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가장 완벽한 서사의 모범을 보고 싶다면? 성서를 보라.
요즘 영화들을 보며 드는 생각은, 갈수록 선악의 구분이 모호해진다는 것이다.

이전에는 선악의 구분이 명확해서 가치관의 흔들림이나 부담 없이 영화를 즐길 수 있었지만, 더 이상은 아니다.

이전에 악이던 것도 지금은 충분한 합리화 프레임을 덧씌워 그들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고, 그들의 행동도 충분한 이유가 있기에 이해해주어야 한다는 식이다.

예를 들어 강도나 살인, 해적질을 일삼는 부자에게도 그들 안의 사랑을 강조하면서 나머지 죄악이 물타기되는 느낌이고, 마약범과 같은 범죄자도 이해해야 하는 대상이며, 대량 학살을 자행한 자에게도 동일한 면벌부가 주어지고 있다.

동성애자의 동성애가 미화되는 것쯤은 일도 아니다. 1990년대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박한상 존속살해 사건’을 많은 국민들이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부모의 재산을 노리고 계획적으로 부모를 살해하고, 집에 불을 지른 패륜 범죄에 전 국민은 큰 충격을 받았다.

이 사건도 요즘 트렌드에 맞춰진다면, 아마 “그가 원래 선하고 부모를 잘 따르는 사람이었는데 외부적 요인으로 그렇게 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의 고뇌와 삶의 치열함을 보고 그를 이해하면 좋겠다. 여기에 인간 박한상이 있다!”고, 해석을 반영한 결과물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성경은 이분법적이다. 선이 아니면 악이다. 죄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는 분명하시다. 결코 모호하지 않다.

본래 성도는 성경을 바탕으로 신앙의 삶을 살기에 시대를 거스르는데, 가면 갈수록 세상의 물결이 거세지고 있다. 신앙의 외적 자유는 주어졌지만, 내적 싸움은 더욱 치열해진 것이다.

세속을 경계해야 한다고 목이 터져라 외쳤던 선배님들의 목소리는 너무 쉽게 무시되고 있고, 세속에 뒹굴며 자신들의 사랑과 포용을 높이 드러내고 하나님이 아닌 세상에서 한껏 칭찬받는 교인들이 예배당을 채우고 있는 시대를 보며, 성경을 더욱 붙들어야 하는 당위성이 너무나 명백하게 우리에게 주어졌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된다.

어둠이 짙을수록 빛은 더욱 밝히 그 자신을 드러낼지니….

포스트모더니즘과 인간의 타락한 본성이 늘 새로운 죄악을 추구하는 것이 맞아 떨어져, 다른 것도 아닌 더럽고 싸워야 하고 피해야 할 죄를 희석시키고, 덮어주고 감싸주려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드는 요즘이다.

김성욱
크리스찬북뉴스 명예편집위원, 삼송제일교회 중고등부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