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원하 교수
▲신원하 교수. ⓒ김신의 기자

헌법재판소가 11일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린 이후, 이와 관련한 첫 포럼이 열렸다. 예장 고신 측 학생선교단체인 SFC는 12일 오후 고신총회회관에서 ‘낙태 합법화 관련 포럼’을 개최했다. 특히 첫 발제자였던 신원하 교수(고려신학대학원, 기독교윤리학)는 낙태에 대한 성경적 관점에 대해 전했다.

신 교수는 “최근 헌법재판소가 낙태죄 헌법불합치 판결을 냈다. 현 사회는 태아가 우리와 같은 인격체가 아니라고 보고 있는데, 성경은 태아의 지위와 낙태에 대해 어떻게 말하는지 대표적인 몇 부분을 분석하고자 한다”고 했다.

성경이 말하는 태아의 존재

먼저 신 교수는 “시편 139편은 태아의 가치와 성격을 직접적으로 묘사하거나 암시적으로 시사하고 있다”며 “시인은 ‘주께서 내 내장(장부)을 지으시고 나의 모태에서 나를 만드셨나이다’(시139:13)라고 고백하고 이것이 정말 ‘기묘하다’(시139:14)고 노래한다. 여기서 ‘지으셨다’의 히브리어 ‘카나’는 ‘구성하다’(to form) 혹은 ‘창조하다’(to create)라는 의미이고, ‘만드셨다’의 히브리어 ‘샤칸’은 ‘뜨개질하다’(to knit)는 말로 하나님께서 분명히 의식하시고 직접 생명체로 창조하셨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다.

이어 “시인은 ‘내 형질이 이루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시139:16)라고 하는데, 이 ‘형질’은 히브리어로 ‘골람’이다. 아직 형태가 갖춰지지 않은 덩어리를 뜻하고 좀 더 정확하게 번역하면 ‘분화되지 못한 상태의 존재’다. 굳이 생물학적으로 말하자면 ‘배아(embryo)’라고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여기서 시편의 저자는 전반적으로 하나님이 자신을 아시고 붙드시는 분임을 노래한다. 이는 현재라는 시기에 제한되지 않는다. 시인은 하나님을 의식할 수도 없는, 어떤 기능과 능력이 발현되기 이전, 형질을 이루기 전에도 하나님의 보호와 사랑이 있었다고 노래한다. 이는 모태 안에서부터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인격체 였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 ‘복중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라는 예레미야 1장 5절 성경구절을 언급하며 “이를 통해 인간의 생명은 대상의 능력에 의해 좌우되지 않고, 하나님이 인식하시고 아신다는 사실이 그 존재의 가치를 말해주는 결정적 요소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대상이 가진 기능의 여부와 관계 없이 태아이거나, 임종 직전의 존재이거나, 산모 모두 하나님의 돌봄을 받을 수 있는 인격체라고 보아야 한다”고 했다.

특히 “본문에서 강조해야 할 또 다른 내용은 시인이 모태의 존재를 1인칭 대명사로 표현한 사실이다. 그는 수정된 직후의 자신과 성인이 된 자신을 동일한 존재로 인식하고 있다”고 했다.

다른 생명 가치를 지닌 태아? 낙태 해석에 대한 오류

출21:22 사람이 서로 싸우다가 아이 밴 여인을 다쳐 낙태케 하였으나 다른 해가 없으면 그 남편의 청구대로 반드시 벌금을 내되 재판장의 판결을 좇아 낼 것이니라
출21:23 그러나 다른 해가 있으면 갚되 생명은 생명으로
출21:24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출21:25 데운 것은 데움으로, 상하게 한 것은 상함으로, 때린 것은 때림으로 갚을찌니라

신 교수는 “낙태 지지론자들이 성경을 통해 산모와 태아의 가치가 분명히 차이가 난다고 이러한 모세의 율법 중 일부 구절을 제시했다. 그러나 본문의 구절은 문법적 해석 등 아이의 생명이 산모의 생명보다 열등하다는 근거로 제시하기에 난점을 안고 있다”고 했다.

