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안교회 장시환
▲새안교회 장시환 목사
요14:25 내가 아직 너희와 함께 있어서 이 말을 너희에게 하였거니와

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14:28 내가 갔다가 너희에게로 온다 하는 말을 너희가 들었나니 나를 사랑하였더라면 내가 아버지께로 감을 기뻐하였으리라 아버지는 나보다 크심이라
14:29 이제 일이 일어나기 전에 너희에게 말한 것은 일이 일어날 때에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14:30 이 후에는 내가 너희와 말을 많이 하지 아니하리니 이 세상의 임금이 오겠음이라 그러나 그는 내게 관계할 것이 없으니
14:31 오직 내가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과 아버지께서 명하신 대로 행하는 것을 세상이 알게 하려 함이로라 일어나라 여기를 떠나자 하시니라

오늘 말씀을 보면 성령에 대한 약속입니다. 우리가 교회에서 흔히 "성령 받으세요. 성령충만 받으세요." 이런 말을 씁니다. 그 성령은 무엇일까요. 그 성령은 어떻게 오게 되는 것일까요. 또 우리가 어떻게 받을 수 있을까요.

여러분, 우린 지금 참혹한 죽음을 앞두신 주님의 마지막 유언을 보는 것인데, 그러한 때에 성령을 얘기하신다는 것이 참 놀라운 일입니다. 왜? 성령은 놀라운 생명의 역사가 열리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행2장]을 보면 마가의 다락방에 120명의 제자들에게 임한 성령의 역사를 생각해 보십시오. 핍박을 피해 다락방에 모여서 기도하고 있는 때에 성령이 임해서 그들이 각국 방언이 열려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온 땅에 흩어져서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폭발적인 구원의 역사, 생명의 역사가 열리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결과를 이미 다 알고 보는 것이지만, 지금 상황이 그럴 상황이 아닙니다. 죽음의 길을 가는 것인데 갈수록 깊은 어둠과 두려움과 절망속으로 빠져들 수 밖에 없는 그런 자리에서 이런 말씀을 하실 수 있는, 그 깊은 세계를 우리가 알고자 해야합니다.

요14:25 내가 아직 너희와 함께 있어서 이 말을 너희에게 하였거니와    
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보혜사(保惠師)' 라는 것입니다. 지킬 '보(保)' 은혜 '혜(惠)' 스승 '사(師)'. 우리를 지키고 돌보고 은혜를 베푸는 스승이라는 것입니다. 성령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의 길을 가시고 나면, 그 성령이 제자들에게 오신다는 것입니다. 가신다는 것은 참혹한 죽음 말할 수 없이 잔인한 고문 처형의 모든 것을 다 받으시고 죽으신다는 것입니다.

성령은 어떻게 우리에게 오는 것입니까. 죽음으로 열어내신 생명의 역사입니다. [요16장]에서 예수님은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비참하게 죽임을 당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는 것입니다. 왜? 그래야 성령이 오시고 그래야 만민이 그 영을 받아 구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체코에서 만든 영화인데 '다리'라는 제목의 영화, 영상 보신 분도 많을 것입니다. 아빠가 사랑하는 아들이 있었습니다. 아빠 일터에 그 아들이 모처럼 나왔습니다. 아빠의 일이 기차가 지나가는 다리를 올렸다 내렸다 해주는 일입니다.

