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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은 ‘문심혜두’케 한다

문심혜두(文心慧竇)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글 속에 새겨진 뜻을 잘 구별해서 알면 지혜의 문(구멍)이 열린다”는 뜻이다.

여기서 문심(文心)은 ‘글자 속에 깃든 뜻과 정신’이고, 혜두(慧竇)는 ‘슬기 구멍’이다. 이 말은 책을 통해 열심히 익히고 외우다 보면, 어느 순간 글이 마음을 움직여서 슬기구멍이 뻥 뚫리게 된다는 뜻이다.

책을 읽는 목적이 바로 ‘문심혜두’에 있다. 특히 문심혜두가 인문학 독서를 하는 이유다. 열린 사람이 아니면 닫혀진 사람이다. 닫혀지지 않은 사람이 되려면 열려야 한다. 열리는 통로가 인문학이다.

설교자는 열린 사람이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설교자만큼 닫힌 사람이 없다. 열렸다는 말은 하나님은 물론 세상과도 열린 것을 뜻한다. 설교자는 하나님께는 무한정으로 열려 있다. 하지만 세상과는 꽉 닫혀 있다.

나도 닫혀진 사람이었다. 하지만 닫혀진 사람인 줄 몰았다. 완전히 열려진 사람인 줄 알았다. 닫혀진 나를 열려지도록 해 준 것이 인문학 책이었다.

닫힌 사람으로 사니, 인생을 열 수 없었다. 세상에 닫힌 인생은 세상에서 인생을 열 수 있다는 사실을 인문학 독서 후 깨달았다.

열린 삶을 살아야 한다. 설교자는 가장 크게 열린 사람이어야 한다. 내가 닫혀 있으니 교회의 문을 열 수 없다. 교회의 문을 열지 못하니 세상에 영향력을 미칠 수 없다. 결국 교회는 한 모퉁이에서 듣지 않는 세상에 진리를 외치게 된다.

결혼 후 아내가 인문학 책을 읽기를 바랐다. 그때마다 신앙 좋은 말만 했다.

“목사가 성경 책이면 충분해! 더 읽는다면 신학 책이면 넘쳐! 세상 책(인문학 책)을 읽으면 신앙이 떨어져서 안 돼! 제발 세상 책은 보라고 말하지 마! 그런 말 하면 당신이 미워져!”

친구도 내게 ‘책을 읽으라’는 말을 종종 했다. 그럼 나는 “목사가 기도하고 전도하면 되지 책을 왜 읽어야 하는데!” 라고 대꾸했다.

사역할 때도 모든 설교자들은 성경만 읽었다. 성경을 읽으면 사역하는 것으로 인정하지만, 책을 읽으면 다른 짓 하는 것으로 취급했다. 그런 환경이니 성경만 주로 읽었다.

교인들로부터 설교를 못한다는 말을 듣고, 고민과 고민 끝에 책을 읽기 시작했다. 내가 주로 읽은 책은 인문학 책이었다. 그 책을 10년간 5,000권 이상을 읽으니, ‘문심혜두’하게 되었다. 그 이후 닫힌 인생에서 열린 인생으로 살고 있다.

인문학 독서를 해야 하는 이유

설교자들이 다음과 같이 질문을 종종 한다.

“왜 인문학 책을 읽어야 하는가?” “읽되, 어떤 인문학 책을 읽어야 하는가?”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은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인문학 책을 읽을 필요가 있냐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그 많은 인문학 책 중 어떤 책을 읽어야 하냐는 것이다.

이 질문으로 그치면 인문학 책을 안 읽게 된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질문을 한다. ‘인문학 독서가 사역과 설교에 도움이 되는가?’ 이다.

‘물론이다’라고 대답한다. 그것은 목회와 설교는 사고력의 깊이와 넓이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이다. 인문학은 사고력을 깊고 넓게 해 준다. 그러므로 설교자는 반드시 인문학 독서를 해야 한다.

설교자가 인문학 독서를 해야 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설교는 삶과 연결이기 때문이다.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과 교인의 삶과의 연결이다. 설교자의 삶과의 연결이다.

둘째, 설교는 삶과 구체적으로 연결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탈무드와 인문학

탈무드와 인문학은 깊은 상관성을 지닌다. 성경은 구원에 대한 책이다. 삶에 대한 부분이 상세하거나 구체적이지 않다. 어쩌면 막연하다. 그 결과 설교자의 설교가 삶과 연결되지 않는다. 교인과 아무런 관계 없는 추상적인 이야기가 된다.

