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 햇살 산책 걸음 길 믿음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 할례나 효력이 없으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갈 5:6)”.

믿음이란 단순한 지적 동의가 아니라, 사랑의 행위로 나타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신뢰하고 살아가는 삶을 의미합니다.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살전 1:3)”.

바울은 2차 전도여행 때 세웠지만 오래 머무르지 못한 데살로니가교회가, 믿음과 사랑과 소망이 조화된 교회로 성장한다는 소문을 듣고 그들을 격려하고 재림을 대망하는 삶에 더욱 정진하도록 하기 위해 데살로니가전서를 썼다고 합니다.

밤 사경에 주님께서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놀라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했던 제자들이 소리쳤을 때, 주님께서는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 때 베드로가대답하기를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라고 했습니다.

주님께서는 “오라” 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주님의 말씀에 당장 물 위를 걷는 기적을 경험하며 예수님께로 갔습니다. 하지만 그는 바람을 보며 무서워하다 결국 물에 빠져가게 됐습니다. 베드로는 심한 불안감과 무서움에 젖어, 주님께 구원해 달라고 애원을 합니다.

그때 주님께서는 즉시 손을 내밀어 베드로를 붙잡으시면서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고 하십니다. 그리고 베드로의 손을 잡고 배에 함께 올랐을 때, 바람이 그치고 평안이 찾아왔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이 말씀에서, 베드로의 예수님을 향한 사랑을 보게 됩니다. 그 중심에 베드로의 행동이 무척 인상적입니다.

주님이시라는 말을 듣자 그래도 예를 갖추려고 겉옷을 두르고는 물 위로 뛰어들어 주님께 가려는 그 모습, 예수님을 향한 사랑이 얼마나 순수하고 충만한지, 그 장면을 상상해 보면 의아하기도 하지만 절로 웃음이 터저 나올 것 같습니다.

사실 성경 몇몇 구절을 읽다 보면, 베드로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지도자의 자질과는 약간 거리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한 마디로 인간적인 여러 감성이 충만한 베드로는 2% 부족하고 나약하게 보이기도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베드로가 품고 있는 충만한 사랑을 보셨기에 양들을 맡기셨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그리스도인은 사랑으로 행동하는 믿음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앞서 갈라디아서 5장 6절에 나와 있는 말씀처럼, 하나님께 받은 사랑을 각자의 삶으로 녹여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 신앙인들은 예수님처럼 완전한 사랑을 할 수 없기에, ‘사랑으로써 행동하는 믿음’으로 살고자 하는 결심을 세웠음에도 한계를 경험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주시는 말씀에서, 주님이시라는 말을 듣고 곧바로 물에 뛰어드는 베드로의 순수하고 열정적인 사랑에 미치지 못하는 나의 사랑을 발견하고 돌아보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그 사랑을 키워갈 수 있는 내일이 있기에,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러 주시고, 모두에게 사랑의 씨앗을 심어 주셨습니다.

우리는 그 씨앗을 묻어만 두지 말고, 저마다의 방법으로 하나님께 베푸신 은혜로 그 씨앗에 싹을 돋우고 자라게 해야 하겠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일을 행할 수 있는 힘도 ‘사랑’이지만,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모든 것들도 ‘사랑’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그 사랑의 가장 큰 열매가 바로 ‘부활’ 신앙입니다.

주님께서 부활을 통해 좌절에서 희망으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가는 사랑을 주셨으니, 이제 우리도 힘을 내야 할 때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밝히신 사랑의 빛으로, 발길이 닿는 곳곳을 밝히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 땅에 복음이 들어올 때, 많은 믿음의 선배들이 거듭되는 거친 핍박과 탄압, 그리고 순교 속에서도 이에 굴하지 않고 전심전력을 다해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며 복음의 씨를 뿌렸던 것처럼, 믿음의 선배들의 그 숭고한 정신과 사랑을 기억하며 행동으로 나서야 할 때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많이 받았으니 주님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겠노라고 강단에서 소리치는 목회자들을 향해, 순교자들은 지금도 애타게 기도하고 있습니다. “사랑은 실천하는 것이다.” 입으로만 외치는 것이 사랑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지금 이 나라는 물론 전 세계에서 마귀 사탄들의 놀음이 충만해 있습니다. 동성애와 낙태, 그리고 마약과 강도, 성폭력과 살인, 테러 등이 춤을 추고 있는 현실입니다. 참으로 눈 뜨고 볼 수 없을 만큼 타락한 땅으로 변해버려, 어디 한 군데 정상을 찾아 볼 수가 없을 지경입니다.

입법, 사법, 행정, 교육, 문화, 체육에 이르기까지, 진정한 사랑으로 국민들을 위하여 봉사를 해야 할 공공기관들마저 믿을 수 없는 나라가 되었는데도, 침묵으로 일관하며 정부의 눈치 보기에 급급한 교회 지도자들과 그리스도인 정치인들을 봅니다. 그들에게는 이 땅 순교자들의 함성이 들리지 않는 것입니까?

5월은 푸르고 푸른, 아름다운 계절입니다. 하지만 지금 어린 학생들과 청소년들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나요. 무상 급식을 비롯하여 무상 여행, 무상 교복까지…, 그저 무상으로 일관할 뿐입니다.

이효준 장로.
▲이효준 장로.
정작 그들을 사랑으로 키워갈 어떤 프로그램이나 제도는 없습니다. 그저 퍼주기식 교육으로, 이 나라 미래를 망칠 셈인지….

불의를 보고 칼을 빼든 베드로처럼, 우리 신앙인들은 이럴 때 정의를 위해 나서야 합니다. 소리를 낼 때는 ‘한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에 목숨을 걸고 반대했던 많은 순교자들의 외침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제는 행동으로 나서야 하겠습니다.

불의와 타협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특히 공산당과의 타협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결코 그들의 속임수에 넘어가서는 절대로 안 될 것임을 명심, 또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오늘 말씀처럼 주님을 믿고 신뢰해야 합니다. 폭풍이 이는 물결 위를 걸어오라고 말씀하시는 주님을 믿고 행동할 때, 어떠한 험한 일을 만나도 헤쳐 나갈 수 있는 사랑과 믿음이 생길 것입니다.

이효준 장로(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