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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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잔치 자리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그 잔치 자리에서 주님의 제자들이 서로 상석에 앉으려는 문제를 두고 다툼이 일어났습니다.

이때 주님께서는 그 대안으로서 대접을 받으려는 마음보다는 대접하라고 하시면서, 선행에 대해 언급하십니다. 진정한 선행, 즉 참다운 선행이란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 교훈하십니다. 이 말씀을 배경으로 ‘참다운 선행의 원리’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선행은 광고하지 말아야 한다

12절에 “또 자기를 청한 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점심이나 저녁이나 베풀거든 벗이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한 이웃을 청하지 말라 두렵건대 그 사람들이 너를 도로 청하여 네게 갚음이 될까하노라”고 말씀합니다.

당시 이스라엘 사회는 식사에 초대받은 사람은 후일 초대한 그 사람에게 식사를 베푸는 관습이 있었다고 합니다. 식사에 초대하면서도 보상을 바랐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수준이 맞는 친구들이나 친척, 부자 이웃들만 초대하면서 교제를 했습니다.

반면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은 초대를 받을 수 없었습니다. 본문에는 잔치와 선행, 세상적으로 힘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비교·대조가 숨어 있습니다. 식사 잔치를 말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선행이 중심입니다.

시대가 많이 변해서일까요? 요즘은 누구든지 좋은 일, 즉 선행을 하는 경우 나팔부터 부는 시대라고 합니다. 정치가들은 말할 것도 없고, 사회적으로 선행을 하는 사람, 심지어 교회나 종교단체들까지도 기자들을 불러놓고, 광고하면서 선한 일을 진행한다고 합니다.

선행을 광고하는 마음은 진심으로 돕는 선한 행위가 아니라, 자기를 선전하기 위한 마음이 중심일 것입니다. 이는 그 선행을 사람들이 기억해 주고, 칭찬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에 비해 여리고로 내려가다 불한당을 만난 사람을 도와줬던 선한 사마리아 사람은 이름이 나와있지 않습합니다. 그렇게 많은 노력을 기울여 강도 만난 사람을 살려준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아직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이는 선행이란 사람들에게 떠벌리면서 광고하지 말아야 하고, 생색을 내는 선행은 진정한 선행이 아니라는 교훈입니다.

2. 선행은 갚기를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13절에서는 “잔치를 베풀거든 차라리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저는 자들과 맹인들을 청하라”고 말합니다. 여기 나오는 사람들은 모두 사회적 약자들입니다. 그들은 생활이 넉넉하지 않기 때문에 초대한 사람에게 쉽게 보상하기 어려운 형편에 있었습니다.

주님은 보상을 바라면서 잔치를 베푸는 것은 진정한 선행이 될 수 없음을 암시했습니다. 갚기를 기대하는 것은 참다운 선행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갚기를 기대하는 심리는 아마 어려울 때에 도와주었기에 형편이 나아지면 갚아달라는 ‘주고 받고’의 마음입니다. 이는 엄밀히 말해 선행보다는 투자의 성격이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보상을 바라는 것은 참다운 선행이 아니라는 데서 한 가지를 배우게 됩니다. 선물과 뇌물의 차이입니다. 둘의 차이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물건이나 액수의 크고 작음에 있지 않습니다. 받고 나서 뒷말을 하는가, 하지 않는가에 있습니다.

어떤 물건을 상대방에게 주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뒷말을 하는가 하지 않는가의 차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큰 물건을 선물하고도 뒷말이 없으면 선물이고, 작은 물건이라도 뒷말을 하면 뇌물이라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도와주면 진정한 선행이고, 무엇인가를 바라고 도와주면 일종의 뇌물과 같습니다. 이는 보상을 바라지 않는 참다운 선행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3. 선행은 잊어버려야 한다

14절에 “그리하면 그들이 갚을 것이 없으므로 네게 복이 되리니 이는 의인들의 부활시에 네가 갚음을 받겠음이라 하시더라”고 말씀합니다.

선행에는 진정한 복이 따르지만, 현세에서 받으면 복이 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곧바로 현세에서 받는 보상은 복이 되지 않지만, 현세에서 갚음을 받지 못하는 선행은 나중에 영원한 보상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영원한 복을 기억하면서, 갚을 수 없는 사회적 약자들에게 선행을 많이 하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죽은 다음에 받으라는 것인가?’ 의아심도 들 것입니다.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선행을 베푸는 사람이 당대에도 여러 방향으로 받는 경향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우리의 주변에서 도 베푸는 사람이 더 잘 된다는 것은 알려져 있는 비밀입니다.

랍비들의 교훈 가운데는 “선행이 되기 위해서는 받는 사람을 몰라야 한다”는 말이 있다고 합니다. 진정한 선행은 내가 주고도 누구에게 주었는지 모르고, 받는 쪽에서도 누가 나를 주었는지 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도와준 사람을 알게 되면 찾아가게 되고, 고맙다고 인사하면 선행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순수하게 할 수는 없다 해도, 선한 일을 한 것에 대해 두고두고 기억하려고만 하지 않아도 좋을 것입니다. 나아가 내가 준 것, 내가 행한 좋은 일을 아예 잊어버리는 것이 좋습니다. 그때야 비로소 멋진 선행이 될 것입니다.

김충렬
▲김충렬 박사. ⓒ크리스천투데이 DB
4. 정리

가는 인생의 길에 저와 여러분은 자신의 선행이 자신의 자랑이 되지 말기를 바랍니다. 다만 줄 수 있는 기회를 주신 주님께만 감사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큰 것을 남에게 주는 때가 있다 해도, 그것은 주님으로부터 받은 은혜에 비하면 매우 작은 것임을 깨닫는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십시다!

“주님, 우리는 선행을 하면서 광고하지 말게 하소서, 선행을 하고 보상을 기대하지 않게 하소서, 그리고 선행을 잊어버리는 사람들이 되게 하소서. 남이 모르게 선행을 많이 하는 사람에게 반드시 복을 내리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충렬 박사(한국상담치료연구소장, 전 한일장신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