유대인이 성경 외에 탈무드를 경전처럼 여기는가를 알면, 인문학 독서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

유대인에게 경전은 구약의 토라다. 유대인은 토라 다음으로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탈무드(Talmud) 다. 탈무드는 ‘교훈’이란 뜻으로, 유대인 율법학자들이 사회의 모든 사상에 대하여 구전, 해설한 것을 집대성한 책이다.

이 책은 구약 성경의 약 27배 분량이나 된다. 이 많은 분량의 책이 5천 년에 걸쳐 유대인들의 정신적인 지주 역할을 해 왔다.

설교자들은 성경만으로 설교하지 않는다. 바른 해석을 위해 신학자들이 해석하고 설명해 놓은 주석을 참고 한다.

마찬가지로 설교는 성경 해석이나 설명이 아니다. 성경에서 메시지를 추출해 삶과 연결시키는 것이다. 하나님을 알려면 성경을 펼쳐야 하지만, 사람을 알려면 인문학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그 이유는 성경은 삶의 큰 원리만을 주로 다루기 때문이다. 소소한 부분은 인문학 책을 통해 메꾸어야 한다.

설교자는 인문학을 친구처럼 가까이 해야 한다. 인문학은 설교자가 설교를 할 때 구체적으로 묘사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인문학은 설교자에게 추상적이지 않고 현재적이고 실제적인 감각을 갖게 해준다.

인문학은 설교의 방법을 배울 수 있는 통로다

나는 설교의 많은 부분을 인문학의 도움을 받았다. 나의 설교에 관한 책을 집필에서 다음과 같은 것들은 인문학 도움이 컸다.

첫째, 질문을 핵심을 한 설교를 위한 묵상법
둘째, 서론을 낯설게 하는 법
셋째, 적용을 메시지로 하는 법.
넷째, 설교 글쓰기
다섯째, 설교 구성 등이다.

결국 인문학은 설교에서 이방인이 아니라 유대인이다.

한양대학교 교수인 정민도 그의 책 《체수 유법집》에서 인문학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인문학은 원리이지 당장 실용 가능한 매뉴얼이 아니다.”

인문학은 설교 원리에 도움을 준다. 또한 설교의 방법에는 더 많은 도움을 준다. 그러므로 설교자는 인문학 독서가 필수적이다.

인문학이 가장 도움이 되는 것은 설교에 있어 ‘적용’이다. 설교자들이 설교에서 가장 취약한 것 중 하나가 적용이다. 나는 설교자들이 적용이 취약한 이유가 인문학의 약함도 그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설교자는 인문학은 단순히 인문학으로 그치지 않는다. 설교자는 인문학을 독서할 때, 자신만의 설교를 할 수 있는 통찰력을 얻을 수 있다.

설교자가 인문학 독서를 해야 하는 세 가지 이유

설교자가 인문학의 중요성을 알았다면, 이젠 인문학 독서를 해야 한다. 설교자가 인문학 독서를 해야 하는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인간과 세상을 이해하기 위함이다.

전에는 진리를 이야기하면 관심을 가졌다. 이제는 자신과 상관이 있어야 관심을 갖는다. 미국의 경제학자이자 문명비평가인 제러미 리프킨은 21세기는 ‘공감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말한다. 이 말은 사람은 공감되지 않으면 진리일지라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야기는 진리가 아니라, 자기와 연결된 이야기다. 설교에서 교인이 좋아하는 순서는 설교자의 자신 이야기, 우리(공동체)의 이야기, 성경 이야기 순이다.

설교자가 보기에는 성경 이야기가 첫 번째여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인간은 인간의 이야기에 관심이 있다. 그러므로 지혜롭게 교인과 공감을 끌어낸 뒤 진리로 이끌고 가야 한다.

강아지들은 강아지들에게 호기심을 보인다. 아기들은 아기들에 호기심을 보인다. 젊은이들은 젊은이들끼리 어울린다. 마찬가지로 인간은 인간에게 관심을 보인다.

그러므로 공감대가 형성이 안 되면 자신과 무관한 이야기가 된다. 진리일지라도 공감되지 않으면 남의 이야기일 뿐이다. 그러므로 공감을 하기 위해 인문학 독서를 해야 한다.

둘째, 질문하기 위함이다.

인문학은 질문하는 법을 배우는 학문이다. 저건 뭐지? 왜 그렇지? 어떻게 할까? 등의 질문을 하게 한다.

설교자가 가장 많이 해야 할 질문은 ‘내가 지금 잘 가고 있는가?’ 이다. 질문을 해야 하는 이유는, 질문을 해야 답을 도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라면 질문을 할 때 비로소 답을 찾을 수 있음이 마땅하다. 그러므로 질문을 효과적으로 할 수 있어야 한다.

