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나단 에드워즈의 말씀 사역
조나단 에드워즈의 말씀 사역

더글라스 스위니 | 김철규 역 | 복있는사람 | 284쪽 | 14,500원

하나님과의 만남

에드워즈는 하나님을 깊이 사랑하는 사람이다. 말을 타고 숲속으로 들어가 그 숲에서 하나님과 교제하며 살아계신 하나님을 깊이 경험하는 사람이다. 일상의 모든 것들에서 하나님의 신성을 발견하고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메시지를 발견하는 깨어있는 사람이다.

태어나면 기독교인이 되는 시대에 집안에서도 목회자의 자녀로 자라 당연히 목사가 되리라고 여겨졌던 에드워즈이다. 그러나 그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사람의 기대가 하나님 앞에서 목회자로 성장해 가고 성령의 사람으로 변화되는 것이다.

그는 부모님으로부터 경건한 청교도 신앙을 물려받아, 어릴 때부터 영적이고 신앙적인 일에 많은 관심을 갖는다. 비밀리에 하루 다섯 번씩 기도도 하고, 친구들과 신앙토론을 즐긴다. 그리스도인으로 해야할 의무와 책임에 있어 철저하게 자신을 지켜가고 일기와 결심문을 쓰기까지 자기 영혼에 많은 관심을 갖는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을 아는 것에 불과했고, 성도로서 해야 되는 기본이었다. 때로 이것이 기쁨과 감사였지만, 후에 에드워즈는 이런 행동이 자신의 구원에 직접적인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을 알았다.

1721년 5월 어느 날, 에드워즈의 인생을 영원히 바꿔놓은 사건이 발생한다. 영적이고 초자연적이고 거룩한 성령님의 역사다.

“영원하신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영원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디모데전서 1장 17절)”라는 말씀을 묵상하며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한 존재인지 알게 되고, 하나님으로 기뻐하는 사람이 되게 해 달라고 간구한다. 그의 영혼에 신령한 감각이 생겼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달콤함이 생긴 것이다.

꿀이 달다고 아는 것과 꿀을 실제로 맛보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하나님을 안다는 것도 지식적으로 아는 것과 실제적으로 아는 것은 그 온도가 확연히 다르다. 마치 믿음이 있다고 하는 것과 믿음대로 사는 것이 다른 것처럼!

에드워즈는 열렬히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었고, 벌이 꿀을 찾아다니는 것처럼 그리스도를 간절히 찾는 사람이었다. 하나님을 깊이 만난 흔적이 그에게는 예수님의 흔적이었고 강단에 설 때마다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근거였다.

설교에 온 힘을 쓰다

1729년 2월 에드워즈는 외조부 스토타드의 뒤를 이어 노샘프턴교회의 담임이 된다. 물론 이전에도 1726년부터 부목사로 사역을 했던 적이 있고, 1722년 맨하탄 장로교회에서 목회를 하기도 했다.

에드워즈에게 있어 설교는 하나님께서 교회를 깨우고 새롭게 하시는 은혜의 수단이었다. 그는 설교를 통해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에게 계시하고 자신의 말씀과 뜻을 충분히 전달하신다고 굳게 믿고 선포했다.

그의 믿음이 얼마나 강력했는지, 외조부 장례식에서 설교를 하며, 그 동안 지역에서 인정받고 교회에서 존경받는 외조부의 설교를 들으면서도 변화되지 못한 자들을 향해 참담함 마음을 드러내고 꾸짖는다. 수십 년 동안 외조부의 목양을 받았음에도 회심하지 못하고 지옥에 떨어지는 영혼들은 화가 있을 것이라고까지 한다.

물론 그의 말이 장례식장에서 적절하지 못하고 너무 교만한 말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만큼 설교 사역에서 불과 번개와 천둥과 놀라운 역사를 신뢰한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흔히 말하길 에드워즈는 고개를 숙이고 원고만 읽으며 설교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열정적인 설교자였고, 그 시간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시간이고 성령님께서 강력하게 역사하시는 시간이라고 확신했다.

그는 사역 중반기 이후부터는 원고 없이 설교를 했는데, 그 방법이 성령께서 듣는 이들의 마음을 효과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는 지식과 경험이 충분했지만, 자신의 지혜를 가리고 예수님의 지혜를 보여주기 위해 설교했다.

설교는 하나님에 대한 증언이고 예수님을 드러내는 것이라는 분명한 믿음과 확신이 있었다.

그에게 설교는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가는 존귀한 도구였다. 더구나 설교를 설득이나 연설 정도로 여기던 그 시절, 그는 설교를 통해 복음의 비밀과 하나님의 존재와 성령님의 역사를 강력히 드러냈다.

하나님의 위대한 일이 드러나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펼쳐간다. 설교가 인간의 가능성을 세우고 인간 중심으로 흘러갈 때, 그는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과 회개의 능력과 변화를 끊임없이 선포한다.

성경의 사람

에드워즈는 철학자, 문학가, 자연과학자 등 많은 명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는 성경을 사랑하는 사람이었고 성경을 연구하는 일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였다.

