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 오요한
욥기 36장 강해

요절: 그대는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기억하고 높이라 잊지 말지니라 인생이 그의 일을 찬송하였느니라(24절)

엘리후의 네 번째 연설에서 그는 두 가지 중심 사상을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하나는 고난이 오는 것은 하나님의 의로우심과 총돌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교만을 꺾기 위한 정화의 수단이라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위대하심에 대한 설명입니다.

그는 자연의 이치가 인간의 생각으로는 감히 헤아릴 수 없는 것이기에, 그 누구도 하나님을 정죄하거나 그 공의를 의심해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오직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이 부분은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등장을 유도하고 있으며, 폭풍 가운데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미리 은연 중 묘사함으로써 자신의 마지막 연설과 하나님의 판결을 연결 짓고 있습니다.

1. 공의로우신 하나님을 증거하는 엘리후

1-7절을 보면 엘리후는 욥에게 미안하지만 말좀 하게 해달라고 요청합니다. 욥이 하나님은 불의하다고 하니, 그는 하나님을 위하여 욥에게 변호하겠다고 말합니다.

엘리후는 마지막으로 이제 내가 하나님의 공의로우심과 그의 명예를 위해 말하겠다고 합니다. 엘리후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가서 지식을 얻어왔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계신 하늘로부터 지식을 얻어온 것입니다.

엘리후는 자신의 말이 하나님의 영감을 받았으며, 교훈이 될 만한 것임을 강조합니다. 자신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이 의로우신 분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욥에게 고난을 주신 것도 하나님의 공의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큰 힘을 가지고 있지만, 의인을 멸시하지 않으십니다. 그 분은 당신이 창조하신 가장 보잘 것 없는 것에게라도 결코 불의하게 대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무궁한 지혜로 악인을 살려두지 않으시고, 고난 받은 의인에게는 은혜를 베푸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공의는 짧은 시간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오랜 시간이 흘러야 이루어지고 예수님의 재림의 때에 온전히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2. 의인도 징계하시는 하나님


8-10절을 보면 의로운 사람이라도 하나님께 복종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쇠사슬에 묶이게 하시고, 고통의 줄에 얽매여 벗어나지 못하게 하신다고 말합니다. 그들이 의로움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징계를 허용하신 것입니다.

엘리후는 세 친구들의 주장과 달리, 의인들에게도 고난이 닥칠 수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의인에게 그들이 한 일을 밝히시며, 그들이 교만하게 지은 죄를 알리신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 의인에게 확성기에 대고 말하여 귀를 열어 교훈을 듣게 하시며, 죄악에서 돌이키신다고 말합니다. 비록 의인이라도 교만에 빠질 수 있기에, 의인에게 회개를 통한 성숙을 위해 고난을 주신다고 말합니다.

엘리후는 하나님이 욥에게 귀를 열어주시어 타이르는 소리를 듣게 하시고, 그릇된 길에서 발길을 돌리라고 속삭여 주신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속삭임을 귀담아듣고 바로 살고자 애쓴다면, 그들의 나날은 행복으로 뿌듯하고 즐거움이 해마다 철철 넘칠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엘리후의 사상은 고난은 죄의 결과라고 일방적으로 단정했던 세 친구들의 주장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징계를 통하여 욥의 죄를 밝힌다는 그의 주장은 옳지 않습니다.

3. 학대당할 때 귀를 여시는 하나님


12-16절을 보면 엘리바스는 의인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을 때의 축복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경고를 청종하여 자신들의 행위를 고치면 남은 생애를 형통하게 마치는 복을 누립니다. 순종하지 않으면 칼에 망하고 자식이 없이 죽을 것이라고 합니다.

마음이 경건하지 않은 자는 하나님이 주시는 고난 중에도 분노를 쌓으며, 회개하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들은 남창이 성병에 걸려 죽는 것 같이 젊어서 죽을 것이라고 합니다. 엘리후는 사람이 받는 고통은, 하나님이 사람을 가르치시는 기회이기도 한다고 가르칩니다.

사람이 고통을 받을 때, 하나님은 그 사람의 귀를 열어 경고를 듣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고통을 하나의 구원의 방편으로 사용하십니다.

엘리후가 하는 말 중, 고난 중에 죄인의 귀를 열어주시고 전에 알지 못하던 죄를 깨닫게 하시며 새로운 길로 인도하신다는 말은 맞습니다.

그러나 욥이 죄를 지어 하나님이 고난을 통해 그의 죄를 깨닫게 하고 계시다는 말은 옳지 않습니다.

엘리후는 욥이 순종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순종하는 사람이 되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사람을 정죄하고 도우면, 진정 사람을 도울 수 없습니다.

4. 욥에게 회개를 촉구하는 엘리후


17-21절을 보면 이제 엘리후는 욥 어른이 마땅히 받으셔야 할 형벌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앞에서 말한 축복된 상황과 정반대의 현실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욥이 그의 완고한 고집으로 인해 고난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욥이 고난을 받으면서도 순종치 않고 회개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엘리후는 욥에게 지금은 악인이 받을 벌이 가득하고, 심판과 정의로 징계 받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 가운데 욥은 분노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고 합니다.

