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금
▲국내 한 기독교 용품 서점에 비치된 각종 헌금봉투들 ⓒ크리스천투데이 DB
신학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교역자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타오르는 열정 하나만으로 시골 어느 한 교회에서 전도사라는 칭호만 받아서, 찬양팀을 지도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그 뜨거운 열정과 감정만 앞섰던 시절, 그래서 무엇이든지 한번 해 보겠다고 하는 마음만 뜨거웠던 시절, 나에게는 열정이 있었습니다(물론 지금도 그 열정이 없는 건 아닙니다).

그 때 저는 의성 지역에서 꽤 잘 나가는(?) 찬양 인도자였습니다. 그 때 교회에서 내어준 작은 교회 안의 방에 기거하면서, 찬양팀과 함께 거하던 그 때 그 시절이 있었습니다.

교회가 시골에 있다 보니, 새벽 예배에 참석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시골에는 농번기가 되면 4시에 새벽 예배가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한참 어렸을 그 나이, 새벽 4시 전에 일어난다는 것은 그리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그러다 한 번 일어나서 새벽 예배를 드릴 때는 거의 유두고와 같은 예배드림이 전부였죠.

한 번은 예배를 마치고 기도를 하려고 무릎을 꿇었는데, 그 때도 어김없이 기도를 하다 졸고 말았습니다. 한참 졸고 있었는데, 졸았지만, 기도하고 있었다고 하시면 됩니다.

그런데 어떤 할머니 한 분이 저의 어깨를 치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할머니가 입고 계셨던 몸빼이에서 꼬깃꼬깃한 5,000원짜리 지폐 한 장을 저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점심을 사먹으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할머니는 시장 노점상에서 산에서 뜯은 산나물을 팔아 생활하시는 분이었습니다. 그런 할머니가 어렵게 번 돈을 제가 어떻게 받을 수 있겠습니까?

제가 괜찮다고 했더니, 끝까지 제 손에 쥐어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할머니가 너무 고집을 피우셔서 결국 그 돈을 받기는 했지만, 그 돈을 쓸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돈에 제 돈을 조금 더 보태, 할머니의 빨간 내복을 한 벌 사드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성도들이 교회에 내는 돈을 헌금이라고 합니다. 그 헌금에는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성도들의 눈물과 피와 삶의 애환들이 담겨 있습니다.

헌금을 교회에 드리는 이유는 하나님의 뜻에 맞게, 아름답게 사용하라는 것임을 분명하게 믿습니다. 그렇게 헌금을 드리는 것이라면, 교회에서 그 헌금을 사용할 때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정직하게 사용해야 할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제가 새벽에 할머니에게 돈을 받았던 그 때가 23살이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그 때 저는 마음을 먹었습니다. 나중에 목사가 되면 헌금은 정직하게 사용하겠다는 것을요.

오늘 인터넷을 보니 ‘헌금의 공공성’이라는 기사가 눈에 띄었습니다. 헌금은 한 개인이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헌금은 대를 이어 자식에게 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헌금은 하나님 나라와 그 의를 위해서, 또한 사람을 살리고 회복시키는 데 귀하게 사용돼야 합니다.

주일마다 헌금을 드린 분들을 위해 기도할 때, 하나님 나라와 사람을 살리는 데 사용되게 해 달라는 기도는, 매 주일 빠지지 않고 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저는 주일 목회의 현장에서 그 기도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어린 시절 했던 그 약속을 제 자신에게 되새기며 오늘 예배도 신령과 진정으로 나아가기를 소망해 봅니다.

서상진 목사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위원, 미래로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