그런데 멀리서 기차가 매우 빨리 오고 있는데 다리를 이제 내려줄 때였습니다. 그때 아이가 그 다리 내리는 곳 밑에 기계실 같은데 실수로 빠져 버렸습니다. 그 사실을 알게된 아빠가 어찌할 줄을 몰라 소리지르고 괴로워하다가, 결국 수많은 사람들이 타고 있던 기차를 위해 다리를 내리는 레버를 당깁니다. 아이는 기계실안에 있다가 큰 다리가 내려오면서 죽게 됩니다. 그 기차를 탄 사람은 아무 것도 모른채 지나가는 것입니다. 저는 기차 안의 사람들의 일상적인 모습이 강렬하게 다가왔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런 모든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가장 사랑하는 아들이 희생된 사실입니다. 지금 성령을 얘기하시는 것은 주님이 그런 길을 가신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설명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그 길을 가야 성령이 오셔서 수많은 영혼들이 죄가운데 멸망하지 아니하고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령은 원래 매우 특별한 사람들만 받을 수 있었습니다. 구약시대 아주 가끔씩 선지자가 받아서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백성들에게 알려주었습니다. 그 특별한 사람을 통해서 백성들이 살아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그 영을, 예수님이 십자가의 길을 가심으로 모든 사람이 받을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더 정확히는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가. 누구든지 성령을 구하는 자마다 다 그 거룩한 영을, 하나님의 마음을 부어주신다는 것입니다.

눅11:13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악한 부모도 자식에게는 좋은 것을 준다는 것입니다. 하물며 하늘의 아버지께서, 우리를 위해 하나뿐인 아들을 아낌없이 내어주신 분이, 우리가 성령을 구하면 왜 안주시겠느냐는 것입니다. '구하는 자에게',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이런 말들을 기억하시고 늘 성령을 구하고 받아 사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주님은 보혜사 성령님이 오신다는 것을 약속하시고, 또 주시는 말씀이 뭔가요.

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평안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근심하는 제자들에게, 내 안에 있는 평안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지금 평안을 얘기할 때가 아닙니다. 이 말씀 마치시고 시간적으로 보면 끌려가셔서 밤새도록 고초당하시고 다음날 십자가에 달리는 것입니다. 이런 이후에 일어날 일들을 다 아시고 주시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조그만 병만 걸려도 안절부절 못하고, 형편이 조금만 어려워지게 되어도 근심과 어둠에 갇혀버립니다. 주님은 [사53:7] 예언을 보면 도살장에 끌려가는 짐승처럼 끌려가서 죽도록 맞고 찔리고 매달려서 죽으시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 무슨 평안을 얘기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주님의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세상이 주는 평안은 무엇일까요. 내 통장 잔고 액수가 많아지는 것일까요. 몸이 건강한 것일까요. 하는 일들이 다 잘되는 것일까요. 그것이 주는 평안이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반대의 상황이 오면 언제든 사라질 수 있는 평안입니다. 상대적이고 일시적인 것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시는 평안은 어떤 상황에도 불문하고 사라지지 않는 절대적이고 근원적인 평안입니다. 인간 영혼의 아주 본질적인 것입니다. 주님안에 죽음도 앗아갈 수 없는 평안. 주님은 이것을 우리에게 주기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심리학을 공부하면 현대인의 고통, 문제들은 다 어디에 있습니까. 인간이 늘 무엇과 싸우는 것입니까. 내면의 불안의 문제입니다. 이걸 어떻게 해소시킬 수 있는 것인가. 심리 근저에 자리잡고 있는 이걸 어떻게 하면 제거해 낼 수 있겠는가. 이런 고민들 노력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로마서 공부하면서 배운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인간의 불안은 '죄' 로부터 온다 했습니다. 타락한 인간 안에 불안이 있습니다. 본래 지으신 상태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살인한 범죄자가 늘 범죄 현장에 대소변을 누고 간다고 합니다. 왜? 그 나쁜 짓을 하는데 몰려오는 불안을 잠재우기 위함입니다. 그렇게 죄인 안에 불안이 있는 것입니다.

지금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인간 존재의 매우 본질적인 세계를 얘기하십니다. 우리도 그래야합니다. 어려움이 오면 올수록, 환란을 당하면 당할수록 우린 더 근원적인 곳으로 들어가야합니다. 싸움 분쟁의 문제도 서로 정죄하고 비판할 것이 아닙니다. 분쟁의 이유가 되는 돈 문제, 폭력, 중독. 그것들이 이유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겉으로 나타난 문제입니다. 식물을 보면 뿌리와 이파리가 있듯이, 이파리같은 문제일 수 있습니다. 이런 것들은 근원적인 문제를 보지 않으면 끊임없이 반복될 문제인 것입니다. 죄의 문제를 해결받고 불안이 사라지고 영혼의 평안이 오면 다 떨어져 나갈 문제들입니다.

