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정봉교 씨 영정 사진 옆으로 본부 근조기가 놓여 있다.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제공
故 정봉교 집사의 영정 사진 옆으로 본부 근조기가 놓여 있다.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제공

큰빛침례교회(담임목사 김선주) 故 정봉교 안수집사(54세, 남)가 다섯 명의 생명을 살리고 이 땅에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지난 16일, 세브란스병원에서는 정 집사의 뇌사 장기기기증이 이뤄졌다. 이날 정 집사의 양쪽 폐와 간, 2개의 각막은 5명에게 전달돼 새 생명과 빛을 선물했다. 그의 아름다운 마지막 나눔이었다.

정 집사는 평소 가벼운 질병에는 면역력을 키운다며 약도 복용하지 않을 정도로 건강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지난해 초, 혹여나 유행하는 독감에라도 걸려 가족에게 옮길까봐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병원을 찾았지만 특별한 이상을 찾지 못했다.

그러다 어느 날 교회 학생수련회 봉사를 하던 중 피로감과 어지럼증을 느꼈다. 정 집사는 다시 병원을 찾았고, 검사 결과 ‘소뇌 박피’라는 뇌 질환을 진단받았다. 그리고 몇 주 뒤 식물인간 상태에 빠지게 됐다.

그 후 정 집사는 약 1년간 재활을 통해 의식을 회복하기도 하며 호전증세를 보였지만, 지난달 갑자기 심정지까지 발생하면서 병세가 다시 악화됐다. 결국 의료진은 뇌사로 추정된다는 판단을 내렸다.

의사의 판단을 들은 아내 김정희 씨는 몇 해 전 남편과 나눈 대화가 떠올랐다. 장기간 혈액투석을 받으며 신장병으로 힘들어하던 친구가 뇌사자로부터 신장을 이식받고 건강을 회복하는 모습을 보며 “우리도 나중에 하늘나라에 갈 때, 우리 몸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주고 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하던 남편의 모습이었다.

김 씨는 담임목사의 소개로 병원을 찾은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이하 본부) 관계자로부터 장기기증 절차 등 자세한 설명을 들은 뒤, 남편의 뜻을 존중해 장기기증을 결정했다.

아내 김정희 씨는 “남편은 고린도전서 6장 10절 말씀을 가장 좋아했다”며 “말씀처럼 가진 것과 관계없이 나누기를 좋아하던 사람이었다. 건축업을 했지만 사실 사업이라기보다는 봉사에 가까웠고, 늘 자신의 달란트를 활용해 어려움에 빠진 사람을 도울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뻐했다”고 말했다.

이어 “다른 사람들을 마주할 때면 늘 미소로 ‘제가 도와드릴 일이 있을까요?’하며 인사를 건넸고, 누군가에게 연락이 오면 ‘사랑합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하며 전화를 받을 정도로 사랑과 나눔이 몸에 밴 사람이었다”면서 “가진 것이 없음에도 하나님으로 인해 기쁘게 누리며 살다간 사람”이라고 추억했다.

빈소에는 고인의 고귀한 생명 나눔의 뜻을 기리기 위해 본부가 마련한 ‘당신의 사랑은 영원히 죽지 않습니다’는 근조기가 세워졌다. 본부 박진탁 이사장은 “슬픔과 아픔의 순간, 숭고한 결정을 내려준 유가족들에게 감사하다”며 “고인은 떠났지만 생전 보여준 사랑과 나눔의 정신은 이 땅에 아름다운 희망으로 꽃 피울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많이 혼용하는 식물인간 상태와 뇌사 상태는 전혀 다른 상태다. 식물인간은 뇌간 기능은 살아있어서 의식은 없지만, 스스로 호흡이 가능하여 장시간 누워서 생활할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즉, 식물인간 상태는 회복될 가능성이 있는 상태로 장기기증을 할 수 없다. 반면 뇌사는 뇌 전체가 손상을 입어 기능을 상실한 상태로 어떠한 치료를 하더라도 보통 2주 이내에 사망에 이르게 되는 상태를 말한다. 따라서 뇌사 상태일 때에만 장기기증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