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 오요한
욥기 27장 강해

요절: 내가 내 공의를 굳게 잡고 놓지 아니하리니 내 마음이 나의 생애를 비웃지 아니하리라 (6절)


욥은 자기의 연설을 듣고 침묵하는 친구들에게 좀더 고조된 분위기로 계속 말하고 있습니다. 욥은 먼저 고난 중에도 자신은 지속적으로 온전하게 살 것을 확실히 말합니다(2-6절). 그리고 대적자들을 저주하며 그들의 파멸을 말합니다(7-23절).

그를 통하여 믿음으로 사는 자의 승리를 확신합니다. 욥은 하나님이 자신을 연단한 후에 정금같이 나올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의 말처럼 그의 고난은 무의미한 고난이 아니었습니다.

욥은 고난을 겪으며 점점 내면이 성숙하고 있습니다. 그는 두 가지 점에서 성숙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그는 고난 속에서 온전함을 지켰습니다. 둘째로, 그는 정의가 승리할 것을 믿었습니다.

1. 욥의 정당함을 물리치신 하나님

“욥이 또 풍자하여 이르되 나의 정당함을 물리치신 하나님, 나의 영혼을 괴롭게 하신 전능자의 사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의 호흡이 아직 내 속에 완전히 있고 하나님의 숨결이 아직도 내 코에 있느니라, 1-3절)”.

욥이 계속 비유를 들어 말했습니다. 욥은 살아 계신 하나님 앞에서 맹세합니다. 하나님께서 욥에게 공정한 판결을 받지 못하게 하시며, 전능하신 분께서 욥을 몹시 괴롭게 하신다고 합니다. 욥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정당함을 물리치셨다고 말합니다.

원문에는 첫 문장에 하나님은 살아계시다! 라는 감탄문이 있습니다. 욥은 하나님의 살아계심이 사실인 것처럼, 자기의 말이 진실임을 주장합니다.

욥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부당하게 다루신다는 것을 항변하면서도, 자기를 변호하실 분은 하나님밖에 없음을 인정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판단의 최고 가치로 부여하고 있습니다.

욥은 절망적인 상황에 처한 자로서 하나님께 마지막 호소합니다. 욥은 마지막 단계로서 맹세하기까지 이르렀습니다. 하나님의 직접적인 개입을 재촉하려고 맹세합니다.

하나님이 욥의 코에 불어 넣으신 숨결이 그의 코에 남아 있습니다. 욥은 자신이 살아있는 동안 맹세 내용을 반드시 엄수하겠다고 합니다. 욥은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살고 정당하게 살겠다고 맹세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욥에게 고통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욥의 정당함을 물리치셨습니다. 이 순간은 하나님도 욥을 버리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마치 예수님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하는 기도와 같습니다. 요셉이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는 것과 같습니다.

요셉이 의롭게 살고자 하였으나 그는 감옥에 갇혔습니다. 하나님은 요셉의 정당함을 물리치셨습니다. 욥은 육체적인 고통보다 더 고통스러운 것은 하나님이 자신을 억울하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고통입니다. 그러나 욥은 그런 속에서 믿음이 성숙하였습니다.

2. 고난 중에 온전함을 버리지 않는 욥


“결코 내 입술이 불의를 말하지 아니하며 내 혀가 거짓을 말하지 아니하리라 나는 결코 너희를 옳다 하지 아니하겠고 내가 죽기 전에는 나의 온전함을 버리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내 공의를 굳게 잡고 놓지 아니하리니 내 마음이 나의 생애를 비웃지 아니하리라(4-6절)”.

욥은 결코 불의나 거짓을 말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법정에서 결코 거짓을 말하지 않겠다고 선서합니다.

욥은 친구들의 말이 결코 옳다고 하지 않습니다. 만일 욥이 친구들의 말을 옳다고 인정하면, 이는 곧 자신이 신성모독적를 범한 것이 됩니다.

자신은 죽음을 당할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욥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기의 순전함을 지키겠다고 합니다. 순전하게 사는 것을 멈추지 않겠다고 합니다.

욥은 자신은 아무리 죽음의 고통이 와도 죽기 전에는 나의 온전함을 버리지 않겠다고 합니다. 그는 공의를 굳게 잡고 놓지 않았습니다. 공의는 법정적 혹은 도덕적 의미에서 의롭다 정결하다의 뜻입니다.

욥은 자신의 양심에 비춰볼 때, 하등의 도덕적 가책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공의로운 법정 앞에서도 결백을 판결받을 자신이 있었습니다. 그는 스스로 자신의 생애를 비웃지 않았습니다.

욥은 자신의 양심이 자신이 사는 날들 가운데 하루라도 자신을 비난하거나 모독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욥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게 살았습니다.

불의한 일을 보고 자신의 정당함이 짓밟히면 자신의 의를 포기하기 쉽습니다. 그는 막가파처럼 함부로 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욥은 어떤 고난 속에서도 끝까지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3. 악인을 거두시는 하나님


7-10절에 보면 욥에게는 원수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욥이 망하기를 바라는 자요, 욥에게 고통을 주는 자였습니다. 욥은 그들이 악인이요. 불의한 자요. 불경건한 자라고 합니다. 자신의 순전성을 단언한 욥은 이제 자기 대적에게 저주를 선포합니다.

욥은 원수를 사악한 자라고 부르며 그들의 결말이 사악자처럼 되기를 원합니다. 악인이 이익을 얻으나 하나님이 불경건한 자를 거두어 가실 때에 그는 아무 희망이 없습니다.

