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에서 11일 형법상 낙태죄 조항인 제269조와 제270조에 대해 헌법불합치를 선고했다. 재판관 9명 중 헌법불합치 4명, 단순위헌 3명 등 7명 이 위헌 의견을 표시함으로써 2/3를 넘긴 것이다. 현행 법률은 2020년 말 내로 관련 규정을 개정할 때까지만 유효하다.

이번 판결은 지난 2012년 4대 4로 같은 사안에 대해 합헌을 선고한 헌법재판소가, 불과 7년만에 재판관들의 면면이 바뀌었다는 이유만으로 정반대 결과를 내놓았다는 점에서, 국가 법의 가장 중요한 가치 중 하나인 법적 안정성(法的 安定性)에 심각한 우려를 던져준다.

성경을 보면, 인류는 타락 이후 늘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반역하는 방향으로 일관되게 나아갔다. 인류는 그 누구도 스스로 만들어낼 수 없는 하나님 주신 생명을 함부로 하찮게 여기는 일을 반복해 왔다.

대표적으로 구약에서는 이집트(애굽) 파라오(바로) 왕이 산파에게 피지배 민족이었던 이스라엘(히브리) 임산부가 아이를 낳을 때, 남자아이가 태어나면 모두 죽이라고 명령했다. 신약에서도 예수님이 탄생하셨을 때, 헤롯 왕은 아기 예수님이 태어났던 베들레헴과 그 지경 안의 두 살 미만 모든 사내아이를 죽여버리지 않았던가.

이처럼 인류는 하나님께서 고귀하게 여기시는 생명을 무자비하게 빼앗아 왔다. 자신을 지키기 어려운 어리고 약한 생명일수록, 위험에 많이 노출되어온 것이다.

지금 이 시대에 낙태를 놓고 소리없이 흐느끼며 고민하는 여성들 역시 약자이다. 공중권세 잡은 자들은 이 세상을 하나님 나라와 정반대의, 약육강식의 정글로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인류는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이 세상의 ‘자연스러움’을 ‘자기결정권’이라는 이름으로 훼손해 왔다. 이미 주어진 성별(性別)을 자기 스스로 바꾸려 했고, 이성(異性)과만 허락하신 성관계를 동성(同性)과도 나누고자 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사회적으로 인정받고자 전 세계적으로 운동을 벌이고 있다.

낙태죄 선고를 앞두고, 사회에서는 종교계를 제외하면 폐지에 반대하는 여론이 거의 형성되지도, 알려지지도 않았다. 언론 보도 역시 낙태죄 폐지를 반대하는 종교계는 ‘소수의견’이자 시류를 거스르고 사회에 발전에서 도태된 이상주의자 쯤으로 여기는 분위기가 가득했다.

이 사회에서 결국 ‘눈에 보이는’ 약자들이자 ‘유권자인’ 성인 여성들은 고려 대상이었지만, 눈에 보이지도 않고 아무런 목소리도 낼 수 없으며 투표는 더더욱 할 수 없는 ‘예비 유권자’ 태아들은, 그 어떠한 권리조차 누려보지 못한 채, 이 세상에 등장할 수 있는 기회조차 상당 부분 박탈당하고 말았다.

낙태죄 폐지의 주요 논거로 거론되는 ‘자기결정권’이란 국가권력으로부터 간섭 없이 일정한 사적 사항에 관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헌법상 권리이다. 낙태죄 폐지론자들은 낙태죄가 이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하지만, 사실 여성의 임신 자체가 ‘자기결정권’ 행사의 결과 아닌가.

‘원치 않는 임신’이란 말은 엄격히 말해 특수상황에서만 가능한 이야기이고, 범죄 피해를 비롯한 그 특수상황에서는 이미 예외적으로 낙태를 허용하고 있기에, 이번 판결 결과를 선뜻 납득하기 어렵다.

더구나 낙태 가능 기간을 무려 임신 22주로 지나치게 넓게 잡은 것도 우려스럽다. 헌법재판소는 “태아가 22주 내외부터 독자적인 생존이 가능하다고 한다”며 “이처럼 태아가 모체를 떠난 상태에서 독자적인 생존을 할 수 있는 경우에는, 그렇지 않은 경우와 비교할 때 훨씬 인간에 근접한 상태에 도달했다고 볼 수 있다”고 근거를 밝혔다.

그러나 거꾸로 ‘독자적인 생존’이 힘들수록, 법률로써 그들을 철저히 보호해 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 낙태를 허용하는 국가들조차 대부분 그 제한을 12주 이내로 하고 있는 형국이다. 향후 입법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낙태를 허용하는 기간은 재논의해야 한다.

낙태죄가 폐지된 이때, 한국교회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낙태를 막는 일에 더욱 앞장서야 할 것이다. 법률이 폐지됐다 해서, ‘양심의 가책’이나 ‘모성애’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생명이 ‘인위적으로’ 사라지는 일이 없도록, 미혼모에 대한 사회적 인식 전환과 함께 제도 개선과 정비, 아이 키우기 좋은 나라 만들기 등 할 수 있는 모든 일에 적극 나서야 한다.

무엇보다 ‘생명경시 풍조’에 경종을 울릴 수 있도록 시대에 맞는 콘텐츠 개발에 힘써야 할 것이다. 이 사회는 낙태를 오로지 사회경제적 관점에서만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여성들이 낙태를 고민하게 만든 ‘남성’들에 대한 고려도 시급하다. 여성에게만 책임을 묻는 법률상 미비 때문에 낙태죄 폐지가 이뤄진 면이 없지 않은 만큼, 청소년 시절부터 교회에서 ‘실질적인’ 성교육을 실시하고, 향후 법률 개정에 있어 남성의 책임을 명시하는 방안이 적극 강구돼야 한다.

세상은 계속 반(反)생명을 향해 달려가지만, 생명을 바치신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으로 새 생명을 얻은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흐름을 거슬러 생명을 모든 가치의 선두에 두는 친(親)생명 사회로 바꾸는 일에 과감하게 뛰어들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