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민국 목사.
인간은 누구나 죽음을 맞는다. 죽음을 소유하지 않은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삶을 위한 삶을 살아가는데 익숙하고 노련한 인간일지라도, 풍요와 안락한 삶을 영위하고 있을지라도, 죽음을 피할 수 없다. 성경은 죽음에 대하여 한 마디로 단언하고 있다.

“한 번 죽는 것은 정하신 일이요 그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라(히 9:27)”.

모든 인간은, 자신의 삶이 자신의 것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의 주관 아래 주어진 삶이라는 사실 앞에 항변할 수 없다. 죽음 때문이다.

자신의 인생이 자신의 것이라면 오백년, 천년쯤 살아가고 싶을텐데, 더구나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녀들의 죽음 문제에도 전혀 개입할 수 없는 상황은 창조주 하나님이 생명의 주관자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또 인간의 죽음은 죽음으로 끝이 아니라, 죽음 후에 반드시 심판이 내려진다는 하나님의 엄중한 선포 앞에 고개를 숙일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심판의 기준은 무엇일까.

안타깝게도 인간은 선(善)함을 심판의 기준으로 착각하고 수많은 종교 행위를 통해 지옥행을 면해 보려 안간힘을 쏟아내고 있다.

훌륭한 업적이나 사상을 남긴 자들의 형상을 만들어 놓고, 앞서 죽은 그들을 무지몽매하게 숭배하는 종교행위에 자신의 죽음 문제를 의탁하고 있다.

그러나 인간은 훌륭한 업적이나 무소유를 동반한 절제의 미덕 등을 주창(主唱)한 형상을 숭배함으로 천국 티켓을 부여받을 수 없다.

어느 문화권이나 국가마다 존경하고 흠모할 대상은 존재한다. 그러나 그들의 형상이나 사상을 답습한다고 이루어지는 천국행이 아니다.

지금 지구촌 구석구석에서 인간이 숭배하고 있는 모든 종교의 창시자 또한 죽음을 면치 못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기도

죽음과 심판을 정하신 하나님께서 다시 한 번 준엄히 말씀하신다.

“너희가 십자가 못박은 이 예수를 주(主)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행 2:36)”.

그리스도는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유일무이한 절대 권세자이고 인간의 생명자가 그리스도이심을 명확하게 확증하신 말씀이다. 천지창조에서부터 심판에 이르기까지 주체는‘그리스도’이다.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엡 2:10)”.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엡 2:13)”.

“곧 영원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뜻대로 하신 것이라(엡 3:11)”.

그러므로 천국 티켓명(名)은 ‘그리스도’이다.

“주는 그리스도이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6)”.

그리스도를 고백한 베드로 앞에 비로소 천국 열쇠가 주어졌다.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다(요일 5:12)”.

아들은 두말할 나위없이 ‘그리스도’다. 하나님의 공표는 심판의 기준 또한 선행이 아니라, ‘그리스도’이심을 확증한다.

안타깝게도 ‘그리스도’가 망각된 세상이 되었다.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고후 4:4)을 신뢰하고 가르쳐야 할 교회들이, 죽음을 이긴 권세(그리스도)를 뚝 떼어놓고 복음, 복음이라고 외치는 행위 종교로 전락하고 있다.

예수와 그리스도는 분리될 수 없는 권세이다. 그리스도를 예수로부터 분리시키려는 세력은 사탄이다. 모든 인간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사탄이 다시 한 번 모든 인간을 멸망으로 유린하는데 사용하고 있는 궤계가 예수로부터 그리스도를 분리시키는 술책이다.

그리스도의 준엄한 권세 앞에 무너진 사탄이기에 그리스도만 없다면, 그리스도만 개입하지 않는다면 다시 한 번 모든 인간을 죽음의 볼모로 만들 수 있으리라는 술책으로 기독교를 유린하고 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탄을 물리칠 수 있는 유일한 권세이다. 그런 엄청난 비밀의 권세가 마침내 구원 백성들에게 나타난 바 되었다. 구원받은 성도들이라면 마땅히 그리스도 중심의 신앙생활이고, 목회자의 설교에는 그리스도가 수없이 선포되어야 마땅하다.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어졌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골 1:26)”.

“곧 계시로 내게 비밀을 알게 하신 것은 내가 먼저 간단히 기록함과 같으니 그것을 읽으면 내가 그리스도의 비밀을 깨달은 것을 너희가 알 수 있으리라(엡 3:3-4)”.

그리스도는 사탄을 심판한 권세이다. 죽음을 이긴 권세이다. 창조주의 권세이고, 심판주의 권세이다. 그리스도를 영접할 때 인간은 하나님 자녀가 된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신분만 주시지 않고 권세까지 주신다. 그리스도 권세이다. 천국행을 훼방하는 악한 세력이 있기 때문이다.

악의 궤계를 그리스도 권세로 물리치고 천국행을 보존하고 성취하라는 긍휼이 그리스도 권세를 주시는 이유이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 자녀가 되는 신분과 권세를 주셨으니(요 1:12)”.

안타깝게도 많은 교회들이 그리스도를 선포해야 할 자리에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예화, 세상 가치관을 갑논을박하고 있다.

그리스도가 희미해지니 목회자는 타락하고 교회마저 재산 축척의 수단으로 여기는 파렴치한 범법아래 활개를 치며, 그리스도 예수의 일 아닌 것에 몰입하고 있다.

“그리스도 예수의 일로 너희 이방인을 위하여 갇힌 자 된…(엡 3:1)”.

그리스도가 선포되지 않는 곳은 교회일지라도 그리스도 예수의 일이 아닌 것으로 분주한 집단일 뿐이다.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현장이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수행하고 있음이다. 그리스도가 선포되는 그때 비로소 천국 티켓은 주어진다.

웨민총회 인천신학장 하민국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