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수 교수
▲서울신대학교 박명수 교수(현대기독교연구소 소장)가 특강하고 있다. ⓒ성시화운동 제공
서울신대학교 박명수 교수(현대기독교연구소 소장)가 15일 아침 순복음강남교회에서 열린 세계성시화운동본부(대표회장 김상복 목사·전용태 장로) 제435회 월요조찬기도회에서 “상해임시정부에 나타난 기독교 정신을 잘 지키는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되도록 기도해야 한다”고 전했다.

이날 ‘임시정부와 기독교’라는 제목으로 특강한 박 교수는 “3.1운동과 임시정부, 1948년 제정된 헌법을 알아야 우리나라를 제대로 알 수 있다”며 “3.1운동과 임시정부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1919년 3.1 기미독립선언서도 중요하지만 임시정부 헌장은 새로 세워지는 나라의 기초가 무엇인가를 정한 설계도이기 때문에 무척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해방 이후 우리나라에는 20개의 시(市)가 있었다. 모든 시에는 서양 사람을 중심으로 미션스테이션이 있었다. 기독교 병원, 기독교 학교, YMCA 같은 기독단체들이 있어서 그 도시의 문화를 이끌어갔다”며 “정신적으로 중요한 새로운 문화가 형성되었는데, 3.1운동도, 105인 사건도, 해방 이후 건국 운동도 미션스테이션에서 시작됐다. 이 미션스테이션처럼 성시화운동이 한국사적인 틀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임시정부는 나라를 만드는 건국운동”이라며 “조선총독부 학무국장이 선교사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조선은 일본의 지방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라고 썼다. 나라를 빼앗긴 후에 민족의 선각자들은 나라를 되찾기 위해 독립운동을 했다”고 말했다.

또 박 교수는 “윌슨의 민족자결주의는 통치자는 피통치자의 동의에 의해서만 통치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미국에서 한국 동포들이 쓴 <신한민보>에 쓴 글을 보면 윌슨의 민족자결주의 원칙에 따라 민주주의 국가를 만들어야 한다고 썼다. 그 중에 윌슨의 제자였던 이승만 박사가 도산 안창호 선생과 함께 이 운동을 해나갔다”고 말했다.

이어 “1919년 2.8 동경 유학생들이 독립선언서를 발표했다. 또한 상해에 있는 한인교회를 중심으로 발표했다. 이것이 국내에 영향을 줘서 3.1운동이 일어난 것”이라고 소개했다.

또 “1919년 4월 11일 상해임시정부는 상해한인교회에 출석하던 여운형, 김철 등 청년들이 참여했다. 그리고 국내에서 파견한 현순 목사들을 중심으로 한 민족 대표들이 상해에 나갔다. 미국에서는 이승만 박사와 도산 안창호가 참여했고, 만주와 러시아에 있는 이들이 상해로 왔다”며 “이는 윌슨 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 정신을 따르는 사람들이 모인 것이다. 그리고 상해임시정부 헌장에 국제연합에 가입을 밝히고 있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그런데 윌슨의 민족자결주의와 볼세비키혁명을 같은 선상에 놓고 설명하고 있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하면서 “평양에서 일어났던 독립운동도 평양신학교 사무엘 마펫 선교를 중심으로 시작됐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상해임시정부는 기독교적인 나라, 민주주의 나라를 만들려고 했다”며 “이승만 박사를 빼놓고 3.1운동을 설명할 수 없다. 윌슨을 상대로 1918년 11월 25일 샌프란시스코에서 대한독립을 주장할 수 있는 인물로 이승만, 민찬호, 정한경 등 세 사람을 대표로 뽑았다. 그래서 러시아에서도, 상해에서도, 일본에서도, 국내에서도 이승만을 중요한 인물로 인식했다. 상해 임시정부에는 언더우드의 양아들 김규식, 안창호, 이승만 등이 주도적으로 참여했다”고 밝혔다.

특히 박 교수는 “상해임시정부 전문에는 ‘신인일치’, 헌장 7조에는 ‘신의 의사에 따라’, 선포문에는 ‘신의 국의 기초가 되니라’ 등 ‘신’이라는 단어가 세 번이나 나온다. 특히 7조에는 ‘신의 뜻에 따라 세워진 대한민국은 국제연합에 가입을 신청한다’고 되어 있다”며 “일부 학자들은 ‘신’을 기독교의 하나님을 말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상해임시정부 의정원의 많은 인물들이 기독교인이었다는 것은 하나님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대한인국민회의 기관지 <신한민보>에는 ‘신’을 ‘하나님’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이것을 영어로 ‘GOD’이라고 번역해 당시 언론사들에게 보도자료로 보냈다. 이런 내용이 조선통독부 불온문서에 담겨 있다”고 했다.

박 교수는 “상해임시정부는 계급을 초월한 보편 민주주주의를 원칙으로 했다. 그리고 3권 분립을 했다. 또한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종교의 자유, 소유의 자유를 담고 있다. 자유민주주의 사회를 담았다”며 “1948년 대한민국 헌법은 1919년 4월 11일 상해임시정부 헌장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3.1운동, 임시정부 100주년 기념사업위원회가 홍보를 하면서 연표를 쓸 때 상해임시정부를 언급한 후, 4.19혁명은 언급하면서 1948년 8월 대한민국 정부 수립은 빠져 있었다”고 지적하고 대한민국 정부수립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박 교수는 “1948년 5월 10일 중앙정부 수립을 위한 국민투표는 아시아 국가에서는 처음으로 실시됐다. 그것을 UN이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적 정부라고 인정한 것이다. 그리고 그해 12월 UN에서 우리나라를 한반도에 세워진 유일한 합법적 정부로 승인을 했다”며 “그렇기 때문에 6.25가 발발했을 때 UN이 참전할 수 있는 명분이 주어졌다”고 말했다.

끝으로 박 교수는 “상해임시정부에 나타난 기독교 정신을 잘 지키는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되도록 기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참석자들은 북한의 비핵화를 위한 남북, 북미 대화가 지속되어 한반도의 평화 정착이 이루어질 수 있기를, 그리고 낙태 예방, 자살예방, 저출산 극복 등 ‘생명존중사회’가 될 수 있기를 기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