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섭
▲이경섭 목사. ⓒ크리스천투데이 DB
성경에는 ‘강하라(수 1:6, 시 31:24)’, ‘강한 자가 되라(롬 15:1)’는 말씀들이 나옵니다. 이것들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우선 ‘강(強)함’에 대한 정의(定義) 규정이 필요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강함은 그의 타고난 성향이나 혹은 후천적으로 습득된 근성이 아닙니다. 또 단순히 힘, 의지, 용력(勇力)이 남다르다는 뜻도 아닙니다.

대표적인 예로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여라(고전 16:13)”는 말씀을 봅시다. 이는 나약해 보이는 특정 남성을 향해 ‘남자다워지라’는 뜻이 아니고, 남녀를 불문한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믿음의 강함을 독려하는 말씀입니다.

잘 알고 있듯,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벧전 3:6), 기생 라합(히 11:31), 사사 드보라(삿 4:4-5) 같은 여성들은 믿음의 조상으로 기록될 만큼 대단한 신앙의 담력을 가진 이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들의 여성성이 약화되었거나 상실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여성다움을 견지하면서도 남성을 뛰어넘는 강한 믿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사라(Sarah)의 경우를 보더라도, 미모와 여성성을 겸전(兼全)한 매력적인 여성이면서(창 12:11) 강한 믿음의 면모도 갖추었습니다.

남편 아브라함은 그랄(Gerar) 왕 아비멜렉(Abimelech)의 도발 앞에서(창 20:2-3) 자기 살겠다고 아내를 자신의 누이라 속이는 쫄보(拙甫)의 모습을 보였지만(창 20:2), 그와 달리 사라는 두려운 상황 속에서도 놀라지 않았으며, 쫄보 남편에 대해 여전히 주(主)라 부르는(벧전 3:6) 순종적인 여성이었습니다.

그녀는 오늘날 소위 페미니스트(feminist)나 걸죽한 또순이 타입이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사도 바울이 신앙에는 ‘남녀의 구분이 없다(갈 3:28)’고 한 말을 실감나게 하는 여인이었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남자다운’ 신앙은 성별과는 무관합니다. 여성이라도 남자다운 강한 믿음을 보여줄 수 있고, 남성이라도 아브라함처럼 쫄보 믿음을 보일 수 있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강함’은 역설적이게도 피(被)정복자의 강함, 곧 그리스도께 정복된 결과물입니다.

‘피(被)정복자’ 하면 패잔병의 나약한 모습을 떠올리기 쉬우나, 사실 그리스도께 정복된 사람보다 강한 자는 없습니다. 이는 그가 그리스도께 정복될 때, 그의 약함이 그리스도의 강함으로 대치되기 때문입니다.

역사상 가장 강력한 군주가 다윗인데, 그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행 13:22)’라는 일컬음을 받았습니다. 그것의 정확한 의미는 ‘하나님께 정복된 자’ 라는 뜻입니다.

두 사람의 마음이 합해지려면 어느 한쪽의 의지가 포기될 때만 가능한데, 다윗은 하나님께 정복당하므로서 그와의 합치를 이룬 것입니다.

연약한 자연인 다윗이 전능자에게 정복되고 그의 다스림을 받으니, 전능자의 능력이 그를 덮었습니다. 그가 출전하는 전쟁마다 승전고(勝戰鼓)를 울릴 수 있었던 비결이 여기 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께 정복당한다’는 것은 소위 경건주의자들이 애써 자기를 죽이는 ‘자기 부정(self-denial)’ 같은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죽음을 받아들임으로 결과하는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을 자기 죄값으로 받아들이는 자에게 그리스도가 그의 죽음을 앞세우고 들어와 내주하면서(갈 2:20) 일생 그를 컨트롤 하며, 그의 능력과 지혜로 그를 덮습니다(눅 1:35).

반면 가장 약한 자는 그리스도께 정복되지 못한 채 자연인으로 남아있는 비중생자입니다. 이들 자연인의 강함과 지혜는 그것이 아무리 탁월해도 기껏 인간 한계 안에 갇힌 것이기에, 성령의 능력으로 덮여진 자에게 미치지 못합니다.

사도 바울이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고전 1:25)”고 한 말씀 그대로입니다.

◈무엇을 위한 강함이고 무엇을 위한 능력인가?

