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함성 1919>
▲오페라 <함성 1919> 공연 장면. ⓒ고려오페라단

오페라 <함성 1919>는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해 나라의 1%에 불과했지만, 3.1운동에 큰 영향력을 미쳤던 ‘숨기려 해도 숨길 수 없는’ 기독교인들의 정신을 드러낸다.

동요와 교회음악의 대부 박재훈 목사가 창작한 <함성 1919>는 구상부터 제작까지 40년 만에 완성된 것으로, 평생을 교회음악가로 헌신했던 박 목사의 투혼을 엿볼 수 있다. 주요 인물로는 이승훈(테너 정의근), 이상재(바리톤 한경석), 유관순(소프라노 박현주), 김마리아(메조소프라노 양송미), 한용운(테너 김성진), 최린(바리톤 김종표), 정재용(테너 배은환), 강기덕(바리톤 곽상훈), 하세가와(베이스 김민석), 우찌노미아(테너 이세현), 야마가다(바리톤 이해원)가 등장한다. 오케스트라는 CMK교향악단(음악감독 박용호)이 함께 했다.

‘쿵쿵. 쿠구구궁. 챙’

북과 심벌즈의 우렁찬 타악기 연주가 공연의 인트로를 알렸다. 이후 우리에게 친숙한 ‘아리랑’ 선율이 울릴 즈음 하얀 수의를 입은 합창단의 웅장한 노래가 울려 퍼졌다. “대한독립 만세… 고난과 역경의 어둔 밤은 지나갔다.” 동시에 공연장 가장 앞 쪽에서는 홀로그램 영상으로 ‘기독교’와 함께 했던 3.1운동에 대해 소개한다.

오페라 <함성 1919>
▲오페라 <함성 1919> 공연 장면. ⓒ고려오페라단

100년 전 3월 1일, 당시 기독교인은 대한민국 전체의 1%정도였지만, ‘독립선언서’ 대표자 33인 중 16인이 기독교인이었고, 만세운동 311개 지역 중 78개 이상의 지역을 기독교가 주도했다. 3.1운동 전체 투옥자 중 22%는 기독교인이었다.

“자유와 해방을 주신 주 하나님… 하늘 뜻 이 땅 위에 이루어질 그날까지”

첫 곡은 ‘주기도문’을 연상시키는 가사로 끝을 맺었다. 이제 악기들의 연주만이 클라이맥스를 향했다. 고조된 분위기에서 음악이 끝나고 적막함이 찾아왔다. 그 사이를 비집고 ‘쿵’ 소리가 났다. 공연장 중심에 있던 인물들이 들고 있던 관을 떨어뜨린 것. 마치 고종의 죽음을 연상시키는 듯한 장면이다. 지금까지의 장면은 공연의 전체 주제를 압축적으로 반영한 듯 하다. 이제 본격적으로 100년 전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어찌하여 나라 잃고 식민 사슬에 매였는가. 을사늑약, 경술국치… 슬프다 조선이여.”

이제 이전과는 전혀 다른 어둡고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다. 장소의 변화는 홀로그램으로 처리했다. 테너와 바리톤이 이야기를 시작하고, 다시 합창이 이어졌다. 공연은 기획 의도에 따라 어떠한 한 인물이 부각되기보다는 전반적으로 합창과 중창이 주를 이룬다. 이를 통해 민중의 장엄하고 숙연한 분위기를 의도하고 모두가 주인공이 된다.

“어째서 건강하시던 황제께서 갑자기 승하하셨단 말인가?”

기미년(己未年) 1919년, 고종 황제가 독살 당했다는 소문이 돌면서 민심이 크게 들끓었다. 일본 제국 주의를 향한 분노와 원성은 점점 높아지는 상황. 3월 3일 고종의 장례식을 보러 전국 백성들이 서울에 모이고 있었다. 배경은 공연장 맨 앞에 비치되어 있는 스크린과 홀로그램을 통해 표현됐다.

“나라가 망한 터에 하늘이 무너졌구나. 우리 민족은 이제 어디에로 가야 하나.” 이러한 절망도 잠시, 모두의 마음을 담은 기도가 시작된다. “오, 하나님 도우소서 노예 상태 이 백성을 출애굽의 새 역사를 다시 한 번 일으키사… 독립의 날을 주소서.” 곧 민중은 민족의 독립을 위해 숨어 있는 애국자를 움직이고자 한다. 일본의 심장부에서 조선청년독립단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일화 등은 레치타티보(주인공의 감정을 표현하는 아리아와 달리 주인공이 처한 상황과 스토리의 전개를 설명)를 중점으로 이끌어간다.