질문을 하면, 다음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그 이유는 의심이 질문을 불러오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야 하지?’라고 의문만 품고 있으면 결국 오리무중에 빠진다. 하지만 ‘어떻게 할 때 하나님을 잘 믿을 수 있나?’라고 질문을 하면 명답이 도출하게 된다.

질문하는 이유는 남과 차별화를 가져와야 하기 때문이다. 차별화 없이는 좋은 결과를 만들어낼 수 없다. 전에는 맞음과 틀림의 문제였다. 지금은 다름의 문제다. 차별화를 만들려면 질문해야 한다.

예전에는 컬러가 다르고 사이즈가 다르고 퀄리티가 다른 것이 경쟁력이었는데, 지금은 가치와 철학이 달라야 경쟁력이 생긴다.

사람들은 표피로 흘러가는 것 말고 좀 더 근원적인 깊이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인문학이 요긴해지는 접점이 여기에 있다.

‘상동구이(尙同求異)’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그 뜻은 “같음을 숭상하되 다름을 추구한다”이다. 그렇다. 진리여야 한다. 하지만 남과 달라야 한다. 이런 설교를 해야 하는 시대다.

셋째, 시대에 맞는 설교를 하기 위함이다.

신학이 설교의 내용이라면, 인문학은 설교의 옷이다. 신학이 총론이라면 인문학은 각론이다. 삶에서 더 필요한 것은 각론이다. 삶의 작은 조각들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한 분야를 10년 파면, 이미 좋은 우물 안에 들어간 개구리와 같은 꼴이 된다. 설교자는 하나님을 소유했으니 세상에서 가장 크고 넓은 생각의 소유자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는 100% 가까이 착각이다. 이미 가장 좁은 폭의 사람이 되어져 있다.

시대는 획일화된 사람을 원하지 않는다. 신학의 전문가에게 기대감을 갖지 않는다. 시대는 진리를 폭넓게 깊이 있는 통찰력을 지닌 융합된 설교자를 원한다.

설교자는 인문학 독서를 해야 한다. 인문학 독서를 할 때, 설교자의 가장 약점인 시대와 함께 하는 설교를 할 수 있다.

연세대 명예교수이자 100세에도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는 김형석 교수는 설교자들이나 교인들에게 하는 말 중 한 가지가 독서를 하라는 것이다.

“목사들은 교리만 말하고 교인들은 설교만 듣고 독서를 안 해. 그 결과 사람들을 무신론·인문학에 빼앗겼다”고 한다.

슬픈 말도 덧붙인다.

“스님들이 쓴 책은 베스트셀러가 많은데 신부님 목사님 책은 아니에요. 스님들은 인생을 이야기하는데, 목사님들은 교리만 말해요. 신앙을 가진다는 것은 예수님 말씀을 인생관과 가치관으로 삼는다는 것이에요.”

인터넷 서점 알라딘은 책 마다 세일 포인트(Sale Point)를 매긴다. 세일 포인트를 보면 사람들이 관심을 알 수 있다. 김형석 교수의 말처럼 혜민 스님은 세일 포인트 200,000점 전후로 책이 팔린다.

그러나 기독교는 1등이 세일 포인트 50,000점을 넘기기 힘들다. 보통 10,000점이면 1등이 가능하다.

책에서 이런 현상이 야기되는 기독교의 인문학에 대한 부재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불교에 비해 성직자 수는 기독교가 훨씬 많다.

‘문화정책백서’에 따르면 2005년 12월 현재, 개신교의 성직자 수는 12만 4,310명으로 불교(4만 1,369명), 가톨릭(1만 3,704명), 원불교(1만 1,190명)을 모두 합한 수(6만 6,256명)의 2배 이상 된다.

숫자만 많으면 뭐하나? 불교보다 세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설교자가 거의 없는데 말이다.

설교자는 시대에 맞는 글을 쓸 수 있어야 한다. 책이 주는 영향력은 엄청나다. 하나님을 이야기하는 설교자가 인간만을 이야기하는 불교에 밀린다는 것은, 설교자의 삶과 사역을 체크해야 한다는 뜻이다.

김도인 아트설교연구원
▲김도인 목사. ⓒ크리스천투데이 DB
‘인문학 책’, 어떤 책을 읽어야 하는가

설교자들은 많은 책을 읽는 ‘독서광’이어야 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설교의 중요성은 눈에 띄게 증대될 것이다. 그렇다면 책과 가장 가까운 친구가 되어야 한다.

나는 책을 신간 위주로 읽는다. 책 읽는 곳은 서점과 카페, 그리고 교회다. 이젠 책이 없어 못 읽는 시대가 아니다. 책의 중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설교자의 인식이 문제다.

