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뱅
칼뱅

브루스 고든 | 이재근 역 | IVP | 716쪽 | 33,000원

에베레스트 같은 고산을 등반하기 위해서는 경험이 풍부하고 고산에 대한 이해가 충분한 셰르파(가이드)를 대동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여러 난코스들이 있고, 자칫 잘못하다가는 길을 잃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풍부한 탐험 경험과 객관적인 판단력을 가진 셰르파의 존재는 필수입니다. 위대한 생애를 살았던 인물들을 평가하기 위해 그 영적 거인들이라는 고산을 등반하기 위해 충실한 가이드가 필요할 것입니다.

교회사 가운데 가장 위대한 주님의 종이라 불리며 수많은 칭송과 반대파의 비난을 한몸에 받은 장 칼뱅이라는 고산에 오르기 위해 수제자인 베자를 위시해 여러 가이드들이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지만, 여기 충분히 신뢰할 만하고 참신한 저자가 있습니다.

칼뱅이라는 거봉을 객관성이라는 현미경을 통해 자세히 관찰하며, 균형을 잃지 않고 세르파의 직분을 충실히 수행하기 위해 노력한 흔적들을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전기의 성격상(특히 이처럼 교회사에 큰 획을 그은 위인이라면 더욱) 인물을 객관적인 틀로 보기도 하지만, 너무 무비평적으로 저술하기도 하기에 치우친 결과물들을 보는 경우도 종종 있는데, 고든은 인간 칼뱅의 솔직한 내면에 집중합니다.

짜증스럽고 예민한 성격 탓에 때로는 그가 원했던 원만한 대인관계가 어려웠음도 보여주고, 자신을 비난하는 것에 대해 참을성 없는 태도로 맞받아치는 모습도 보여주는데, 이러한 그의 단점이 어떻게 사용되고 하나님에 의해 다듬어지는지를 보는 것도 하나의 재미입니다.

한 부분을 인용해보자면, 칼뱅은 최고의 재능을 가진 인물이자 확신에 가득 찬 교회의 목소리였지만, 고뇌에 시달리고 자주 도탄에 빠지는 한 개인이기도 했습니다.

“자신의 평판에 대해 지독히 방어적이었고, 자기 이름이 악평을 듣거나 대적자에게 비난받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 곧장 분노가 일었다. 누가 자신을 얕보거나 모욕하는 것을 알게 되면 깊은 상처를 받았고, 친한 사람들에게 자주 편지를 써서 미주알고주알 알렸다(269쪽)”.

저자는 이를 칼뱅의 열정과 지성 사이의 분투라고 묘사합니다. (사실 이 부분을 읽으며 당황스럽기도 했습니다. 물론 여전히 성화되는 과정이기도 했습니다만, 그만큼 제가 이분을 바라보는 시각이나 기대치가 높다 할 수 있겠지요.)

한 사람의 위대한 신학자가 만들어지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이들의 도움을 받았고 영향을 받는지 생각해 본다면, 칼뱅 역시 그의 삶을 세밀하게 인도하시는 선하신 하나님의 섭리의 역사와 그분의 조명하심 아래 성경의 저자들(특별히 사도 바울)로 부터 교부들(특히 어거스틴 및 크리소스톰) 및 츠빙글리를 위시한 다수의 종교개혁자들에게 큰 빚을 지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개혁신학은 새로운 신학이 아니라 이미 성경에 있는 성경의 신학이며, 교회사를 통해 체계를 잡아 놓은 선배들의 역사적인 신학임을 다시금 되새기는 시간이었습니다.

칼뱅이 받은 여러 영향 중에 인상적인 것은 하나님께서는 혈기가 넘치고 아직은 덜 다듬어진 칼뱅을 여러 상황 속에서, 스트라스부르의 마틴 부처와 함께 지내게 하심으로 그에게 목회자로서의 소양을 배우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만약 파렐과만 같이 지내거나 홀로 있었다면 하는 재미있는 상상도 해보게 될 정도로, 하나님의 섭리는 오류가 없으십니다.

존 칼빈
▲존 칼빈. ⓒFIM 국제선교회 제공
칼뱅은 드라마르 목사나 예정론을 공개적으로 반대한 피에르 아모, 카스텔리오를 비롯해 그 유명한 세르베투스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대적자들을 상대함에 있어 항상 온유하지는 못했고, 때로는 그 뿌리를 뽑아낼 때까지 논쟁을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러한 이단적인 사상들은 교회의 거룩을 위협하는 중차대한 문제였기 때문입니다.

자세한 소개가 없어 단편적이긴 하지만 아내 이들레트에 대한 깊은 사랑과 애정을 느낄 수 있었고, 그가 사랑한 동료들에 대한 존중과 성도의 품격도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네바 목사회 및 꽁시스투아르(평신도를 감독하던 기관)를 통해 굉장히 세부적으로 개혁을 단행하여 교회뿐 아니라 도시 전체와 나라에까지 영향을 미쳤던 부분을 보며, 현재 우리가 말하는 개혁(혁명이나 사회 및 제도개혁을 통한 접근)과의 간극을 보게 됩니다.

실제로 하나님의 섭리적 주관 하에 쓰임 받았던 개혁자들의 교회개혁의 원리를 성경과 역사로부터 배우고 그것이 이 시대에도 동일한 적용점을 가진다는 것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즉 참된 개혁은 강단의 개혁에서부터 시작되는데, 이미 신앙의 선조들이 여러 시행착오를 겪으며 도달한 결론이며, 이것을 통해 하나님께서 역사하심으로 교회개혁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교회개혁과 더불어 칼뱅이 평생 힘썼던 개혁교회의 신앙고백 일치의 노력과 연합을 위해 놀라운 인내와 겸손을 보여준 것도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소 얽매이는 듯하고 너무 엄격하게 보인 꽁시스투아르의 처벌과 관련해 저는 다른 관점이며, 개혁자들의 입장을 전적으로 지지합니다.

사람의 뜻이 아닌 성경을 기준으로 그에 합당한 삶을 살고 목양받는 대상들에게도 그것을 가르치고 요구했던 내용들은 비록 불경건한 자들의 눈에는 거치는 내용이고 율법주의로 비쳐질 수 있었지만, 그것은 그들의 철저하게 낮아진 심령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려는 신앙의 열정을 보여주는 단면이라고 생각합니다.

책을 읽으며, 저자의 사료에 근거한 꾸밈없는 (약간은 가혹하다 싶을 정도로) 냉정한 평가에 설득당하기도 하고 동의 못할 지점도 있었지만, 칼뱅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재미를 준 좋은 저술이라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성령의 신학자 장 칼뱅!

수많은 질병들로 연약한 몸을 이끌고 평생을 롤 모델로 삼았던 사도 바울처럼 살기를 원했던 교회 개혁의 사도!

수많은 추종자와 대적자를 동시에 가지고 있었던 목사이자 신학자, 교회 개혁의 기수, 그리고 그 이전에 하나님 앞에 한 사람의 성도였던 그를, 저는 그렇게 부르고 싶습니다.

김성욱 크리스찬북뉴스 명예편집위원, 삼송제일교회 중고등부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