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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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적인 심판, 법적인 구원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은 율법의 심판, 그리고 심판의 결과인 죽음에서 건짐을 받는 것이다. ‘심판’이라는 단어가 법적인 용어이듯, 심판에서의 ‘구원’ 역시 법적 용어이다.

따라서 구원을 받으려면 법적인 충족 요건 곧, 완전한 율법적 의(그리스도의 의)를 재판장이신 하나님께 내어놓아야 한다. 여기엔 인간의 의 같은 것은 가당치가 않다.

구원을 설명하기 위해 어떤 사람들은 ‘물에 빠진 사람을 건지는’ 비유를 동원한다. 구원자가 물에 빠진 사람에게 구명줄을 던질 때 피구원자가 구명줄을 잡으려 발버둥치듯,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하려 할 때 그는 뭣이라도 협조하는 것이 상식이라고 말한다.

구원에 인간의 협력을 첨가시키는 이러한 ‘신인협력론(synergism)’이 구원론을 왜곡 시켜왔다.

그러나 ‘구원’은 인간이 더욱 ‘완전케’ 할 수 있을 만큼 미완성적이지도, 혹은 ‘손상’당할 만큼 유약하지도 않다. 구원은 완전체이다(It is finished, 요 19:30). 죄인은 그저 그것을 믿음으로 받을 뿐이다.

만약 구원에 인간의 협조가 필요하다면 그 구원은 실패를 예약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이는 비일관성과 불규칙성을 속성으로 하는 인간 행위의 불완전성 때문이다.

어제 성공했던 똑같은 일이 오늘은 실패할 수 있고, 오늘 성공했다고 내일 성공한다는 보장이 그에겐 없다. 더군다나 회심에서 천국 입성까지의 지난(至難)한 과정 동안 하나님의 인정을 받을 만한 의를 지속적으로 유지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자격이 아닌 긍휼에 의존된 구원

죄와 심판으로 죽은 인간에게는 구원받으려는 의지도 없을 뿐더러 자기가 죽었다는 의식도 없다. 죄로 죽은 자가 자기 구원에 개입하는 것은 마치 죽은 자가 자기를 살려내려는 것과 같이 불가능한 일이다.

그의 구원은 그를 살리려는 구원자의 긍휼과 의지에 달려 있다. ‘내가 네 죄를 위해 죽었다’는 아들의 음성을 듣고 죽은 자가 살아난다(요 5:25).

성경이 ‘구원’을 ‘긍휼’과 연계시키는 것은 구원의 경륜이 긍휼에 의존돼 있기 때문이다.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엡 2:4-5).”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벧전 1:3).”

‘긍휼’의 반대 개념은 ‘자격(資格, qualification)’이다. ‘긍휼’이 자격 없는 자에게 베풀어지는 무조건적 시여(施與, an offering)라면, ‘자격’은 조건적이다. 그리고 자격자가 받는 시여는 긍휼이 아닌 보상이다.

구원에 자격을 논하는 것은 긍휼인 구원의 본의를 퇴색시킨다. 성경이 ‘긍휼’과 ‘자격’을 배치 개념으로 놓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딛 3:5).”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주로 고백한다고 다 구원받나? 자격없는 가짜가 너무 많아” 라고 한다. 그러는 그들에게 반문하고 싶다.

“그러는 당신은 셀프 평가(self-evaluation) 말고 냉정한 입장에서 ‘나는 자격이 있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인류 역사상 그런 사람은 예수님 한 분 외에는 없다. 만약 그가 ‘그렇다’고 한다면, 그는 율법을 만만히 본 것이든 아니면 착각으로 스스로를 과대평가했든 둘 중 하나다.

그리고 구원을 하나님의 ‘긍휼’이 아닌 ‘자격’과 연관지을 때, 사람으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의(義)가 아닌 자기 의(義)를 주목하게 만들어 구원의 목적인 하나님에 대한 감사의 염(念)을 막는다.

하나님은 우리에게서 찬송과 영광을 받으시려고(엡 1:6) 자격 없는 자에게 값없이 구원을 주셨다.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엡 1:6).”