신 교수는 “낙태 지지론자들은 ‘다른 해가 없으면’의 주체를 산모로만 해석해서 주장을 하는데, 이 구절은 문법적으로 ‘다른 해가 있으면’의 주체가 산모만이 아니라 태아도 포함할 수 있다. 즉 성인과 태아의 생명이 동일한 가치를 지닌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그뿐 아니라 ‘낙태케 하였으나’의 구절에 대한 논란도 학자들 가운데 의견이 분분한 부분이다. 이 단어는 히브리어 ‘야차’인데, 이는 구약에서 12차례 ‘앞으로 나오다(to come forth, to come out)’라는 의미로 쓰인 동사다. 이것은 살아있는 존재의 동작 묘사로 쓰이고, 때문에 학자들은 이 부분이 유산이 아니라 우발적인 충격이 가해져 예정보다 빨리 태어난 것, 즉 ‘조산’(premature delivery, NIV)으로 보고 있다”며 “만약 유산에 관한 율법 조항으로 모세가 명시했으면 이 단어가 아니라 그 의미를 지닌 ‘shachol’(왕하 2:12, 욥 23:26)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어야 개연성이 훨씬 높다”고 했다.

또 “본문에서 그 아이를 가리키는 단어로 히브리어 ‘yeled’를 사용했는데, 이 단어는 어린이(boy, child)를 가리키는 단어”라며 “이것을 통해서 복중이나 밖으로 나온 태아를 어린이와 다르지 않은 가치를 지닌 인격체임을 시사한다고 충분한 해석이 가능하다”고 했다.

이에 신 교수는 “따라서 본문을 통해 유추할 수 있는 신학적 윤리적 진술은 조산을 야기할 수 있는 부주의한 폭력은 비록 실수나 우발적이었다고 하더라도 벌은 피할 수 없다는 정도의 진술이다. 다른 주장이나 규정을 유추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특히 이 구절은 우발적인 사건에 대한 법으로 어떠한 해석을 하든지 현 시대의 의도를 가진 낙태에 대해 부적절한 구절”이라고 했다.

교회의 사명과 책임

신 교수는 “태아에 대해 놓치지 않아야 할 중요한 신학적 인식은, 아이는 인간이 아니고 하나님이 조성하시고 창조하신 생명체라는 것”이라며 “사람들은 자신이 아버지와 어머니로 아이를 조성한 것처럼 생각하지만, 성경은 결코 부모가 일차 원인자가 아니다. 기독교 전통의 영향으로 서구는 출생을 ‘procreation’이라는 단어로 표현해왔다. 하나님이 부모를 통해 세상에 넘겨준다는 세계관이 반영되어 있다”고 했다.

이어 “부모는 하나님으로부터 위임 받아 아이를 잉태하고 이 땅에 태어나게 하는 직임을 받은 위탁자다. 부모는 아이의 주인이나 소유자가 아닌 위임된 객체”라며 “때문에 뱃속에 있는 존재라 하더라도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타자이며, 자의적으로 생명을 처분하거자 종식시킬 대상이 아니”라고 했다.

끝으로 신 교수는 “낙태죄 헌법불합치로 인한 파장과 방위는 생각보다 훨씬 넓고 클 수 있다. 낙태죄 폐지 내지 수정 결정은 이 시대의 반기독교적 인본주의적 문화와 정서가 대세가 되어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때문에 생명공동체인 교회는 성경적 생명관과 인간관을 분명히 확립해야 하고 성도들, 특히 청년과 청소년을 바르게 이해 시켜야 한다. 이는 결코 복음과 무관하지 않다. 소위 ‘사생활’과 ‘여성 인권’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해서 ‘몰생명적’인 문화 흐름을 간파하고, 악을 최소화 하기 위해 조직적으로 움직여야할 시대적 책임이 교회에 있다”고 했다.

한편 신 교수 외에 최광휴 변호사, 함수연 교수(프로라이프 회장)가 각각 ‘형법269조 낙태죄에 대한 법률적 검토’ ‘태아와 여성을 위한 생명운동의 방향’이라는 주제로 발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