목회를 할수록 성경을 아는 지식과 하나님의 경륜을 이해하는 깊이는 더해져 갔다. 성경을 읽을 때마다 그 속의 언어들이 자기의 마음을 두드리는 것처럼 느꼈다.

자기가 성경을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이 자기를 해석하고 해부하고 새롭게 하는 경험을 한다. 성경을 읽을 때마다 각 문장이 강력한 빛을 비추고 그 문장에 잠겨서 놀라움에 감탄을 금치 못한다.

오늘날 필자도 목회를 하고 있는데, 필자의 목회와 성경연구가 정비례하는지 점검해 본다.

교회를 섬길수록 성경에서 생수를 길러내야 하는데 여전히 정곡을 찌르지 못하고 벽만 두드리는 것 같다. 샘을 파고 음식을 발효하듯, 문을 두드리듯 충분한 시간을 두고 성경을 읽고 설교를 준비해야 하는데, 너무 실용적으로 읽고 선포하고 있는 부끄러운 모습을 본다.

조나단 에드워즈
에드워즈는 말씀을 주의 깊게 연구하는 것이 사역의 성취도를 가늠하는 기준이라고 하는데, 그런 기준으로 보면 현대 교회는 너무 본질에서 멀어진 것 같고, 필자 역시 예외가 아닌 것 같다.

에드워즈는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고 성경과 연구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더구나 그의 시대는 계몽주의 발달로 성경을 비평하고 하나의 책으로 여기던 풍조가 있었다. 성경을 역사의 모음집 정도로 여기던 시대에, 그는 성경이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강변했다.

성경을 대하는 그의 태도가 그의 사역의 품격과 권위와 설교의 무게를 결정했다. 성경에는 복음의 비밀이 풍성하게 녹아져 있고, 그리스도의 구속과 하나님의 계획이 가득하게 담겨 있다.

에드워즈는 누가 뭐라 해도 성경의 사람이었다. 그는 주님의 발치에 앉아 말씀을 듣는 것을 설교자로 가장 중요하게 우선순위에 두었다. 성경에 칼을 대기 전에 자기 자신에게 칼을 대었던 것이다.

교회에서 성경을 통해 진리의 샘이 흘러가길 소망했다. 성경의 질식은 교회의 질식이고 어둠이다. 성경에 대한 무지와 권위의 약화는 우물 안에 오물을 집어넣는 것이었다.

그런 면에서 성경을 향하는 그의 태도는 우리에게 귀감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성경을 존중하고 사랑하고 읽고 있는가?

회심

에드워즈는 목회에서 ‘회심’이라는 분명한 기준을 가지고 사역을 했다. 1734년 노샘프턴 지역에 놀라운 하나님의 추수의 역사가 나타났다. 그 일로 인해 사람들은 자기 영혼의 회심과 구원과 관련하여 이전과는 다른 관심과 시간을 드렸다.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무리처럼,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될 것인지 물으며 주님 앞에 겸비해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하늘의 음성이 들리는 시간이었고 영혼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와 구원의 역사가 펼쳐지는 시간이었다.

에드워즈는 목회에서 성령님의 역사로 영혼이 거듭나고 회심하는 것을 전부로 여긴다. 성도들이 교회에 나오면서 기독교적 의식만 하는 것으로 구원이 보장되지 않는다.

그가 하나님을 맛보아 알았던 것처럼 자신의 죄인됨을 알고 그리스도를 찾는 회심의 역사가 나타나야 한다. 이 일은 하나님의 역사이며 죄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초청이기도 하다.

교회의 관심은 영혼의 변화에 있어야하고 그런 일들이 일어날 때 교회는 사명을 수행하는 것이다.

이 책을 보면서 에드워즈는 자신이 먼저 하나님을 깊이 만나고 변화된 사람이기에, 목회와 말씀사역을 능력 있게 감당해 갈 수 있었다고 느꼈다. 그에게는 그리스도의 흔적이 새겨져 있고 전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무치는 말씀이 있었다.

성경은 그에게 유일한 목회와 삶의 안내서이고 영혼의 현미경이었다. 그에게 회심은 날마다 그를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거룩한 주제였다. 늘 기도하며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그였기에 하나님의 손에 붙들린 사역자일 수 있었다.

에드워즈의 탄생(1703. 10. 5)에서부터 마지막(1758. 3. 22)까지 이 책은 에드워즈의 삶과 그의 말씀사역을 조명하고 있다. 특별히 대각성운동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었는지 그의 사역과 관련된 설명이 우리에게 도움을 준다.

강단이 왜소해져 가고 복음이 가볍고 설교도 피상적이고 값싼 구원이 넘치는 현 시대에, 그의 세계는 우리에게 경각심을 준다. 본질보다 비본질을 더 추구하고 시간을 쏟는 현대교회와 나에게 경고를 한다.

한편으로는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확신을 가지고 추구할 수 있는 깃발을 준다. 이 시대에 같은 길을 가는 하나님의 목회자들에게 참으로 유익한 도구가 될 것이다.

방영민 목사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위원, 서현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