◈열매를 뿌리에 놓는 사람들

“믿음으로 구원 얻었다”는 말씀은 말 그대로 구원이 어떤 공로에 의해서가 아닌, 은혜로 값없이 얻었다는 말이다. 우리가 행하는 그 어떤 대단한 순종도 믿음의 열매일 뿐이다. 그것이 그의 믿음의 진실성을 담보해주기는 하나, 구원의 원인자(原因子)는 아니다.

믿음의 열매인 순종이 그의 구원에 아무 기여도 못한다. 아브라함이 갈 바를 알지 못한 채 갈대아 우르를 떠남이나(창 12:1-4) 독자 이삭을 바치는(창 22:9-12) 순종을 보였지만, 그것은 그의 믿음의 열매일 뿐 그의 구원의 기여물은 아니었다.

그는 훌륭한 믿음의 행위들과 상관없이,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다. 아브라함이 그의 순종으로 그의 믿음의 신실성을 증거했지만, 그것이 그의 칭의에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는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행복(롬 4:6)”을 입었을 뿐이다. 구원의 열매를 구원의 뿌리로 삼는 것은 ‘마차를 말 앞에 두는 것(put the cart before the horse)’과 같다.

이 ‘은혜의 원리’는 신앙교육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가장 효율적인 교육은 ‘은혜’에 기반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강하고 헌신적인 성도를 만들려면 ‘은혜’에 호소하는 것만으로는 안 되고, ‘율법’으로 다그쳐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는 성경적 원리도 아닐뿐더러, 효용성 원리에도 어긋난다. 은혜보다 효율성을 담보해 주는 것은 없다. 진정한 헌신과 충성은 값없이 받은 은혜의 감읍함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의 순교적 신앙도 은혜의 감읍함으로 말미암았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고후 5:14-15).”

성도가 그리스도를 위해 충직한 헌신자가 되는 것은, 그들을 위해 바친 그리스도의 위대한 희생과 그의 은혜를 앎으로서이다.

믿는 부모가 세상을 하직할 때 그의 후손들에게 남기는 유언은 이 세상에서 가장 진솔한 말일 뿐더러, 그들의 삶에 폭발력을 갖는다. 부모의 유언을 듣고 인생을 유턴하는 자식들이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이는 그 유언을 부모의 신앙 엑기스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모세가 그의 120년 수한(壽限)을 다한 후, 이스라엘 자손들을 향해 유언으로 준 말씀을 들어보자. “여호와 그가 네 앞서 행하시며 너와 함께 하사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시리니 너는 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신 31:8).”

사도 유다가 성도들에게 해준 유언 같은 작별 인사를 들어보자. “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유 1:21).”

한 마디로 이 모두는 ‘그의 긍휼과 은혜를 의지하라’이다. 이는 그들의 평생의 신앙을 통해 ‘은혜만이 사람을 세울 수 있다’는 결론에서 도출된 것이다.

이경섭
▲이경섭 목사. ⓒ크리스천투데이 DB
그런데 예상 외로 많은 부모들의 유언이 “예수 잘 믿다가 꼭 천국에서 만나자”인 것 같아 유감스럽다. 믿음의 조상들이 그의 후손들에게 해준 유언들과는 사뭇 달라 보인다. 매우 신앙적인 것 같지만 율법주의적이다.

신앙은 내가 죽기 살기로 애걸복걸 매달리는 것이 아니다. 믿음까지도 내가 어떻게 해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믿음은 단지 그리스도의 긍휼을 의지하는 것이다.

믿음의 선진들처럼, 성도들의 신앙교육도, 모든 부모의 유언도 “너희 자신이 아무리 실망스럽게 보일 때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자비를 의지하기를 멈추지 마라”였으면 좋겠다.

이 은혜의 말이 넘어진 그들을 일으키며, 용기를 북돋아 끝까지 천성을 향해 달음박질 하도록 만들 것이다.

은혜보다 효율성 있는 교육은 없다. 할렐루야!

이경섭 목사(인천반석교회, 개혁신학포럼 대표, byterian@hanmail.net)
저·역서: <이신칭의, 값싼 은혜가 아닙니다(CLC)>,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CLC)>, <개혁주의 영성체험(도서출판 예루살렘)>, <현대 칭의론 논쟁(CLC, 공저)>, <개혁주의 교육학(CLC)>, <신학의 역사(CLC)>, <기독교신학 묵상집(CLC, 근간)>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