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 오요한
욥기 32장 강해

요절: “그러나 사람의 속에는 영이 있고 전능자의 숨결이 사람에게 깨달음을 주시나니(8절)”.

32장에서부터 37장까지는 욥의 마지막 변론 부분과 하나님의 나타나심 사이 교량 역할을 하는 전환부에 해당합니다. 그중 32장과 33장은 네 차례에 걸친 엘리후의 긴 변론 중 첫번째에 속합니다.

엘리후는 람 족속 바라겔의 아들 입니다. 엘리후의 이름과 함께 그 조상들의 이름이 소개됩니다. 엘리후가 다른 세 친구들보다 더 중요한 인물임을 암시합니다.

엘리후는 ‘나의 하나님’이란 뜻이며, 또 아버지 바라겔은 ‘하나님께서 축복하셨다’는 뜻입니다. 엘리후는 욥의 고난의 의미를 하나님의 사랑 편에서 새롭게 해석합니다.

1. 욥과 세 친구에 대한 엘리후의 분노

1-5절에 보면 욥이 자신을 의인으로 여기므로 세 친구는 말을 그쳤습니다. 엘리후가 욥에게 버럭 화를 냈습니다. 욥이 하나님보다 자신을 의롭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사람이 의로워도 하나님보다 의로울 수는 없습니다. 욥은 그 자신의 눈으로 보기에 의롭다 여겼습니다. 세 친구들은 자기 견해에 따라 무죄를 확신하는 욥에 대해 더 이상 변론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엘리후는 욥이 의를 주장하는 태도가 하나님의 불의를 주장하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욥이 하나님의 성품을 불경건하게 하는 교만의 죄가 있음을 알고, 하나님을 위해 변호하고자 나섰습니다.

또한 엘리후는 세 친구에게도 화를 냈습니다. 세 사람이 욥에 대해 바른 말을 못하고 정죄만 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인과응보적 시각에 사로잡혀 욥을 정죄하였습니다. 그들의 나이가 자기보다 많으므로, 엘리후는 논쟁의 처음에는 등장하지 않고 있다가 끝부분에 와서 갑자기 나타났습니다.

엘리후는 연장자가 말을 할 때 연소자로서 조용히 듣고 겸손하였습니다. 엘리후는 그들의 주장에 잘못된 점들이 발견되었을 때도 겸손히 참아왔습니다.

친구들이 대답이 없음을 보고 엘리후는 노를 발하며 하나님을 변호합니다. 엘리후는 욥을 정죄하는 말을 하지 않고,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말합니다. 하나님은 하늘이 땅에서 높음과 같이 사람보다 높으신 분이십니다.

2. 겸손한 엘리후

6, 7절부터 엘리후의 본격적인 연설이 시작됩니다. 엘리후는 고난에 대해 새로운 해석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세 친구는 고난은 죄에 대한 형벌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이것은 전통적인 고난관(觀)입니다.

그러나 엘리후는 고난을 하나님의 사랑에 근거하여 설명합니다. 엘리후는 고난에 의해 정화되어야 할 욥의 죄를 교만이나 자기 의라고 지적합니다.

고난은 하나님의 은혜를 가르쳐주고 겸손을 가르쳐줍니다. 엘리후는 지금까지 감히 자신의 의견을 내놓지 않았습니다. 엘리후가 자신의 할 말을 미리 마음 속에 되뇌어 보았습니다.

엘리후는 자신에 비해 연로한 세 친구들이 일반적으로 더 지혜롭다고 할 수는 있지만 지금의 상황에서는 인정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3. 전능자의 숨결을 소유한 엘리후

“그러나 사람의 속에는 영이 있고 전능자의 숨결이 사람에게 깨달음을 주시나니 어른이라고 지혜롭거나 노인이라고 정의를 깨닫는 것이 아니니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내 말을 들으라 나도 내 의견을 말하리라(8-10절)”.

엘리후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영을 주시고 전능자의 숨결을 주신 것을 알았습니다. 엘리후의 속에는 하나님의 영이 있어, 연소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연장자인 저들을 가르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는 모든 지혜의 원천이신 하나님으로부터 임한 깨달음으로 가르칩니다. 사람의 영혼 속에 하나님이 주시는 통찰력은 인생의 연륜에서 얻어지는 일반적인 지혜보다 우월합니다.

하나님의 영이 있는 자에게는 하나님이 주신 신적인 권위가 주어집니다. 엘리후는 노인이라고 깨닫는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는 나이 많은 연장자들에게 일반적으로 인정되던 지혜자로서의 판결권을 부정하고 있습니다.

그는 지혜를 깨달아 공의를 판별할 수 있는 힘은 오직 하나님의 영감에 의한 것이지 인생의 오랜 경험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지혜로부터 영감된 자신의 통찰력을 말합니다.

그는 욥과 친구들에게 참다운 지혜와 공의가 무엇인지를 가르치겠다고 합니다. 어른들은 여러 가지 체험을 하면서 자신의 지혜를 갖습니다. 그러나 어른들의 문제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히기 쉽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고난의 문제를 해결할 때 고정관념을 벗어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들어야 합니다. 엘리후는 하나님의 성령을 통해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는 성령께서 깨우쳐 주시는 것을 말하고자 합니다.

성경은 전능자의 숨결로 된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 말씀을 통해 고난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어떤 노인보다 더 지혜롭습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지혜가 들어 있습니다. 우리는 젊더라도 성경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지혜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도 가르칠 수 있습니다. 젊은 사람도 성경을 통하여 노인들의 목자가 될 수 있습니다.

