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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xabay
노숙인대학에서 팔순이 되신 할머니가

제 손을 잡고 자랑을 하셨습니다.

"목사님, 제가 오늘 세 명이나 데리고 왔어요."
노숙인대학이 노인대학이 되어버린 지경에
기존의 커리큘럼으로는 감당이 어려운데
팔순 할머니만 세 분이나 더하신 것입니다.

게다가 이젠 자리가 좁아
앉을 자리가 없게 되었습니다.

앞으론 식탁도 늘려야 할 듯합니다.
5시 30분에 모여 식사하고
6시 30분에 기도회를 하고
7시부터 9시까지 교수님들이 오셔서
강의를 합니다.  

결론은 오늘 강의부터 지식의 양을 줄이고
영의 양식으로 강의 내용을
조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처음부터 대화로 이끌었습니다.
일일이 얼굴을 마주보고 물었습니다.

"세상에 오신지 얼마나 되셨습니까?"
"오시기 전에 어디에 계셨습니까?"
"언제 가실 것입니까?"

대답은 한결같았습니다.
"모릅니다!"

저는 재차 물었습니다.
"바로 그 모른다는 것을 아십니까!
정말 아십니까? 확실히 아십니까?
그것을 아는 것이 영이 밝아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모든 것을 아시고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하나님이
드디어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얼굴 빛이 달라지며
영혼에 빛이 밝아지고 있었습니다.
깊은 곳에서 피어나는 웃음을 짓는
노숙인 형제들도 있었습니다.

"이 세상 와보시니 어떠신가요?"
한 분이 말씀하십니다.
"4남매를 기르느냐고 고생 무척했습니다."

"지금은 좋아지셨나요?"
"아이들이 찾아오지도 못해요.
다 살기가 힘들어서!"

"정말 힘들지요.
실은 할머니만 아니라 우리 모두 다 힘들어요!
가진 사람들도 배운 사람들도 다 힘들어요.
감추고 사는 것뿐이지요.
죄 짓고, 생노병사의 길에서
벗어난 이가 어디 있나요!"

그래서 오죽하면 주님이 오셨겠습니까?"

"우리 가운데
이 세상 떠나지 않을 분 계십니까?"

한 할머니가 듣다가 눈물을 흘리며 말씀하십니다.
"목사님, 울고 싶습니다!"

"그러시다면 우셔야지요! 실컷 우셔야지요!
주님께 무거운 짐 내려 놓고 실컷 우십시오.
그러기 위해서 주님께서 오신 것입니다."

우리는 다함께 찬송가 91장으로 찬양하고 마쳤습니다.
"슬픈 마음 있는 사람 예수 이름 믿으면
영원토록 변함없는 기쁜 마음 얻으리...."

오늘도 교회엔 몇 사람 외엔 머물 방이 없어
찜질방 티켓 하나씩 드리는 것으로 위안을 삼았습니다.

모두 차가운 봄비 내리는
밤 거리로 사라지셨습니다.   
<이주연>

<오늘의 단상>
자기 울타리 지키는데 집중하면
자기 울타리에 갇힙니다.<산>

* '산마루서신'은 산마루교회를 담임하는 이주연 목사가 매일 하나님께서 주시는 깨달음들을 특유의 서정적인 글로 담아낸 것입니다. 이 목사는 지난 1990년대 초 월간 '기독교사상'에 글을 쓰기 시작해 지금까지 펜을 놓지 않고 있습니다. 지금은 온라인 홈페이지 '산마루서신'(www.sanletter.net)을 통해, 그의 글을 아끼는 수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