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낙태 반대
▲헌법재판소 앞 한쪽 편에서 낙태를 반대하는 시민들이 피켓을 들고 있다. ⓒ김신의 기자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딤후 3:1-5)”.

성경에서 밝히 말씀하듯, 우리는 말세에 고통하는 때에 살고 있습니다. 가면 갈수록 사람들의 죄악이 관영하고, 폭주하는 기관차와 같이 끝을 모르고 질주하고 있습니다.

약 20년 전과 비교해 보면 각종 범죄들도 날이 갈수록 흉악해지고 다양해짐을 알 수 있습니다.

인권이라는 하나의 절대 기준과, 사람들의 죄악을 추구하고자 하는 욕망을 포장한 자유라는 이름이 손잡고, 많은 것들을 실현해 가는 것도 보게 됩니다.

지난 수십 년 사이에 많은 것이 바뀌었고, 바뀌고 있습니다. 한때 왕위를 지켰던 도덕적인 기준을 몰아내고, 인권과 자유(죄를 억압받기를 거부함)라는 기준이 보좌에 앉아 동성애를 풀어주고, 간통죄에 면죄부를 주었으며, 이제는 생명을 해하는 일까지도 더 이상 죄가 아닌 것으로 기준을 옮겨 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창조물로서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한 인격과 영혼을 가진 태아를, 생명이라기보다는 그저 세포 분열중인 과도기에 있는 세포 덩어리로 전락시켜 버렸습니다.

생명은 그 자체로 생명입니다. 정자와 난자가 결합하여 수정된 그 순간부터 생명이 잉태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생명을 허락해 주신 분은 전능하신 하나님입니다. 유전공학이 지금보다 몇 만 배 발전한다 하더라도, 이 사실은 변함이 없습니다.

생명은 스스로 취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이기에 그 자체로 소중한 것이고, 어느 누구도 ‘살인하지 말라’는 제6계명을 범해선 안 되는 것입니다.

에콰도르에 선교하러 갔던 짐 엘리엇 선교사님은 식인 부족인 아우카족이 자신을 공격할 때, 자신은 하나님을 알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고귀한 존재들이고, 지금 죽게 되면 복음을 모르기에 지옥에 갈 것이라며, 가지고 있던 권총을 사용하지 않고 그들 손에 순순히 순교를 당하셨습니다.

오늘날 죄인들의 들끓어 오르는 죄악을 추구하고자 하는 갈망함과 자신들의 죄를 자유롭게 드러내고자 하는 열심이 반영되어, 하나의 참담한 결과물이 나오게 됐습니다.

너무나 쉽게 생명을 대하는 모습들이 드러나고, 태아 문제로 시작해 노인 문제에 이르기까지 죄의 확장성의 결과로, 모든 인격체를 경시하는 지경에 이를까봐 두려운 상황에 직면해 있습니다.

최근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통해 끊임없이 끓어오르는 죄인들의 죄악된 욕망들을 보시면서 하나님께서 그 자비의 얼굴을 숨기시며, 심판을 자처하는 자들을 그 상실한 대로 버려두시는 것은 아닐까 두려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여전히 세상의 유일한 희망은 교회입니다. 비록 빛이 거의 보이지 않는 극심한 어둠 가운데 살고 있고, 소망이 끊어진 것처럼 느껴지지만,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주님의 신실한 종들이 남아있고, 여전히 거듭나 하나님께 순종하기를 기뻐하고 빛의 역할을 감당하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너무 사랑해서 그분을 닮아가길 갈망하는 성도들!

여전히 하나님께서는 복음을 통해 한 영혼 한 영혼을 거듭나게 하시고, 그들을 통해 세상을 변화시키기를 원하십니다.

교회가 참된 복음의 선포를 통해 거듭난 성도들로 가득 채워지고, 이들이 가정과 직장과 사회에 들어가서 세상이라는 거대한 바다에 염분을 공급하여, 썩지 않게 정화 작용을 하고 복음의 빛을 밝게 비추어, 갈 바를 알지 못해 표류하고 있는 세상의 기준을 잡아주는 등대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게 되길 기도합니다.

김성욱
크리스찬북뉴스 명예편집위원, 삼송제일교회 중고등부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