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준 장로.
▲이효준 장로.
사람은 착각과 오해 속에 살아간다고 말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입니다. “착각은 자유”라는 말도 일상 속에서 흔히 사용됩니다. 착각은 잠시나마 기쁨과 위안을 가져다 줄 수도 있지만, 지나치면 주위 사람들로부터 오해를 받기 일쑤입니다.

착각(錯覺)이란 명사로는 어떤 사물이나 사실을 다르게 잘못 느끼거나 지각(知覺)함을 말합니다. 지각이라 함은 명사로는(기본 의미) ‘알아서 깨달음, 또는 그런 능력, 심리 감각기관을 통하여 외부의 사물을 인식하는 작용, 또는 그 작용에 의하여 얻어지는 표상’이라고 합니다.

오해(誤解)란 ‘사실과 다르게 해석하거나 이해함, 또는 그 해석이나 이해, 원래의 뜻과 취지가 다르게 잘못 생각하거나 좋지 않게 꼬아서 생각하는 것’을 말합니다. 즉 사실이나 내용을 실제와 다르게 잘못 이해하는 것입니다.

착각하는 사람이란, 자기 생각만 정답이라고 여기는 자를 말합니다. 착각을 요약하면 단순한 지각상의 실수라기보다, 부정확한 지각을 유발한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감각에 주어진 자극이 어떤 환경조건에 따라 변했을 때 생기는 착각은, 자극-왜곡 착각이라고 합니다. 물 속에 막대기 일부분을 담가 놓으면 휜 것처럼 보이는 것이 하나의 예입니다.

감각 자극의 객관적 사실과 다른 감정이 생기는 ‘착각’은 일반적으로 정상인 사람에게 생기는 것입니다. 이상한 상태에서 생기는 것과 구별하기 위해 ‘생리적 착각’이라고도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가 보고 이해하는 세계를 객관이라고 여깁니다. 저 역시 예외가 아닙니다. 하지만 실상이 사실로 확인되지 않는 한, 착각일 수도 있습니다.

‘착각’ 하면 뒤이어 연상되거나 찾아오는 것은 ‘오해’입니다. 착각과 오해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착각의 의미는 앞에서 봤고, ‘오해’란 사실과 다르게 해석하거나 이해하는 것입니다.

단어의 뜻으로 보면, 착각은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인지적 오류의 차원이고, 오해는 사고의 과정을 거친 논리적 오류의 차원입니다. 전자가 원인이라면, 후자는 결과라 이해해도 별 무리가 없습니다.

즉 오해는 근거 없는 확신으로 단정해도 좋을 듯 합니다. 그러므로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착각과 오해는 가끔 겪을 수 있는 일상적 경험인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착각과 오해를 할 수 있습니다. 완벽한 인간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착각과 오해로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받으며 살아가는 사회적 동물인 것입니다.

아무도 살지 않는 무인도에 살아도, 착각과 오해는 필수적으로 존재할 것입니다. 비록 옆에 다른 사람이 없더라도 자연 속에서 나무를 보며, 바다를 보며, 하늘을 보며, 착각과 오해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처음 창조하신 사람인 아담과 하와 역시, 간교한 뱀의 꾀임으로, 하나님이 될 수 있으리라는 착각 속에 엄청난 죄를 지어 인류 사상 최초의 고통을 안겼습니다.

또 자신의 제사를 받지 않았다는 오해 때문에, 동생 아벨을 살인한 가인의 사건이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종이었던 하갈은 사라의 배려로 종에서 후처로 승진하지만, 아이를 낳은 뒤 마치 주인이라도 되는 듯 착각하고 종의 신분을 망각하여 주인을 비웃으며 괄시하다, 먼 타국에 쫓겨나는 신세로 전략하고 맙니다.

베드로는 변화산에서 ‘여기서 초막 셋을 짓자’고 합니다.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또 하나는 주님을 위하여 짓자고 제안합니다. 주님의 뜻과 전혀 무관한 말로 아첨을 합니다. 이야말로 베드로의 착각 아닐까요?

세상적인 눈으로, 38년 된 혈루증 환자인 여자는 자신의 고통을 이기기 위해 세상에서 용하다는 약을 다 써 보았지만 아무 효험이 없었습니다.