비천한 자가 세상적으로 높은 지위에 있는 자들의 목자가 될 수 있고, 후진국 백성이 선진국 지성인들의 목자가 될 수 있습니다.

4. 하나님의 감동에 의지한 대답

11-14절에 보면 지금까지 엘리후는 다른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들었습니다. 엘리후가 자세히 들으니 친구들 가운데 욥을 꺾어 그의 말에 대답하는 자가 없었습니다.

엘리후는 어른들이 할 말을 찾는 동안에 말을 참고 기다렸습니다. 엘리후는 세 친구들의 말을 주의를 기울여 보았습니다. 엘리후는 더 이상 친구들이 욥의 주장을 꺾어 하나님의 정의로움을 변호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욥이 엘리후에게는 말을 걸어오지 않았지만, 엘리후는 다른 세 명과 같은 식으로 말하지는 않겠다고 합니다. 그는 경험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의 감동을 의지하여 말하겠다고 합니다.

세 친구들은 욥의 주장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알았지만, 분명한 논리를 가지고 반박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욥은 엘리후가 욥을 대항하여 논쟁을 벌인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엘리후에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엘리후도 욥에게 직접 말하지 않습니다. 엘리후는 보다 객관적 입장에서 욥의 고난에 대해 그에게 교훈해 주고 있습니다. 엘리후는 친구들이 엘리후의 마지막 주장에 대해 더 이상 논박하지 못하고 침묵하는 것은 자신의 등장을 요청하는 신호로 받아들였습니다.

5. 영이 압박하는 엘리후의 의견

“당신들이 말 없이 가만히 서서 다시 대답하지 아니한즉 내가 어찌 더 기다리랴? 나는 내 본분대로 대답하고 나도 내 의견을 보이리라. 내 속에는 말이 가득하니 내 영이 나를 압박함이니라. 보라 내 배는 봉한 포도주통 같고 터지게 된 새 가죽 부대 같구나 내가 말을 하여야 시원할 것이라. 내 입을 열어 대답하리라(16-20절)”.

욥의 친구들이 가만히 서서 대답지 않으므로 엘리후는 더 기다릴 수 없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자 합니다.

엘리후는 욥과 변론할 만한 가장 적절한 인물이 바로 자신임을 거듭 강조하여 말합니다. 엘리후는 그들이 욥의 주장에 대해 반박할 것을 간절히 기다렸습니다.

엘리후가 하나님의 진리에 의한 통찰력과, 진행되었던 논쟁들의 세밀한 분석에 의한 판단으로서 말하고자 합니다. 엘리후의 마음 속에는 할 말이 가득하였습니다. 그의 영이 말을 하도록 압박하였습니다.

세 친구들은 할 말이 없었던 것에 반해, 엘리후는 온통 하고 싶은 말과 하나님의 명예를 위해 해야만 하는 말들로 꽉 차 있었습니다.

엘리후는 말하지 않으면 가슴이 터질 것 같은 압박을 받고 있습니다. 자신의 배는 봉한 포도주 같고, 터지게 된 새 가죽부대 같이 할 말이 솟아나고 있습니다.

그의 마음 속에 불이 붙었습니다. 그는 말을 해야 시원할 것 같았습니다. 엘리후는 욥의 주장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는 것이야말로 마음의 짐을 벗어버리고, 멍에를 벗어 산뜻한 자유를 맛보는 것입니다.

6. 사람에게 아첨하지 않는 말

21, 22절에 보면 엘리후는 사람의 낯을 보지 않고 사람의 영광을 돌리지 않겠다고 합니다. 엘리후는 편견을 가지고 대하는 불공평한 행동을 누구에게도 행하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누구에게 듣기 좋은 아첨을 하지 않습니다.

엘리후는 논쟁을 통해 친구들이든 욥이든 누구의 편을 들어 사람의 호감을 사고자 하지 않습니다. 그는 정직하고 공정하게 말함으로써, 오직 하나님의 판단에만 자신을 맡길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그는 믿음으로 말하겠다고 합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진실을 말하겠다고 합니다. 그는 만일 아첨하면 나를 지으신 이가 속히 데려가기를 원한다고 합니다.

엘리후가 자신의 행동 기준을 오직 하나님께 두려고 했습니다. 엘리후가 자신의 연설이 하나님의 명예를 변호하기 위한 신성한 사명임을 강조합니다.

엘리후는 하나님이 자신을 벌하실 것이 분명하기에, 그는 결코 세 친구들처럼 욥에게 아첨하듯 하는 태도로 하나님의 공의를 저버리지 않겠다고 합니다. 그는 자신이 하나님의 변호자임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오요한
▲오요한 목사.
7. 결론: 성령에 감동된 성경 선생

우리는 엘리후를 통하여 성령에 감동된 성경 선생이 되어야 함을 배웁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하나님 편에 서야 하는 것을 배웁니다.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성경 말씀에 기초하여야, 고난 받는 자들의 목자가 될 수 있습니다. 성령에 감동될 때 세상의 노인보다, 지식인보다 더 지혜로운 목자가 될 수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숨결로 이루어진 것으로 아주 좋은 상담책입니다. 우리가 성령의 숨결인 하나님의 말씀을 잘 배워서 이 시대 고통하는 자들의 좋은 목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오요한 목사(천안 UBF, <오요한 목자의 로마서 강해>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