나 하나님께서 어떠한 원리로 우리를 돕고 계실지 모른다. 또 신앙은 미신적이라고 취급하고 의술만 의존하려는 생각도 문제가 있다. 압구정에서 개원한 어떤 정형외과 의사의 간증을 들어 보면, 알코올 중독으로 폐인처럼 살다가 복음을 알게 된 후 알코올 중독을 극복하고 삶이 변화되어 훌륭한 의사가 되었다고 한다. 복음 없이 약만 먹어서는 알코올 중독을 극복하지 못했을 것이다. 많은 질병들이 죄적인 습관과 관련이 있는데, 기도 없이 이를 극복하기 어려운 경우들도 있다. 그리고 ‘기도를 할 때 건강해진다’는 주장들도 있는데, 정신적 안정, 호르몬이나 신경전달물질의 변화, 심혈관계 강화 등을 이유로 제시하고 있다. 좀 더 근거가 필요하지만 기도 자체가 건강을 강화시킬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병든 자에게 의사가 쓸모 있다’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 기도로 수 많은 병자를 치유하는 기적을 보이셨지만, 기본적으로는 의사가 병을 고쳐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계셨던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은 무질서한 분이 아니라 조화로운 분’이라고 말하고 있다. 건강의 측면에서도 우리는 조화로운 시각을 가져야 할 것이다.

신명섭 치과원장 (성누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