그런 그녀는 많은 인파 속에서 주님을 만나기가 힘들다는 것을 깨닫고, 주님의 옷깃이라도 만지면 낳을 수 있으리라는 확신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당시 사람들은 아마도 미친 짓이라고 했을 것입니다. 아마 요즘 같으면 ‘착각에 빠지지 말라’고 하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녀는 ‘의로운 착각’으로 주님에게 달려갔습니다. 체면이나 여론 따위는 상관이 없었습니다. 오직 그녀의 목적은 주님의 옷자락을 만지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그녀는 성공했습니다.

문창극 총리 후보자는 지난 2011년 서울 용산구 이촌동에 위치한 한 교회의 특강에서 일제 식민지 지배와 남북분단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취지의 발언으로 오해를 불러 일으켜 총리직 후보에서 도중 하차하고 말았습니다.

그는 인사청문회 준비단을 통해 낸 보도자료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글들은 언론인 출신의 자유기고가로서 쓴 것이고, 강연은 종교인으로서 교회 안에서 한 것이어서 일반적인 정서와 다소 거리가 있을 수 있다’며 오해의 소지가 생긴 것에 대해 유감이라는 입장을 표명했지만, 결국 총리 후보자에서 낙마하는 비운을 맞았습니다.

이처럼 받아들이는 사람들 역시 처음과 끝을 분명히 이해한 다음 문제를 삼아야 하지만, 한 문장만을 가지고 오해하면서 이러한 안타까운 사태를 초래하게 돼 참으로 아쉬움이 남습니다. 많은 세월이 지났지만, 뒷맛이 썩 좋지 않습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도 주님을 위해 최선을 다해서 사명을 감당하겠다고 하면서도, 착각과 오해 속에 분별력을 잃고 있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주님을 믿을 때의 초심대로 자신을 철저하게 점검하며, 오로지 낮은 자세로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노력한다면, 교회를 교회 되게 하는데 최선을 다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성경 말씀을 착각하거나 오해해서는 절대 안 될 것입니다. 주의 종들은 말씀 안에서 가르치고 훈육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양들을 바르게 가르치지 않으면, 포식자에 의해 멸망당하고 말 것입니다. 목자는 철저히 양들의 우리를 지켜야 하며, 하나님의 메시지를 정확하게 전하는데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교회나 조직에서 일을 하다 보면, ‘내가 없으면 교회 일을 할 수 없다, 내가 아니면 아무것도 안 된다, 조직에서 내가 빠지면 모든 일이 마비가 된다’는 등의 착각으로 자신을 교만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제 친구 중에도 장난삼아 착각으로 한 일이 평생 씻지 못할 범죄로 이어져, 지금도 주위의 따가운 시선 속에 살아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목회자들에게 착각과 오해는 절대 금물입니다. 목회자는 청렴하고 거짓이 없어야 하며, 잘못을 저질렀을 때는 하나님과 성도들 앞에 깊은 회개를 해야 합니다.

하지만 일부 목회자들 중에는 목자로서 자질 함량이 부족한 분들이 있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자신의 뜻대로 따라주지 않는다 해서 적으로 착각하며, 심지어 사탄이나 악의 세력으로 몰아붙이기도 합니다. 오해와 갈등 속에 성도들 사이에서 편을 갈라 서로 불신과 미움을 만드는 일은, 분명 하나님의 진노가 따를 것입니다.

이를 잊지 마시고, 깊은 회개를 통해 진정한 주님의 제자로서, 목자의 사명을 감당하시길 부탁드립니다.

때로는 양들이 위기에 처했음에도 허울 좋은 사랑 운운하면서, 자신의 이익에 합하도록 유도하거나 내치는 목자들도 있어, 참으로 안타깝기도 합니다. 진실로 이 시대에 의인을 볼 수 있을까요?

개신교 지도자들의 타락 때문에 교회가 교회로서의 사명을 감당치 못하고 손가락질을 받는 시대로 전락했습니다. 진정한 회개 없이, 죄를 짓는 일에 무감각해졌기 때문은 아닐까요.

하나님을 향한 일상이 아니라, 세상과 연락하고 세상 향락에 젖은 지도자들의 잘못된 신앙관 때문에, 오늘에 기독교가 욕을 먹는 게 아닐까요.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을 착각하거나 오해하고, 자신을 돌아볼 겨를도 없이 세상 일에 바삐 움직이는 지도자들 때문에, 주님께서는 오늘도 근심하며 기다리고 계십니다.

“착각은 자유다”, 세상 사람들이 흔히 사용하는 이 말처럼, 우리 신앙인들은 착각과 오해를 쫓아내고 말씀대로 살아가며, 서로 신뢰를 구축하고 함께 나눔의 세상을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이효준 장로(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