‘인문학 책’은 서점에서 엄청나게 많이 볼 수 있다. 여기서 인문학 책을 소개한다. 선정 기준은 없다. ‘아트설교연구원’에서 설교자들이 반응이 좋았던 책을 기준으로 선정했다. 책 선정은 인문학 책을 위주로 했다. 고전과 소설 등은 제외했다.

책을 선정할 때 2010년 이후에 나온 책을 중심으로 했다. 그리고 양해를 구하는 것은, 모두 적을 수 없었기에 생각나는 것들을 위주로 적었다.

책을 소개한 뒤 ‘등’이란 말을 쓴 것은 그 작가의 책을 더 읽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마지막으로 책의 나열은 중요도가 아니라 무작위다. 필자의 책도 회원들이 좋다고 해 포함시켰다. 책 소개는 아래와 같다.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총,균,쇠》, 《어제까지의 세계》 등
송정림의 《참 좋은 당신을 만났습니다》, 《감동의 습관》 등
정호승의 《내게 힘이 되어준 한 마디》 등
정철의 《불법사전》, 《카피 책》 등
김은주의 《1센치미터》, 《1센치 플러스》 등
박웅현의 《여덟 단어》, 《책은 도끼다》,
이덕일 《왕과 나》, 《근대를 말하다》 등
박재순의 《나는 나답게 너는 너 답게》, 《삼일운동의 정신과 철학》 등
데이비드 메이든의 《처음 읽는 유럽사》
위기철의 《생각의 힘은 세다》
칩 히스와 댄 히스의 《스틱(Stick)》 등
정진홍의 《인문의 숲에서 경영을 만나다》 등
최진석의 《인간이 그리는 무늬》, 《탁월한 사유의 시선》 등
이외수의 《글쓰기 공중부양》
최인철의 《프레임》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 《호모 데우스》 등
장영희의 《이 아침 축복처럼 꽃비가》 등
김준태의 《군주의 조건》, 《왕의 경영》 등
장석주의 《철학자의 사물들》 등
강신주의 《감정수업》 등
강대진 김상근 외 《인문학 명강》
주경철의 《대항해시대》, 《유럽인 이야기》
제러미 리프킨의 《공감의 시대》, 《소유의 종말》 등
이지훈의 《혼,창,통》, 《단》
로버트 치알디니의 《설득의 심리학(1, 2)》
김경원, 김철호의 《국어가 밥 먹여준다 1,2》
강승헌 외 《인문학 카페 인생강의》
신광철의 《극단의 한국인 극단의 창조성》, 《몸에 새겨진 인생지도》 등
다니엘 핑크의 《파는 것이 인간이다》. 《새로운 미래가 온다》 등
김문조 외 《한국인은 누구인가》
이인식의 《융합하면 미래가 보인다》
김경집의 《청춘의 고전》, 《김경집의 통찰력 강의》 등
김종식의 《셀프파워》
김경윤의 《처음 만나는 동양고전》, 《처음 만나는 우리 인문학》 등
니얼 퍼거슨의 《시빌라이제이션》, 《위대한퇴보》
스티브 솔로몬의 《물의 세계사》
박재희의 《삼분고전 1.2》, 《고전의 대문》 등
정순훈의 《원세와 방세》
로널드 트위킨의 《행복의 역습》
정민의 《일침》, 《미쳐야 미친다》 등
이인의 《생각을 세우는 생각들》
박훈의 《메이지 유신은 어떻게 가능했는가》
장사오형의 《느리게 더 느리게 1,2》, 《인생의 품격》
전옥표의 《이기는 습관》
한근태의 《고수의 질문법》, 《재정의 사전》 등
배철현의 《수련》, 《심연》 등
조윤민의 《조선에 반하다》
조던 피터슨의 《12가지 인생의 법칙》
조윤제의 《다사의 마지막 공부》, 《말공부》 등
강준만의 《인간사색》, 《글쓰기가 뭐라고》 등
조현의 《우리는 다르게 살기로 했다》
김도인의 《설교는 인문학이다》, 《설교는 글쓰기다,》, 《이기는 독서》, 《아침의 숙제가 저녁에는 축제로》, 《아침에 열기 저녁에 닫기》 등

김도인 목사/아트설교연구원 대표(https://cafe.naver.com/judam11)
저서로는 《설교는 인문학이다/두란노》, 《설교는 글쓰기다/ CLC》, 《설교를 통해 배운다/ CLC》, 《출근길, 그 말씀(공저)/ CLC》, 《아침에 열기 저녁에 닫기/ 좋은땅》, 《아침의 숙제가 자녁에는 축제로/ 좋은땅》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