여러분 그래서 복음이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만가지 문제의 해답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신 우리 죄를 대속하신 주님의 놀라운 사랑을 믿는 믿음안에서 다 해결되는 것입니다. 그 믿음 안에 있는 사람은, 이미 영원한 생명을 가진 것이기에 외적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도 관계없는 것입니다. '죽어도 좋아' 이 경지가 되는 것입니다.

지금 죽음까지도 죽음 앞에서도 누리는 주님 안에 이 절대적인 평안의 세계를 보십시오. 주님안의 이 평안을 우리도 어떻게 가질 수 있을까요. 바울은 편지를 쓸 때 늘 이런 말을 끝에 남겼습니다. "은혜와 평강이 너희 무리 가운데 있을지어다" 은혜와 평강(평안)이라는 것입니다.

은혜받은 사람이 평안이 있습니다. 그 은혜란게 무엇입니까.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신 주님의 사랑을 아는 것입니다. 나 하나 살리기 위해 구원하기 위해 그 엄청난 고난을 받으신 것, 이걸 아는 것을 '은혜받았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성령도 받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은혜받은 사람이 성령을 받는 것입니다.

본문 위에 [요14:13]도 보면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또 14절에는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내 이름으로" 라는 말이 무슨 뜻일까요. 단순히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이런 것을 말하는 것일까요. 문맥의 깊은 세계를 보면 그것은 '주님께서 우리 죄를 대신해서 죽으신', '죽음으로까지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신 놀라운 사랑에 힘입어' '그 은혜를 의지하여' 이런 말입니다. 그렇게 기도하면 주님께서 다 이루어 주신다 는 것입니다. 그 은혜로 살면 무엇이든 다 잘 된다는 것입니다. 그 은혜를 받으면 성령을 받고, 성령을 받은 자안에 불안이 없는 평안이 있는 것입니다.

14:28 내가 갔다가 너희에게로 온다 하는 말을 너희가 들었나니 나를 사랑하였더라면 내가 아버지께로 감을 기뻐하였으리라 아버지는 나보다 크심이라

어려운 구절입니다. 그러나 은혜를 받아본 사람, 성령을 받아본 사람은 어렵지 않습니다. '내가 갔다가 온다'는 것은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죽으시고 죽음을 이기시고 다시 사시고 하늘에 오르시고 성령이 오십니다.

우리 입장에서 생각해 봅시다. 우리를 향한 대속의 그 놀라운 사랑을 점점 알아가는 과정이 있습니다. 몰랐다가 점점 눈뜨는 과정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성령의 기름부음을 우리가 받습니다. 그렇게 받게 되면 놀라운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나보다 크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나의 이 작은 희생(결코 작은 희생이 아니지만), 죽음의 과정을 통해서 아버니께서 엄청난 생명의 역사를 여신다는 것입니다.

생명의 역사란게 무엇입니까. 죄는 곧 죽음이니까 죄로부터의 자유를 얻는 것입니다. [롬8:1]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내 죄의 모든 것이 사함받았다는 확신이 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불안이 사라지고 평안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모든 것을 다 이길 수 있고 다 할 수 있다는 것이 오는 것입니다.

이걸 누구든지 어떤 죄인이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성령을 구하는 자마다, 또 구할 때마다 다 받는다는 것입니다. 이 엄청난 복에 관하여. 이것이 예수님 가신 이후 열린다는 것입니다. 우린 그 시대에 이미 살고 있습니다. 우린 이미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14:29 이제 일이 일어나기 전에 너희에게 말한 것은 일이 일어날 때에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14:30 이 후에는 내가 너희와 말을 많이 하지 아니하리니 ..