성경이 말하는 능력과 지혜는 구원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성경이 천지창조의 능력, 죽은 자를 살리는 능력 등 수없는 하나님의 능력들을 말하지만, 그것들은 구원의 능력과 지혜를 계시하는 방편들입니다. 다양한 하나님의 전능성의 계시를 통해 하나님은 능히 죄인을 구원하실 수 있음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사실 그 어떤 능력보다 구원에 더 큰 하나님의 공력이 들어갔습니다. 천지 창조는 말씀으로 됐지만(요 1:3) 구원은 하나님의 2위 성자의 죽음으로 완성됐습니다(요 19:30). 우리가 구약의 창조 안식일보다 주일을 더 크게 여기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성경의 모든 이적은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셔서 죽으실 것’을 예표합니다. 구약에서 가장 큰 이적 중의 하나가 하늘에서 떡이 내린 만나 이적인데(요 6:49), 이는 그리스도가 하늘로부터 구원의 떡으로 오실 것을 예시합니다(요 6:50).

모세가 지팡이로 반석을 쳐서 물을 나오게 한 이적도(민 20:10-11), 반석이신 그리스도가 자기 육신을 깨뜨려 그 백성들에게 구원의 생수를 마시게 할 것을 예표합니다(고전 10:4, 요 4:14).

신약에서 예수님이 오병이어로 5천명을 먹이시고 12광주리를 거둔 이적도(마 14:20-21), 예수 그리스도가 자기 몸을 찢어 수많은 사람들에게 구원의 떡으로 먹일 것을 계시합니다(요 6:51).

이처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에 와서 많은 표적을 행하신 궁극적인 목적은 그가 죄와 사망에서 능히 구원하실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도록 하기 위해섭니다(요 20:30-31).

그러나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요 6:26)”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에서 볼 수 있듯, 사람들은 ‘하나님이 사람 되셔서 택자를 위해 죽으신’ 표적은 놓치고, 그에게서 육신의 배만 불려주는 오병이어의 표적만 찾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사람 되셔서 죽으신’ 표적은 세상 사람들 눈에는 능력과 지혜로 보이지 않고, 무능함과 어리석음으로만 비쳤습니다.

사람들이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를 향해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마 27:40)”고 조롱한 것은 그들 생각의 일단을 드러낸 것입니다.

그러나 패배의 상징처럼 보이는 십자가 위에서 운명하신 그리스도는, “다 이루었다(요 19:30)”는 ‘피니쉬 시그널(finish signal)’을 울렸습니다.

그리스도는 패배로 보이는 그의 십자가의 죽음으로 구원의 완성과 승리를 쟁취해 내셨고(골 2:15), 택자들을 죄와 심판에서 구원하고, 사단을 궤멸시켰습니다(창 3:15).

◈성도의 강함과 지혜는 구원을 지향함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소위 세속적인 성공을 갖다 주는 세상의 능력, 지혜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또 세속적인 교인들이 자기 비전, 야망을 성취하려고 구하는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와도 거리를 둡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죽음으로 이루신 복음도 ‘구원’을 지향하고(롬 1:16), 성도가 그리스도께 정복당해 성령으로 덮여진 결과물인 ‘성도의 강함’ 역시 ‘구원’을 지향합니다.

성도에게 덮혀진 ‘성령의 능력’의 발현과 그리스도 십자가로 이룬 ‘복음’이 합치되어 택자 구원을 성취합니다. 이는 복음을 효력 있게 하는 성령의 능력이 입히울 때까지 성을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하신 예수님의 명령에서도(눅 24:49) 유추됩니다.

사도 바울이 오직 ‘성령의 지혜(고전 2:13; 1:17)’로 ‘복음만을 전했다(고전 2:2, 갈 6:14)’는 말씀도 같은 맥락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복음은 반드시 성령으로 선포될 때만 구원의 능력을 발휘하며, 내 안에 가두어져 있는 채로는 아무 능력도 발휘할 수 없는 ‘현장적인 것(fieldy thing)’임을 말하고자 합니다.

복음이 아무리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도 입으로 선포되는 현장화(現場化)가 안 되면, 아무런 능력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성도에게는 그저 간직하기만 하도록 주어진 능력이란 없기 때문입니다.

구원의 능력과 지혜를 경험하기 원하십니까? 여러분을 덮고 있는 성령의 능력으로 복음을 선포하는 현장화(現場化)를 하십시오.

그 현장화에서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 능력은 복음이 선포되는 현장에서 구현되는 현장적이고(fieldy) 관계적인(relational)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경섭 목사(인천반석교회, 개혁신학포럼 대표, byterian@hanmail.net)
저·역서: <이신칭의, 값싼 은혜가 아닙니다(CLC)>,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CLC)>, <개혁주의 영성체험(도서출판 예루살렘)>, <현대 칭의론 논쟁(CLC, 공저)>, <개혁주의 교육학(CLC)>, <신학의 역사(CLC)>, <기독교신학 묵상집(CLC, 근간)>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