한편, 무리 중에서 총과 칼을 들고 맞서야 한다는 의견이 생겼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검을 가지는 자는 다 검으로 망하느니라’라는 마태복음 26장 52절의 성경 구절을 예시로 들며 ‘비폭력’과 ‘무저항의 정신’을 말한다. 이 같은 정신은 이후에도 “한 손에는 독립의 횃불 한 손에는 평화의 깃발”, “선으로 악을 이기리라”, “원수를 사랑하는 마음”, “사랑으로 미움을 몰아내리라”, “조선의 독립과 자유를 위하여 한 알의 밀알로 죽게 하소서”를 비롯한 가사와 대본으로 계속해서 강조된다.

<함성 1919>
▲오페라 <함성 1919> 공연 장면. ⓒ고려오페라단

후반부로 가면서는 홀로그램 효과를 위해 설치됐던 스크린이 제거됐다. 그만큼 배우와의 거리가 가까워진 느낌. 아무것도 없는 어두운 공연장에서는 미닫이문이 열리듯, 작은 틈새로 빛이 뿜어져 나왔다. 네모난 모양이었던 그 틈새는 곧 십자가 형태를 이루었고, 마치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빛의교회’처럼 외부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는 십자가 형태를 이루었다. 주제가 주제이니만큼 무척이나 신경 쓴 연출 같다. 이러한 연출은 가장 어두운 죽음 앞에서 가장 극명한 사랑을 드러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생각나게 한다. 무대 앞쪽에서도 새로운 공간을 형성했고, 이제 교회의 모양을 갖췄다. 관객과 배우들 사이에 있던 막이 제거된 만큼 관객과 배우의 거리도 가까워졌다.

이후 교회에서 3.1운동을 모의한 이들은 ‘한 알의 밀알’로 죽을 각오를 한다. 독립선언서 발표 등 거사를 앞둔 상황. 무대의 가장 먼 곳에서는 일본군의 모습이 비친다. 기독교인을 골칫거리로 여기는 일본의 지도자는 ‘아마테라스 오미카미(일본 고유의 최고 신)’에게 예수 그리스도와 기독교인들을 몰아내면 조선을 받치겠다고 한다. 일본을 연상시키는 붉은 색감이 전반부보다 자주 등장한다. 무용, 의상 등 볼 거리도 많아졌다. 정사각형 큐빅 형태의 무대장치는 상황에 따라 감옥이 되기도 하고, 홀로그램을 활용해 태극기, 십자가 모양 등의 상징을 더하기도 한다. 여러 극적인 상황에서 배우들은 “과거의 시대는 가고 축복의 새 역사가 시작된다”라며 “대한 독립 만세”를 선포한다. 그리고 ‘기도’로 얻은 자유를 노래한다. 이중 ‘피땀’이라는 가사는 골고다에서의 예수 그리스도의 기도를 떠오르게 한다.

<함성 1919>
▲오페라 <함성 1919> 공연 장면. ⓒ고려오페라단

공연의 마지막은 애국가로 장식했다. 올드 랭 사인(Auld Lang Syne) 선율에 맞춰 부르던 애국가는 4절로 가면서 안익태가 작곡한 선율로 바뀌었다. 관객은 약속이라도 한 듯 전원 기립해 애국가 4절을 함께 제창했다. 과거에서 미래가 연결됐다. 그 공연에 참석했던 이들이라면 가장 인상 깊은 장면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커튼 콜에서는 휠체어를 타고 등장한 박재훈 목사가 관객에게 인사를 전했다. “송이 송이 눈꽃 송이 하얀 꽃송이… ” 끊이지 않는 기립 박수 속에, 추억을 상기시키는 멜로디로 공연은 끝이 났다.

최근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일본의 고문과 순교, 핍박을 강조한 영화와 여러 문화 행사들을 이따금씩 볼 수 있다. <함성 1919>는 그러한 과거에 중점을 맞추고 자신을 의뢰하기보다 하나님께 부르짖었던 신앙의 순수함, ‘미래’에 대한 소망을 노래했던 이들의 기도, 그리고 그 미래를 사는 현재 우리의 자리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어두운 현실 속에서도 “하늘의 높은 뜻 실현하리라”라고 노래한 이들의 기도가 지금 이 순간에도 이어지고, 하루 빨리 실현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