'이후에는 내가 너희와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 주님이 이제 떠나십니다. 이렇게 최후의 만찬에서 제자들의 얼굴을 대면하면서 가르쳐주지 못하십니다. 이제 더 이상 주님의 가르침을 들을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이땅에서 가르치신 모든 것은 뭘까요. 그 수많은 비유와 주옥같은 말씀들. '하나님 사랑에 관하여' '그 사랑으로 이뤄가는 나라에 관하여' 입니다.

그런데 그 주님이 가시면 어떻게 합니까. 그 사랑을 알지 못합니다. 온 인류가 그 사랑을 알아야하는데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걱정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 26절에 성령이 오시면 그 사랑을 다 가르치시고 생각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성령은 진리의 영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듣고 묵상하면서 은혜를 받습니다. 깨달음을 얻습니다. 그러면 우리 삶의 만가지 문제가 사라집니다. 사람이 갑자기 달라집니다. 이것이 성령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여러분 성경을 많이 읽고 많이 묵상하십시오. 성령의 놀라운 역사를 경험하며 살 수 있을 것입니다.

14:30 .. 이 세상의 임금이 오겠음이라 그러나 그는 내게 관계할 것이 없으니

세상 임금이 왜 온다는 것입니까. 죄악의 세상, 그곳의 권세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와서 주님을 잡으러 온다는 것입니다. 이제 주님께 환란과 박해, 죽음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것이 내게 닥칠지라도, 그러나 그는 내게 관계할 것이 없으니" 상관없다는 것입니다. "나를 죽이는 환란이 와도 박해가 와도. 나를 흔들 수 없으리니. 내안의 평안을 빼앗아갈 수 없으리니" 이런 말입니다.

14:31 오직 내가 아버지를 사랑하는것과 아버지께서 명하신대로 행하는 것을 세상이 알게하려 함이로라..

주님 안에 정말 흔들리지 않는, 절대적인 것이 있습니다. 세상에 아무리 모진 환란과 박해, 고통스런 일이 있다 할지라도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것입니다. 왜? 그것은 오직 내가 아버지를 어떻게 사랑하는지를, 내가 아버지께 어떻게 순종하는 것을 더 알려주는 것이 될 뿐이기 때문에.

주님 가신 십자가의 길이란 무엇인가요. 그 받으신 온갖 수난, 그 피흘림과 찢기고 상하심과 죽으심의 모든 고통이라는 것은 무엇인가요. 무엇 때문에 그걸 주님은 다 견뎌낼 수 있으셨던 것이고, 어떻게 그 길을 가실 수 있으셨을까요. 그 힘은 무엇이었을까요.

31절 말씀 속에 두가지가 있습니다. 1)오직 내가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을 세상이 알게 하는 것. 예수님이 하나님을 이렇게 사랑하셨다는 것을 우리가 알도록 그 길을 가셨다는 것입니다. 또 2) 주님이 이렇게까지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셨다는 것을 우리가 알도록, 생명을 다하기까지 하나님께 순종하셨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게 하시려고 그 길을 가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가 이걸 알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그런 자세를 가지고 모든 것을 이기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어떤 자세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그 어떤 모진 고통이 온다할지라도, 내가 주를 사랑하는 것을 흔들지 못하리니. 환란이 오면 올수록 그 사랑이 얼마나 큰 것인지 더 드러날뿐입니다. 내가 어떻게 주님을 믿고 사는지 사람들이 더 잘 알 수 있을 뿐입니다" 이런 각오, 이런 마음으로 우리도 환란을 이겨가길 원합니다.

오늘 주신 말씀속에,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해 받으신 주님의 고난을 더 깊이 생각해서 큰 은혜받으시고 성령 받으시고 또 마음에 참된 평안을 얻으셔서, 세상을 이기신 주님처럼 우리도 모든 것을 이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