욥은 하나님이 악인들의 영혼을 거둘 것을 믿었습니다. 환난이 사악한 자에게 임하는 때에 그가 하나님께 도움을 호소하여도 하나님은 그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시지 않으며 그의 기도를 거절하십니다.

욥은 여기서 자신은 비록 고통을 받고 있지만, 사악자의 종말처럼 파멸되지 않을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과 교제하는 자로서 결국에는 구원받으리라는 희망을 갖고 있습니다. 그는 고통 중에서도 하나님께 대한 소망과 확신으로 굳게 서 있었습니다.

욥은 원수의 멸망을 통해 하나님이 공의를 세우실 것을 믿었습니다. 욥은 하나님이 자신의 기도를 들으시고 의로운 자신이 승리하게하실 것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4. 무익하게 된 친구들


11-12절에 보면 앞에서 친구들이 욥을 교훈하려 한 바 있거니와, 여기서는 도리어 욥이 그들에게 충고와 교훈을 베풀고자 합니다.

그는 자연 세계를 통해 하나님의 솜씨를 가르칩니다. 욥은 하나님의 솜씨와 전능자에게 있는 것을 숨김없이 가르치고자 합니다.

하나님은 정의로우십니다. 욥은 친구들이 하나님의 정의로움을 보았으면서도, 왜 그렇게 무익하게 되었느냐고 책망합니다. 욥은 의롭게 산 자신을 왜 판단하고 정죄하느냐고 합니다.

욥은 친구들의 지식과 경험을 전면적으로 부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에 관한 일반적인 지식과 행사를 매우 박식하게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욥은 그들의 경험과 지식이 다만 단편적이기 때문에 욥에게 배워서 더욱 온전하게 만들라고 합니다. 욥은 친구들의 지식을 인정하지만, 그 지식의 적용이 자기에게 있어 잘못되었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친구들은 욥 자신의 불의나 사악함에 관하여 전혀 알지 못하고 어떠한 근거도 없이 단지 인과응보식의 지식만을 가지고 욥을 헛되게 판단하고 있습니다.

5. 악인의 파멸


13-23절에 보면 악인과 포악자가 전능하신 하나님께 받을 분깃 곧 산업을 말합니다. 그것은 악인의 파멸입니다. 욥은 결코 자기가 고통받는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그렇다 해서 사악한 자의 종말에 대한 일반적 심판을 부인하지 않았습니다.

욥 자신은 사악한 자와 달리 전능자에 의하여 반드시 회복되고 구원받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습니다. 악인의 자손은 번성하여도 마지막에는 칼에 죽습니다.

욥은 악인의 후손이 아무리 많이 번성할지라도 그것은 한낱 재앙을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의 후손은 잘 먹지 못하고 죽음의 병으로 죽습니다.

남편의 죽음이 너무 어이없어, 과부가 된 그들의 아내는 울지도 못합니다. 그가 아무리 금은보화를 많이 장만해도 의인이 차지합니다.

사악한 자들이 탐욕과 약탈로 부당하게 부를 축적하여 둡니다. 하지만 그들이 잠을 자다 눈을 뜨면 물질도 없어집니다. 그가 지은 집은 거미 집과 같이 되고 파수꾼의 초막처럼 초라하게 됩니다.

악인의 파멸은 불가피할 뿐 아니라, 갑작스럽고 예측불가합니다. 사악한 자는 밤 사이 죽음으로 인해, 그 전에 누렸던 온갖 부귀와 명성, 그리고 호화찬란한 삶을 더 이상 누릴 수 없습니다.

두려운 폭풍이 밤에 악인을 갑자기 빼앗아 갈 것입니다. 회오리 바람이 모든 물건을 삼켜 올려 사라지게 만들듯이 악인의 존재 자체를 흔적도 없이 없애버리십니다.

사악한 자가 거주한 공간으로부터 급히 쫓겨납니다. 하나님이 그를 아끼지 않고 던져 버릴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를 보고 손뼉치며 그의 처소에서 비웃을 것입니다.

욥이 이렇게 악인이 받을 심판을 말하는 것은 자신의 의가 승리한다는 확신을 말하는 것입니다. 욥은 악인의 멸망을 통해 의롭게 산 자신은 반드시 영광스럽게 될 것을 믿습니다.

그는 지금 비록 정의롭게 살다가 고난을 당합니다. 지금은 정의가 사라지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는 반드시 정의가 승리할 것을 믿습니다.

그에게도 부활이 올 것을 믿고 있습니다. 그는 먼 미래를 바라봅니다. 하나님은 그의 믿음대로 모든 것을 회복시키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셨습니다.

오요한
▲오요한 목사.
6. 결론: 의인의 승리를 확신하는 욥


우리는 극한 고난을 견뎌내고 있는 욥을 통하여 두 가지를 배웁니다. 첫째, 고난 중에 정당함을 버리지 않습니다. 그는 고난이 온다고 해도 악과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결코 부끄러운 짓을 하지 않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정의롭게 살아도 망하고 불의하게 살아도 잘 산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불의하게 살아갑니다. 그러나 욥은 그런 억울함 속에서도 결코 공의를 버리지 않았습니다.

둘째, 악인의 멸망을 통하여 의롭게 사는 자신의 승리를 확신하였습니다. 정의가 이길 것을 확신하였습니다. 그는 공의로우신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이 공의를 세우실 것을 믿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고난 중에서도 불의와 타협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부활의 승리를 확신하였습니다. 욥은 예수님과 같이 부활의 승리를 믿고 온전히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우리도 끝까지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으로 살 때 반드시 승리할 것을 믿습니다. 아멘!

오요한 목사(천안 UBF, <오요한 목자의 로마서 강해> 저자)