엘리후는 욥이 자신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속전(贖錢)의 값이 무척이나 크다는 것을 상기시키며, 함부로 행동하지 말 것을 경고합니다.

엘리후는 욥에게 오직 죄를 회개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엘리후는 욥에게 회개를 강요하고 있습니다.

엘리후는 욥이 시험을 당했을 때 인내하기보다는 불평하고, 하나님의 공의를 의심했던 죄들을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욥이 악을 선택하여 이런 고난을 받고 있다는 엘리후의 말은 옳지 않습니다.

5.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기억하고 높이라


22-25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그의 권능으로 높이 계시나니 누가 그같이 교훈을 베풀겠느냐 누가 그를 위하여 그의 길을 정하였느냐 누가 말하기를 주께서 불의를 행하셨나이다 할 수 있으랴 그대는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기억하고 높이라 잊지 말지니라 인생이 그의 일을 찬송하였느니라 그의 일을 모든 사람이 우러러보나니 먼 데서도 보느니라”.

엘리후는 하나님은 권능으로 높이 계시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매우 높은 곳에 앉아 계십니다. 하나님은 그 전능하심으로 인해 가장 높이 송축 받으실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높은 곳에서 우리에게 교훈을 베풀어주십니다.

우리는 누구도 하나님에게 우리의 길을 이렇게 혹은 저렇게 하라고 요구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크신 권능으로 나타내시는 교훈의 깊은 지혜는 인간이 감히 따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이 사상은 엘리후가 했던 전체 연설의 중심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 불의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의로움을 인정해야 합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행하심을 면밀히 감찰하여 그 걸음걸음을 감독할 수 없습니다. 누구도 하나님께 불의를 행하셨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인간은 전 우주를 통틀어 하나님의 오묘하신 섭리의 지혜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감히 그 누구도 하나님으로부터 억울한 대접을 받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엘리후는 욥에게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기억하고 하나님을 높이라고 합니다. 인생은 하나님이 하신 일을 찬송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행하신 일을 드높여 찬양하고 널리 알려야합니다.

욥은 축복하신 하나님도 높여야 하지만, 고난을 주신 하나님도 높여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신 주권과 섭리를 영접하고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6. 하나님은 자연을 섭리하신다


26-33절을 보면, 하나님은 높으시니 우리가 알 수 없고 그 나이를 계산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위대하심은 우리의 이해를 초월하여 있습니다.

하나님의 존재는 무한하시기에, 우리가 그 영원함을 헤아릴 수 없습니다. 엘리후는 하나님은 물을 증발시켜 끌어올리시고, 그것으로 빗방울을 만드시며, 구름 속에 싸 두셨다가 뭇 사람에게 비로 내려 주신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구름을 어떻게 펴시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하며, 그 계신 곳, 하늘에서 나는 천둥소리가 어떻게 해서 생기는지 아무도 모른다고 합니다.

신속한 구름의 발생과 집결 또는 펼쳐짐 등 자연의 현상을 통해 그것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번개 빛을 사면에 펼치시고 바다의 밑바닥을 덮으십니다.

하나님은 번개로 백성을 심판하시며 백성들에게 먹을 것을 넉넉하게 공급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비로 식물이 자라게 하셔서 우리에게 음식을 주십니다. 메마른 땅에 비를 내려 땅을 기름지게 하여 수확을 풍성케 하십니다.

하나님은 두 손에 번개를 쥐시고 죄인의 과녁을 맞히라고 명령하십니다. 하나님은 심판자와 통치자로서 폭풍을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가축들도 그 폭풍우 속에 하나님의 진노하심이 내포되어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만큼 하나님의 행사는 위대하며 모든 만물에 그 뜻이 분명히 나타나 보이십니다. 비가 내리는 신비도 다 이해 못하는데, 하나님이 주시는 고난의 의미를 어떻게 다 이해할 수 있느냐고 말합니다.

오요한
▲오요한 목사.
7. 결론: 창조주를 찬양하나 인과응보적인 엘리후


엘리후는 하나님은 창조주시요, 만물을 통치하시는 왕이심을 소개합니다. 하나님은 왕으로 신비롭게 세계를 통치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극히 크신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우리는 어떤 고난 중에서도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알고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신비로운 섭리 속에서 고난을 주시는 것을 알고 경외심을 갖고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그러나 엘리후도 욥은 죄인이고 죄로 말미암아 벌을 받고 있다는 인과응보적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를 볼 때 우리를 잡고 있는 인과응보적인 생각이 얼마나 우리를 지독하게 사로잡고 있는지를 보게 됩니다.

우리는 고난 받는 사람을 섣부르게 판단하지 말고, 이해와 긍휼로 그들을 대해야 합니다. 아멘!

오요한 목사(천안 UBF, <오요한 목자의 로마서 강해>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