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훈
▲이름없는교회 예배 모습.
고난주간이 지나고 있다. 많은 교회와 공동체가 고난주간을 맞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을 기념하며 여러 가지 묵상의 도구들을 마련하여 소개하고 있다.

고난주간을 보내면서, 과연 성경이 말하는 고난주간의 의미를 건강하게 묵상하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왜냐하면 우리의 모든 공동체는 성경을 근거로 모이는 신앙 공동체이기에, 성경이 말하는 의미를 잘 묵상하고 있는지가 너무 중요하고, 그렇지 못했을 때 공동체가 영적인 병이 들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단체에서 실제로 적용한 묵상을 소개한다. 고난주간에 대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고통을 당하시며 죽으셨다. 우리는 이 십자가의 고통을 본받고 따라야 하기 때문에, 고난주간을 맞아 우리도 그 고통을 함께 경험해야 한다”며, 한 주간 금식과 핸드폰 사용금지, 친구 만나기 금지, 금전거래 금지, 그리고 성경 외의 책을 보지 않도록 했다.

물론 예수님만 생각하고자 하는 의도는 이해가 되나, ‘고통’ 자체에 너무 집중하는 모습으로 보여 안타까웠다.

필자의 아들이 어렸을 때, 어떤 유명한 어린이 캠프를 다녀왔다. 선생님이 찍어 보내준 사진에는 아들이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고 있었다. 그래서 아버지로서 너무 감사했다.

그리고 아들이 캠프에서 돌아왔다. 필자는 아들에게 얼마나 은혜를 많이 받았는지 기대하며 물었다. 그런데 아들이 대답은 필자로 하여금 심각한 우려를 가지게 했다.

“아빠, 분명히 은혜는 받은 거 같은데 너무 무서웠어. 목사님이 설교할 때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는 장면을 설명하는데, 너무 잔인하고 고통스러운 장면들을 2시간 정도 얘기했어.

그래서 아이들이 너무 무섭다고 했어. 설교 끝나고 기도하는데, 그 고통스러운 장면들이 생각나면서 너무 무서웠고, 그래서 울었어. 그런데 다른 친구들도 나처럼 무서워서 울었다고 했어.”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 고통을 묵상하겠다고 자신을 고통스럽게 할 때가 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고통으로 우리 죄의 형벌을 대신 받으셨지만, 우리에게 그 고통을 느껴보라고 말씀하시지는 않았다.

우리는 예수님의 고통보다 고통 속에 담겨진 나의 죄를 살펴보며 죄 죽임의 은혜를 위해 기도해야 하고, 아울러 십자가의 고난을 통한 구원 앞에 감사해야 한다.

“성만찬과 세족식? 고통 자체보다 고통의 의미 묵상하도록 주신 은혜”

예수님은 유월절에 성만찬을 베푸시며 세족식을 하셨다. 앞으로 당할 십자가의 고난을 이렇게 묵상하라는 의미였다.

만약 앞으로 당할 고통을 느끼라고 하신 거였다면, 세족식이 아닌 몽둥이를 주고 서로 때려보라고 했을 것이다. 아니면 고난주간마다 십자가를 집에 갖다놓고 하루동안 매달려 있어보라고 했을 수도 있다.

지금 우리는 사순절을 지나 고난주간 막바지에 들어섰고, 부활절을 앞두고 있다. 우리는 무엇을 묵상했는지 다시 살펴보자. 십자가에 못박히는 고통 자체를 묵상하려고 어린 아이들에게 설교하며 채찍질과 못자국, 피흘림의 디테일한 묘사를 통해, 그 고통을 대신 느껴보자는 식으로 묵상하고 있는건 아닌지 살펴보자.

“십자가의 고난 묵상하며 우리 안 죄성 발견하고 회개하는데 집중해야”

우리는 그저 내 안의 죄성을 발견하려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성경이 말하는 죄가 무엇인지 살피고 배워야 한다. 그래서 우리를 죄에서 속량하신 구원하심에 감사하는데 집중해야 한다.

세족식을 기억하자. 우리는 그 감사의 마음을 갖고, 주변 사람들과 이웃들의 발을 닦아 주어야 한다. 나를 용서하시고 구원하신 예수님의 마음으로, 다른 이들을 겸손과 사랑으로 섬겨야 한다. 그것이 십자가 고난을 묵상하는 이들의 열매이기 때문이다.

고난주간을 보내고 있는 지금도 세상에서는 환난 당한 자, 주린 자, 원통한 자들이 깊은 슬픔 가운데 아파하고 있다. 십자가 고난을 성경대로 묵상한다면, 십자가 사랑이 열매로 맺힐 것이다.

그래서 구약의 다윗처럼, 신약의 예수님처럼, 우리 주변의 이웃들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려는 우리 일상에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그 변화야말로, 고난주간에 예수님이 바라시는 건강한 묵상이다.

지금 우리 손에는 성경이 들려 있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의 눈은 세상을 바라보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의 몸은 세상의 이웃들과 함께 있어야 한다. 필자는 지난 종려주일을 맞아, 고난주간을 선포하면서 성도들에게 이렇게 설교했다.

“금식한다고 가족도 이웃도 돌보지 않고 교회 나와서 매일 기도하는 사람보다, 예수님이 우리 죄를 위해 고난당하시며 사랑을 확증해 주신 것을 묵상하며, 우리 주변 사람들에게 사랑을 전하려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글을 마치며 이렇게 정리하고 싶다.

그래도 금식하고 기도하고 예배하는 것이 맞다. 그런데 사랑의 열매를 가지고 예배하고, 예배했다면 사랑하러 가자. 그래서 사랑없는 예배가 되지 않도록, 지금이라도 내 주변을 돌아보자.

백성훈 목사(김포 이름없는교회, <팀사역의 원리>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